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웰적인(Orwellian)' 세상과 '스페인 내전'
'오웰적인(Orwellian)' 세상과 '스페인 내전'
- [조지 오웰(George Orwell)], 피에르 크리스탱 글, 세바스티앵 베르디에 외 그림, 최정수 옮김, <마농지>, 2020.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몇몇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그 뒤로는 농장 일을 감독하는 돼지들이 앞발에 채찍을 들고 있어도 전혀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다. 돼지들이 라디오 세트를 구입하고 전화를 설치하고... 신문, 잡지를 구독했다는 것을 알고 나서도 동물들은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폴레옹이 입에 담뱃대를 물고 농장 정원을 거니는 것이 목격되기도 했다...
일주일 뒤 어느 오후, 많은 이륜 마차가 농장으로 들어왔다. 이웃 농장주들의 대표단이 농장을 둘러보려고 온 것이다. 그들은 농장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모든 것, 특히 풍차를 대단히 칭찬했다. 그때 다른 동물들은 순무밭에서 잡초를 뽑고 있었다. 그들은 밭에서 고개를 들지도 않고 돼지가 더 무서운지 혹은 인간 방문객이 더 무서운 존재인지에 대해서도 전혀 생각하지 않고 부지런히 일만 하고 있었다. 그날 저녁 농가에서는 큰 웃음소리와 노랫소리가 터져 나왔다. 뒤죽박죽 뒤섞인 목소리들 때문에 동물들은 갑자기 호기심을 느꼈다...
이제 돼지들의 얼굴에 무슨 변화가 일어났는지 분명히 알게 되었다. 바깥에 있던 동물들은 돼지에서 인간으로, 인간에서 돼지로, 그리고 다시 돼지에서 인간으로 시선을 옮겨가며 살펴보았다. 그러나 누가 인간이고 누가 돼지인지 구별하기란 정말로 불가능했다."
- [동물농장](1945), 조지 오웰, 황병훈 옮김, <보물창고>, 2016.
'한때는 좋았던 인간' 존스씨의 '메이너농장'에서 '혁명'이 일어난다. 매일 술에 취해 일도 안하고 결정적으로 동물들을 굶기기 일쑤인 '인간' 존스씨가 역시 술에 취해 곯아 떨어지고 인부들도 일손을 놓은 사이 '동물'들은 '한밤중 회의'를 통해 12살짜리 수퇘지 메이저 영감의 '동물'이 주인이 되는 '꿈' 이야기를 듣고 '영국의 동물들'이라는 노래를 함께 부른다. 메이저 영감돼지가 죽은 후 젊고 영리한 수퇘지 스노우볼과 나폴레옹은 메이저 영감의 '꿈'과 '영국의 동물들' 노래를 '동물주의'로 이론화하여 '메이너농장'의 모든 동물들을 사상무장시킨다.
연일 굶던 동물들은 우발적으로 반란폭동을 일으켜 농장주 존스와 인간들을 농장 밖으로 몰아내고 '혁명'을 성공시킨다.
문자를 익힌 영리한 돼지 스노우볼은 이 '혁명적 동물주의'를 '7계명'으로 정립하는데, '두 발 달린 인간은 적이다', '네 발이나 날개 달린 모든 동물은 동지다', '금주할 것', '옷을 입지 않기', '침대에서 자지 않기', '동물끼리 죽이지 말 것' 등의 내용이며,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라는 테제로 마무리되는 내용이다.
하지만, '생산력 발전'을 위한 무리한 '풍차' 건설로 동물들은 피폐해지는데, '풍차' 건설을 기획하고 한편으로 '동물주의'를 고수하며 '외양간 전투'를 승리로 이끈 스노우볼은 나폴레옹에 의해 '인간'과 내통한 스파이로 몰려 추방당하고 나폴레옹은 '독재 체제'를 구축한다.
옷을 입고 개를 키우며 침대에서 자는 나폴레옹은 농장의 생존을 위해 이웃의 인간 농장주들과 교류하면서 결국 '동물농장'을 '메이너농장'으로 다시 명명한다.
궂은 일 도맡은 종마 복서는 늙어 도살장으로 끌려가고 암말 클로버가 시니컬한 당나귀 벤자민에세 '7계명'이 온전한가 묻는데, 어느새 '7계명'은 변질되었고 '모든 동물은 평등'하되 '몇몇 동물은 더욱 평등하다'로 바뀌어 있다.
'동물농장'의 주인이었던 동물들 눈에 인간들과 교류하는 돼지들은 누가 인간이고 누가 돼지인지 더이상 구분할 수 없다.
