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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Mar 27. 2021

[상식, 인권](18세기) - 토머스 페인

"시간은 이성보다..."

"시간은 이성보다..."

- [상식, 인권](18세기), 토머스 페인, 박홍규 옮김, <필맥>, 2004.





"시간은 이성보다 더 많은 개종자를 만들어 낸다."

- 토머스 페인, [상식], <서문>, 1776.



인류가 왕을 '정치'적으로 몰아낸 것은 1789년 근대의 '프랑스 대혁명'이었다. 그 전에도 폭군들은 쫓겨나기도 하고 죽임을 당하기도 했지만 다시금 다른 왕으로 대체되었다. 물론 프랑스 대혁명으로 건설된 '공화정(共和政)'도 혁명 시기 국민군 장교였던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면서 다시 '제정(帝政)'이 복고되었다가 1848년 '2월 혁명'으로 다시 '공화정'이 부활하고 또 다시 나폴레옹의 조카에 의해 '제정'과 '공화정'이 엎치락 뒤치락했지만, 근대에 이르러 이미 시대는 군주 1인이 아니라 다수 대중 또는 그들의 대표들이 이끄는 '공화국'의 시간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33


기원전 9세기 고대 중국 주나라 폭군 여왕(厲王)이 '국인'들의 반란으로 쫓겨난 후 각각 평민들과 귀족들의 추대를 받은 '공(共)'과 '화(和)' 두 재상이 지도했던 짧은 기간을 '공화(共和)'로 불렀고 동양에서는 '왕이 없는 시기'를 의미하는 정치체제가 바로 '공화'였다. 서양은 '제국'이 무너지는 과정에서 귀족과 평민의 '양원(兩院)'이 왕권과 함께 지배하는 체제인 'Republic'으로 나타났는데 로마 '황제'의 명목상 임무는 '공화정'을 지키는 것이었다. 근대 이전에는 '군주정'이 표방하던 '공공성(公共性)'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다수 민중의 요구가 '공공성'의 모습으로 '공화정(Republic)'을 출현시켰으며 18세기에 이르러서야 '군주정'과 '공화정'은 대립된 정치체제로 정립되었다.

프랑스 '대혁명'은 한 세기 전 영국 '명예혁명'과 달리 왕을 처형한 후 다른 왕족으로 대체하지 않았다. 왕이 없어진 자리는 '국민'의 대표들인 '국민의회'가 차지했는데, 군주나 귀족의 '욕망'을 인간 일반의 '이성'으로 대체한 '계몽주의'가 사상적 토대였다.

정치적으로는 한편,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은 1776년 미국 독립전쟁에서 그 영향을 받았다고도 한다.



1776년 미국 '독립선언문'의 기초가 되었다는 사상가가 있다. 바로 토머스 페인(Thomas Paine : 1737 ~ 1809)이다. 영국에서 태어난 그는 38세에 미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가담하고 '반영투쟁'을 넘어 아메리카가 '왕이 없는 나라'를 건설해야 한다는 급진적 독립투쟁를 호소한다. 당시 워싱턴 총사령관부터 다수 아메리카 이주민들은 영국으로부터의 완전독립을 지지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독학으로 여러 책들과 사상을 연구한 페인은 1776년 초 [상식(Common Sense)]이라는 짧은 팜플렛으로 '군주정' 영국으로부터 완전 독립한 '공화정' 미국을 선언하고 있다. 그의 [상식]은 이후 미국 '독립선언문'의 기본 골격이 되는데, 그의 '상식'은 '왕의 나라'가 아닌 인간의 보편적 자유권이자 시민권인 '자유'와 '평등'의 인권에 기초한 '인민의 나라'다. 당시 다수 아메리카 인민들조차 전제군주를 '상식'으로 여겼고 그것이 '이성'적 판단이라 주장했으나 토머스 페인은 왕이 아닌 다수 인민, 보편적 인간의 기본권을 '이성'이라, 그것이 바로 '상식'이라 줄곧 주장한다. 결국, 오랜 혁명의 시간을 지나 다수가 주인인 '인민주권국가'는 전제정치의 무지한 신념을 무너뜨리고 모든 인류를 '개종'했다.

