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용원 Oct 28. 2020

[단편 습작](1998) - 송용원

[타스카는 누구에게 사과를 주었는가] - 1998. 1.

[타스카는 누구에게 사과를 주었는가] - 1998. 1.





"오늘은 나의 동료학우이지만 바라노니 내일은 나의 동료투사가 될 친구에게."
- 1912. 5. Angelo Taska.
 


1. 오늘은…… 동료학우!
 


교정의 봄은 참으로 따스했다. 그들로서는 직접 볼 수는 없었겠지만 아마도 겨우내 앙상한 채로 서 있었을 학교 내 은행나무는 성급하게도 무성한 제잎을 드리울 채비를 하고 있었고, 길을 오르는 학생들의 모습 또한 지난 겨울의 두터웠던 더께를 벗어낸 듯 한껏 가벼워진 옷차림에 하늘하늘함을 풍기고 있는 듯 했다. 가끔가다 그들 곁을 지나는 차량의 유리창을 통해 반사되는 빛이 그들의 눈을 부시기에 너무도 벅찼던 그 첫 봄의 햇살은 그들의 눈에는 유난히 화창하게만  보였다.
교문을 비껴서서는 잔디가 있었다. 잔디밭 안에 서 있던 나무들의 그늘은 눈부실 정도로 화사했던 봄햇살을 막아주기엔 충분할만큼 퍼져있었고 그밑에 앉아있던 그들은 봄햇살에 몸을 맡긴채 갈수록 늘크데해져가고 있었다.
일학년 첫학기였다. 으레 그렇듯 그들은 볼수록 신기해 보이는 학교 분위기에 이래저래 몹시도 건듯거려대었고 다만 보는 것만으로도 제어할 수 없이 달떠있었다.


"야, 이제야 내려오나 봐."
"어디……"


교문으로 돌아내려오는 에움길로 해서 달망진 학교깃발 하나가 얼핏 보이나 싶더니 그 뒤를 이어 꽤나 많은 사람들이 담불담불하니 열을 맞춰 내려오고 있었다. 파란색으로 옷을 맞추어 입고 '조국통일'의 구호들이 박힌채 너붓너붓거리고 있는 흰 깃발들을 손에손에 들고있는 걸로 보아 선발대인 것 같았다.


"저기 봐, 저기. 창석이도 끼어있어."
그 파란 물결의 어귀를 가리키며 金이 외쳤다.
"짜아식, 벌써부터…… 많이 컸는데."


아니나 다를까, 선발대 속에는 그들과 같은 과인 창석이 맞춤옷을 입고 한손에는 짧은 쇠파이프를 깃대로 삼고 있는 것이 분명한 작은 깃발 하나를 들고서 너적저적 걸어가고 있었다.


1993년, 제 1기 한총련 출범식.

그날은 군부파쇼에 맞서 치열하게 투쟁했던 대중적 학생조직체 전대협의 기치를 이어받아 '군사정권의 종식과 문민정권의 탄생'이라는 시대흐름에 발맞춰서 이젠 '협의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발전적 형태의 '연합체'로서 제 1기의 깃발을 들어올리던 한총련의 출범식이 있던 날이었다. 대학생이란, 단지 사회적으로 보다 나은 자리를 차지하고자 마치 무슨 자격증이나 따듯이 거쳐가는 한 단계로서의 위치가 아니라 12년의 제도적인 의무교육 속에서 사회의 부조리한 한 단면-설령 그것이 '교육분야'에 한정되었다 할지언정-을 충분히 경험한 그들로서는 이제 좀더 커진 머리로, 좀더 넓어진 경험적 터전 속에서 세상의 제현상에 대해 제가슴을 한껏 열어젖혀야 하는, 그래서 이제 자신의 대상을 '세계'라는 거대한 객체적 현실로서 삼아야 하는 그런 위치라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럼에 있어 다만 세상 속에 홀로 내버려져 있는 개인의 눈으로써만 그 대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에 있는 '대학생'이라는 하나의 위치로서, 하나의 집단적 인식체로서 세계라는 거대한 대상을 대해야만 그 대상에 대해, 그리고 자기자신에 대해 보다 객관적인 입장을 정립시켜나갈 수 있을 거라는 것 또한 그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창석이 녀석, 괜찮을까?"
"야, 임마. 지금이 어느 시댄데…… 문민정부 아니냐. 설마하니 이전처럼 무턱대고 폭력을 휘두르던 군바리시대하고 같겠냐."


아직 1학년인데 그렇게 불쑥 선발대로 들어가서 출범식장으로 향하는 창석을 보며 그는 내심 걱정스러움을 내비쳤고, 金은 '문민정부'라는 시대적 '특수성'을 나름 확신이라도 한다는 듯 그의 꼭뒤를 지르고 나선 터였다.


창석이 그 며칠전부터 출범식 얘기를 하고 다닐 때, 그는 세상에 대한 집단적 인식에 있어서는 그런 조직적 행위가 꼭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고 내심으로는 창석과 함께 그 출범식에 어떤 형태로든 참여해 보리라는 결심을 하고 있었다. 한데, 막상 출범식을 하는 당일날 아침에 강의실에서 만난 金은 그런 그의 결심에 딴죽을 걸고 나왔다.


