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근법'과 '인상주의'로 미술사를 돌아보다
책소개)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1809)
- '원근법'과 '인상주의'로 미술사를 돌아보다
"흔히 투시법은 서구 미술에만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르네상스의 원근법이 유일한 투시법은 아니다. 파노프스키가 지적한 대로 그것은 가능한 많은 투시법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리하여 서구의 원근법과는 다른 투시법도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러시아 성상에 적용된 역원근법이다.
르네상스 원근법은 움직이지 않는 시점을 전제한다. 러시아 성상에서는 시점이 움직인다. 이렇게 움직이는 시점으로 본 장면들을 하나로 통일시킬 때, 외려 가까이 있는 것일 수록 짧게 묘사되는 흥미로운 표현이 등장한다."
-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고전예술편>, 5장 '물구나무선 원근법'
'미학'을 대중적으로 풀어쓴 진중권이 '서양미술사'를 개괄한 대중서 4편이다.
통시적으로 '고전예술편', '모더니즘편', '후기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편'으로 '서양미술사'를 돌아봤던 기존 3편에 최근 '인상주의편'을 추가하였다.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나 아르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등이 미술이나 예술 전문가들을 위한 학술고전 같은 성격이라면, 진중권의 [서양미술사]는 미술사를 처음 접하는 일반 대중들이 읽어도 좋은 책이다.
미술의 역사이다 보니 여러 가지 내용들이 있지만, 이 책을 관통하는 두 가지 테마는 '원근법'과 '인상주의'다.
2차원 평면에 잠겨있던 고대와 중세의 그림에 3차원적 혁명을 불러온 것이 르네상스의 원근법이다. 진중권은 이 혁명이 하나의 시선으로 사물을 보는 '고전적 원근법'에 불과하며, 실제 과학적인 사실은 여러개의 다양한 시선으로 대상을 보는 것으로서 '러시아의 역원근법'을 거쳐 '후기 인상주의' 화가로 알려진 폴 세잔의 '체험된 원근법'으로 풀어낸다.
즉, 우리의 안구와 지각을 통해 보이는 사물이나 대상은 하나의 고정된 시선이 아닌 다양한 시선으로 현상한다는 것이다.
미술사 또한 인류 역사처럼 '부정의 부정', 끊임없는 변증법적 혁명의 과정이다.
이런 미술사를 관통하는 첫번째 테마가 바로 '원근법'인 것이다.
'고전예술편'은 파노프스키, 뵐플린 같은 저명한 미술비평가들의 논문을 한편 한편 소개하는 방식으로 모더니즘 이전까지를 정리한다.
유시민도 올해 신작 [역사의 역사]에서 헤로도토스, 사마천, 마르크스, 카, 박은식과 신채호, 다이아몬드와 하라리, 아랍 역사가 이븐 할둔까지의 역사서를 소개하면서 비슷한 서술방식를 취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이런 서술방식이 좋아 진중권의 4편 중 ‘고전예술편’을 가장 추천한다.
역사도 그렇지만 미술사라는 것이 갖가지 '예술사조'로 도식화될 수 없다. 곰브리치나 하우저도, 진중권은 특히 그러한 도식화를 경계하고 있지만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전문분야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그런 도식화가 불가피하기도 하다.
마르크스주의자는 주로 '사실주의(또는 ‘리얼리즘’)를, 곰브리치는 '모더니즘'을, 하우저는 '낭만주의'를 분명하게 지지하는데, 진중권이 미술사를 읽는 두번째 테마는 '인상주의'다.
과학과 산업의 혁명적 발전을 배경으로 기존 '고전주의'를 부정한 쿠르베의 '사실주의'로부터 시작하여 진중권은 대상의 객관적 묘사에 복무하는 '사실주의'보다는 인간의 지각에 묘사된 사물을 그린 '인상주의'에 주목한다.
특히, 진중권은 '인상주의'를 넘어서 현대미술을 시작하는 '모더니즘'으로 이어지는 폴 세잔에게서 현대미술의 '혁명'을 본다.
고전적 미술로부터 "색채를 해방시킨 '야수주의' 앙리 마티스"와 "형태를 해방시킨 '입체주의' 파블로 피카소" 둘 다 '후기 인상주의' 폴 세잔의 ‘자식’이라는 것이다.
진중권은 폴 세잔을 "인상주의와 모더니즘의 가교"로 규정한다.
"인상주의와 모더니즘의 가교로서... 세잔의 작업은 고전미술이 현대미술로 이행하는 과정의 마지막 단계였다. 그의 화면에서 발견되는 '색채의 놀라운 풍부함'과 기하학적으로 단순한 형태, '고전적 원근법'과 다른 '체험된 원근법'은 20세기 현대미술의 초석이 된다. 마티스는 그에게서 색채의 효과를, 피카소는 그에게서 형태의 기하학적 단순화와 고전적 원근법의 파괴를 배웠다. 현대미술의 두 위대한 이정표 모두 세잔을 '아버지'라 부른 것은 그 때문이다...
마티스와 드랭의 야수주의, 피카소와 브라크의 입체주의, 현대미술의 두 이정표도 세잔이 없었다면 탄생할 수 없었거나, 혹은 그 탄생이 뒤로 한참 늦춰졌을 것이다. 세잔은 마지막 고전주의자이자 최초의 현대주의자였다."
-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인상주의편>, 11~12장 '세잔'
(2018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