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반려 취미 탐색기 #4
늦잠을 잤다. 일요일이니까. 출퇴근 안 하고 재택근무한 지 오래되었는데도 일요일이 되면 늦잠을 잔다. 신기한 일이다. 몸으로 체득된 사회적 규율의 힘이 이리도 세다.
몸이 시키는 대로 일요일답게 보내기 위해 TV를 켜니 <차이나는 클래스>에서 먼 안데스산맥 고원지대의 악기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람과 동물의 뼈로 만들었다는 "케나(Quena)"라는 악기다.
안데스 지역의 장례는 주로 풍장(風葬)이었다 한다. 죽음에 이른 시신을 비나 바람에 맞혀 자연에 의해 소멸시키는 방법이다. 사랑하는 이가 죽으면 풍장을 한 후 그 넋이 새가 되어 날아가기를 기다렸다가 남은 뼈를 추려 악기로 만들었다니 그 애도의 방식이 이보다 더 낭만적일 수가 없다. 그 소리가 궁금해져 유튜브에서 찾아 들으며 생각했다. 내가 죽어 내 뼈가 악기가 된다면, 그래서 이리 아름다운 음악이 된다면 얼마나 근사한 일일까, 하고. 길이가 짧아 저음은 내기 어려울지도 몰라, 뼈가 튼실하지 못할 텐데 바람 소리가 좀 날려나?
슬프게도 내가 다룰 수 있는 악기는 없다고 말해야 한다. 꽤 여러 번 시도해 본 게 기타였지만, 몇 개의 코드를 잡을 줄 알고 쓰리 핑거 주법으로 몇 개의 곡을 연주할 수 있으며 해머링이 뭔지도 알지만, 거기까지다. 많은 사람이 그러하듯 F코드의 장벽을 넘지 못했다. 손끝이 너무 아팠고 연습 시간이 너무 오래 필요하고 새끼손가락이 짧다는 핑계(이건 정말 핑계라는 건 안다)도 있었다. 그렇게 다루지는 못하면서도 반평생 이상을 내 방에 모시고 살았다. 내 언젠가는 나의 시간과 애정을 너-기타에 담뿍 쏟아주마, 그때엔 우리가 함께 아름다운 연주를, 아름다운 일상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도 몰라, 하면서.
기타를 처음 손에 쥐었던 건 중3 때로 기억한다. 아버지가 무언가에 대한 보상으로 선물을 주겠노라 하셨을 때, 망설이지 않고 기타를 선택했다. 그 시절 많은 사람에게 그러했듯, 그게 꽤 멋져 보였다. 어디에선가 "가슴팍에 안고 치는 유일한 악기"라는 말을 듣자 기타를 잘 치고 싶다는 욕망은 더 강화되었는데, 이후로 기타 좀 친다는 사람을 만나면서 그게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구 상에 얼마나 많은 음악과 악기들이,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것들도 포함하여 - 있을 것인데 오직 기타만 그러할까.*
그래도 기타 소리는 여전히 둥둥 가슴을 울린다. 어쩌다가 살포시 앉아 있는 먼지를 걷어낸 후에 가슴에 부둥켜안고 퉁퉁 튕겨보면 어느 원시의 먼 곳에서 시작한 울림이 내게 도달하는 것만 같다. 언젠가는 꼭 아름다운 연주로 출력시키고 싶은 울림이다.
* 오래 즐겨 듣던 음반 <Lambarena - Bach To Africa (1993)>의 해설에 의하면, 가봉에는 단지 백만의 인구가 있는데 적어도 42개가 넘는 부족적 리듬이 있다 한다. 그렇다면 그 리듬을 구현해내는 악기는 또 얼마나 많을 것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