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의 끝을 알지 못해도 두려움 없이, 기꺼이 걷고 헤매기를 반복하면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문화창조원,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 울라이의 1988년 작품이 전시된 전시관의 주제는 <걷기, 헤메기>였다. <걷기, 헤매기>는 ‘걷기‘ 라는 일상적인 행위에 담긴 의미를 돌아보는 전시다. 우리는 매일 걷는다. 우리는 길을 걸으며 목적지를 향하기도, 헤매기도, 또 무언가를 우연히 발견하기도 한다. 이 전시관에는 실제로 길에서 무언가를 수집한 작품도 있었다. 또 길을 걸으며 사색을 하면서 일상에서 깊이 들어가지 못한 생각들에 빠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우리는 걸으면서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진다. 낯선 타인들과의 뒤섞임도 어쩌면,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산책 혹은 소요의 가치는 쓸모를 기대하지 않아서 귀해지는 쪽이다. 산책자는 걸을 때만큼은 자신의 '몸'보다 '몸이 아닌 것'에 시선을 둔다. 나는 산책자이면서 수집자이다.
155-156쪽. 한정원,<시와 산책>
<걷기, 헤매기> 전시에 대한 큐레이터의 설명을 곱씹어 보며서 이 작품 앞에 섰다. 이 작품은 15분 정도 길이의 영상이 반복 된다. 사전에 아무런 정보가 없다면, 그저 빨간색 옷을 입은 여자와 파란색 옷을 입은 남자가 계속 걸어가고 있는 장면이 지루하게 반복될 뿐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다행히 작품 제목에서 모든 힌트가 다 있기에 어렴풋이 이 두사람의 관계와 주제 대해 짐작할 수 있다. 작품 제목은 <연인, 만리장성 걷기>이다. 빨간색 옷을 입은 여자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작가이고, 파란색 옷을 입은 남자는 울라이 작가인데, 이 두 사람은 작품의 제목 그대로 ‘연인’이었다. 둘은 12년간 함께 예술 작업을 해오던 동료이기도 했다. 두 사람은 1980년 즈음, 그들의 결혼식을 위해서 이 작품을 기획하게 되었다. 만리장성을 선택했던 이유는, 이들이 호주에서 캠핑을 할 때, 피라미드와 만리장성이 우주에서도 보인다는 뉴스를 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를 기획 하자마자 바로 시작하지는 못했다. 중국 정부의 허가를 받기까지 무려 8년이나 걸렸던 것이다. 중국 정부는 "왜 하필 만리장성"이냐며 입장 허가와 비자를 내주는 것을 못마땅해했다. 결국 중국 cctv 다큐멘터리에도 참여하는 것으로 드디어 이 '만리장성 걷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참고로 이 영상은 bbc 기자가 따라다니며 찍었다고 한다. 아무튼 이런 우여곡절 끝에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 울라이는 드디어 1988년 3월 30일에부터 만리장성을 걷기 시작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중국의 동쪽, 황해(서해)쪽 보하이 만에서 출발했고, 울라이는 중국의 서쪽, 고비사막 쪽에서 출발했다. 물(바다)과 불(사막)은 여자와 남자를 상징하는 의도였다고도 한다. 그래서 시각적으로도 대비되는 색깔의 옷을 입기도 했을 것이다. 이렇게 둘은 각자 만리장성의 끝과 끝에서 걷기 시작해서 가운데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만리장성을 걸어가는 길은 무척 험난했는데,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 울라이가 걷던 길은 개발되지 않은 구역도 있어서, 다칠 뻔하기도 하고, 지팡이를 짚고 걸어야 했던 적도 있었다. 영상에서도 지팡이를 짚고 걸어가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이들은 만리장성 주변의 마을에 머무르기도 하면서 그곳의 주민들과도 소통했다. 특히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그곳의 가장 나이 많은 어른들을 찾아 만리장성에 관련된 전설을 듣기를 즐겼다고 한다. 지역 주민들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등장을 신기해하며 그녀가 자는 모습까지 돌아가며 구경하기도 했다. 울라이는 보헤미안의 기질이 있어서 별을 보며, 캠핑을 고집하기도 했지만, 그 역시 이 걷기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마을에 머무를 수 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이렇게 매일 20여 킬로미터씩 각자 2500킬로미터를 걸어서 마침내 산시성의 얼랑 산에서 만나게 된다. 90여일 동안 만리장성을 걸어오면서 계절이 봄에서 여름으로 바뀌었고, 둘은 서로 만나자마자 포옹을 한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잠깐 눈물도 흘리는데, 어느 기사를 보니, 울라이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낡은?) 신발을 보면서 놀렸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아무튼 둘이 서로를 향해 걸어오면서 만나자마자 포옹하는 장면 자체가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이들의 스토리를 자세히 알지 못해도 이것만으로도 작품이 이해가 되고, 공감이 갈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해피엔딩이 아니었다. 결혼을 결심한 두 사람이 그걸 기념하는 이벤트로 만리장성 입장을 원했으나, 그 허가를 받기까지 무려 8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는게 문제였다. 그 사이 이 두사람은 각자 다른 사람은 만나게 되는데, 울라이는 중국 통역사와도 관계가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그 사이 서로의 가치관이 다름을 확인했는데,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자신의 어린시절 결핍을 보상하기 위해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고, 셀레브리티로 살기를 원한 반면, 울라이는 계속 캠핑을 즐기던 보헤미안으로 살기를 원했다. 이렇게 사이가 나빠진 두 사람이지만, 둘은 ‘만리장성 걷기'를 포기하지는 않고 이것을 이들의 지난 시간의 사랑을 마무리하는 '이별식'으로 만들었다. 서로 만나기 위한 긴 여정이었던 ‘만리장성 걷기’가 다시 헤어짐의 시작이 된다니, 참 아이러니 하지만, 이런 순간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든 것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아이디어가 특별한 것을 넘어서, 실제로 그 아이디어의 실행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냈다는것, '걷기'를 지속함으로 자신의 신체와 흔적과 시간과 인연들을 모두 '예술' 안에 박제해 버린 것이다.
