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善)'과 '악(惡)'의 변증법
'선(善)'과 '악(惡)'의 변증법
- [마징가(魔神-Ga)], 나가이 고(永井豪), 1972.
"신(神)도, 악마(惡魔)도 될 수 있다."
- 카부토 쥬조 박사, [마징가-Z], 1972.
카부토 코지의 할아버지 카부토 쥬조 박사는 예전의 동료 헬 박사의 음모를 알고 있었다. 그리스 고대유물 발굴지에서 탈출한 그는 자취를 감추고는 '초합금-Z'를 개발하여 '신(神)의 힘'인 '광자력 에너지'로 가동되는 '흑철(黑鐵)의 성(城)'을 비밀리에 제작한다.
헬 박사는 고대 그리스 미케네 문명 발굴 과정에서 '청동거인'들을 부활시켜 세계를 지배하려 하는데, 이를 막으려는 카부토 쥬조 박사를 찾아 그의 집을 폭격한다.
카부토 쥬조 박사는 손자에게 "신(神)도, 악마(惡魔)도 될 수 있다"는 유언을 남긴 채 죽는데, 그가 만든 '흑철(黑鐵)의 성(城)'의 이름이 바로 '마신(魔神)'이고, 일본 발음으로 '마징'인 것 같다.
손자 카부토 코지가 이 '흑철(黑鐵)의 성(城)'을 조종하며 외치는 "Go~"를 붙여 로봇의 이름은 '마징가(魔神-Ga)'가 되었다.
[마징가-Z]는 1972년 일본 만화가 '나가이 고(永井豪)'가 발표한 만화 연재물(comics)인데, 1980년대 초, 우리나라 TV 프로그램으로 알려진 만화영화는 그의 원작 만화를 토대로 일본 방송국에서 제작한 어린이용 'TV 시리즈'였다.
그런 걸 알 수 없었던 초등학교 입학 전, 할머니 집에서 TV를 보던 나의 당시 꿈은 조종사 '쇠돌이(카부토 코지)'도 아니고 '마징가-Z' 자체였다.
나는 어른이 되면 그 강한 로봇이 되고 싶었다.
나가이 고의 원작만화는 '어린이용'이 아니었다. '신좌파 세계혁명'이 일단의 '실패'로 보이던 1970년대 초의 '염세적'이고 '회의적' 세계관을 담은 '실존철학'적 작품인데, 아마도 '아나키즘'적 관점을 가진 듯 한 작가 나가이 고는 이 '거대로봇물'에 '세기말적'이고 '퇴폐적'인 내용을 담는다.
이 만화는 '선악 이분법'에 기초한 '권선징악'이나 '해피엔딩'의 '동화'가 아니었다.
'우주소년 아톰'은 일본 전후세대 데즈카 오사무의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관점, '원자력'으로 사람과 같은 로봇을 만드는 '발전적 미래'를 담고자 했고, 우편향적 만화가 요코야마 미쓰테루의 일본 '군국주의' 비밀병기 '철인28호'는 리모컨으로 조종되는 '퇴행적 미래'를 보여준다.
그러나, '마징가-Z'는 자동차나 비행기처럼 사람이 직접 조종하는 '현재'의 표현이며, 자본주의 체제의 비약적 경제성장이라는 '발전적 미래' 속에 '파괴의 미래'가 동시에 존재함을 보여주려는 듯 하다.
강력한 힘은 그래서,
"신(神)도, 악마(惡魔)도 될 수 있다".
중국 원나라 말기 '마니교'와 '조로아스터교' 등의 교리가 결합하여 '명(明)교'가 창시되는데, '명태조' 주원장은 이 반란농민군에서 '한(漢)족 독립투쟁'을 통해 명(明)나라를 건국한다.
