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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Jul 18. 2020

[페스트](1947) - 알베르 카뮈

'대전환'이 없다면, '페스트'는 여전히.

'대전환'이 없다면, '페스트'는 여전히.
- [페스트](1947), 알베르 카뮈, 김화영 옮김, <민음사>, 2011.




"... 페스트는 모든 경제생활을 파괴했고, 그 결과 엄청난 숫자의 실업자가 생겨났던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 실업자들은 간부직을 위한 충원 대상은 못 되었지만, 막일에 관한 한 그들 덕에 일이 쉽게 되었다. 그 시기부터는 사실 '곤궁이 공포보다 더 절박하다는 사실'을 늘 눈으로 볼 수 있었고, 위험성의 정도에 따라서 보수를 지불하게 마련이고 보니 그 점은 더욱 명백해졌다. 보건과에서는 취업 희망자의 리스트를 마련해 놓을 수가 있었고, 그래서 어디서 결원이 생기기만 하면 그 리스트의 첫머리에 올라 있는 사람에게 통지를 하곤 했는데, 그 사람들은 그 사이에 자기 자신들이 (페스트에 걸려) 결원되었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출두하게 마련이었다. 유기 또는 무기 죄수들을 활용하기를 오랫동안 주저해 왔던 지사도, 이렇게 해서 그러한 극단적 조치에까지 가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실업자들이 있는 한은 견딜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 [페스트], <3부(8월)>, 알베르 카뮈, 김화영 옮김, <민음사>, 2011.


'코로나' 감염병 사태 중 콜센터 노동자들과 물류센터 배송 노동자들의 전염병 확진이 번질 때 사람들은 그제서야 그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에 주목했다. 닭장과도 같은 공간에서 아프든 말든 끊임없이 실적 경쟁을 하고 '남들 쉴 때'도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는 노동 조건인데, 중요한 것은 이들만의 환경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아니 전부가 하청' 또는 도급되거나 '특수고용'된 비정규직이었다. 코로나 이전에도 위험한 일들은 '외주화'되어 있었고 우리 사회는 산재사망률 1위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도 없는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일터에서 죽어 나갔다.
'민주 정부' 들어서자 마자 인천국제공항에서 대통령이 직접 약속했던 '비정규직 제로' 선언의 비밀은 자회사를 통한 '외주화'였고, 직접고용을 통한 정규직화를 요구하면 '공채'나 '시험'으로 어렵게 입사한 소수의 '청년 귀족노동자'들이 단지 자신들도 한때 수많은 '구직 청년'이었다는 이유로 '공정성'을 앞세워 비정규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노노갈등 행태가 지겹도록 반복되고 있다.
'민주 정부'가 애써 나설 필요는 없었다. '자유시장'이라는 허위의식 아래 사람도 '노동'도 '상품'이며 '공정 경쟁'의 이름으로 '불평등'과 '불공정'이 당연한 것이 된 이 체제를 정치가 굳건히 유지하기만 하면 노동자들은 알아서 서로 갉아먹기 때문이다. 권력자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전쟁'이든 '혁명'이든, '공황'이든 '역병'이든 모든 '재난'은 무차별적이고 전면적이라 '공평'하고 '평등'할 것 같지만, 체제가 불평등한 만큼 '재난'도 '불평등'하다. 이 체제의 본질은 '자유'를 가장한 '불평등'이기 때문이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프랑스 왕정을 두 번째로 무너뜨리고 '제2공화정'를 세운 1848년 2월 혁명 후 '부르주아 정부'는 대혁명 시기처럼 시민군인 '기동대'를 창설하는데 '기동대'는 당시 혁명의 주력 노동계급의 기대와는 달리 '부르주아 정부'의 호위대가 되었고 정부가 '하급노동'의 조직과 충분한 공급을 위해 만든 '국민 작업장'은 반대로 그 해 6월 노동자 봉기의 주요 진지가 되었다.
물론, 공화정을 세운 후 권력을 위임받은 부르주아지의 배신과 '반(反)혁명'으로 인해 노동자 봉기는 패배하고 마는데, 이러한 과정은 1987년 우리 사회에서 '6월 시민혁명'의 절반의 승리와 '7~9월 노동자투쟁'의 패배로 반복된다.




"'기동대' 외에도, 정부는 산업 노동자 군대를 자기 주위에 모으기로 결정하였다. 공황이나 혁명 기간에 거리로 내몰린 10만의 노동자들을 장관 마리는 소위 '국민 작업장'으로 불러들였다. 이 거창한 이름 밑에 감추어져 있던 것은 단지 23수의 (저)임금으로 지루하고 단조로우며 비생산적인 토목 공사에 노동자들을 이용하자는 의도 뿐이었다. 이 '국민 작업장'이란 바로 영국의 (빈민구제법에 따른) '노역장'이었다. 임시 정부는 이 '국민 작업장'으로 '노동자들 자체에 대항하는 제2의 프롤레타리아 군대'를 편성했다고 믿었다. 노동자들이 기동대를 오판한 것처럼 이번에는 부르주아지가 '국민 작업장'을 오판하였다. 부르주아지는 '폭동을 위한 군대'를 만들어 낸 것이다."
- 칼 마르크스, [1848년에서 1850년까지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 1895.


