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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Apr 18. 2021

[역학과 주자학](2020) - 주광호

낡은 '실천철학'의 '새로운 실천'을 위하여

낡은 '실천철학'의 '새로운 실천'을 위하여

- [역학과 주자학], 주광호, <예문서원>, 2020.





"주자(朱子)가 역학(易學)을 동원해 구축하고 있는 '성리학(性理學)적 가치체계'란 무엇인가? 그것은 '태극(太極)'이라고 하는 가치적 판명함과, 그로부터 확장된 질서와 조화의 체계다. 주자는 그것을 통해 이 세계가 얼마나 법칙적이고 체계적이며, 그래서 얼마나 규범적인가를 보이고자 한 것이다. 이 세계의 모든 것이 그렇듯, 인간과 인간의 사회 역시 이러한 법칙과 체계의 일부분으로서 존재하고 또 기능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최종적으로 주자가 구축하고자 하는 '성리학적 가치체계'다."

- [역학과 주자학], '전언', 주광호, <예문서원>, 2020.



삼봉 정도전이 부패한 고려 왕조를 개혁하는 것을 넘어 아예 뒤집어 엎으려고 했던 배경은 삼봉 개인의 정치적 입지의 한계였을 수도 있으나, 당시에는 '진보'적이었던 '성리학(性理學)'을 기본이념으로 삼았기 때문이었다.

공자의 '인(仁)'과 맹자의 '의(義)'를 기반으로 '민본(民本)' 정치를 실현하고자 했던 중국 고대로부터의 '유학(儒學)' 전통은 '도교(道敎)'나 '불교' 등과의 사상투쟁을 거치면서 12세기 송나라에 이르러 집대성되기에 이른다. 남송시대 주희(朱熹:1130~1200)는 '유학'의 오랜 경전들을 '사서삼경(四書三經)'으로 정리하고 주석을 달았다. 그 '삼경' 중 하나인 [역경(易經)]에 관한 주석은 우주만물과 인간사회 '도덕윤리'의 기준이 되는 거대하고 체계적인 철학이자 세계관이었다. '천명(天命)'의 흐름은 우주만물의 '본성(本性)'을 드러냄이며, 그 선한 '본성'인 '성(性)'이 올바르게 발현하고자 하는 본질인 그 '천명'이 바로 '리(理)'이며, 이러한 '성즉리(性卽理)'의 철학이 '성리학(性理學)'이다. '성리학'은 그 사상의 최종 집대성자인 '주희'의 성을 따서 '주자학(朱子學)'이 된다. '유학'은 이미 고대로부터 중국과 한반도에 정착한 지 오래된 사상이었으나 중국에 '성리학'이 나타난 것은 12세기 송나라였고, 우리 한반도는 13세기 고려말에 들어와 사회를 '올바른 본성에 따라' 개조하려는 젊은 선비들을 '신진 사대부'로 이념무장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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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신분차별'과 '군주정'의 시대적 배경이 있었으나 조선 중기경까지도 사회 '변혁'이나 '개혁'의 이데올로기였던 '성리학'은 사림파 선비들이 기득권이 되고 당쟁에 매몰되는 조선 중후기에 이르러 다시는 재기하지 못할 정도로 수구반동적인 '유교'의 대명사가 되고 말았다. 세계는 더 이상 '신분차별'과 '군주제'를 당연시하던 그 때로 다시 돌아갈 수 없었고, '주자'는 물론 '공자'까지도 죽어야 젊은 세대가 살 수 있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삼봉의 길을 따라 추적하던 끝에 결국, '성리학', 즉 '주자학'을 만나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나에게는 '필연'이었다.

그러나, 이제 다시 '주자학'을 이야기함은 조선 후기의 조건이 될 수 없다.

바로, '성숙한 인격이 모여 만드는 이상적 사회'를 바라며 유학사상을 집대성하던 12세기 '도학자(道學者)' 주희의 조건인 것이다.





