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리드(hybrid)' 신화 : 이성과 욕망의 이종교배
'하이브리드(hybrid)' 신화 : 이성과 욕망의 이종교배
- [그림 속 별자리 신화], 김선지, <아날로그>, 2021.
"기원전 수천 년경 메소포타미아 유목민이 푸른 초원을 따라 가축을 데리고 이동하는 유목생활 속에서 '별자리'를 관측하기 시작했고, 이 별들을 동물과 연관시키면서 최초의 '별자리'가 만들어진다. 기원전 3,000년경 이미 천체관측용 건물을 갖추고 있었고 복잡하고 세밀한 수학적 계산이 가능했던 고대 바빌로니아에서는 천구 위 태양이 지나가는 길인 황도를 따라 12궁을 만들었다. 춘분점을 기점으로 태양이 그리는 황도를 정확히 30도씩 12등분해 12개의 '별자리' 이름을 붙인 것이다. 이 바빌로니아의 '황도 12궁'이 고대 그리스에 전승되어 그리스 신화와 결합되었고, 마침내 서양의 고대 별자리인 '황도(黃道) 12궁(十二宮)'이 완성되었다."
- [그림 속 별자리 신화], <들어가며>, 김선지, 2021.
황하, 인더스강, 나일강과 더불어 '4대 인류 문명 발상지' 중 하나인 메소포타미아(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지역은 그 중 가장 발달된 문명지로 꼽힌다. 기원전 3천년 경 수메르인들이 만든 도시국가 '우르'나 제국의 시초인 페르시아 '키루스' 등의 출현은 항해가 시작되기 전 유라시아 대륙의 중앙(메소포타미아)에서 동(황하)-남(인더스)-서(나일) 방향의 문명이 교차하고 충돌하게 되는 기원을 말해준다. 인류 최초 '과학'으로서의 '점성술(천문학)'과 인류 최초 '철학'으로서 '신화'가 교차하기 시작하는 그리스 신화 속 '별자리'의 시작 또한 기원전 3천년 경 메소포타미아의 셈족계 칼데아인 목동들이었다고 한다. 고대 중앙아시아의 별자리 '과학'은 이후 그리스 신화의 '철학'에 접목되었고 주지하다시피 그리스 문명은 로마 시대를 거쳐 유럽(Europe) 문명의 기원이 된다. '황소'로 변한 제우스와 교접하여 크레타 문명을 만든 미노스를 낳는 '에우로파(Europa)'가 '유럽(Europe)'의 어원이다. 미노스의 '크레타' 문명은 이후 페르세우스의 '미케네' 문명으로, 다음으로는 헤라클레스의 행적에 따라 멸망하고 세워지며 영향을 받은 전체 '그리스' 문명으로 확장되는데, 로마 시대는 이 고전주의적 그리스 문명이 동경되면서 로마 제국의 영토만큼 다른 문명으로도 퍼져나갔을 것이다. 결국 '유럽'과 '이슬람' 모두 그 문명의 기원은 중앙아시아의 '메소포타미아'이며 '별자리 신화' 또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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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에 [그림 속 천문학]으로 '그림'과 '천문학'의 중심 주제를 통해 그리스-로마 신화를 버무려 세계의 명화들과 미술사를 설명했던 김선지 작가가 2021년에는 역시 '그림'과 '별자리'의 핵심 키워드로 '어른들을 위한 그리스-로마 신화'를 설명한 [그림 속 별자리 신화]를 지어 내놓았다. 역사를 공부하고 미술사를 전공한 작가답게 글쓰기의 중심은 '미술사(美術史)'이며, 미술의 역사 속 '그리스 신화'와 '별자리(천문학)'가 어우러진다. 이 '어른들을 위한 그리스-로마 신화'는 '선과 악, 성과 사랑, 욕망과 이성이 뒤얽힌' 역사의 '교배장(交配場)'이기도 하다.
"봄이 오면 겨울철 별자리는 서쪽 하늘 아래로 기울고, 목동자리의 아르크투르스, 처녀자리의 스피카, 사자자리의 데네볼라가 빛을 뽐내며 등장한다. 이 세 개의 별은 봄의 대삼각형을 이뤄 봄철의 다른 별자리를 찾는 데 유용하게 쓰인다... 그 중에서도 '처녀자리'는 단연 독보이는 봄철의 대표 별자리다... '처녀자리'는 다양한 문화권의 여러 여신과 연관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이시타르, 고대 이집트의 이시스, 고대 그리스의 아테나를 비롯해 정의의 여신 '아스트라이아(Astraea)', 농경과 곡물의 여신 데메테르의 딸 페르세포네 등이다. 이 중에 가장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 기원설은 아스트리아와 페르세포네 관련 신화다."