- 아니야, 더 두고 봐야해.
- 뭘?
- 어제 뉴스 못봤냐? 한총련에서 출범식때 인공기를 걸 예정이라잖아.
- 인공기?
- 그래, 인공기. 인민공화국기 몰라?


출범식 내내 인공기를 '게양'할 거라는 정보를 입수하여 한총련이 북한정권을 찬양할 예정이라고 규정한 정권은 출범식 장소로 정해진 대학의 주변 안암동 일대를 온통 원천봉쇄하고 그 행사 자체를 무산시킬 방침이라는 것이었다.


- 아니, 그래도 우리 국기랑 같이 게양할 거 아냐? 그러면 인공기를 내건다는 것만 가지고 북한찬양이니 뭐니 할 것까진 없잖아?
- 그뿐이 아니라 많은 다른 나라들의 국기도 같이 걸거래. 조그만 국기라던데…… 그렇다면 게양이라고 할 수도 없지, 뭐. 근데 그러면 뭐하냐. 북한은 이미 우리에겐 적국인데…… 내 말은, 그런 정권의 입장에서 그런게 곱게 보이겠냐 이거지.
- …….
- 그러니까 좀더 두고보자 이거야. 너처럼 순진하게 발부터 들여놓는 게 아니라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나 일단 구경이나 한번 해보자는 거지.


그래서 그와 金, 둘은 오후 수업이 있었는데도 베갈기고 나서 교문 근처 잔디밭에 나앉아 있던 터였다. 그리고는 출범식을 향하는 학교 선발대를 본 것이었고 그 속에 끼어있는 창석을 보았던 것이다. 꽤나 많은 수의 학생들이 모인 선발대열이 그들의 눈앞을 한참 지나가고 있던 중에 金이 물어왔다.


"넌 어쩔래?"
"원천봉쇄한다니깐…… 글쎄, 그냥 본대에 끼어서 따라나 가보지, 뭐."
"난 아무래도 예감이 좋지 않은데…… 인공기 얘기도 약간 찝찝한 감이 있고……"
"그래서 안갈거냐?"
"응. 너도 그냥…… 가지말고 나랑 있자."


문민정부가 들어섰으니 무슨 큰 사고나 나겠냐던 金은 갑자기 생각이 바뀌었는지 머뭇거리다가 넌지시 그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출범식에 가지 말자고.
그리고 나서 그들은 교문앞 수퍼에서 술을 사다가 그 낮부터 잔디밭에 퍼질러 앉아 마시고 말았고 며칠후 그는 학교식당에서 창석을 만났다.


"출범식 어땠냐?"
식당에서 창석을 본 그는 창석이 밥을 먹고 있던 탁자로 다가가며 첫마디로 물었다.
"어……? 뭐, 그냥 그랬지."
"그냥 그랬다니?"
"출범식장으로 들어가는 데는 별 문제가 없었거든. 근데 난 사수대였잖냐. 그래서 출범식 보지도 못하고 내내 그 학교 교문근처를 지키고 있었지."


젓가락으로 밥알을 찝쩍거리며 창석이가 대꾼한 눈으로 설을 풀기 시작했다.


"근데, 이 새끼들이 갑자기 들이닥치기 시작하는 거야. 그래서 사수대인 우린 필사적으로 녀석들을 막기 시작했는데,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다가 끝내는 부상을 입었다."


창석은 손목에 가볍게 입은 찰과상에 대일밴드를 붙인 걸 '부상'이라고 그에게 내보이며 약간 우쭐하다는 표정으로 말했고 그는 그 '부상'이라는 것에 가없이 같지않음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마당을 같이 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조금은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며 반정도 으깨어진채 방금 창석의 입을 통해 튀어나온 밥알에 황망한 시선을 놓았다.


"얘기 들었냐? 우리 학교사람들도 적잖이 잡혀 들어갔다는데."


그날 오후수업이 끝나고 강의실 문 밖에서 만난 金은 그를 보자마자 대뜸 다가왔다.


"야, 문민정부라더니 그런 정부에서도 학생들을 잡아가는구나."


그의 옆에서 혼자 지껄여대던 金은 그 사실에 매우 진노한듯 발을 굴러대고 있었다.


"그게 뭐 잡아간거냐? 금방 다시 훈방조치했다던데. 뭐."
"그래도 그게 아니야. 출범식 장소를 원천봉쇄했다는 것도 그렇고 쳐들어오려다가 그걸 막으려는 학생들을 잡아갔다는 것도 그렇고…… 이건 학생 자체적인 조직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정권과, 우리 학생 사이에 앞으로 벌어질 싸움의, 뭐랄까…… 아, 전초전. 그래. 그 전초전이자, 앞으로 학생운동은 문민정부라고 해서 이전에 비해 그리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하나의 징조라고 볼 수 있지."


