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전히 개인적인 팝송 '순위'
순전히 개인적인 팝송 '순위'
- [명곡의 재발견], 이무영, <score>, 2015.
- [그 시절, 우리들의 팝송], 정일서, <오픈하우스>, 2018.
"비틀즈(the Beatles)의 운명이 종말을 향해 치달을 무렵, 홀연히 아들의 꿈에 나타난 메리(Mary)는 그에게 삶의 지혜와 위로를 전한다. [Let It Be]의 노랫말을 통해 메리는 아들 매카트니에게 너무 주어진 상황을 바꾸려고 애쓰지 말고 운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마치 둑이 터지듯 다른 수많은 문제가 비틀즈를 위협하고 있었다... 절망에 빠졌던 매카트니는 어느 날 밤 꿈에서 어머니 메리를 만났다. 의기소침해 있는 아들에게 그녀는 '다 괜찮아질 거야. 그러니까 그냥 내버려 둬(so just let it be)'라며 위로했다. 꿈속 어머니로부터 큰 위안을 받은 매카트니는 깨어나자마자 곧바로 곡을 썼다."
- [명곡의 재발견], 이무영, <Let It Be>
고등학교 입학했을 때인가. 라디오에서 배철수나 김광한의 팝송 프로그램은 거의 들은 적 없이 우리 가요만 듣던 나는 아주 우연히 스물한살 둘째 누나가 길보드로 구입한 카세트 테잎을 발견했다. '비틀즈'의 'Greatest Hit'곡들을 섞어놓은 '짝퉁' 테잎. 나는 누나에게 무슨 노래인가 물었고 누나는 <Let It Be>와 관련한 예의 사연을 들려주면서 영어를 좋아했던 나를 위해 가사도 해석해 주었다. 노래의 'Mother Mary'는 폴 매카트니의 돌아가신 어머니일 수도 있고, '매리 수녀'일 수도 있어 기독교적 '신의 계시'였을 수도 있다는.
그 때부터 나는 '비틀즈'만 들었다. 정품은 아니라도 용돈이 되는대로 레코드점에서 그들의 앨범을 구입했고 관련 이야기가 있으면 주워듣고 수집했다.
나는 존 레넌보다 폴 매카트니가 더 좋았다. <Let It Be>는 물론, 23세에 꿈 속에서 잠시 듣고 지은 명곡 <Yesterday>를 비롯하여 <Hey Jude>, <The Long and Winding Road> 등의 좋은 노래는 다 폴이 만들었는데, 아주 잠깐 번득이는 조언을 해준 존 레넌은 거의 대부분의 노래의 작사/작곡에 숟가락을 얹었다. 예를 들면, 꿈 속 멜로디를 기억하여 5분만에 만든 <Yesterday>의 곡에 가사를 못 짓던 폴에게 "한 단어로 시작"하라는 조언을 하고 녹음할 때도 도와주지 않는 식이다. 나는 존이 '예술가적 감성'으로 2살 어린 작곡 '노동자' 폴을 '착취'했다고 줄곧 생각했다.
아마도, 스무살에 우연히 '과학적 사회주의'를 알게 되었을 때, 줄곧 '연구'만 하던 칼 마르크스보다 사상의 '전장'에서 치열하게 싸우던 그의 동지 프리드리히 엥겔스를 더 좋아한 이유도 '비틀즈' 때문이었으리라.
그 후로도 오랫동안, 비틀즈의 해체를 막기 위해 끝까지 고군분투했던 폴 매카트니의 노력은 나의 생각을 더욱 굳혔고, 맴버 중 가장 먼저 탈주한 존 레넌은 비틀즈에서 제일 싫은 가수가 되어 <Imagine> 같은 그의 '불후의 명곡'도 성인이 되어서야 듣게 되었다.
"몽상가 레논은 모든 신앙과 체제 그리고 물질만능주의가 사라질 때 유토피아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세상 사람 모두가 하나의 나라, 하나의 세상, 하나의 인류라고 믿었다. 그것이 그의 '신앙'이었다. 레논은 기본적으로 무신론자였고, 아나키스트였으며 반자본주의자였다."