- [그림 속 별자리 신화], <Constellation 1. 처녀자리>, 김선지, 2021.
김선지 작가의 [그림 속 별자리 신화]는 봄철 대표 별자리인 '처녀자리'부터 '백조(여름/레다)', '거문고(여름/오르페우스)', '헤라클레스(여름)', '페르세우스(가을)', '오리온(겨울/아르테미스)', '양(겨울/프릭소스-헬레)', '아르고(봄/이아손)', '황소(겨울/이오-에우로페)', '쌍둥이(겨울/카스토르-폴룩스)', '게(겨울/헤라클레스)', '사자(겨울/헤라클레스)', '궁수(사수:겨울/켄타우로스-케이론)', '염소(겨울/사티로스-판), '물병(가을/가니메데스)', '물고기(가을/아프로디테-에로스)' 등 16개 '성좌(Constellation)'가 각 장으로 구성된다. 각 장의 첫 부분은 해당 성좌의 천문학적 설명으로 시작하여 각 별자리에 연관된 그리스 신화와 이를 묘사한 미술 작품들을 둘러보고 있다. 각 계절의 대표 별자리에 깃든 그리스 신화의 의미를 이야기하며 이를 미술 작품으로 표현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틴토레토와 카라바조, 루벤스와 렘브란트 등 르네상스와 바로크 화가, '현대 미술'의 맹아가 된 '후기 인상주의' 폴 세잔을 비롯하여 샤갈과 마티스까지, 19세기 '상징주의' 귀스타브 모로, 오딜롱 르동 등의 화가들의 작품을 두루 구경할 수 있다.
춘분인 3월 20일부터 우수(2월 18일)까지 1년 12월을 나타내는 '황도 12궁' 또한 그리스 신화 이야기 속에서 빠지지 않는다. 나도 [별자리로 읽는 조선왕조실록](김은주,2021)과 [그림 속 별자리 신화](김선지,2021) 덕분에 '양-황-쌍-게-사-처-천-전-사(궁)-염-물-물'의 '황도 12궁'과 24절기를 이참에 확실하게 외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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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8월 23일)'부터 '추분(9월 23일)'사이에 태어난 나는 '처녀자리'를 '태양별자리'로 삼는데, '성실하고 배움을 좋아하나 실무자형에 칭찬보다 지적질을 해댄다'는 의식적 기질이 '처녀자리'의 영향인가 싶은 생각도 하게 되고, 수성(Mercury)의 영향으로 헤르메스 신과 초저녁 노을을 좋아하는 이유를 '별자리'로 추정하며, 더 나아가 '정의'의 여신 '아스트라이아(Astraea)'를 더욱 숭배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추분(9월 23일)과 상강(10월 23일) 사이에 태어나 '처녀자리'를 잇는 '천칭자리'인 우리 둘째딸 은규가 나를 제일 많이 닮은 게 아스트라이아가 왼손에 들고 있는 천칭(저울)의 자리이기 때문이라고 하면 좀 억지 같겠지만 일단 현상은 그렇다.
"그리스 신화에는 인간과 동물이 결합한 반인반수(半人半獸)들이 수많이 등장한다. 반인반마 켄타우로스를 위시해 스핑크스, 에키드나, 미노타우로스, 고르곤 자매와 메두사, 사티로스, 하르피이아, 키마이라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환상적인 존재들이 있다. 고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중국, 인도 등 전 세계 문화에서도 비슷한 혼합 생믈체들이 나타난다. 중국 고대신화의 삼황오제 중 복희와 여와 역시 사람의 머리에 뱀의 몸통을 가졌고, 신농은 소의 머리에 인간 몸을 지녔다. 왜 인류는 이런 괴이한 인간과 동물 간의 '하이브리드(hybrid)' 생명체들을 상상했던 것일까?"
- [그림 속 별자리 신화], <Constellation 16. 물고기자리>, 김선지, 2021.