뭐 개뿔이나 안다고 金은 강의동 계단을 어기적 내려서려는 그의 옆에 따라 붙으면서 째잘대었고 그는 그냥 한귀로 흘려듣고만 있었다.


金.

창석과 마찬가지로 그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통해 만난 동기였다. 아니, 金 자신은 모르긴 하더라도 그로서는 그 이전부터 얼굴을 익히게 된 인물이었는데, 대학합격후 한창 적성검사니 인성검사니 하면서 학교에 소집되고 들락거리며 과 선배들을 조금씩 만나고 하던 시기에 그가 우연히 가정환경조사서를 작성하고 있는 金의 어깨너머로 그걸 볼 수 있었던 것이 그로선 金과의 첫만남이었다. 아버지 직업, 무역업. 어머니 직업, 중학교 교사. 형, 대졸후 회사원. 누나, 대학교 3학년…… 그는 처음 가정환경조사서를 받고선 무척이나 실망을 했던 터였다. 대학이라는 곳에 와서까지 이런걸 꼭 작성해야만 하는 것인가. 만약 누가 초등학교,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에게 가장 고까왔던 일이 무엇이었느냐고 묻는다면 그는 그리 주저하지 않고 한가지를 톺아낼 수가 있었던 바, 그건 바로 가정환경조사서를 작성하는 일이었다. 월수입은 얼마고 집은 자가냐, 전세냐, 월세냐, 그리고 아버지 직업은 뭐냐 등등등. 어린 그에게 별로 내세우고 싶지 않은 그런 집안사정을 세세히 적어야 한다는 건 적잖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고 그 조사서를 책상에 놓고 마주앉은 그는 그가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했던-그래도 풀지못한 경우가 더 많았지만- 수학의 확률문제보다도 더 오랜 고민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는 기나긴 고심의 끝녘에서 결심을 하곤 했다. 그래, 그냥 쓰자, 노무자로.
한번은 그가 고등학교 2학년때인가 나중에 두고두고 생각해도 참으로 어색하기만 했던 장면을 그의 아버지와 연출한 적이 있었다. 매번 가정환경조사서를 받을때마다 그는 행여나 누가 볼세라 방문을 꼭 닫아두고 혼자서 대충 작성하고는 학교에 제출하곤 했는데 그해에는 담임을 맡은 선생이 꽤나 까다로운 사람이었는지 다시 세세히 작성해서 제출해야 하는 상황을 맞았던 것이었다. 그 덕분에 어느밤, 부자는 희미한 형광등 아래서 갱지로 된 가정환경조사서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 아버지, 그냥 제가 알아서 다시 작성할께요.
- 아니, 빠꾸맞았다고 가져올 때는 언제고 니가 작성한다는 거여. 또 빠꾸맞고 싶어서 그러는겨?


담임으로부터 불려가서 그가 작성한 용지와 새양식지를 다시 받고는 너무도 암담하여 집으로 터벅터벅 들어와 아버지 퇴근시간만 기다렸다가 한참을 망설인 끝에 그의 아버지에게 불쑥 내밀긴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었다 싶은 생각이 그의 머리속을 영 떠나지 않았었다. 세상에 이리저리 치이고 집에 돌아와서는 가족에게까지 치이는 아버지에게 자식된 도리로서 또다른 모욕감을 주고싶지 않아서였을까. 자신이 못배운게 한이 되어 수입은 변변치 않지만 자식들만큼은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그의 아버지는 내키지는 않지만 애써 관심을 두려고 노력하고 있다는게 표정으로도 역력했다.


- 자, 어디보자. 아버지 직업…… 노무자? 녀석아, 노무자가 뭐여, 노무자가.
- 그럼 뭐라고 하면 좋을까요?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러놓은게 들킨양 쭈뼛거리며 되묻고 있는 아들. 그런 아들의 물음에 일단 큰기침을 한 번 내뱉고 보는 아버지.


- 거 뭣이냐, 그거. 그려, 기술직 근로자라고 써. 기술직 근로자.


자세히는 알 수 없어도 아버지의 얼굴이 발개대해지는 게 가량맞게도 뻥을 좀 넣는구나 싶었지만 애줄없이 그는 아버지가 불러주는 대로 적어넣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로도 그는 아버지가 불러주었던 '모범답안'을 기억하고 있다가 그대로 적어넣었고 가정환경조사서를 받았을때 그 종이 끝자락이나마 다시는 아버지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땐 이미 가정환경조사서를 써야 한다는 '현실'이 싫었던 게 아니었다. 그 알량한 종이쪼가리를 앞에 두고 그의 아버지가 드리우던 얼굴의, 그리고 그보다도 더욱 짙을 마음의 그늘이 그보다 더 싫었다. 그런 그의 마음을 알고 있었는지 그의 아버지도 그후로 가정환경조사서의 '가'자도 입에 올리지 않았더랬다.
그런 그가 우연히 넘겨다본 金의 가정환경조사서는 기억하기 그리 즐겁지 않은 지난기억을 그에게 일깨워주었던 것이다. 새애끼, 무역업? 그래 우리 아버지는 노무자, 아니 기술직 근로자다, 어쩔래. 그러면 뭐하냐, 나도 너랑 똑같은 대학생이다, 뭐…… 아마 이정도가 그순간에 金에 대해서 그가 품었던 배알이었다.
아무튼 金은 오지랖이 넓고 성격이 무난한 것 같았지만 그의 소갈머리로 보기엔 여간 궤란쩍지 않았다. 언젠가 과의 선배들과 신입생들이 함께 모인 술자리에서 金이 성적우수장학생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그는 예의 밴댕이 소갈딱지같은 열등감을 어금니에 놓고 자근자근 씹어야 했다. 왜 굳이 술자리에서 그런 이야기를 꺼내면서 잘난체를 하고 있나…… 그는 자신과 金 사이에 뭔가 '건널 수 없는 강'이 있다는 걸 가끔씩, 가끔씩 느껴야 했다.