"태극(太極)이나 동정(動靜)과 같은 우주론적 전통의 개념들을 자연스럽게 [중용]이나 [역전]의 '천인(天人)관계'로 전환시킴으로써 주돈이의 본체론을 세련되게 완성... 이 완성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적 전거가 바로 [중용]의 '天命之謂性(하늘이 사람에게 부여한 것이 성)'과 [계사]의 '一陰一陽之謂道, 繼之者善也, 成之者性也'다. [계사전]에서 말하는 '한 번은 음이었다가 한 번은 양이었다가 하도록 만드는 도'는 곧 이 우주의 '본체(本體)'로서의 '태극'이자 '역리(易理)'이다. 주자의 모든 역학체계, 즉 상수, 복서, 의리는 최종적 '태극'으로 수렴되고, 우주의 본체인 '태극'은 '동정'하여 인간의 본체가 된다. 주자의 모든 역학체계가 '태극'으로 수렴되고, 그것이 우주와 인간의 본체가 된다는 말은, 주자의 모든 역학이 최종적으로 인간의 도덕성 본성에 대한 근거로 동원됨을 의미한다. 이렇게 주자의 '역학(易學)'은 그의 '성리학(性理學)'과 연결된다."

- [역학과 주자학], '3부 15장 - 주자와 육구연의 무극태극 논쟁', 주광호, 2020.



우선, '주자' 즉 '주희'의 시대는 북송이 망하고 북방의 금나라에 의해 남송이 핍박받던 시대였다. 전시 상태가 오래되었으나 강남의 풍부한 물자로 남송은 여전히 지배층의 향락이 만연했고 '유가'들의 입장에서는 더욱 '군자(성숙한 인격자)'의 경지에 오른 '선비'들이 사회를 개조해야 했다. 그 방식은 옛 성인들의 경전을 철저히 공부하고 현실에서 실천하는 것인데, 한당시대와 달리 송나라에 이르면 '경전'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을 넘어 다양한 해석으로 주석을 달고 해석하는 것이었다. 북송의 주돈이와 정이, 정호 형제 등은 그 시작이었으며 남송의 주희는 이 방대한 작업의 '집대성자'였다. 그의 제자들과 후대가 '주자(朱子)'라 우러르며 그의 '성리학'을 절대시하고 화석화시킨 것이지, 정작 주희 자신은 [경전]을 있는 그대로 답습하지 않는 '이단'이었다.


[대학]과 [중용]은 물론, 주자가 [역경]에 관한 주석과 해석을 한 이유는 '성리학'의 세계관을 체계화하고 조직화하기 위함이다. '성리학'은 '도교'나 '불교'와 달리 세계를 관념의 상태로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천명'이나 '본성'을 인간 사회에 제대로 실현하기 위한 '실천철학'이다. 춘추전국 제자백가의 쟁명시대로부터 12세기까지 '유-불-선' 등은 치열한 사상투쟁을 벌인 만큼 상호 침투하고 융합하며 영향을 받는 과정을 겪었을 테고, 북송시대는 더 이상 앞선 유학자들의 말에 일획일점도 고치지 말자는 태도를 벗어나 다양한 해석을 도입했으며, "역리(易理)는 천리(天理)이자 성리(性理)"라는 '성리학'의 세계관은 도가는 물론 불교까지도 아우른 '유학'의 진보된 형태였다. [역경] 또는 [주역]이 '유교'의 주요 경전 중 하나가 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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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는 [역경]은 '복서' 즉 '점치는 책'에 불과하다고 규정한다. <하도낙서>를 발견한 복희씨가 '8괘'를 만들고, 주문왕과 주공단이 '64괘'와 384효'로 확장한 집단기록으로서 [역경(易經)]은 길흉을 점치기 위한 책이다. 그러나 공자와 왕필 같은 '유가'의 후학들이 이에 말과 글(辭)의 '주석'을 단 [역전(易傳)]은 세계관을 담은 '철학'적 작업이었다. 주희는 전자인 [역경]으로부터 기하학적이고 대수학적인 자연의 거대한 체계를 보았고, 후자인 [역전]을 통해 우주만물과 인간사회의 '본체론'적이고 '존재론'적인 연속적 관계 및 그 구체적 '만남'을 체계화시켰다.


