좌충우돌 반려 취미 탐색기 #2
오래전 어설픈 연애를 했더랬다. (누구는 한 때 안 그랬겠냐마는)
만나면 주로 영화를 보거나 용산을 어슬렁거리던 우리가 어느 날 맘먹고 손잡고 찾아간 곳이 인라인숍이었다. 그곳에서 발 크기를 재고 발에 맞는 인라인을 신고선 설레는 맘으로 어기적 어기적 걸어봤던 때가 눈에 선하다. 운동이라곤 숨쉬기랑 산에 기어오르기 말고는 완전 젬병이었던 내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머, 당연히 쉽지는 않았으나 그리 어렵지도 않았다. 맘먹고 스케이트 짊어지고 상암 정도는 가줘야 하는 게 좀 귀찮았을 뿐.
그렇게 그와 인라인을 타러 다닌 지 며칠 째 되던 날 내가 말했다.
“나 넘어지려 할 때 왜 안 잡아줘?”
운동신경이 나보단 훨 나아 진도가 빨랐던 그가 답했다.
“같이 넘어질까 봐. 그래서 당신이 더 다칠까 봐.”
그의 우려와 달리 나는 별로 넘어지지 않았고 다치지도 않았다. 그리고 인라인 때문이 아니라 그의 부모님에 의해 내가 꽤 큰 상처를 받았을 때,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나대로의- 불가항력이라 생각되는 이유로 먼저 손을 놓자 하였으나, 그의 이유는 “같이 손잡고 있다가 당신이 더 다칠까 봐” 바로 그거였다.
그가 가고 남은 인라인 스케이트는 가볍지 않았다. 나름 중급용의 큰 바퀴를 단 스케이트가 3종 보호대와 헬멧까지 끼워져 있는 배낭에 들어가 있으니 부피도 컸다. 그렇게 부담스러운 공간을 차지하고 있던 인라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문득 몸을 일으켜 어깨에 짊어지고 집을 나섰다. 몹시도 더운 여름날이었다.
상암 월드컵 공원에 들어가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스케이트를 신던 때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스케이트의 끈을 신중히 하나하나 끼워 조이던 일, 그리고 혼자 일어설 때의 비장함 같은 것이.
그렇게 한동안 인라인을 탔다. 열정적으로 무료 강습을 해주던 강사들이 있는 동호회를 기웃거리다 한 수 배우기도 했고 그들과 줄줄이 기차 대열을 만들어 한강을 넘어 먼 길을 달리기도 했다. 한강 옆을 달릴 때 양 볼을 스치던 바람이 참 좋았다.
서너 계절쯤 그 스피드를 즐기다가 이사하면서 스케이트를 처분해버렸다. 무언가, 인라인 스케이팅이 아닌 어떤 것을 홀가분하게 졸업해버린 느낌이었다.
* 그 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 인라인 스케이트는 온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많던 스케이트들은 한순간에 다 어디로 간 것인지 신기할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