金의 꼬임에 걸려들어 결국에 참가하지 못했던 출범식이 있은 이후로, 열등감으로 점철된 지난 기억이 갑자기 상기되었는지 그는 괜하게도 金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한참이 지났을 즈음에 그는 학교 사회과학동아리방에서 金을 우연히 만났다. 그냥 마음만 가지고는, 감정적 동요와 열정만 가지고는 세상을 객관적으로 볼 수가 없다는 걸 그는 느꼈고 그래서 고심끝에 '프로메테우스'라는 사회과학써클에 가입하기로 결심을 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가 그 동아리의 신입회원이 된 며칠후 그는 동아리방을 찾아온 金을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어, 너는 웬일이냐?"
"나? 이 자아식. 동아리에 가입하려면 같이 해야지 너 혼자 잘먹고 잘살겠다고 혼자서 이 좋은 동아리에 드냐? 의리없게."
"너도 여기 가입할려고?"
"그래, 임마."


金은 그렇게 다시 그의 곁에 다가왔고 이제는 출범식때처럼 옆에서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동아리 커리큘럼에 맞게 콘스탄티노프, 아파나셰프 따위의 [변증법적유물론], [사적유물론]이라든가 [다시보는 한국현대사], [우리현대사의 숨은그림찾기] 등의 교양세미나를 통해 민중적 변혁이론의 기초들을 학습했고 문민정부 초기였던 당시의 최대현안이었다고 할 수 있는 '전·노씨 사법처리' 문제와 또다시 그 역사적 의의를 올바로 정립해야만 하는 80년 광주민중항쟁 등을 둘러싸고 서로 목울대를 세우기도 했으며 아는지 모르는지 구호들을 목이 터져라 외치면서 이 거리, 저 거리를 뛰어다니기도 했다. 金은 그 오지랖이 넓은 성격답게 이 선배 저 선배, 이 동기 저 동기와 접촉이 많은 것 같았고 선배들로부터 적잖게 신망도 얻고 있는 듯 했다. 그러나 그는 그의 눈에 가끔씩 내비쳐지는 金의 '부르조아적 근성'을 내심 마뜩치 않아 하고 있었다.


'프롤레타리아트적 당파성을 지니고 싶다는 놈이 뭐저래. 청바지는 '게스' 아니면 입지도 않고 하여튼 옷이든 신발이든 비싼 것 일색이니……. 기만적이야.'


그러고 싶진 않았지만 金의 행색을 보며 종종 지니게 되는 그의 생각이었다.


그해 가을이 아등그러지게 익어갈 무렵, 지난 여름 내내 WTO체제의 출범과 함께 농산물도 전면 개방해야 한다는 '세계체제에 대한 순응'의 당위성을 강조하다가도, 아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의 주식만큼은 지켜야 한다는 둥 제 스스로의 정책의 일관성 조차도 잡지 못한채 갈팡질팡하던 정권은 결국에 쌀시장까지 개방하고야 말았다. 1848년 2월 혁명이 견결한 프롤레타리아트 권력으로 이어지지 못한 것은 프랑스 나름대로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성숙이 이루어지지 못한 탓도 있었지만, 소자산가라 할 수 있으며 지배-피지배 구조에 있어 하층의 만만치 않은 다수를 점하고 있던 농민과의 연대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성과적 인식을 바탕으로 하여 노·농연대는 사회적 변혁의 결정적 사안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그와 金으로서는 정권의 농민에 대한 기만 또한 사회 변혁세력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었다. 20세기 초반, 「오르딘 누오보(신질서)」라는 평론지를 통해 이탈리아 북부와 남부 사이, 즉 산업프롤레타리아와 농민대중 간의 견고한 연대를 주장하던 안토니오 그람시의 정신은 20세기 후반, 농산물에 대한 에누리없는 완전개방을 통해 이제 '밥'까지도 자급자족할 수 없게 된 남한의 현실 속에서 다시금 절실하게 부상하고 있었다. 아무튼 쌀까지 굴욕적으로 개방하게 된 작금의 현실은 그 계급적 성격 뿐만 아니라 나아가 제국주의적 성격이 다분한 초국적 세계자본에 대하여 철저하게 식민주의적인 남한의 자본주의가 제 스스로의 종속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일종의 '반혁명'이었다. 그 즈음엔 아버지의 '기술직 근로자'라는 신분을 '노동자', 세상을 변혁할 자랑스런 주체인 '노동자'로 바꿔부르며 스스로 감개무량하게 여기던 그였고, 자신의 가정적·사회적 '신분'이 세상변혁에 있어 더없이 유리한 위치라고 내심 생각을 하며 그는 쌀시장개방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했고, 범가는 데 바람일 듯 金 또한 '게스' 청바지를 입고 그와 함께 거리로 나왔다.