제우스신의 형제들이 부모세대인 티탄족을 물리치고 인류에 '은의 시대'를 열기 전에는 인류와 거인신족이 함께 풍요롭게 살았던 '금의 시대'였다는데, 이는 인간과 자연이 구분없이 살던 원시시대를 의미할 것이며, 제우스로 대표되는 그리스 신화는 인류 최초의 '과학'과 '철학'의 '인지혁명'을 통해 인간 사회를 지배하고 운영하기 시작한 이른바 '문명' 시대의 시작일 것이다. 제우스의 반란인 '티타노마키아' 이후 등장한 '사유재산'과 '계급사회'에서 현세의 지배계급은 자신들의 '부모'인 신들을 천상으로 올려보내야 했다. 살육과 전쟁, 지배와 피지배가 난무하던 '청동기 시대'에는 정치적 지배자가 신을 대리했는데, 제우스와 티탄족 여신 테미스의 딸인 '정의'의 여신 '아스트라이아(Astraea)'는 이 '청동기 시대'까지도 오른손에는 칼과 왼손의 천칭(저울)을 들고 눈을 가린 채 현실의 '정의'를 실현하고자 했단다. 물론 그 여신조차 '철의 시대'에 더욱 혼란해진 인간 세상을 떠났다는 건 인간 사회에 '법'이 지배계급의 무기로 확고히 갖추어졌다는 사실의 은유일 게다. 아무튼, 제우스는 친구이자 '티타노마키아' 전쟁동지인 '프로메테우스'에게 인류사회 건설을 위임했다는데, 인류에게 '불'을 몰래 전수해 준 프로메테우스를 미워하게 되었다지만, 프로메테우스가 인류에게 선사한 건 단지 '불' 뿐은 아니었다. '프로메테우스(선견지명)'의 이름대로 그는 인류에게 '지식'과 '사고력'을 준 것인데, 그의 동생 '에피메테우스(사후판단)'이 이미 지구상 다른 동물들에게 '실천'과 '행동력', 순발력 등를 먼저 다 준 후였기 때문에 프로메테우스가 인류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인류는 '인지혁명'과 '불의 혁명'으로 문명을 발전시키지만, 동물의 본능과 육체적 우월함을 한편으로 동경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별자리(점성술/천문학)'를 비롯한 고대 '과학'으로는 알 수 없는 자연현상을 신과 티탄, 또는 신과 인간 사이의 '이종 교배(hybrid)'를 통해 태어난 '반인반수'의 존재로 설명했다. '태풍(Typhoon)'은 대지의 여신 가이아와 지하세계 신 타르타로스 사이에 태어난 마지막 자식으로서 인간의 몸통에 뱀의 하반신을 하고 100개의 용머리를 한 티폰(Typhon)'으로 설명했고, 화산 폭발은 머리는 사자, 몸은 염소, 꼬리는 뱀 또는 용 모양인 괴수 키마이라(Chimaera)가 입에서 불을 뿜는 것으로 표현했다. 반인반마 켄타우로스였음에도 '현자'였던 케이론은 반신반인 페르세우스와 헤라클레스, 아킬레스 등의 영웅들에게 무예와 지식을 가르친 스승이었다. 이렇게 '인지혁명'으로 똑똑해지는 인류였지만, 동물의 '본능'을 두려워하고 경외했으며 모르는 일은 인간의 '이성'과 동물의 '욕망'의 '이종교배'로 설명했다. 애초에 '에피메테우스'가 행동 먼저 하지 않고 그의 형 '프로메테우스'와 상의하여 존재를 창조했다면 이성-욕망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완벽한 존재가 지구상에 등장했겠지만, '사후판단'이 없었다면 '에피메테우스'는 아예 선험적으로 존재할 수 없었을 테고, 그의 형제인 '프로메테우스'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니 '역사에 가정(만약)은 없다'라는 말은 인류 최초의 '철학'인 '신화'에도 예외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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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인류 최초의 '과학'으로서 '별자리'와 인류 최초의 '철학'인 '신화'로 버무려지고 '미술'과 '문학' 같은 예술을 가지고 노는 인류는, 그리고 우리는,
애초에 불완전하고 모순적인 존재로서 수천년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별자리' 등을 지도삼아 쫓아가고 넘어졌다 일어서며 좌충우돌 살아가는 운명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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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림 속 별자리 신화 - 어른을 위한 그리스 로마 신화], 김선지, <아날로그>, 2021.
2. [그림 속 천문학 - 미술학자가 올려다본 우주, 천문학자가 들여다본 그림], 김선지/김현구, <아날로그>, 2020.
3. [그리스 신화], 스티븐 프라이, 이영아 옮김, <현암사>, 2019.
4. [Mythology](1940), Edith Hamilton, <New American Library>, 1969. - Illustrated by Steele Sav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