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 '접신(接神)'의 역사
술 : '접신(接神)'의 역사
- [처음 읽는 술의 세계사](2007), 미야자키 마사카츠, 정세환 옮김, <탐나는책>, 2020.
"이슬람 세계에서 동방의 인도, 동남아시아, 동아시아로 이어지는 바닷길을 따라 증류기 '알렘빅'과 증류 기술이 전해졌다. 서아시아의 '아락'에서 일본의 '소주'에 이르는 길고 긴 여행의 시작이다... 먼저 인도에 '알렘빅'이 전해져 증류주가 만들어졌다. 오늘날 인도에는 쌀, 당밀, 야자를 발효시킨 후 단식 증류기로 두 번에서 세 번 증류하는 '아락'이라는 증류주가 있다... 이슬람과 인도의 교역이 탄생시킨 '아락'은 두 문화가 융합한 성과로 볼 수 있다. 이집트의 술 '아라키', 터키의 술 '라키', 리비아의 술 '락비' 등도 '아락'에 포함시키는 경우가 있다. 말하자면 '아락'은 이슬람 상인의 넓은 상권이 만들고 키운 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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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의 황제 '칸(가한)'을 위해 쓴 요리책 [음선정요]는 증류한 소주를 '아라길주'라고 적었다. '아라길'은 좋은 술을 증발시켜 수분을 제거한 찌꺼기를 뜻하는데, 동남아시아로부터 전해진 '소주'라는 뜻도 있다. '아라길'이라는 말에서 '알렘빅'을 연상하는 것이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증류기를 '알렘빅'이라고 불렀는데, 아시아에서는 증류주 자체를 '아라길'이라고 부른 듯 하다."
- [처음 읽는 술의 세계사], <3장. 이슬람 세계에서 동서로 전해진 증류주>, 미야자키 마사카츠, 2007.
지금 생각해도 이십대에 술마신 기억이 사뭇 아찔할 때가 있다. 차비는 커녕 술값도 없어 학생증 맡기고 외상술에 외박을 일삼았고, 장마철에는 빗속에서 엄동설한에도 한파 속에서 음주 풍찬노숙을 하다가 자칫 골로 갈 뻔한 적이 돌아보면 여러 번이었다. 그 때마다 아마도 '신(神)'의 덕으로 여태 살아남았을 게다.
인류가 신을 만나 일체가 된 '접신(接神)'의 역사는 바로 '술'의 역사다.
일본의 역사가 미야자키 마사카츠는 어느날 우연히 '바'에서 술을 마시다가 '술'을 매개로 세계사를 써볼 생각을 했단다. '바텐더(Bar-tender)'는 미국의 서부개척시대 술을 훔쳐먹지 못하게 '바(bar)'를 설치하고 술통들을 '지키던 사람(tender)'에서 유래하는데, 지금은 와인을 설명하는 '소믈리에(식품운반업자)' 못지 않게 각종 술의 특성을 숙지하고 이들을 혼합하는 칵테일 전문가를 뜻하는 단어가 되었다. 세계사 전문가인 미야자키 마사카츠는 술 전문가인 단골 바텐더를 통해 [처음 읽는 술의 세계사](2007)라는 책으로 세상 모든 술의 흐름에 따라 세계사의 단편들을 보여준다.
술은 크게 '발효주', '증류주', '혼성주'로 나뉜다.
'발효주'는 고대로부터 벌꿀을 자연발효시킨 봉밀주 '미드', 지중해 온대지방의 포도가 자연발화한 포도주 '와인', 아메리카 옥수수술 '치차' 등이 그 시초인데, 메소포타미아의 보리로 만든 '액체빵' 맥주는 수천년 전에는 발효효소가 없어 보리빵을 사람이 씹어서 만들었다고 한다. 동시대로 추정되는 아메리카 대륙에서도 옥수수를 신성한 처녀인 '아크라'가 씹어서 옥수수술 '치차'를 만들었다고 하니 타액에 발효효과가 있다는 것을 지구의 양 극단에서도 알았다는 것이 신기하다. 가히 역사의 '양자 역학'이다. 한편으로 침범벅인 고대의 양조주를 거리낌없이 마신 것을 보면 역시 '접신'의 힘이 무섭기도 하다. 이후 천연발효주인 와인 이외에도 양조주는 쌀/보리와 당밀(사탕수수 찌꺼기), 고구마나 감자 등의 곡식에 누룩 같은 발효효소를 가미하게 되면서 서양의 맥주와 동양의 황주, 청주, 막걸리 등의 모습이 된다.