겨울이 왔다. 시위는 여전히 전국 방방골골 꾸준하게 진행되고 있었고 캠퍼스는 기말고사 기간이 끼어 전반적으로 한산한 풍경을 이루고 있었을 무렵, 그는 대학입학후 처음으로 생일이라는 걸 맞게 되었다. 얘기를 하지도 않았음에도 동아리 총무부장 누나가 고맙게도 그의 생일자리를 주선해 주었다. 그리하여 동아리 회장을 비롯한 많은 선배, 동기들 모두는 저녁시간에 맞춰 학교앞 소주집에 모이게 되었다. 그는 고맙기도 하고 또한 자신이 이렇게까지 성대하게 축하를 받을만한 후배인가 싶기도 하여 탁자 둘레를 차지하고 앉은 사람들을 울가망한 표정으로 둘러보았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 사이에 金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가끔씩 마음에 거슬리는 면이 없지 않아도 그래도 그에게 있어서 金은 드물지 않게 생각과 행동이 맞는 동기였는데 자신의 생일자리에 끼어있지 않은 모양을 보니 그는 솔찮게 섭섭함을 느끼고 있었다.
사람들로부터 생일선물들을 받고 실컷 감격도 해본 후에 어느정도 술잔이 돌고 있을 즈음, 그는 문뜩 출입문쪽으로 시선을 돌렸고 그에 맞춰 찬바람과 함께 홀연히 들어서는 金을 보게 되었다.


"어이, 미안하다. 늦어서……"
"어디갔다가 이제오냐? 애타게 찾았는데."


뛰어와서 그런건지 아니면 바깥날이 추워서 그런건지 몰라도 얼굴이 발그레져서 들어와 앉으며 말하는 金에게 그는 애타게 찾아보지도 않았으면서도 괜히 그랬던 듯 과장스레 대꾸했다.


"어, 그런일이 있었어……. 그나저나…… 자, 받아라."

차갑게 식어있는 손으로 金은 들고있던 책 한권을 넘겨주었다. 방금 서점에서 산 듯 포장지가 빳빳한 책이었는데 무슨책인가 싶어 낼름 표지를 넘겨보았던 그는 金이 예상했던 것처럼 사회과학서적을 주지 않았음에 약간 의외라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게 뭔 책이다냐?"


그의 장난섞인 반응에 金은 가당치 않게 의젓한 표정을 얼굴에 올리며 웃음만 지어 보일 뿐이었다.


[전쟁과 평화]. 그가 알기로는 작가가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라는 것 밖에 관련된 지식이 없는 책, 가끔가다 KBS 명화극장 시간에 영화로도 보여주기도 하는 작품이라는 정도의, 한마디로 그에게는 별로 '친하지 않은' 물건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그는 金으로부터 金도 그 책은 그때 처음으로 잡아본 것이었으며 그에게 선물을 했으니까 다음에 시간나면 읽어야지,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다. [전쟁과 평화]는 金에게도 그리 '친한' 물건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면 왜 金이 뜬금없이 그 책을 그의 생일선물로 주게 되었던 걸까 이유를 추적하노라면 그 이유는 그 책의 하얀 안표지에 金 특유의 악필로 내갈겨진 하나의 명제로서 발견될 수 있었다.


"오늘은 나의 동료학우이지만 바라노니 내일은 나의 동료투사가 될 친구에게."


안젤로 타스카.

이탈리아공산당(PCI)의 창당멤버이자 마르크시즘  국가론을 보다 발전적으로 확장시키고 구체화시켰다는 그 유명한 안토니오 그람시가 이탈리아 북부 튜린으로 갔던 학생시절에 첫 번째 동지였던 인물. 그 사람이 자신의 절친한 동지 그람시가 방년 열아홉살이 되던 해 생일에 [전쟁과 평화]라는 책에다가 이 말을 적어서 선물했던 것이었다. 어쨌건 그는 그 생일날 이후로 내내 金이 선물한 톨스토이의 책보다는 金이 적어준 타스카의 짧은 메모와 거기 내포된 자신에 대한 金의 마음에 무척이나 감격해 마지 않았다. 그리고는 金이 자신의 '진정한 동지'라는 사실을 깨단하게 되었고 불쑥불쑥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쳐들던 金에 대한 덴덕지근한 감정을 쉬이 가라앉힐 수가 있었다. 더불어서 金의 값비싼 '게스' 청바지도 '동지'라는 거창한 그늘 아래 자연스레 묻혀버렸다. 그리고 그는 속으로 이렇게 되뇌어 마지 않았다.
영원할지어다, 그람시와 타스카여!