'주자학' 세계관은 육구연이라는 유학자와 '태극무극논쟁' 통해 발전한다. 세계의 '본체' '()'로서 [주역] '태극' '아무것도 없는 상태()' '무극(無極)'이라는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 주희의 주장이었고 이를 부정하고 '태극' 자체가 본질이라는 육구연의 고대답습적 사상과 서로를 '이단'이라며 논쟁하였으나 결국 합의를 보지 못했는데, 도교와 융합한 주희가 당시 '유가' 전통으로서는 더욱 '이단'적이었으나 다른 사상과 변증법적으로 체계화된 주희의 '주자학' 주류사상으로서 '성리학' 세계관이 된다. 인간사회에서 '실천철학' 이전에 주자학의 '자연철학' [역경] 관한 확장된 변증법으로 인해 확고해 진다. <하도낙서> <선천역학> 기하학적이고 대수학적인 '상수학(象數學) 체계와 이에 관한 확장된 주석으로서 '의리학(義理學)' 이렇게 '성리학(주자학)' '자연철학' 된다.



"주자 역학은 태극으로부터 만물로 이어지는 '존재론적 연속성'이며, 태극에서 인극으로 직결되는 '본체론적 현재성'이다. 때문에 그의 '태극론'은 '본체론'임과 동시에 '존재론'이 된다... 주자는 '역'을 음양의 변화로, '태극'을 그것의 '이치(理)'로 규정하고 있다. '태극(太極)''은 '역(易)'의 '리(理)'다."

- [역학과 주자학], '3부 13장 - 주자의 형이상학적 체계와 태극이기론', 주광호, 2020.



우주만물의 근원이자 '본체'로서 '리(理)'는 그 관념 자체가 아니라 철학적 '주체' 외부의 '대상(객체)'으로서 '무극' 또는 '태극'으로 현상하는데 이는 그 자체 철학적 기본 범주인 '존재론'이기도 하고 동시에 그 우주발생 근원으로서 '본체론'이다. '이기론'으로 알려진 '성리학'의 논쟁은 시공간적 선후의 문제가 아니라 '본체론'이자 '존재론'으로서 병진적이고 상호 침투하는 변증법적 '연속성'의 관계이다. 중요한 것은 육구연의 '심즉리(心卽理)' 설과 같이 '주체'로부터 세계의 근원을 찾는 '관념론'이 아니라, '주체' 외부의 '객체'로부터 그 근원을 규정하는 '유물론'적 철학이다. 당대 과학의 미발전 한계로 인해 더 이상의 세계 근원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지만, 지금의 '유물론' 또한 기계적 유물론은 될 수 없기에 '주체' 너머 '객체'로서의 근원 규명의 문제는 현대 과학의 과제로 남아 있다.

현대 철학은 이제 다시 세계의 근원을 '신'이라는 '일자'로서 설명할 수 없다. 21세기 철학자의 맥락과 12세기 도학자의 맥락은 엄연히 다르지만, 현대 철학의 '유물론'적 방법론이 12세기 '성리학(주자학)'의 방법론과 크게 달랐던 것은 아니다.



( 주희 : 1130~1200 )



'주희의 태극관' 연구로 북경대 박사학위를 받은 동양철학자 주광호 교수는 2020년에 [역학과 주자학]이라는 저서에서 기존 '이기론'과 도덕윤리학의 영역에 국한되었던 '주자학(성리학)'의 철학적 기반이 '역학'의 '태극론'이라는 이야기를 이어간다.

당대 사회 개혁을 위해 다듬어지고 실제로 조선의 건국은 물론 국가운영 과정에서 '실천철학'으로 굳건하게 사상적 토대가 되었던 '성리학'의 이야기다.