다음으로 '증류주'는 고대 이슬람의 연금술사들이 싼 금속으로부터 비싼 금은을 추출하기 위해 발명한 '증류기'로부터 유래한다. 물과 알코올의 끓는 온도가 다른 점에 착안하여 발효주를 끓여 먼저 수증기가 되는 알코올 성분을 다시 액화시키는 방식으로 증류기에 '땀'처럼 맺힌 것을 보고 아랍인들은 이 증류기를 '알렘빅(Alembic:땀)'이라 불렀단다. 증류주의 발견은 아마도 동아시아 도교의 '신선술'과 서아시아 이슬람의 '연금술'의 문명적 결합의 산실일 수 있는데, 영생을 구하려던 진시황과 같은 절대권력자들의 등을 쳐먹은 신선들의 '불로장생약'과 아랍의 연금술이 만나 우연하게도 발효주를 끓여 얻은 증류주가 발견되었을 것이란다. 수당시대 서아시아 교역으로부터 이슬람 상인들의 활동으로 이러한 증류주는 동방에서 전통 발효 곡주를 증류한 '아락'과 '소주'로, 서방에서는 14세기 페스트의 공포 속에서 전통적 와인을 불꽃이 일 정도로 알코올 도수가 높게 증류한 '생명의 물' '위스키'와 '브랜디', 북방 러시아의 '보드카'와 바이킹의 '아쿠아비트(생명수)' 등의 모습으로 각지에 출현했다. 이슬람은 음주를 '악마'의 행위로 여겨 '금주'가 율법인데, 이들의 증류기 '알렘빅'이 술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것이 역설적이다. 이슬람공화국을 자처하는 터키는 '라키'라는 독한 증류주를 마시는데 아마도 서양의 근대화를 쫓은 증거일 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혼성주'는 이런 증류주에 과일이나 설탕 등 다른 요소를 가미하여 풍미를 높인 술이다. 설탕을 만들고 남은 찌꺼기인 당밀을 이용해 만든 해적들의 싸구려술 '럼주', 근대 자본주의 대항해 시대의 시초 네덜란드에서 현대의 콜라처럼 소화제로 만들었다는 '진', 미국에서 우연히 불에 탄 오크통에서 숙성된 '버번(부르봉:bourbon) 위스키' 등의 과도기를 거쳐 지금의 칵테일과 각종 혼합주로 다양하게 발전해 온 것이 '술'의 역사다.
"희석식 소주... 고구마나 감자에 화학 처리를 하여 값싼 알코올을 추출하는 기술은 1920년대 초반 화석 연료를 대체하기 위해 개발되었다. 일제도 '연료 국책' 방침에 따라 1936년부터 조선에 무수주정(無水酒精) 공장을 만들었다... 이 뒤로 '값싼 알코올'이 대량 생산되어 연료와 음료에 공용되었다. 그 덕에 알코올 도수가 높은 '소주' 값은 싸졌다. 세상에 흔하면서 신성한 존재는 없다... 소주가 '서민의 술'이 됨으로써 술의 '신성성'도 더불어 옅어졌다."
- [우리 역사는 깊다 - 1], <4월 7일 - 값싼 알코올, 대량생산 본격화>, 전우용, 2015.
술이 대중화된 역사는 소수만이 독점하던 '접신'의 대중화와 맥을 같이 한다. 권력자들은 이러한 술에 세금을 부과하여 통제하려 했지만, 밀주를 포함하여 술을 절대로 끊을 수 없었던 인류는 한편으로 '접신'을 통해 신의 권위에 끊임없이 도전해 왔다.
중국의 '불로장생약' 신선술과 이슬람의 연금술이 결합하여 우연히 발견된 '증류주'는 동양에서는 대표적으로 '소주(燒酒)'가 된다.
역사학자 전우용에 의하면 고려 시대 몽골을 통해 들어온 증류주인 '소주'는 우리의 전통적 주조 방식으로 이어져 왔고 조선 후기까지 각 지역의 '어지간히 살 만한 집'들은 단식 증류기인 '조선식 고리'를 갖추고는 나름의 증류주인 '소주' 제조법을 종갓집 며느리를 통해 전수해 왔다고 한다. '소주'는 원래 동아시아 조선의 '고급술'이었던 것이다. '소주'를 마실 수 없었던 다수 민중들은 '막걸리'를 마셨다. 그러나 일제는 조선식 소주의 '신맛'이 '유치한 제조방법'에 있다면서 일본식 주조방식으로 대체함으로써 우리 전통의 소주들을 말살했다. 술 또한 일제의 '근대화' 이식의 희생물이었다. 한편으로 '술'과 '주세'는 전통적으로 국가행정의 중요 부문이었고 국가권력은 이 '접신'의 매개물을 '국민건강'의 이름으로 통제하고자 했다. '신의 대리인'에서 유래한 국가권력 이데올로기는 다수의 '접신'을 통제함으로써 가급적 다수 민중들을 신으로부터 분리시켜야 했던 것이다.
