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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Apr 19. 2021

영화 [자산어보](2021) - 이준익

'현산어보(玆山魚譜)'를 찾아서

'현산어보(玆山魚譜)'를 찾아서

- 영화 [자산어보], 이준익, 2021.





"홍어가 가는 길은 홍어가 알고,

가오리가 가는 길은 가오리가 알지라."



정약용의 형인 정약전이 흑산도로 유배 갔다가 '창대'라는 청년 어부로부터 뒤통수를 맞게 되는 대사다.

20세기 말에 조유식 선생의 [정도전을 위한 변명](1997)이라는 책을 읽은 나는 우리 역사에서 삼봉 정도전을 존경하기로 마음먹었고, 최근 '삼봉빠의 끝'이라 할 수 있는 '성리학'을 아주 조금 읽게 되었다. 몇몇 분들이 2021년 3월에 나온 영화 [자산어보]를 추천하였으나 기왕에 나는 오래전 동네 선배 선영 누이가 선물해 준 [현산어보를 찾아서]라는 책을 다시 찾아 읽은 후 그 영화를 볼 참이었다.

그리고 나는, 정약전이 창대한테 뒷통수 맞은 것에 비할 수는 없으나 영화가 [자산어보]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성리학'에 대한 것임에 뒷통수를 맞았다.

본의 아니게 내가 "주자는 힘이 세구나!"라는 영화 속 상황에 빠진 '조선' 사람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정약전의 [자산어보] <서문>의 내용을 모티브로 한 영화는 18세기 조선 후기 정조 사후 그의 총애를 받던 정약용 형제의 수난에서부터 시작한다. 천주교를 앞세운 서양학문인 '서학'이 유입되던 시기였고 당대 최강의 '성리학자'를 자처하던 정조 임금은 천주교 박해를 하면서도 '서학'에 개방적이던 정약전-정약용 형제들에게는 관대했던 것 같은데, 그가 죽으니 정적들이 이 형제들을 유배보낸 것이다.

영화에서는 전남 강진으로 간 정약용은 [목민심서] 등을 쓰며 현실 군주정에서 실천의 길을 찾았고, 더 멀리 흑산도로 유배간 정약전은 군주정과 신분제, 남녀차별 자체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성리학'에서 올바른 길을 찾으려던 창대와의 극적 결별을 위한 장치였을 수도 있겠는데, 이 정도면 정약전은 얼마 후 조선 역사에 등장했던 '동학' 지도자 못지 않은 '혁명가'였겠다 싶다.





"현산(玆山)은 흑산(黑山)이다."


흑산도에서 다양한 어종의 박물지를 책으로 쓰고자 했던 정약전은 [자산어보]의 <서문>에서 흑산도의 '검을 흑(黑)' 자가 어둡고 불길하다 하여 '검을 현(玆)' 자로 바꾼 이유를 들고 있다. 그리하여 어떤 학자들은 이를 근거로 '자산어보'를 '현산어보'로 읽어야 한다고 했단다. 선영 누이가 선물한 책의 저자 이태원 선생은 아예 [현산어보를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200년 전 정약전이 떠난 길을 따라가며 그가 쓴 [자산어보]의 내용를 추적하고 있다. 영화 [자산어보]를 보기 전에 꼭 다시 읽어봐야겠다 싶었는데 이상하게 책을 찾지 못하던 중 영화를 보았고 검색을 해보니 오래전 선물받은 책은 총 다섯 권 중 '1권'이었다는 것을 새삼 알았다. 오래전 책에 대한 기억은 멀어졌으나, 다들 '자산어보'로 읽을 때 '현산어보'로 읽어야 한다는 그 책의 생각은 영화에 나온 정약전의 사상과 닮았다. 정약전이 자신의 책을 '자산어보'로 이름지었는지 '현산어보'로 불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세상을 알고 사람을 아는 방법이 당시 지배이념인 '성리학'이든, 노장사상이든, 불교나 천주교든 '한 가지 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 점에서 그렇다. 18세기 조선에서 갈수록 "힘이 세"지던 '주자학(성리학)' 또한 12세기 유학의 집대성 시기에는 유-불-선 등의 사상이 융합되면서 선학들의 집단적 연구를 통해 '이단'의 성격이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남송 시대 당시의 세상을 보던 주희(주자)의 '격물'은 구체적 사물의 본성을 존중하고 그에 따라 인식을 확장하는 '치지'를 통해 그 올바른 보편적 '성리'를 인간 사회에 '실천'한다는 것이었다. "홍어의 길은 홍어가 알고, 가오리의 길은 가오리가 아는" 정약전의 '자산(현산)어보' 또한 구체적 사물에 대한 구체적 '격물'을 통해 '치지'를 이루려는 당시로서는 열린 '과학'적 태도였다. 그러나 정약전의 '격물치지'는 그가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함으로써 '치국평천하'까지 이를 수 없었다.





영화속 '창대'는 결국 '성리학'을 현실에서 실천하지 못했으니, '주자학'을 무기로 기득권을 지키려던 조선왕조와 지배계급은 얼마 후 대규모 농민봉기와 반란으로 점철된 '민란의 시대'를 불러오고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한 '성리학'은 조선 후기 당시로부터 400년 전 고려말 '불교'의 꼴이 나고 말았다. 조선왕조 500년의 마지막 100년은 '민란의 시대'였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144



어차피 내게는, '삼봉의 끝'을 보고자 역으로 거슬러 오르다가 정신 차리니 앞에 '주자'가 있었던 것이었고, 내친 김에 '성리학'을 구경하던 21세기 서생이 12세기 도학자를 만난 길이었다. 그 참에 다시금 교조화된 조선 후기 '주자학'에 새삼 뒤통수를 살짝 맞았으나 어차피 '유물론'적 철학의 방향이라면 그것이 '성리학'이든, '마르크스주의'든 상관없을 게다.


낡은 '실천철학'의 '새로운 실천'의 목적은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유물론'이라면 족하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197


***


- [현산어보를 찾아서 - 200년 전의 박물학자 정약전], 이태원, <청어람미디어>,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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