 
2. 내일은…… 동료투사?



"어제 세미나는 또 왜 안나왔냐? 1학년 애들 데리고 나 혼자 하느라 진땀 뺐다, 야."


그는 동아리 정기세미나 과정으로 잡혀져 있던 1학년 교양세미나에 참석하지 않은 金에게 추궁하듯 물었다. 2학년이 된지 어느덧 한학기가 지나고 여름방학에 접어들 무렵이었다. 2학년에 올라와서 그와 金은 1학년 교양세미나를 맡아서 지도하는 '교사'중 하나가 되었는데, 날이 지나면 지날수록 金은 몇번의 동아리 모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가끔씩 그들이 맡은 교양세미나까지도 빼먹는 날이 잦았다. 더군다나 金이 또 빠져버린 전날 세미나는 이제 막 변증법적 유물론의 기본개념에 대해서 학습하는 첫시간이었던 만큼 그들에게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자리였던 데다가, 설상가상으로 고문이라는 위치에서 그들과 함께 1학년을 담당하는 '89학번 선배까지 사정이 생겼다며 불참했기 때문에 그 혼자서 세미나를 감당해야 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약간 찜부럭스럽게 물어오는 그에게 金은 머뭇거리는 듯한 태도만 보일 뿐 으레 그러는 것처럼 단박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무슨 일 있었냐?"
"무슨 일은……"
"근데, 왜, 그 중요한 세미나에 나오지 못한 이유가 뭐야?"
"나……"


金의 대답을 듣고 그는 미간이 심하게 일그러지는 걸 느꼈다. 왜 갑자기…… 그의 머리에 해감스럽긴 하지만 퍼뜩 드는 생각은 그것 뿐이었다. 金은 그 전날 학교 총학생회에서 자체적으로 모집하는 '통일일꾼선봉단'에 자원했고 그 전날은 선봉단 교양대회에 갔었더라며, 그리고는 며칠있으면 그해 여름에 있을 예정인 제 7차 범민족대회 선전차 지방으로 내려간다는 것이었다.


"왜 갑자기 그런 결정을 내린거냐?"
"갑자기가 아니야."


갑자기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불현 듯 그의 뇌리를 깊이 관통하고 있다는 걸 느낀 순간, 그는 지난 한학기 동안에 일어났던 짧은 일들에 대한 단상들의 꼬리를 간신히 붙잡을 수 있었다. 그들이 2학년이 되던 그해 동아리의 첫 앰티 자리에서 술에 취해 金과 말싸움을 벌였던 일. 그리고는 그 이후로 알게 모르게 金과 그와의 '거리'를 느끼게끔 해주던 사소한 일상적 사건들……. 그는 자본주의의, 나아가 남한 사회구성체의 기본모순인 계급모순에 대해 성토했고, 金은 예전같지 않게 남한체제와 한반도의 모순중 특수하고도 이른바 주요모순이랄 수 있는 분단모순의 '상대적 우위성'을 들고 나서곤 했다. 기본모순을 결코 무시해서는 안되겠지만 우리 한반도에 있어서는 분단이 반드시 우선적으로 극복되어야 할 주요한 모순이며 미국으로 대표되는 제국주의 세력에 의해 철저하게 기형화된 자본주의로 성장한 남한체제의 모순을 해결하고 그 식민성이라는 사슬을 끊어버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분단이라는 현실과 한민족으로의 단결된 통일이라는 목표를 직접적으로 걸고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알고보면 지극히 당연한 말들이었다. 역사적으로 계급사회의 최고발전된 형태인 자본주의. 그 계급지배체제의 변혁에 있어서 지배-피지배의 계급구조를 철폐해야 한다는 기본적 인식은 없어서는 안될 것이며 한반도에 있어서는 분단이라는 현실이 계급지배의 특수한 억압적 도구로 작용하기 때문에 그 주요모순에 대한 인식과 변혁적 실천 또한 너무도 필요하다는 건 그나 金이나 둘중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기본모순의 동력에 의한 운동을 기초로 하고 있는 복잡한 사물의 발전과정에는 많은 모순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 중에는 반드시 하나의 주요모순이 있는 바, 이 주요모순의 존재와 발전에 의해 다른 모순의 존재와 발전이 규정되거나 영향을 받게 된다고 모택동이 그의 주저 [모순론]에서 분석해 놓았듯이. 체제의 기본모순을 확정하는 현실에 대한 이론적 분석은 가장 '기본적'인 사항이지만 당면한 현실의 경제적, 지형적, 정치적, 발전적 '특수성'에 대한 분석이 전자(前者)를 상대적이긴 해도 결정적으로 규정할 수 있다는 사실은 변혁적 실천에 있어 현실적으로 꼭 필요한 실천적 인식일 수 밖에 없었다. 다만 자본주의의 극복이라는 지상과제는 전자에 대한 끊임없는 견지를 통해서만이 가능하다는 것이 그가 믿는 신념의 커다란 축이었다. 한마디로 체제의 기본모순과 주요모순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변증법적 고리를 형성하고 있는 관계였다.
그리고 그들이 이를 두고 벌이던 논쟁. 그들에게 있어 논쟁이라는 것은 서로 자신의 입장을 가지고 나서서 각자 어느정도는 한쪽으로 치우쳐 버리게 되는 과정을 거치게 되지만 또 그것을 통하여 종국에는 양자를 변증법적으로 통일시켜 나가는 과정이었다. 마치 한쪽으로 휘어진 막대기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그의 반대방향으로 더 심하게 휘어주어야 한다고 레닌이 말한 것처럼. 그런데 그 즈음의 그들은 서로 한쪽으로만 치우친 과정 속에서 서로의 합치점의, 나아가 현실에 대한 변증법적이고 그 자체 '현실적'인 사고의 지점을 향하지 못한채 점점 서로의 틈을 넓히고만 있었던 것이었다.
金이 '통일일꾼선봉단'에 들어간 그 일을 계기로 그들은 그날 다시 술을 마시며 논쟁이 아닌 말다툼을 심하게 했다.


