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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하 Oct 24. 2020

기술적 심미주의와 호모 파베르의 선택 - 가죽공예

좌충우돌 반려 취미 탐색기 #3

 #3기술적 심미주의와 호모 파베르의 선택 - 

기어헤드. 자전거를 타는 것보다도 만지작거리고 고치고 개조하기를 좋아하는 괴짜들을 일컫는 영국 속어에서 유래된 말이란다. 스스로를 기어헤드라 고백하는 웹칼럼니스트 김국현은 기어헤드를 "'뭐든지 내 것으로 만들어버리겠어'라는 근거 없는 자만심이 극대화된 형태로, 기술적 심미주의자로서 탐구할 수 있는 가장 순수한 아름다움을 찾을 가능성이 가장 큰 상태"*라며 칭송한다. 그리고 IT의 원동력은 바로 기어헤드의 궁극이자 완성형인 선데이 프로그래머, 아마추어 엔지니어에게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에 의하면 나 역시 기어헤드적 인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내 안의 기술적 심미주의는 IT의 원동력 혹은 IT의 미래 대신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기술, 가죽공예를 선택했다. 오랫동안 탈(脫)IT를 꿈꿔온 사람으로서는 자연스런 선택이다. 


시작은 여느 보통의 문구 매니아처럼 그저 맘에 꼭 드는 가죽필통을 갖고 싶었을 뿐이었다. 더 욕심을 낸다면 작은 휴대용 노트 커버에 심플 라이프에 어울리는 심플한 지갑 정도? 그러다 그게 좀 만만해 보이기 시작했고, 인터넷에 정보는 넘쳐 났고,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작은 방에 공구가 한가득이었다. 디자인을 하고 그에 맞춰 가죽을 재단하고 본딩, 펀칭, 바느질을 한 후에 지퍼를 달거나 단추를 다는 과정에 그리 많은 도구들이 사용된다는 것이 놀라웠다. 손으로 직접 만지작거리고 만드는 걸 좋아하는 기어 헤드적 인간으로서, 나아가 도구의 인간, 호모 파베르의 후예로서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런저런 도구들을 익히고 들이다 보니 어느새 이 지경에 와 있었던 것이다. 


결과물의 퀄리티는 예상보다 훨씬 더 도구 의존적이었다. 예를 들어 바느질을 하기 위해 가죽에 구멍을 내는 '목타' 혹은 '치즐'을 어떤 것을 쓰느냐에 따라 바느질의 완성도는 꽤나 달라졌다. 당연히도 좋은 도구는 매우 고가였고, 좋은 도구를 갖고 싶은 욕망은 풍선처럼 부풀어 갔다. 물론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가죽이었다. 식물성 재료로 무두질한 이태리 베지터블 가죽을 써 보고 나면 다른 가죽은 보이지도 않았다. 원주인이 가지고 있던 근육과 뼈의 흔적, 모기 물린 자국과 같은 흉터까지, 한 생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천연 가죽들은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마지막 완성도를 결정짓는 건 장식선과 불박이었다. 중고로만 거래되는 오래된 불박기와 전기인두로 열을 가해 남의 가죽 위에 불박-불도장을 찍다 보면 이런저런 상념이 들곤 했다. 




한 생을 살다 간 한 생명체의 외피였던 가죽 위에 뜨거운 기계로 '불박'을 찍는다. 저마다 다른 가죽의 특성에 꼭 맞는 온도와 시간의 조합을 찾아야 하는 일이다. 그렇게 제대로 된 무늬를 만들기 위해 고투할 때면 오래전 필름을 현상하면서 온도와 시간을 맞추던 일이 생각난다.


찾아낸 조합이 또 늘상 똑같은 결과를 내는 건 아니어서 찍기 전에 쪼가리 가죽으로 테스트를 해보지만 그럼에도 살짝 모자라거나 과한 결과가 나오기 일쑤다. 그래도 실패할 확률은 조금씩 줄고 있고, 시행착오의 축적이 대체로 정직하게 한 발 전진이 되는 경험을 하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만들어진 이 무늬를, 혹은 화인을 (특히나 이런 야심한 밤에)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쓸데없는 상념들이 몽글몽글 솟아난다.


살면서 나는 적절히 뜨거웠는가. 뜨거워도 좋을 때에 턱없이 차갑고, 냉정을 지켜야 할 일을 뜨겁게 껴안고 있었던 건 아닐까. 

사는 일도 이처럼 시행착오가 늘어남에 따라 한 발짝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일일 수 있다면!


(블로그에 끄적였던 글'을 '찾아보니 참으로 이기적인 인간이 아닐 수 없다. 그 가죽을 내어주었던 소들의 명복을 빈다.)


애초에 욕망하던 '내 마음에 꼭 드는 가죽 필통'을 갖게 되었고, 몇몇 지인들에게 노트커버나 명함케이스, 지갑 등을 선물하였으며 그 지인들을 통해 몇 번쯤은 선물용으로 판매도 하였다. 반응도 괜찮았다. 하지만 한땀 한땀 수작업으로 하는 일은 너무 많은 시간을 잡아먹었고, 가죽은 비쌌고, 한 번 손에 잡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니 생활의 균형이 위태로워졌다. 제동이 필요한 순간이 온 것이다. 

 


이후로 세 번쯤의 이사를 했다. 그때마다 운반해주시는 분들이 잡다한 도구들을 보며 "도대체 뭐 하는 분이세요?" 묻곤 했다. 이삿짐을 쌀 때면 잠시 고민을 하기도 했다. 가죽 까페에 가끔 올라오는 것처럼, "눈물 머금고 애써 모은 가죽 공예 도구, 불박기, 폰트, 가죽 및 부자재 등을 일괄 판매합니다." 이런 판매글을 올려버릴까 하고. 


지금은 고민하지 않는다. 이들을 만지작거리며 뭔가를 만들어내며 느꼈던 즐거움을 잊지 않고, 할 수 있는 데까지 이 짐을 끌고 살아갈 작정이다. 언제든 이 도구들을 손에 집어 들고 다시 그 즐거움으로 뛰어들 수 있으니, 약간의 여유만 허락된다면 이만한 반려 취미가 없다는 결론이다. 가끔씩 방치된 도구들이 녹이 슬고 있지는 않은 지 점검해보며 소박한 작업실(NCSI 깁스 반장의 지하 작업실 같은 건 못되어도)을 꿈꿔 보기도 한다. 



* 김국현, <우리에게 IT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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