[주원장전(朱元璋傳)](1949)을 쓴 중국 역사가 오함이 밝힌 '명교'의 교리는 ‘이종삼제(二宗三際)’이며, 그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세상에는 '명(明)'과 '암(暗)' 두 종류의 다른 세력이 있는데, 명은 광명이니 선(善)이고 이(理)이며, 암은 암흑이니 악(惡)이고 욕(欲)이라는 것이다. 이 두 세력은 대립 항쟁을 하는데, 초제(初際), 중제(中際), 후제(後際)의 세 단계를 거치게 된다. 초제 단계에는 천지가 없고 명암만 있을 뿐, 명의 성질인 지혜와 암의 성질인 ‘치우(痴愚)’가 대립 상태를 이룬다. 중제 단계에는 암의 세력이 발전하고 확대되어 명의 세력을 압박하고 멋대로 내쫓아 대환(大患)이 만들어진다. 이때에 바로 명왕이 세상에 나와서 투쟁을 거쳐 암흑을 내쫓는다. 후제 단계에는 명과의 암의 이종(二宗)이 각각 제자리로 돌아가 명은 대명(大明)으로 돌아가고 암은 적암(積暗)으로 돌아가게 된다. 초제는 명암 대립으로서 과거이고, 중제는 명암 투쟁으로서 현재이며, 후제는 명암 복위로서 미래인 것이다."
- [주원장전(朱元璋傳)](1949), 오함, 박원호 옮김, <지식산업사>, 2003.
강력한 힘, 또는 '권력(權力)'에는 '선(善)'과 '악(惡)' 두 모순이 동시에 존재하며, 이 '대립물'은 끊임없이 내부 투쟁을 한다는 '변증법'이다.
쉽게 말해 '착하게 쓰면(善用)'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고, '못되게 쓰면(惡用)' 사람들에게 해를 끼친다는 의미다.
'신(神)' 자체는 가치 판단의 여지가 없으나, 나가이 고에게 '신'은 '선'이었을지 모른다. 내가 보기에 '신좌파 세대'임이 분명한 그가 '신'을 믿었을 것 같지 않으나, 만약 '신'이란 게 있다면 '선'해야 한다고 믿은 듯 하다. 그의 '마징가'가 마주한 현실은 '악'이었을 테니.
'마징가-Z'는 우리나라 김청기 감독의 1976년생 '태권-V'처럼 종국에 악당들을 물리치지는 못한다. '어린이용' 만화영화로 만들어진 우리의 '태권-V'는 악당의 고뇌는 잠시 보여주면서도 결국 '권선징악'의 교훈을 남한의 어린이들에게 남겼으나, '마징가-Z'는 헬 박사의 '기계수'에서 더욱 진화한 미케네 문명의 '전투수'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면서 일본 어린이들의 동심도 파괴한다.
이렇게 파괴되던 마징가를 구하면서 나타난 것이 '그레이트 마징가'인데, 만화 원작에서는 공백이던 카부토 코지의 아버지이자 카부토 쥬조 박사의 사라진 아들 카부토 켄조 박사가 '초합금-newZ'로 한단계 진화시킨 전투기계다.
나는 동갑내기 1974년생 그레이트 마징가를 더 좋아했는데, 이 친구는 나가이 고의 실존적 '철학'이 만든 것이 아니라 'TV 시리즈'와 극장판을 제작하던 '도에이'사의 작품이다.
'신좌파'의 후예 '마징가-Z'와 달리 '그레이트 마징가'는 '자본주의 과학'의 후예였고, 원작자 나가이 고는 끝내 이 '자본주의'적 전투기계에게 애정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2009년에는 일본 'TV-도쿄'에서 나와 같은 세대를 겨냥하여, [마징가-Z]를 재해석한 [진(眞)-마징가]라는 'TV 시리즈'를 제작, 방영하였으나 흥행에는 실패했다고 한다.
그러나 어릴 적에 지금 내 나이에 이미 '마징가'가 되어 있을 줄 알았던 나는 그 해 밤을 새며 몇 번을 보았는지 모른다.
2009년에 나가이 고 원작의 '철학'을 되살려 낸 '진짜 마징가', [진(眞)-마징가]는 적어도 내게는, 흥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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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징가(魔神-Ga)-Z], 나가이 고(永井豪), 1972.
2. [그레이트 마징가], 도에이사, 1974.
3. [태권-V], 김청기, 1976.
4. [주원장전(朱元璋傳)](1949), 오함, 박원호 옮김, <지식산업사>,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