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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tykwariat Jun 27. 2023

리슨투더시티, <거리의 질감>

우리도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 우리 모두를 위한 이동권의 자유를

<거리의 질감>은 리슨투더시티라는 장애인과 재난에 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해온 단체가 장애인 이동권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는 내용이다. 이 작품을 만든 리슨투더시티는 처음에 포항 지진을 겪은 장애인들을 인터뷰 하며 재난에 취약한 장애인에 대해 취재하려고 했다. 그런데 인터뷰 도중 한 장애인이 포항을 한번도 벗어난 적이 없고 기차를 타고 싶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리슨투더시티는 재난시 불평등을 해결하는 게 우선이 아니라, 평소의 불평등을 해결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을 전환하게 되고, 이동권에 대해 좀 더 폭넓은 사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이 영화는 장애인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지만, 단순히 장애인의 이동권 문제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인간이 어디론가 갈 수 있다는 것의 권리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을 만든 리슨투더시티는 미술, 디자인, 건축, 영화, 인문학, 도시계획 등 다양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하는 단체이다. 리슨투더시티는 도시를 지나치게 개발하는 것, 환경문제에 무관심한 사회, 문화적인 다양성이 파괴되는 상황을 보며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 리슨투더시티는 이런 한국의 문제점을 알리기 위해 2009년부터 창작활동을 시작했는데, <거리의 질감>은 2023년 작품으로, 비장애인 중심으로 만들어진 도시를 향해 질문을 던지는 영화이다. 이 영상을 보면, 한국 도시의 길과 골목은 비장애인만 편하게 걸을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이 작품이 전시된 전시장은 리슨투더시티가 작품 제안서에 휠체어가 반드시 접근 가능하도록 공간 관련 요구사항을 명시해 놓은대로 설치되어 좀 더 장애인 중심적으로, 휠체어가 접근 가능한 공간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작품의 제목은 왜 <거리의 질감>일까? 이 제목에 대한 설명이 따로 나와 있지 않아서 오히려 한번 더 돌아볼 수 있었다. 나는 평소 거리를 다니면서 거리의 질감에 대해 크게 의식해 본적이 없었다. 특히 잘 포장된 도로를 다닐 때는 물론이고, 완전히 흙길이거나 땅이 파여 있지 않은 이상 대부분은 큰 불편함 없이 다닐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생각이 흘러가며 훨체어를 탄 사람들은 거리의 질감이 내가 감각하는 것과 완전히 다를 것이라는 걸 비로소 의식하게 되었다. 휠체어가 거리에 닫는 면적은 걷는 사람들이 거리에 닫는 면적 보다 범위가 더 클 것이다. 보행자, 즉 걷는 사람들은 그저 거리의 질감을 신발 크기 정도로 밖에 느끼지 못하지만, 휠체어를 탄 사람들은 휠체어의 바퀴 크기와 그 무게 만큼 거리의 질감을 크게 느낄 수 밖에 없는게 아닐까. 휠체어나 지팡이 등 몸과 연결된 이동 수단에 의지해 걷는 사람들은 ‘거리의 질감’에 따라 나의 신체 감각이 크게 바뀌는 경험을 하며, 그것이 세상을 감각하는데 영향을 끼치는, 단순히 거리가 이동을 하는 공간 이상의 공간으로 경험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을 만든 리슨투더시티는 <거리의 질감>을 통해서 '목소리가 없는 자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하기', '소수자의 시선에서 질문하기' 를 실천하려고 했다. 최근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관련 뉴스가 보도되기는 했지만, 나는 사실 이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기 전까지는 그 갈등의 내용에 대해 크게 실감하지 못했다. 광주에는 지하철이 전 도시권역에서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북구에 사는 나는 지하철을 이용할 일이 없었고, 내가 직접 휠체어를 밀어 본 경험도 그런 경험이 있다고 하기엔 너무 적어서 불편함에 대해 호소할 입장은 아니다. 그래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이동권을 주장하는 내용에 대해 인지적으로는 동의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떤 불편함이 있는지는 구체적으로 실감하지 못했다. 한편 내가 이 작품을 보며 특히 놀랐던 것은, 교통 취약자를 위해 설치된 엘리베이터임에도 불구하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장애인을 배려하지 않은 채, 비장애인들이 너무도 당연한듯 엘리베이터에 먼저 타는 장면이었다. 이들은 자신이 차례를 양보하거나, 휠체어가 들어갈 공간도 확보할 생각도 하지 않은채, 그저 손짓으로만 장애인더러 엘리베이터에 들어오라고 한다.