이날 이후 둘은 다시는 만나지 않았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계속 작품활동을 했지만, 울라이는 술과 마약에 빠져들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초기에는 어릴적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해, 관람객 앞에 '혼자' 서서 자기 파괴적인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었다. 칼로 자신의 손을 찌른다거나, 관람객이 자신의 신체를 훼손하기 직전까지 퍼포먼스를 진행한적도 있다. 마리나 아브라모 비치는 울라이라는 연인을 만나면서 '둘이' 작업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울라이와 이별 후,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사회 문제에도 눈을 뜨게 되었고, 발칸 반도에서의 전쟁을 고발하는 작품으로 1997년에는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도 받는다. 나아가 그녀의 예술 세계는 2010년 뉴욕 현대 미술관에서 열린 <예술가가 여기 있다>라는 퍼포먼스에서 더욱 확장된다. 그녀는 당시 미술관 의자에 가만히 앉아서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사람들과 1대1로 마주하는 퍼포먼스를 약 세달동안 진행했다. 그 퍼포먼스의 규칙은 대화 금지, 만지기 금지였다. 그럼에도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를 보면서 화를 내는 관람객도 있었는데, 그녀는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그런데 어느날,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한 관람객을 보고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심지어 규칙을 깨고 그 관람객의 손을 잡기까지 하는데, 그 사람은 도대체 누구였을까? 홀로 예술을 시작했으나 이제 모든 사람들과 함께 퍼포먼스를 하면서 미술관에 붙박이처럼 붙어버린 그녀를 움직인 사람, 바로 그 사람은 그녀와 함께 만리장성을 걸었던 옛 연인 울라이였다. 두 사람은 그렇게 그곳에서 22년만에 만나게 된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이 <연인, 만리장성 걷기> 작품에 대해 나중에(2018년 뉴욕현대미술관 회고전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매우 드라마틱 하면서도 매우 아픈 엔딩이었다.” 라고. 그 후 두 사람의 또 파란만장한 인연에 대한 설명은 여기서 접어두려고 한다. 아무튼 미술사에서도 의미있는 작품으로 남아 있고, 책으로, 다큐멘터리로도 계속 이야기 되는 이 두 사람의 이야기는, 어느 '연인'의 추억을 넘어 '삶'이 라는 길을 걷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들은 문자 그대로 (만리장성) 길을 걸었고, 그 후에도 자신의 삶 속으로 걸어 나갔다. 두 사람은 그 안에서 걷고 헤매었다. 하나의 짧은 이야기로 압축되는 그 둘의 삶과 관계는 아름답기만 한게 아니라 피해의식과 중독과 배신과 소송과 악다구니로 가득했다. 해피엔딩이 아닌적도 있었고, 예상치 못한 극적인 순간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이런 순간들, 만남들, 삶의 여정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이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듭하다가 하나의 완결된 성취로 이루어지지 않는다해도 아주 무의미 하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더 잔인한 것은, 이렇게 걸으며 헤매는데서 그치지 않고 아예 길을 잃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럴때는 다시 '헤맬 결심'을 단단히 하고 방향을 가늠하며 걸어가는 수 밖에 없다. 한편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 울라이가 그랬듯이, 모든게 정해진 길로 가지는 않아도 삶의 이벤트들이 길 위에서 이루어 지는 순간들을 지속한다면 길을 걷는 자를 넘어 길 밖에 있는 자, 길을 만드는 자로 살 수도 있지 않을까. 길의 끝을 알지 못해도두려움 없이, 기꺼이 걷고 헤매기를 반복하면서.
하지만 그들은 흔들릴지언정 무너지지는 않았다. 음악을 버팀목 삼아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던 꿈을 되살려 냈다. 뉴욕의 거리를 떠돌며 음반 작업에 매달리면서,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일을 다시 시작했다. 제목 그대로 '비긴 어게인' 한 것이다. (......) “세월이 흐른 뒤 어렴풋하게 깨달았어요. 아니 겨우 짐작합니다. 길을 잃어봐야 자신만의 지도를 그릴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진짜 길을 잃은 것과 잠시 길을 잊은 것은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이기주, <언어의 온도 - 길을 잃어버린 사람들>
성인기는 신중한 예상과 철학적 기억으로 이루어지고, 그 덕분에 우리는 좀 더 느리고 착실하게 길을 찾는다. 하지만 실수를 두려워하는 태도는 그 자체 크나큰 실수일 수 있다. 제대로 된 삶을 살지 못하게 하는 실수일 수 있다. 삶은 늘 위험한 법이니, 조금이라도 덜 위험한 삶은 이미 무언가를 상실한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나는 그러다가 많은 모험을 놓쳤다. (......)나는 계속 일직선으로 걸어, 출발점으로부터 계속 멀어졌다.
리베카 솔닛, <길 잃기 안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