1947년, 알베르 카뮈는 7년여를 준비한 끝에 소설 [페스트]를 발표했다. 14세기부터 17세기까지 유럽 인구를 절반 가까이 줄였다는 '흑사병(黑死病)', '페스트(Pest)'가 1940년대 프랑스 식민지 알제리의 '오랑'이라는 도시에서 창궐한다는 이야기다. 고전 비극의 형식이라는 '5부' 형식인데 1부는 배경, 2부는 전염 초기, 짧은 3부를 중간에 두고 4부의 절정기를 지나 5부의 결말이다. 제목과 달리 소설이 다루는 것은 '페스트(흑사병)'가 아니라 '추상화'된 '재난'이며 이로 인해 폐쇄되고 고립된 도시에서 시민들의 생활을 기록한 '연대기'를 통해 드러나는 인간 심리의 '추상화'다.


"그렇다. 페스트는 마치 '추상(抽象)'처럼 단조로운 것이었다... '추상'과 싸우기 위해서는 '추상'을 약간은 닮을 필요가 있다."
- [페스트], <2부>, 알베르 카뮈, 1947.


194X년 어느날 아침, 결말에서 '서술자' 자신으로 밝혀지는 의사 베르나르 리유(리외:Rieux)는 죽은 쥐의 사체를 발견한다. 이후 그는 쥐들의 사체와 건물 수위의 죽음을 진단하면서 확신은 없으나 민관회의 자리를 통해 처음으로 '페스트'의 위험을 조심스레 알린다. 공교롭게도 리유가 처음 죽은 쥐를 발견한 날은 하필 4월 16일이다. 70여 년이 지난 2014년 그날 우리 사회에서는 '세월호'가 침몰했다.


"'그래요, 카스텔.' 그(리유)가 말했다. '거의 믿기지 않는 일이오. 그렇지만 이건 페스트인 게 확실한 것 같습니다.'"
- [페스트], <1부>, 알베르 카뮈, 1947.


카뮈의 [페스트]에는 위와 같은 대목이 많다. 예를 들어, '당신에게 '페스트'가 무엇이냐'는 간접적 물음에, "알아요" 먼저 쓰고는 '리유가 말했다'는 서술을 중간에 두고 "끝없는 패배입니다."라고 이어서 쓰는 문장형태인데, 연극배우도 했다는 소설가의 다소 극적인 서술방식일 수도 있겠다.
또 다른 주요인물인 타루를 비롯하여 페스트 혈청을 만들기도 한 카스텔 등 동료 의사들과의 확인을 통해 일련의 죽음의 원인이 '페스트'라는 확진이 내려진 후 도시는 폐쇄조치에 취해지고 철저히 고립된다. 확진자 격리 뿐만 아니라 도시 밖 사람들과는 물론 죽음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들과 '생이별'을 해야 하는 오랑 시민들은 처음에는 구체적인 고민들을 하나 '페스트'가 절정에 치달을 수록 '추상(抽象)'과 싸우게 된다. 그들이 싸우는 대상은 '구체적'인 '페스트'를 넘어 '추상화(抽象化)'된 '재난'이 되고, 리유는 이를 "끝없는 패배"로 규정한다.
전면적인 대규모 '재난'을 당한 인간은 일단 '패배'한다.


"그때, 나는 깨달았습니다. 나야말로 나의 온 힘과 정신을 기울여 바로 그 '페스트'와 싸운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그 오랜 세월 동안 내가 끊임없이 '페스트'를 앓고 있었다는 것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여전히 부끄러웠고, 우리들 모두가 '페스트'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번 이 유행병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있다면 당신들 편에 서서 그 병과 싸워야 한다는 것 뿐입니다.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사람은 제각기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나는, 본래 있는 그대로의 내가 되기로 했고 '겸손'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결국... 내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성인(聖人)'이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내가 아는 단 하나의 구체적인 문제는 사람은 '신(神) 없이 '성인(聖人)'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 [페스트], <4부(타루의 고백)>, 알베르 카뮈, 1947.


전염병 초반부터 꼼꼼한 기록과 관찰을 해온 동료의사 타루는 4부에서 리유에게 본인의 삶과 생각을 독백처럼 털어놓는데, 그로 인해 두 사람은 '사무'적 관계를 넘어 '우정'을 확인하고 의사의 '특권'을 남용하여 금지된 해수욕을 함께 하면서 잠시 '일탈'을 하기도 한다. 결국 타루도 '페스트'의 희생자가 되는데, 살아남아 '서술자'로 나중에 밝혀지는 주인공 리유는 본인의 아픈 부인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과 이별을 겪으며 '끝없이 패배'한다.