- [명곡의 재발견], 이무영, <Imagine>.
16세의 존 레넌과 14세의 폴 매카트니가 영국 리버풀에서 그룹을 결성하여 지역에서 활동하다가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을 만나 <Love Me Do>로 데뷔한 해가 1962년이고, 2년만에 대서양을 건너 '대중가요'의 땅 미국과 전세계를 점령하다가 해체된 해가 1970년이다. 전형적인 '노동자 도시' 리버풀에서 노동자들의 아들들이 대중가요 역사에서 '전설'이 되었고, 존 레넌은 '무정부주의'적 신념으로 천주교도 폴 매카트니의 '기독교'적 노래 <Let It Be>를 경멸했다고 하나 아마도 그 노래의 저작권은 나눠먹고 있을 것이다.
<Let It Be>가 나온지 1년 후인 1971년에 존 레넌은 솔로 2집으로 <Imagine>을 내놓는다. 비틀즈를 흔들고 동료들을 경멸하며 "모두가 나를 몽상가로 부르지만, 나만이 꾸는 꿈은 아니다(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라고 외치던 이 '무정주주의자 존'은 결국 미국에서 추방당하지 않으려고 미국 영주권에 목을 매던 속물이었다.
비틀즈만 알던 나는 고등학교 3학년때 한 방을 쓰던 친구 효종이로부터 '아바', '카펜터즈' , '퀸' 같은 전설의 그룹들을 비롯하여 '데비 깁슨', '글렌 메데이로스', '카일리 미노그' 등 1990년대 초 팝 '아이돌'에 대해 배웠고, 고등학교 한때 영어를 좋아했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족보'는 모른 채 '올드팝'을 항상 듣고 다닌다.
"보컬리스트 프레디 머큐리가 쓴 <Bohemian Rhapsody>의 가사는 곡의 구성만큼이나 휘황찬란하며 동시에 애매모호하다. 불쌍한 한 소년의 얘기인 듯 서정적으로 전개되던 가사는 갑자기 'Mama, just killed a man'이라는 무시무시한 내용으로 변모한다. 그렇다면 그는 도대체 누구를, 왜 죽였단 말인가?... <Bohemian Rhapsody> 발표 얼마 후 머큐리는 그녀(애인 매리 오스틴)에게 자신의 성정체성(동성애)을 고백했고, 관계는 그걸로 끝이었다... 가사 속에서 머큐리가 총으로 쏘아 죽인 사람은 과거 이성애자로서 매리 오스틴을 사랑했던 자신이다. 노래 속에서 계속 그가 매달리는 엄마는 매리다."
- [명곡의 재발견], 이무영, <Bohemian Rhapsody>
소설도 쓰고 영화도 만드는 이무영은 1990년대에 팝송을 소개하는 일도 했다는데 2015년에 [명곡의 재발견]을 써서 올드팝 100곡의 배경과 가사를 소개한다.
2018년에는 KBS 라디오 PD 정일서가 역시 100여 곡에 대한 본인의 추억을 섞어 [그 시절, 우리들의 팝송]으로 소개한다.
대중가요에 좋아하는 '순위'란 보편적일 수 없다. 나의 경우 그룹은 '비틀즈', '아바', '카펜터즈', '에어 서플라이', '앨런 파슨즈 프로젝트', '카멜' 순으로, 가수는 '글렌 메데이로스', '데비 깁슨', '빌리 조엘' 등으로 개인적 '순위'를 매기는데, '비틀즈' 빼고는 어린 시절 친구 효종이가 알려준 거의 그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으며, 매일 듣는 CBS 음악FM 팝송 프로그램 신청곡도 이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팝송 좋아하는 나도 그 관련 책을 알지는 못하고 살았다. 그리고 대중가요를 듣는데 그런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개인적 '순위'의 가수와 노래가 없어 아쉽기는 하나 '올드팝'의 '족보'나 '흐름'을 알고 싶다면 위 두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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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명곡의 재발견], 이무영, <score>, 2015.
2. [그 시절, 우리들의 팝송], 정일서, <오픈하우스>,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