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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Jan 08. 2021

[그림 속 천문학](2020) - 김선지/김현구

'별'이 된 '미술가'들과 '다수대중'의 '집단해석'

'별'이 된 '미술가들'과 '다수대중'의 '집단해석'
- [그림 속 천문학], 김선지/김현구, <아날로그>, 2020.




"... 모든 별들이 저마다 빛을 가지고 있듯이 그가 남긴 것은 오늘날 사람들에게 감동이 되고 의미가 된다는 점에서 고흐는 자신만의 빛을 낸 하나의 '별'이 아닐까?... 고흐는 우리에게 이렇게 아름다운 또 하나의 유산을 남기고 떠난 '별'이다."
- [그림 속 천문학], <2-7>, 김선지/김현구, 2020.



"미술이라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미술가'들이 있을 뿐이다."
- [서양미술사], <서론>, 에른스트 곰브리치, 1950.


'별'은 아주 오랜 고대부터 인류인 '자기'가 발딛고 있는 땅과 대비되는 저 하늘 위의 '타자'로서 '연구'의 대상이었고 한편으로는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천문학'은 이미 '점성술'로 '타자'인 '자연'을 연구하는 고대 인류 최초의 '과학'이자 한편으로 '신화'였다. 근대 예술의 '부흥' 운동으로서 15세기 '르네상스'는 고대의 '이상적'인 미(美)를 복원하려는 인간의 깨우침이었고 그러므로 카톨릭을 벗어나 고대 신화가 주요 테마가 되었는데, '천문학'과 '미술사'의 만남은 필연이다.

미술사학자 김선지와 천문학자 김현구는 '르네상스' 이후 '미술사'와 '천문학'을 아우르며 <미술학자가 올려다본 우주, 천문학자가 들여다본 그림>이라는 부제로 [그림 속 천문학]을 엮는다. 저자들은 실제로 부부인데, '미술사'와 '천문학'의 결합은 멋지게 어울린다. '미술'도 '별'도 좋아하는 내게는 참 기다리던 만남이기도 하다.



1부는, 태양(아폴로/Apollo)-수성(헤르메스/Mercury)-금성(아프로디테/Venus)-달(아르테미스/Diana)-화성(아레스/Mars)-목성(제우스/Jupiter)-토성(크로노스/Saturnus)-천왕성(우라노스/Uranus)-해왕성(포세이돈/Neptune)-명왕성(하데스/Pluto) 등 태양계의 별들에 관한 천문학적 설명과 이 별들이 상징하는 고대 그리스 신화의 내용을 담은 미술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태양계의 항성과 행성, 위성들의 작명은 그리스 신화를 모티브로 했는데 제우스의 별인 목성의 위성들은 그의 여성들인 이오, 유로파 등으로 이름 지어졌다. 1부만 읽어도 그리스 신화와 태양계는 한 바퀴 구경이 된다.

2부는, 르네상스 이후 근대 '미술가'들과 '별'에 관한 <열전(列傳)>이다. UFO 이야기도 있고, '별'을 특히 동경했던 불우한 천재 빈센트 반 고흐도 있다. 오스트리아 미술사학자 에른스트 곰브리치는 '미술'의 역사는 '미술가'들의 역사라고 규정하는데, 이 혁신적 '미술가'들은 하나하나가 빛나는 '별'들이었다.
곰브리치가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혁신'적으로 본 미술가는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 : 1267~1337)다.



"미술사 책에서는 대개 조토와 더불어 새로운 장(章)을 시작하는 것이 통례이다... 천년 동안 이와 같은 것이 만들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조토는 평평한 평면에서 깊이감을 느끼게 하는 기술을 재발견한 것이다... 피렌체의 화가 조토는 미술의 역사상 완전히 새로운 장을 개척하고 있다. 그의 시대 이후로 처음에는 이탈리아에서, 그리고 뒤이어 다른 나라에서도 '미술사'란 위대한 '미술가'들의 역사가 된 것이다."
- [서양미술사], <10. 교회의 승리 - 13세기>, 곰브리치.



기존 중세미술은 평면에 주요 '성상(이콘:Icon)'을 부각시키는 것이 특징인데 조토는 이 평면의 2차원으로부터 입체의 3차원을 처음 도입한 화가다. 그는 이후 15세기 르네상스 미술의 선구자인데 입체와 원근법 등의 기초는 그의 '발명'이 아닌 '재발견'이다. 고대 인류가 이미 바라본 관점이었을 것이며 조토는 이를 미술에 도입한 '혁신가'라는 것이다. 그러나 조토는 기존에 신적이고 환상적인 존재였던 '별'을 현실적으로 표현한 최초의 '미술가'이기도 하다. 예수탄생의 순간 동방박사 경배 시 떠오른 '성상'으로서 '성스러운' 별이 아닌 핼리혜성을 최초로 그린 그를 기려 1980년대 핼리혜성 탐사선 중 하나의 이름은 '조토'가 되었다.