'상식'이 독재자를 몰아내고 다수의 힘으로 승리한 것이다.





"프랑스 국민이 혁명을 일으킨 것은 루이 16세에 반대해서가 아니라, 전제적 국가원리에 반대해서였다. 그 기원은 루이 16세가 아니라, 수세기 전의 근원적 제도에 있었다... 그리고 위기가 닥쳤을 때는 단호한 각오로 행동하든가, 아니면 전혀 행동하지 않든가 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 토머스 페인, [인권 1부], <2장. 프랑스혁명은 원리를 위한 투쟁이다>, 1791.



유럽 대륙에서 영국과 오랜 앙숙이던 프랑스는 정치체제 지지 여부를 떠나 아메리카 대륙의 반영국 독립투쟁을 지원한다. 프랑스 귀족인 라파예트 후작은 미국 독립전쟁에 지원하여 전공을 세우기도 했으며 토머스 페인과 교류도 했다. 프랑스에서 선출되지 않은 정치기구인 귀족들의 '명사회'에서 정치현안을 논의할 때 라파예트 후작은 '국민의회' 형식을 주장했고 루이 16세가 '삼부회'를 어쩔 수 없이 소집했다가 왕족과 귀족들의 반발로 다시 무력화시킬 때 '제3신분(평민)'의 대표들은 "죽을 때까지 흩어지지 말자" 호소하며 '테니스코트 서약'을 했다.

1787년 프랑스로 가지 못하고 고국인 영국으로 다시 돌아간 토머스 페인은 에드먼드 버크라는 하원의원과도 교류하였다. 2년 후인 1789년에 발발한 프랑스 대혁명에 관한 버크의 공격은 당연히 '군주정' 체제 내 '개혁'의 입장, 즉 전통적인 '마그나 카르타'식 입헌군주제의 관점이었다. '전제군주'를 증오하고 귀족들을 경멸하며 아메리카 연방공화국을 사상적으로 기초했으며 보편적 인권사상을 설파하던 페인이 가만히 있을리 없었다. '군주정'이 '상식'이 아니며 '인권'에 기초한 보편사상으로 국가의 기원을 규명하고 다수의 복지를 증진하는 새로운 '공화국'을 위한 혁명은 단지 왕 한 사람이나 몇몇 귀족가문에 대한 투쟁이 아닌 인류의 보편적 '인권'이라는 '원리'를 위한 투쟁이라는 내용으로 영국 보수주의자 버크에 대한 반박글을 [인권]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한다. 페인의 [인권]에 의하면 왕을 몰아내거나 처형해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영구적으로 '공화국'을 건설하는 것은 필연이다.




사실 토머스 페인의 이 저서는 오래된 글이기도 하고 지금은 너무도 '상식'적인 '인권' 이야기를 장황하게 서술하고 있어 읽기 지루하기도 한 책이다.

[인권 1부]에서 프랑스 대혁명의 역사적 전개과정을 페인 나름대로 정리한 장들은 역사책 읽듯 재미있기도 했으나 [인권 2부]의 세금 관련 장들은 지금과는 맞지 않는 데이터라 별 감흥이 없기도 하다.


그럼에도 18세기 당시 '국제적 혁명가'로서 토머스 페인의 결론은 다시금 되짚어볼 만 하다.


첫째, '군주정'과 '귀족정'에 대한 증오와 경멸.

'군주국'인 영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왕과 귀족들의 무능한 세습체제에 대한 토머스 페인의 증오는 극에 달한다. 경멸의 표현 또한 노골적이고 시원시원하다. 일본에서 천왕을 암살하려 한 아나키스트 박열의 동지인 20세기 일본인 가네코 후미코나 영국 여왕에게 무릎 꿇기를 거부한 21세기 노동당수 제레미 코빈 보다 몇 백 년 앞선 인간 자유의지의 선언이다. 다수 민중에게 진정한 '애국'은 '혁명'이다.