"지금의 통일운동을 봐. 거기에선 계급적 관점, 즉 노동자 중심의 세계관이라는 걸 찾아볼 수가 없어. 노동을 통해서 역사발전을 일구어내는 대다수 노동자에 대한 당파성이 결여된채 혁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잖아, 너는. 그런 것들이 결여된다면 그건 또다른 개량주의이자 철학적 관념론에 다름 아니야."
"아니, 한반도의 특수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채 스콜라주의적으로 자본주의 일반모순인 계급모순에만 천착하는 것 또한 관념적이고 소아병적인 오류야."
"그래, 그렇다 치자. 그렇다면 네가 지금 조금씩 경도되고 있는 통일운동 노선은 어떻고. 그것도 자본주의적 토대구조를 인식하지 못하는 주관적 유아론자의 그것 아니야? 한반도의 주요모순에 대한 너의 생각에는 나도 전적으로 동감해. 그렇지만 넌 대체 범민족대회식의 운동판에서 뭘 어쩌겠다는 거냐?"
"현실적이어야 해. 지극히 식민적인 우리 현실을 바꾸려면 무엇보다 결집된 우리 민족의 단결된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아니, 니가 뭐라건 상관없어. 아무튼 난, 이번 기회에 한번 나 자신의 사상적 발전을 가늠해 보겠어."
"상관없다고? 정말 상관없다고? 우리, 동지 아니었어?"
"……."



( 파올로 루벤스, [파리스의 심판] 연작, 17세기 )



어색하리만치 흥분하던 그에게 金은 귀찮다는 듯한 표정으로 술잔만 비울 뿐이었다. 술잔을 내려놓는 金을 바라보던 그의 눈에 언뜻 잘 익은 빨간 '사과'의 형상이 겹쳐지고 있었다. '94년 범민족대회는 金과 그의 사이에 던져진 에리스의 '불화의 사과'였던가. [일리아드]의 영웅 아킬레스의 아버지인 펠레우스와 어머니 테티스 사이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와 싸움의 여신 에리스가 그 식장 한가운데에다 던졌다던 사과. 에리스의 사과는 금으로 만든 사과였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의 눈에는 빨간 사과가 떠올랐는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어쨌든지 간에, 그 사과에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사람에게'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었는데 이를 두고 헤라, 아테네, 아프로디테 세 여신은 서로 각축을 벌였고, 그러다가 결국 트로이에서 온 파리스에게 선택권을 주었다고 한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마치 부르조아 정치가들이 그러하듯이 자신을 선택하면 그로 하여금 절세미인 헬렌을 강탈할 수 있게끔 도와주겠다는 조건을 걸어 그 사과의 주인이 되었고 그 대가로 파리스는 헬렌을 차지함으로써 그 사건이 결국 '트로이전쟁'의 도화선이 되고 말았다는 이야기. 선뜻 그의 눈에 펼쳐지던 사과의 영상은 金과의 결별을 징후해주는 하나의 메타포였다. 그렇다면 金은 어떤 '조건'으로 '민족'이라는 슬로건을 택했던 건가. 이론 자체로는 명확하지만 그것의 현실적용에 있어서는 아득하게만 보이는 계급투쟁에 대한 포기? 아니면 그 특유의 오지랖으로 주위사람을 끌어모아 '한자리' 차지해 보겠다는 개인적 영예에 대한 갈망……? 대학 2학년이었던 그와 金. 그들은 그때 벌써 그들 사이에 떨어진 '사과'를 두고 '동지적 불화'를 겪고 있었던가. 지난 20세기 초반의 이탈이아 사람이었던 그람시와 타스카, 타스카와 그람시, 그들도 그랬을까, 하는 의문을 그는 내내 하고 있었다.


