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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Mar 15. 2020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 (2015)

"한 번의 '종말'은 비극, 다음 번 '종말'은 희극"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 "한번의 '종말' 비극, 다음  '종말' 희극"


인류의 역사에서 '세기말적 증상' 숱하게 교체된 세기들 만큼 다양했겠지만,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가던 시기였던 20세기말에 분명, '종말론'  자리 차지했었다. [매드 맥스] [북두의 ] 나오고 회자되던 1980년대와 1990년대는 분명, 그것이 진지모드든 아니든, '종말의 공포' 있었다. 크고 작은 전쟁을 겪었던 부모세대와 국가와 사회 같은 공동체가  삶을 책임져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갈수록 크게 인식하게  세대 모두에게 '종말' 막연하게나마 가능한 미래였다.

[매드 맥스] [북두의 ] 배경은 문명이 종말을 맞은  기본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해 서로 약탈과 전쟁을 일삼는 원시적 '황무지'. [매드 맥스] 주인공 '맥스' [북두의 ] 주인공 '켄시로' '희망'이나 '공동체' 따위에는 관심없는 고독한 방랑자임에도 불구하고 타고난 생존능력과 싸움실력으로 본의 아니게 각각 자신의 무대에서 '독재자' 물리치는 '구세주(메시아)' 된다. 이런 설정을 통해 20세기말에 우리  누구는 굳이 종교적이지 않더라도 '종말' 예견하며 '메시아' 기다렸을 수도 있다.
[북두의 ] 부제는 '세기말구세주전설'이다.

독일의 관념철학자 헤겔은 "세계사에서 중요한 사건은 반복된다" 했단다.
역사유물철학자 맑스는  나아가 이렇게 덧붙였다. "한번은 비극으로, 다음번은 희극으로 나타난다".

20세기에 21세기 '종말' 예견했던 우리 아버지 세대 '맥스' 우리랑 같은 세대인 '켄시로' 투쟁은 우울하고 슬픈 비극이었을  있다.

21세기에 22세기 '종말' 예견하는 우리 손주 세대 '맥스' 투쟁은 우울함보다는 화끈한 액션을 통해 즐거움을 주는, 어쩌면 희극으로 보인다.

하다못해 (금융자본) 독점한 독재자 '임모탄 ' 가끔 쏟아내주는 엄청난 물이 '신자유주의' '금융자본' 강대국들의 '양적완화' 보일 정도로 희극적일 수도 있고,
박정희의 비극이 박근혜의 희극으로 반복되면서 국가재난 상황에도 국민의 안전보다는 자기의 기득권을 지켜줄 것으로 믿는 최고권력자의 심기가 어떤지  중요한 '종말막장코미디' 부끄럽게 환기될 수도 있겠다.

아니면,
다시 만난 '종말' 희극으로 보일 정도로 내가 늙은 것일지도.

(201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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