위에서 길게 인용한 '타루의 고백'은, 내가 보기에 소설 [페스트]를 통해 알베르 카뮈가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모든 사람은 자기만의 일상과 자신의 충실한 '직무' 과정에서 타인의 삶에는 무관심하며 오히려 타인의 불행을 방조 및 조장을 하기도 한다는 것. 서로가 서로를 '이방인'으로 만드는 우리의 일상이 바로 '페스트' 자체이며, '페스트'든 '코로나'든 아니면, '전쟁'이든 '혁명'이든 이 모든 '재난'은 이를 일깨우기 위해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소환된다는 것이다.
14~17세기 유럽의 '페스트'를 본 당대 사람들이 '신의 분노'를 떠올렸다면, 20세기 프랑스 '무신론자' 알베르 카뮈는 "신(神) 없는 성인(聖人)"을 꿈꾸고 있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다.




1942년 소설 [이방인]의 뫼르소가 아라비아인을 총으로 쏜 이유가 어머니가 죽은 후 내리쬐던 해변가 지루한 햇빛의 재현 때문이었는지, 아라비아인이 꺼내든 것 같은 칼날에 반사된 그 햇빛이었는지 그 아라비아인이 단도를 꺼낸 게 사실이었는지 자체도 모호하지만, 결국 '이방인' 뫼르소는 "내가 사형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증오의 함성으로써 나를 맞아주었으면 하는 것 뿐"이라는 독백으로 '이방인'임을 벗어나고자 했다.
카뮈 번역의 권위자인 옮긴이 김화영 교수의 <작품 해설>에 의하면, 리유가 '페스트'를 "끝없는 패배"로 표현하는 것처럼 [페스트]의 표면에 드러난 '거부'와 '부정'은 인간 삶의 '긍정'이 숨어 있고, '반항'은 결국 '행복에 대한 조바심'이 전제되어 있다고 한다. 실제 44세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카뮈는 수상식장에서 본인은 우선 '부정'을 29세때 소설 [이방인]으로 표현하고자 했고, '긍정'을 34세때 소설 [페스트]로 표현하고자 했다는 소감을 밝혔다고 한다.


"시내에서 올라오는 환희의 외침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리유는 그러한 환희가 항상 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 기쁨에 들떠 있는 군중이 모르는 사실, 즉 '페스트' 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그 균은 수십년간 가구나 옷가지들 속에서 잠자고 있을 수 있고, 방이나 지하실이나 트렁크나 손수건이나 낡은 서류 같은 것들 속에서 꾸준히 살아남아 있다가 아마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 주기 위해서 또 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워서 어느 행복한 도시로 그것들을 몰아넣어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페스트], <5부>, 알베르 카뮈, 1947.


카뮈가 7년 넘게 '작가 수첩'으로 기록하며 준비했다는 [페스트]의 모티브는 '질병'이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참사'였다고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이방인'인 세상에서 갑자기 닥친 '대참사'의 재난을 맞은 인간들의 군상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글쎄,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이 아니었다면 독자들이 알기 쉽지 않을 정도의 독백체와 무심한 문장으로 가득한 소설은 독자들이 듣든 말든 무시로 서술을 이어가고 작가는 어느 입장도 주장하려 하지 않는다. '서술자'인 리유를 통해 '구체적'인 '페스트'의 '추상화'된 '재난'적 '연대기'를 이어갈 뿐이다.


'성공적인' 코로나 'K-방역'을 보며, 가끔 생각한다. 만일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후 다수 억울한 사람들의 싸움이 없었다면, 무도한 정권을 타도할 수 있었을까. 분노한 다수의 '촛불 항쟁'을 등에 업고 집권한 '민주 정부'가 과연 코로나 '재난'에 맞서 이렇게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었을까. 결국 '민주  정부' 지배자들을 눈치보게 하고 움직이도록 것은 다수의 '민주적 위력'이라는 생각 말이다.
아직까지 진실 규명이 안된 '세월호 참사'를 보며 희생자들의 명복을 다시금 기원한다.





'세월호' 이전과 이후가 다르듯, '코로나' 이전과 이후는 다르다고 한다. 이 재난이 지나간 후 대규모 실업과 불황이 예상되기도 하는 지금, 우리 안의 '페스트'인 이 '불평등' 체제의 대대적인 전환 또한 더욱 절실히 기원한다.

더 이상 일터에서 함부로 쫓겨나거나 죽어 나가지 않고, 다수의 '노동'이 진심으로 존중되는, 뿌리 깊은 차별과 '불평등'을 극복하는 아주 새로운 '포스트 코로나' 체제로의 '대전환'.
이 길이 아니라면, '페스트'든, '코로나'든 '추상화'된 '재난'은 그 어떤 형태로든 여전히, 그리고 끝없이, 반복된다.


***

1. [페스트(La Peste)](1947),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김화영 옮김, <민음사>, 2011.
2. [이방인(L'Etranger)](1942),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박용철 옮김, <덕우출판사>, 1990.
3. [프랑스 혁명사 3부작], <1부.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 칼 마르크스(Karl Marx), 임지현/이종훈 옮김, <소나무>,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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