"... 진정한 '미술가'라면 미술의 새로운 원칙을 철저하게 이해하고 그 원칙의 유용성에 대해서 자기 나름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충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독일의 위대한 '미술가'인 알브레히트 뒤러의 작품을 통해서 이러한 극적인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그는 평생동안 미술의 장래를 위해서 이 새로운 원칙들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동판화에서 뒤러는 미술이 자연의 모방을 추구하기 시작한 이래로 고딕 미술의 발전을 총합하고 완성시킨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의 마음은 이탈리아 미술가들이 부여한 새로운 목적에 고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 [서양미술사], <17. 새로운 지식의 확산 - 16세기초 : 독일과 네덜란드>, 곰브리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 대표적인 이탈리아 르네상스 거장들은 대규모 아카데미 조직을 양산했고, 북유럽의 화가들은 남유럽 이탈리아 유학을 통해 르네상스 정신을 전유럽으로 확산시킨다. 독일지역 '자유도시' 뉘른베르크의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rer : 1471~1528)는 당시로 보면 '국제주의자(cosmopolitan)'였고, 최초의 '상업적' 미술가였으며, 북유럽 고딕과 남유럽 르네상스를 융합시킨 또 하나의 '혁신'적 '미술가'다. 20세기 독일 출신 미국 미술사학자 에르빈 파노프스키는 그의 '도상학(도상해독:iconography)'과 '도상해석학(도상연구:iconology)'을 통해 뒤러의 작품 [멜랑콜리아1]과 [갈림길에 선 헤라클레스]를 분석한다. 미술사학자 신준형은 사실 '도상학'과 '도상해석학'의 경계는 모호하고 구분도 어렵지만, 그림 속 상징의 '해석(전형:Type)'을 넘어서 당대의 문헌사적 분석을 통해 '문화적 징후'까지 읽어냄으로써 '자연의 질서(cosmos)'에 비견되는 '문화의 질서(tabula)'를 구축하려는 파노프스키의 '철학'적 시도는 미술사가들이 "넘어야 할 큰 산"이라고 평가한다. 파노프스키는 [알브레히트 뒤러의 생애와 예술](1943)에서 뒤러의 [멜랑콜리아1]을 화가 자신의 '정신적 자서전'으로 본다. 후견인에 의지하지 않고 대량제작이 가능한 판화와 화가 고유의 '모노그램'을 통해 미술을 대중화하면서 '상업'적으로 성공한 '독립'된 '미술가'였던 뒤러는 그만큼 자부심이 강했다. 북유럽 르네상스를 이끌던 그는 수학에도 능했고 세계의 이치를 고민하는 예술가의 반열에서 자신을 거의 날개달린 신이나 천사의 지위로 위치짓는다. 좌측 상단의 작품 제목 위로는 여지없이 기독교적 공포의 상징인 혜성이 자비의 상징인 무지개 사이로 떨어지고 있다. 파노프스키의 '도상해석학'에 따르면 뒤러의 [멜랑콜리아1]은 '신'의 반열에 오른 "고뇌하는 예술가의 자화상"이다.



물론, 파노프스키식 '해석'의 '권력'은 다수 대중의 자유롭고 다양한 '해석'에 의해 필연적으로 깨지겠지만 그의 뒤러 '해석'이 그래도 일리는 있어 보이기는 하다.




"... 북유럽 사람으로 카라치나 카라바조 시대 로마의 분위기를 가장 직접적으로 접한 화가가 있었다. 그는 바로 플랑드르 출신의 페터르 파울 루벤스... 그 이전의 플랑드르 화가들은 대부분 작은 그림만을 그렸다. 그런데 그는 이탈리아로부터 교회와 궁전을 장식하기 위한 거대한 화면을 선호하는 취향을 플랑드르에 도입했는데... 그는 거대한 화면 속에 인물들을 배치하고 전체 효과를 높이기 위해 빛과 색채를 구사하는 기술을 공부했다... 마술사와 같은 그의 솜씨는 모든 것을 생기발랄하고 강력하고 유쾌하게 살아숨쉬는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 이전의 티치아노보다도 한층 더 루벤스는 붓질을 자신의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사용했다... 그것은 소묘적인 수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회화적인' 수단에 의서 생겨난 것... 고전적인 아름다운의 '이상화'된 형태가 그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 [서양미술사], <19. 발전하는 시각 세계 - 17세기 전반기 : 가톨릭 교회권의 유럽>, 곰브리치.