'동물농장'은 여전히 '메이너농장'이 된다.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ur Blair)인데,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의 영국인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한살 이후 영국에서 자랐고 이튼스쿨 장학생이었으나 학업에 흥미를 잃고 버마에서 식민지 경찰로 근무했으며 귀국 후 일용노동자와 노숙자 생활도 하다가 작가가 되었다.
조지 오웰은 우리에게 '반공우화'로 소개되곤 하는 [동물농장]을 2차 대전 종전해인 1945년에 발표한다. 영국은 1917년 러시아혁명 후 소비에트연방(소련)을 극도로 혐오했으나 2차 대전에서는 서로 연합국이 되어 종전 당시인 1945년에는 영국과 소련의 '협력관계'상 소련 체제를 비판한 '정치우화'인 오웰의 [동물농장]을 출판사들이 출간하기를 주저했다는 사실은 이 소설이 '반공소설'이라는 증거라고 한다.
실제로 이 우화에 등장하는 '존스씨'는 러시아 차르 또는 임시정부 등의 구체제, '메이저 영감'은 칼 마르크스, '스노우볼'은 트로츠키, '나폴레옹'은 스탈린, '복서'는 '프롤레타리아', '외양간 전투'는 혁명 후 내전, '풍차 전투'는 2차 대전, '이웃 농장주들'은 영국과 독일이며, '동물농장'은 사회주의, '메이너농장'은 국가자본주의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아마도 시니컬한 당나귀 '벤자민'은 작가 본인이었으리라.
그러나 '우화'라는 것이 즉자적인 '비유'에 그칠 수는 없다. 조지 오웰이 1945년의 [동물농장]과 1948년의 '빅 브라더(Big Brother)' [1984]를 통해 묘사하고자 했던 것이 단순히 '소련'의 독재체제에 대한 '비유'만이 아니라 '전체주의'와 '파시즘' 일체에 대한 '은유'라는 것은 그의 '스페인 내전' 참전의 경험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전쟁 초기 몇 달 동안 프랑코의 실질적인 적은 인민전선 정부라기 보다는 노동조합들이었다. 프랑코가 반란을 일으키자, 도시의 조직화된 노동자들은 총파업으로 대응했다. 이어 공공 무기고에 가서 무기를 달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투쟁 끝에 얻어냈다. 만일 그들이 자발적으로, 그리고 다소간 독립적으로 행동에 나서지 않았다면, 프랑코는 아무런 저항에 부딪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조지 오웰, [카탈루니아 찬가](1938). [세계노동운동사 3]에서 재인용.
소련에서 독재체제를 구축한 스탈린은 레닌이 사망한 1924년에 '후계자'가 되자마자 이미 '1국 사회주의론'을 제기했는데, 1차 대전 종전을 앞당긴 유럽 각국의 연쇄혁명의 전망에도 불구하고 소련이라는 한 국가에서도 공산주의 혁명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이 '1국 사회주의론'은 스탈린의 내부 숙청이 일단락되던 1935년경에는 확립되었고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협력 과정에서 더욱 공고화되는데, 이 시기는 '국가독점자본주의'의 강화 및 이를 기반으로 한 '파시즘'의 확산과 궤를 같이 한다.
조지 오웰이 '국제 여단'의 일원으로 참전한 '스페인 내전'(1936~1939)은 '파시즘'의 발흥과 이에 대항한 유럽 민주주의 세력의 일대 격전장이었다.
1922년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내세운 '파시즘'은 '단결'이라는 어원으로 우익 포퓰리즘의 극단적 정치형태였으며, 경제위기로 들끓는 다수 대중의 열망을 고대 신화를 빌어 '신비주의화'하여 결국 독점자본의 이익보장의 도구가 되는데, 1933년의 독일 히틀러의 '나치즘', 일본의 '천황군국주의' 등의 본질적 정치형태다.
이탈리아 무솔리니는 고대 로마에서 '단결'을 상징하는 도끼묶음을, 독일 히틀러는 아리아인을 기원으로 하는 고대 게르만 신화와 그 상징으로서 하켄크로이츠를, 일본 군국주의는 욱일기로 표현되는 고대 천황의 신화를 숭상했다.
'독점자본'을 토대로 하는 '파시즘'이라는 병적이고 극단적인 폭력적 독재체제의 특징을 김세균 서울대 교수는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완성된' 파시즘 체제가 지닌 기본 측면들로는 첫째, 노동자계급을 비롯한 피지배계급 운동 분쇄와 이들 계급을 체제 내로 강제 통합, 둘째, 자본축적을 위한 국가의 광범한 개입, 셋째, 시민의 권리 박탈과 사회에 대한 전면적 감시, 통제체제 수립, 넷째, 의회제 통제로부터 국가권력 집행 기구의 자립과 이를 통한 무제한적 국가 폭력 사용 등이 지적되고 있다."