페인은 물론 현대의 우리의 '상식'에도 반하는 '소수지배체제'는 결코 '공공성'을 담보할 수 없으며 다수의 의지를 대표하는 '공화정'만이 '공공성'의 정치를 집행할 수 있다. 페인에게 최고 정치체제는 '대의민주주의'였고 이는 지난 20세기까지 우리의 '상식'이었다. 이제는 '공공성'을 더욱 확대하는 정치체제는 '대의제'라는 '대리주의'를 넘어서야 하지만, 한편으로 극단적 '포퓰리즘'도 경계해야 한다. '공공성'을 담지 못한 '포퓰리즘'과 파시즘적 '영웅주의'는 동전의 양면이기 때문이다.


둘째, 다수의 '복지'와 '노동', 그리고 국가.

18세기는 '노동계급'이나 사회주의 사상이 '평등'을 내걸기 전이며 이제 고작 종교적 신권과 정치적 왕권에 반발한 인류 보편인권 사상이 '계몽주의'의 이름으로 한창 등장하던 시기였다. 우리는 이를 '자유주의'의 기원으로 본다. 원래부터 강도나 악당, 찬탈자와 같은 전제군주국이 전쟁과 약탈로 민중을 대놓고 수탈했으니 18세기 자유주의 이념은 '작은 정부'와 '감세'를 주요하게 주장할 수 밖에 없었다. 다수 민중의 '노동'을 통해 생산된 부를 왕족과 귀족들의 사치와 향락, 쓸데없는 정복전쟁에 탕진하지 말고 빈민구제와 아동이나 노인에 대한 복지, 보편교육에 제대로 활용하기만 해도 당시 '군주정'이 걷는 막대한 세금을 줄이면서도 다수를 위한 국가운영이 가능하다는 것이 18세기 [인권 2부]에서 페인이 주장한 결론이다. 물론 지금은 '공화국'의 정치 역할이 더욱 커지고 있으므로 '자유주의'의 '작은 정부'와 '감세정책'은 그 자체로 '공공성'을 포기한 소수 자본가계급의 이익을 노골적으로 지지하는 주장일 뿐이다. 현재 '자유주의자'들의 '자유'는 정치경제적으로는 자본의 '자유'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유주의' 또한 그 사상의 역사로부터 고찰해야 하는 것이다. '국제적 혁명사상가' 토머스 페인이 '작은 정부'와 '감세'를 주장한 이유는 소수의 사적인 이익을 위함이 아니라 노동하는 다수 민중의 보편적 인권과 복지, 그리고 국제적 평화'를 전제로 했던 것이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186


이 정도로도 '자유주의'냐 '사회주의'냐 그 사상 이전에, '공공성'을 위한 '공화국'의 역사를 함께 생각해볼 만한 토머스 페인의 팜플렛 [상식, 인권]이 정치사상사에서 '고전(古典)'이 될만한 충분한 이유다.



'시간'이라는 '역사'는 '이성'이라는 당대 '철학'보다 더 많은 '상식'과 '인권'을 옹호하고 증명한다.



"승패를 초월한 고결한 긍지로써 나는 '인권'을 옹호한다... 미국과 프랑스의 두 혁명... 그 두 보기에서 분명한 것은, 혁명의 진영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가장 큰 세력은 '이성'과 '공동이익(공공성)'이라는 점이다."

- 토머스 페인, [인권 2부], <5장>, 1792.



***


1. [상식(Common Sense), 인권(Rights of Man)](18세기), Thomas Paine, 박홍규 옮김, <필맥>, 2004.

2. [프랑스 혁명사 3부작](19세기), 칼 마르크스, 임지현/이종훈 옮김, <소나무>, 1987.

3. [한국 민주주의 100년, 가치와 문화], 김동춘 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한국민주주의연구소 엮음, <한울아카데미>,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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