그가 1학년이었던 그 전해에 이어 7차 범민족대회가 추진되던 그해에도 그의 학교 동아리연합회는 학교 총학생회와의 갈등을 감수하면서까지도 '통일주의'에만 경도된 그 대회에 대한 불참을 결의했던 터였고 그의 동아리 '프로메테우스'도 그 방침을 따르기로 했었던 것이었다. 일단의 조직적 결의였던 이상, 한 동아리의 '교사'위치에 있는 회원이 '선봉단'에 자원했다는 사실은 재고의 대상이 아닐 수 없었다. 金이 동아리측에 통보도 하지 않고 지방으로 내려갔을 때 그는 혼자서 동아리의 2학년 '교사'의 자리에 남게 되었고 일부러 그러진 않았었지만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金에 대한 연락을 끊게 되었으며 이후로도 金을 자주 만나볼 수 없었다.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른후에 그는 金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는데 그가 군대에 있을 때 동아리 후배로부터 온 편지를 통해서였다. 그가 '교사'였을때부터 함께 학습했던 여자후배였는데 그에 대한 모종의 연정이 있었던지 그가 입대한 이후부터 무슨 연애편지라도 보내오듯 그에게 자주 학교소식을 전해주던 후배였다. 어느날의 꽃편지 속에서 그는 金이 학교 부총학생회장으로 출마했으며 '96년 8월 연세대 사태 이후로 침잠된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연립후보한테 낙선당했다는 소식도 들을 수 있었다.


( 언토니오 그람시 : 1891 ~ 1937 )


1920년대 초. 이탈리아공산당 창당이후, 극좌파주의자인 아마데오 보르디가가 당의 지도권을 장악하고 있었고 제 3인터내셔널로서의 '코민테른'은 사회주의적 정치지도자들 사이의 '통일전선체'를 강력히 주장하고 나섰다. 보르디가를 비롯한 그람시, 톨리아티 등의 당지도부는 이에 강력하게 반발하였다. 노동자·농민연대이건 쁘띠부르조아지와의 전술적 연대이건 모든 형태의 통일전선은 대중으로부터 발동되는 '아래로부터의' 그것이어야 했다. 그런데도 1920년 7월 이후로 확정된 코민테른의 방침은 사회민주주의적 기회주의 지도자들과의 연대를 이루어야 한다는 '위로부터의' 통일전선전술이었다. 이탈리아공산당 지도자들 대부분은 이 방침에 등을 돌려버렸지만 그 중 이를 바람직하게 보고있던 한 인물이 있었는 바, 그가 바로 이전에 그람시의 절친한 '동료학우'이자 이탈리아공산당의 창당그룹의 일원이었던 안젤로 타스카였던 것이다. 타스카는 이 통일전선체 논란을 계기로하여 이후 이탈리아공산당의 확고부동한 우파지도자가 되었다.


***


범민족대회가 끝나고 대회는 그 전해에 받았던 비판, 즉 계급의식성도 결여되었을 뿐만 아니라 대중적 기반조차도 확보할 수 없었다는 그 비판을 또다시 받았다. 그가 속한 동아리 사람들에게 면목이 없었던 건지 아니면 그쪽 마당에서 자신의 자리를 확실히 잡아나갈 수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金은 대회에 대한 평가가 내려진 이후에도 동아리로, 그리고 그의 곁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그의 열아홉살 생일날 金으로부터 받았던 [전쟁과 평화]는 그의 방 책장 한구석에서 먼지만 덮어쓰고 있었다.


각자 자신의 자리를 잡고 활동을 하는 동안 金은 수업출석률이 그리 좋지 못했던 그보다도 더 잦게 수업을 빠졌기 때문에 같은 과였음에도 그가 수업시간에 金의 얼굴을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 그들은 가끔 대규모의 시위현장에서는 서로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더랬지만 그는 해고노동자들의 복직시위 같은 계급투쟁의 첨예한 전선에서 金을 만날 수가 없다는 사실에 무언가 씁쓸한 것을 목젖으로 넘겨야 했다.


우파로 경도된 타스카는, 이탈리아공산당의 발전과정 속에서 보르디가가 코민테른으로부터 실질적으로 축출당한 시기 이후로, 파시스트 도당에 의해 구속되기 전까지 얼마동안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당에 결정적인 지도력을 행사했던 그람시에 의해 우파 기회주의로 배척받게 되는 입장에 서게 되었다. 1929년, 그람시의 투옥이후에 타스카는 자신의 우파적 지도력으로 잠시동안의 당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지만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우파적이고 개량주의적이라 하여 코민테른으로부터도 '파문'당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가 군대에서 金의 소식을 듣게 되고 그 몇개월후 휴가를 받아서 학교를 찾았을 때 그의 주위에 있던 사람중 총학생회 선거 이후의 金에 대한 얘기를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 또한 왠지 金에 관한 소식을 듣기에 더 이상의 관심을 스스로에게 지우고 싶지 않았다. 바로 마주하여 바라보는, 그리고 바라보고 싶은 세상은 그나 金이나 내나 같은 것이었겠지만 왼쪽이었건 오른쪽이었건 결국 그와는 다른 노선을 택했던 金. 金은 자신의 타스카적 '운명'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었을까, 그에게 선물할 책에다가 타스카의 문장을 어설프게 베끼던 그해 겨울부터.

(1998년 1월)

매거진의 이전글 [단편 습작](1999) - 송용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