- 김세균, [자본주의 위기와 파시즘], 1987. [세계노동운동사 3]에서 재인용.
이탈리아와 독일은 이미 '파시즘'이 집권하였고 사회민주당마저 그들과 타협하던 1931년 스페인에서는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 자유주의자 등의 '민주세력'들이 '인민전선'을 형성하여 공화국을 세웠다.
장군 프랑코를 앞세운 우익 반란군과 공화국 민병대간에 전개된 4년여의 전쟁이 바로 '스페인 내전'이었다.
결국 스페인 내전은 프랑코 우익 반란군의 승리로 끝나고 프랑코 군부독재는 이후 40년간 스페인을 지배한다. 20여만 명의 인민을 학살한 스페인의 프랑코는 우리에게는 박정희와 전두환을 합친 정도의 우익 악마였다.
애초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는 '불간섭위원회'를 통해 스페인 내전을 지원하지 않기로 하였으나 '파시즘' 세계동맹을 기획하던 독일과 이탈리아는 프랑코 반군을 적극 지원했고, 영국은 소련 견제를 위해 뒷짐을 졌으며, 소련은 '공화군'을 소극적으로 지원하는 과정에서 스페인 노동조합의 총파업과 '국제 여단'은 안팎으로 궤멸되어 갔다.
조지 오웰이 참전하여 목도한 스페인 내전의 '정치외교'적 현실이 이러했는데, 이 과정에서 공화국과 소련 공산주의자들은 이 노동자 민병대와 '국제 여단'을 오히려 억압하고 고립시키는데 열중했던 것이다.
스페인 '인민전선' 정부는 프랑코 우익 반란군보다 급진적 노동자와 '국제 여단'을 더 두려워했고, '1국 사회주의'를 선언한 소련공산당은 자본주의 협력국들을 불편하게 만들기 싫어 차라리 위성국을 더 만들지언정 노동자계급에 의한 아래로부터의 세계혁명 확산을 바라지 않았으며, 그로 인해 영국과 소련은 전유럽의 '파시즘' 확산에 기여하면서 2차 세계대전 확산을 방조했다.
조지 오웰은 스페인 내전의 경험을 토대로 1938년에 [카탈루니아 찬가]를 출간했는데, 이 내전의 초기 정신은 '정치적 인민전선이 아닌 노동자 총파업'이라고 적고 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했다. 그리고 소련이 해체되었다. 미래 예측이 틀린 SF 작가들의 경우처럼 오웰의 아우라는 쇠퇴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겉으로 보기에 빅 브라더는 확산되지 않았다.
그러나 '오웰적인(Orwellian)'이라는 형용사는 다른 운명을 겪어, '카프카적인(Kafkaesque;부조리하고 우울하고 악몽같은)'처럼 일종의 관용적 표현이 되었다.
오웰은 자신을 전향시키려는 시도에 굴복하지 않았다."
- [조지 오웰(George Orwell)], <에필로그 - 오웰 이후>, 피에르 크리스탱 글, 세바스티앵 베르디에 외 그림, 최정수 옮김, <마농지>, 2020.
'오웰적인(Orwellian)' 세상은 [1984]에 나온 '빅 브라더'의 '전체주의' 세상에 대한 표현이라는데, 이는 조지 오웰의 삶을 볼 때 비단 '반혁명'과 '반노동자'적인 '스탈린주의' 체제 뿐만 아니라 '파시즘'으로 대표되는 '국가독점자본주의'를 토대로 한 '전체주의' 체제 일반을 의미한다.
'오웰적인' 세계에 대한 저항은 스페인 내전에 공화파 '국제 여단''으로 참전한 조지 오웰의 '자유' 정신과 노동자 '평등' 정신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이념이 앞서는 것이 아니다.
'자유'가 우세하면 '평등'을 위해, '평등'이 우세하면 '자유'를 위해 싸우는 바로 그 정신이다.
[동물농장]의 당나귀 벤자민은 '동물농장'도 지지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결코 술주정뱅이 '존스씨'의 '메이너농장'을 동경한 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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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지 오웰(George Orwell)], 피에르 크리스탱 글, 세바스티앵 베르디에 외 그림, 최정수 옮김, <마농지>, 2020.
2. [동물농장(Animal Farm)](1945), 조지 오웰, 황병훈 옮김, <보물창고>, 2016.
3. [세계노동운동사 3], 김금수, <후마니타스>,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