일제 강점기 억압의 최고조에 달했던 1930년대 중반 '총력전' 시대에는 조선의 소나무 껍질까지도 전쟁연료로 벗겨가던 시기였다. 화석연료가 부족하여 대체연료로서 '무수주정'은 고구마와 감자와 같은 구황작물에서 순수 에탄올을 추출하는 작업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원료를 희석시켜 만든 '희석식 소주'가 등장하면서 기존의 '고급술'이었던 전통 '소주'들을 아예 대체하였다. 어차피 일제의 '주조법 근대화'로 우리의 '안동소주', '평양소주' 등의 지역 소주는 근본을 잃었던 터였다. 알코올 도수가 보드카나 고량주처럼 40도를 넘던 전통적 '고급 소주'는 도수를 낮출 수 밖에 없는 화학적 희석식 '인공 소주'에게 자리를 물려주면서 급기야 도시화와 공업화가 급격히 추진되던 1960년대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에 이르면 이 인공적 '희석식 소주'가 막걸리를 대신하여 도시 프롤레타리아트의 다수 주종이 된다. 평양의 '어복장국'과 서울의 '설렁탕', 전주의 콩나물 '탁백이국'과 함께 나오던 '탁배기(막걸리)'가 서서히 '희석식 소주'로 대체된 것이다.
"소주회사의 통합 과정은 또 다른 측면에서 증류식 소주, 혼합식 소주, 희석식 소주 등으로 나누어져 있던 소주를 '희석식 소주'로 단일화시키는 역할도 했다. '희석식 소주'는 고구마나 타피오카와 같은 곡물을 발효시켜 나온 알코올을 분해해 정제한 주정에 물과 향료를 희석해 만든 술이다. 주정은 그냥 마시면 치명적일 정도로 독하기 때문에 물을 섞어서 써야 한다. 이 같은 주정은 결코 전래의 증류 방식을 온전히 따라 만든 것이 아니다. 밑술인 양조주를 만들지 않고 발효균을 원료에 넣어서 기계에서 연속으로 증류시켜 만든다. 그렇기에 발효주와 같은 독특한 향기가 주정에서는 나지 않는다."
- [식탁 위의 한국사], <5-3. 식품공업의 성장과 뒤안길>, 주영하, 2013.
음식인문학자 주영하는 역시 음식을 중심으로 돌아본 한국사를 통해 '식품공업화'를 통해 사라지는 전통적인 '간장'과 '술' 등의 역사도 언급한다. 1970년대 국가와 독점자본이 결탁한 '국가독점자본주의'는 술공장 역시 통폐합하는데 국가는 세금을 많이 걷어 좋고 국가권력에 가까운 '정치력' 있는 대자본가는 군소자본들을 흡수하면서 독점자본으로 성장하여 좋은 자본주의 필연적 발전단계였다. 1970년에 전국의 387개 탁주 제조창은 113개로 통합되었고, 1973년에는 전국의 334개 소주공장은 34개로 통폐합되었다. 이 과정에서 각 지역별 독점적 '소주 자본'(경기 진로, 강원 경월, 경남 무학 등)이 시장을 휘저었고, 신자유주의가 판치는 21세기에는 각지의 소주들도 전국적으로 끝이 없는 통폐합을 노정하고 있다. 21세기의 자본주의는 국가권력의 협조 없이도 이윤의 자기증식을 위해 스스로 거대독점자본을 만들어 간다.
'국가독점자본주의' 시기에 '소주 자본'은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국가'가 필요했다. 국가는 독점자본의 이익을 지켜주면서 세수도 늘리고 다수 민중의 직접적 '접신'을 통제했으나 예로부터 다수 민중은 동서를 막론하고 밀주를 만들어 마시며 지속적으로 '접신'을 이어왔다.
이제 국가권력보다 훨씬 강력해진 독점자본은 더 이상 국가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거대독점권력이 되어 다수의 삶에 침투한 지 오래다. 아마도 또 하나의 '절대권력'이 되고자 하는 이 '독점적 소주 자본'은 본의 아니게 다수의 음주 속에 도사린 '저항'과 '공유'의 역사를 한 단계 더 진보시킬 수도 있겠다.
'술'과 '음주'의 역사에서 다수의 '접신(接神)'을 매개로 '저항'과 '공유'의 도도한 역사를 낚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불로장생 '신선술'이 절대권력 황제들을 무너뜨렸고, 영국 명예혁명으로 유입된 네덜란드 '진'이 초기 자본주의 영국을 망가뜨렸으며, 현대의 '희석식 소주'가 우리의 산업자본주의 역사에서 노동계급을 단결시켜온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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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처음 읽는 술의 세계사](2007), 미야자키 마사카츠, 정세환 옮김, <탐나는책>, 2020.
2. [우리 역사는 깊다 - 1], 전우용, <푸른역사>, 2015.
3. [식탁 위의 한국사], 주영하, <휴머니스트>,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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