장애인들, 특히 이 영상에 나오는 뇌성마비이면서 스스로 이동이 불가능한 장애인들은 보통 시설에 거주하면서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시설에 갇혀 지낸다고 한다. 이들은 집밖으로 나올 수 있는 여건이 안되기 때문에 그 안에서 자신의 삶을 정체시킨 채 살아가고 있을 수 밖에 없다. 삶이 정체되어 있다는건 무엇일까? 인터뷰에 속 장애인들은 아무리 내가 먹고 자고 숨을 쉰다고 해도 그 외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결국 죽은거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이들은 사고로, 병으로, 노화로, 비장애인이 장애를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은 너무도 많으며, 사회가 비장애인 친화적 환경에 대해 문제점을 깨닫고, 장애인의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만들고, 도로의 턱을 없애고, 가게마다 경사로를 놓기를 바란다.


한 장애인은 인터뷰에서, 현대 사회는 너무나 빨리 변화하고, 사람들은 돈을 잘 벌어야 잘 살 수 있기에 더 많은 스펙을 쌓고 더 오래 일하도록 강요당하는 듯하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중에는 그 세태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당연히 있기 마련일 것이다. 이들의 투쟁은 단순히 장애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같이 살아가는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한다. 이들은 이동권, 교육권, 노동권, 탈시설권리를 주장하며, 장애인권리예산을 보장해주기를 요구한다. 이들이 특히 강조하는 것은 이동권, 즉 이동할 수 있는 권리인데, 일단 안전하게 밖으로 나올 수 있어야, 교육, 노동, 탈시설이 가능할테니까 그런 것이다. 이들은 비장애인들이 감당하는 것의 몇배로, 이동할 방법을 찾고, 이동할 길을 검색하고, 이동하기 위해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는 노력을 해야한다. 이나마도 이동이 어느정도 가능하고 허락된 장애인들에게 일어나는 일이지, 시설과 집에 갇혀 있는 장애인들은 시도는 커녕, 상상조차도 못하는 것이다. 사실 문제 인식을 한다 해도 그들의 모든 어려움을 자세히 알기는 어렵다. 나 또한 나만의 어려움을 갖고 사는 존재이고, 당장 내 앞에 놓인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급급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을 장애인으로서의 시선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한 인간으로서 바라 보고, 그들이 맞닥뜨리는 불편함을 넘어, 그들이 인간으로서, 개인으로서 가지는 기본 욕구에 촛점을 맞추어 보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어딘가로 이동한다는 것은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그들은 어쩌면 장애인으로서 배려 받고 싶은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는 개체임을 인정받고 증명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기본적인 욕구와 권리를 가진 인간으로서.

이 편집된 짧은 영상을 보고 그들의 어려움을 다 안다고는 절대로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런 기회를 통해 한번이라도 더 장애인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의 입장에서 질문하는 경험이 필요한 것 같다. 또한 실제로 어떻게 장애인들과 뒤섞일 기회를 만들 것이며, 길에서 그들을 마주쳤을 때 어떻게 대해야 하며, 그들만 쉽게 넘어가지 못하는 장벽들에 대한 인식과 더불어, 함께 투쟁해야 할 문제들은 무엇인지, 모두의 진정한 이동의 자유가 실현되기까지의 과제들을 구체적으로 배워나가는 태도가 필요하다. <걷기, 헤매기>라는 타이틀을 걸고 있는 전시이지만, 이 전시의 큐레이터는 걷기의 개념을 더 확장해서 도시와 길이라는 공간에서 우리가 어떻게 감각하고 변형되는지에도 주목하고 싶었다고 한다. 우리가 사는 도시, 길에는 사실 걷는 사람들만 있는게 아니었는데, 나는 <걷기, 헤매기>라는 주제에 대해서 이상적이고 모두가 보기 좋을 법한 모습으로만, 낭만적으로만 생각했다. 걷는 것이 몸짓을 넘어 공간을 인식하는 행위라면, 그 공간안에 있는 '나'와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넘어선 그곳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자극들에 반응할 수 있는 열린 태도를 가지는 것이 진정한 걷기의 의미가 아닐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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