뒤러가 공방을 통해 '대중화'된 상업 판화를 팔아 '독립 예술가'로 성공한 북유럽의 다른 지역 플랑드르는 한참 후 19세기 '사실주의' 화풍의 지역으로 다시 부각되지만, 17세기 '바로크' 대표화가 페터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 : 1577~1640)의 고장이기도 하다. 루벤스는 대단히 사교적이고 거대한 조직력을 갖춘 화가로 당대 고위층의 요청에 따라 규모가 큰 그림도 많이 그렸다는데, 도제들이 그린 밑그림에 그의 '붓질'이 터치되면 그림은 활력과 생기를 얻었단다. 그는 이전 세대인 미켈란젤로나 라파엘로 등의 르네상스 아카데미즘처럼 양식화될 수 없는 17세기 '바로크' 화가다. 곰브리치에 의하면 '바로크'는 그 양식의 특징을 식별하기가 어렵다. '바로크'라는 용어 자체가 '터무니 없다' 또는 '기괴하다'는 의미로 르네상스 예술가들의 눈에 이해할 수 없는 신(新)양식이었고, 이후 '인상주의'처럼 기득권층이 신진층을 비꼬는 말이었다. 그러나 '미술'을 양식화하는 것에 반대하는 곰브리치가 보기에는 이처럼 자유분방한 '미술가'들이 '혁신'을 통해 '미술사'를 이끌어 왔다. 곰브리치에게 최고의 예술사조는 특정화되지 않는 '모더니즘'이었다.



독일의 미술사학자 하인리히 뵐플린의 저서 [미술사의 기초개념](1915)은 르네상스에서 바로크로 이행하는 특징을 다섯 가지로 분류한다.

1. 선적인 것(소묘) - 색채적인 것(회화)
2. 평면성 - 깊이감
3. 폐쇄적 형태 - 개방적 형태
4. 다원적 통일성(개별적 완성미) - 단일적 통일성(전체적 완성미)
5. 절대적 명료성(명료성) - 상대적 명료성(불명료성)

물론 위 다섯 특징은 비단 르네상스와 바로크 사이의 차이점만은 아니다. 이들은 전체 미술사 흐름의 일반적 경향으로 볼 수 있는데, 특히 '바로크'적 '혁신'에서 두드러지며, 루벤스의 '색채'와 '회화', 그리고 '개방성'에서 두드러진다. 카톨릭과 개신교 사이 종교개혁 전쟁에서 루벤스는 기득권층인 "카톨릭 진영의 독자적인 지위([서양미술사], 곰브리치)"를 점하면서 국제적 '외교가' 역할도 했단다. 그는 고위층 왕족이나 귀족들에게 그림을 바치면서 당대 최고의 화가가 되었고 그 특유의 풍만한 여성 '누드화'로 고위층의 관음증을 해소해주기도 했으리라. 당시 뱃살과 육덕진 몸매는 잘 먹고 사는 귀족의 특징이었으므로 모두가 선망하는 체형이었다고 한다. 어쨌든,  '마당발' 루벤스는 당시 과학계의 신진세력이었을 갈릴레이 등과도 교류했고 나름대로 '천문학'에 기반한 풍경화와 '별자리' 그림도 그렸다.


( [파리스의 심판] 연작, 페터르 파울 루벤스. )


물론, '예술'은 '과학'이 아니므로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해당 풍경에 화가가 가진 '과학'적 지식을 투영하므로 동시에 보기 힘든 별자리를 함께 그려넣기도 한다. 그래도 문제는 없다. '예술'은 '사실(實)'보다 '아름다움(美)'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곰브리치는 '미술'이라는 추상을 담지하는 구체적인 '미술가'만이 '혁신'으로 '미술사'를 이끌어간다고 했다. 이들의 작품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미술사학자들의 '권력'은 물론 넘어야 할 '큰 산'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수 대중에게는 그 '권력'에 균열을 내는 다양한 집단 '해석력'이 있다.
무엇이 옳은지는 '역사'가 말해줄 터, '미술사'를 이끄는 기본동력은 '미술가'들을 한편으로 하고 다른 한편에서 이들의 '혁신'을 추동하는 다수대중의 집단적 '유희'가 아닐는지.

'미술사'는 '별'을 그리다가 '별'이 된 '미술가'들과 '다수대중'의 '집단해석'이 어우러진 놀이터다.



***

1. [그림 속 천문학 - 미술학자가 올려다본 우주, 천문학자가 들여다본 그림], 김선지/김현구, <아날로그>, 2020.
2. [파노프스키와 뒤러], 신준형, <사회평론>, 2013.
3. [서양미술사](1950), 에른스트 곰브리치, 백승길/이종숭 옮김, <예경>, 2013.
4. [시각예술의 의미](1955), 에르빈 파노프스키, 임산 옮김, <한길사>, 2013.
5. [미술사의 기초개념](1915), 하인리히 뵐플린, 박지형 옮김, <시공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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