왜란과 호란을 겪으며 왕조의 시대적 위기를 겪은 조선 중후기 난세에 송시열의 서인 노론 같은 교조적 '주자학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윤휴 같은 주자학의 '이단'도 있었고, 이후 실학파에게 '성리학'은 화석화된 '주자학'에만 머물지 않았다. 조선 중후기 '성리학'의 '진보'적 전통을 이어받은 '선비'들은 조선 사회를 다시 세우고자 다시금 '성리학'으로 돌아갔고, 그 배경은 당대의 '관념론'적 '주자학'이 아니라 12세기 '유물론'적 철학으로 체계화되고 규범화되던 '성리학'이었다.


'태극'에서부터 '음양오행'으로, '하도낙서'에서 '4상'과 '8괘'를 거쳐 '64괘사'와 '384효사'로 분화되는 '주체' 외부의 '대상(객체)'에 관한 [주역]의 자연철학적 세계관은 결국, 인간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실천철학'이었다. 그러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교조화되고 화석화된 '실천철학'은 자연철학 영역에서는 어떠할지 몰라도 인간 사회에서는 '관념론'에 다름 아니다.

'주자'는 '태극'으로 모든 것을 설명한 것이 아니었다. 주희에게 "성리 자체는 존재 자체가 아니라, 개별적 차원의 이기론(주광호, 같은책, <3부 13장>)"이었으며, [대학]의 '명덕(明德)'은 '구중리(具衆理) 응만사(應萬事)', 즉 '모든 이치를 갖추고서 모든 구체적 대상에 대응하는' 주체의 능력이다.

주희 '성리학'의 '유물론'적 성격은 모든 사물(대상/객체)에는 그 자체의 '본성'으로서 구체적 법칙이 있으므로 그에 맞게 대응하는 것이 주체의 '성리'라는 현실적 '실천강령'에 있었다. 그로 인해 주희 '성리학'의 '공부론'에서 '주체'의 '함양론'은 혼자서 도를 닦는 것이 아니라 '대상(객체)'과 구체적으로 관계(만남)를 맺는 '격물(格物)'과 그로 인해 인식을 확장하는 '치지(致知)'를 위한 준비단계가 된다.



"모든 진리는 구체적이다."

- V. I. Lenin.


"중요한 것은 '실천의 철학'이 아니라, '철학의 새로운 실천'이다.

- L. Althusser.



( 삼봉 정도전 : 1342~1398 )



내가 조선을 건국한 삼봉 정도전을 기리는 이유가 바로 [대학]의 '3강령 8조목'을 현실정치에서 유일하게 실현한 인물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지금, 삼봉 정도전을 쫓다가 필연적으로 만나게 된 '성리학'을 다시금 되새기는 이유는 그 낡은 '실천철학'을 부활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진보'적이었던 '성리학'이라는 철학의 '새로운 실천'을 위함이다.



"철학은 보편을 추구하지만 철학자는 시대적 소명과 관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게 철학은 해석된다... 20세기 철학사가에게 그들의 맥락이 있었던 만큼이나 12세기의 도학자에게도 그만의 맥락이 있었을 것임은 분명하다... '성숙한 인격이 모여 만드는 이상적 사회 건설'은 선진시대 이후 유가의 일관된 목표였으며, 주자의 평생 작업 역시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사회를 등진 인격자는 결코 인격자일 수 없으며, 현실과 맥락이 없는 윤리적 명제 역시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 [역학과 주자학], '결어: 무엇이 주자학인가?', 주광호, 2020.



***


1. [역학(易學)과 주자학(朱子學) - 역학은 어떻게 주자학을 만들었는가?], 주광호, <예문서원>, 2020.

2. [성리학의 개념들](1989), 몽배원 지음, 홍원식 외 옮김, <예문서원>, 2008.

* '음양오행설' 참고 :

https://brunch.co.kr/@beatrice1007/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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