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과 '밤'이 다른 '처녀자리'?
'낮'과 '밤'이 다른 '처녀자리'?
- [별자리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김은주, <시대의창>, 2021.
"별자리를 만든 것은 서기전 수천 년경 바빌로니아 지역에 살던 셈족계 칼데아인(Chaldean)이다... 목동들은 태양과 행성이 지나는 길, 황도(黃道)를 따라 밤하늘에 유난히 밝은 별들을 죽죽 이어서 그림을 그렸다. 양, 황소, 쌍둥이, 게, 사자, 처녀, 천칭, 전갈, 사수, 염소, 물병, 물고기 등 열두 별자리다... 수메르인(Sumerian)들이 처음 정한 황도 열두 별자리의 상징과 의미도 지금까지 그대로 전해진다... 어스트랄러지(astrology)란 그리스어로 'Astron(별/별자리)'과 'logos(이성/논리)'가 결합된 말이다... 영한사전에서는 어스트랄러지를 '점성술' 혹은 '점성학'이라고 번역한다. 그러나 '점(占)'은 왜 그런지 논리적 설명이 불가능하고, '술(術)'은 오래 반복해 익히는 것이다. 하지만 어스트랄러지는 주기적인, 예측 가능한 별의 운행과 수천 년 누적된 정보를 통계학적으로 분류하여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설명이 가능하다. 이 책에서는 '점성술', '점성학'이라는 용어 대신 그냥 '별자리'라고 한다."
- [별자리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프롤로그>, 김은주, 2021.
보통 신화와 종교, 점술 등은 과학의 대립물로 여겨진다. 결국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그 허구성이 드러나고 마는 미신 같은.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과학'의 승리가 아닌, '시간'의 승리다. 신화는 인류 최초의 '철학'이자 '과학'이었다. 세상만물 운동의 원리를 찾는 작업으로서 구성된 세계관인 '철학'은 당대 최고의 '과학'적 지식에 기반했을 것이다. 이 세계관이 사회운영 원리로 굳어지면 새로운 '과학'에 의해 그 이데올로기로서의 허위성이 드러난다. '이데올로기'와 '과학'의 투쟁은 결국, '낡은 과학'과 '새로운 과학' 사이의 '철학'적이자 '과학'적인 투쟁이다. 그리하여 인류 역사에서 모든 '과학' 투쟁은 '시간'의 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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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에서는 [역경(주역)]을 '점을 치는 책'이라면서도 그 운영원리에 관한 성인들의 괘사와 효사 등의 '역전'을 통해 세계 운동의 '법칙'을 보고자 했다. 고대에는 거북이 등딱지나 시초줄기로 점을 친 경험들의 집단기록이 '빅 데이터'였고 이 집단기억으로 미래도 예측했다. 달과 별, 행성의 운동을 관측하며 '음양오행'의 원리를 그려보고 더 나아가 더 많은 별자리가 태양의 길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시공간적 의미를 인간사에 투영했다. '과학'이 지금처럼 발전하기 전에는 '별자리'도 '과학'이었을 테다. 확고한 믿음이 되지 않는 한, 오래도록 집적된 집단기억을 통해 앞길의 가능성을 더 폭넓게 비출 수 있다면, '필연'의 과학보다 더욱 참고할만한 '우연'과 '필연'의 변증법적 '과학철학'이 될 수도 있겠다.
방송작가 김은주는 '별자리'를 바탕으로 '조선왕조실록'을 소개하면서 조선 역사 전반을 둘러본다. 제목은 [별자리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이다.
태어난 월일로 '태양별자리'가 정해지고, 태어난 시각으로 '달별자리'가 정해지며, 태어난 시각에 동쪽 지평선에서 함께 뜨던 별인 '동쪽 별자리'로 한 개인의 캐릭터가 추정된다. '태양별자리'는 개인의 '기본적인 에너지와 의지, 취향 등 의식적인 측면을 말해주는 중요한 별자리'를, '달별자리'는 그 사람의 '내면과 무의식, 세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방식, 절대로 고쳐지지 않는 습관'을, '동쪽 별자리'는 개인의 '페르소나(persona)', 외적 인격, 외모 등을 말해준다고 한다. 사람에 따라 '태양별자리(의식)'이든, '달별자리(무의식)'이든, '동쪽 별자리(외모/가면)'이든 어느 것이 우세할 지는 알 수 없다. 그의 삶 전체를 통해 우연스럽게 조합되어 나타날 수도, 아니면 어떤 '필연'에 의해 하나의 특성이 주요하게 드러날 수도 있겠다.
'네이탈 차트'라고 하는 '별자리'의 규칙을 다 이해하고 보면 더 좋겠지만, 모르더라도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왕들의 별자리를 바탕으로 설명되는 역사를 읽다보면 해당 별자리의 특징들이 자연스럽게 분류된다. 근대 이전 최고의 '과학'이었던 점성술(천문)은 가장 주요한 생산활동이었던 농업 발전에 기여하는 '자연과학'이자, 사람들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는 '사회과학'이기도 했겠다. 사람들이 만들어간 역사속 개인들의 행적과 그들의 '별자리' 분석을 통해 대강의 군상들을 분석하고 분류한 집단기록은 미래를 어느 정도 예측하거나 경계하게 하는 또 하나의 '빅 데이터'였을 것이다. 그렇게 [주역(역경)]도, 사주팔자나 음양오행의 '명리학'도, '별자리(점성술)'도 맹신이 되지 않는다면 하나의 '과학'이었다.
"지구에 가장 강력한 에너지를 주는 '태양별자리'가 그 사람이 자신을 세상에 표현하는 방식과 개성이라면, '달별자리'는 세상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방식, 그 사람의 내면, 절대로 고쳐지지 않는 습관 등을 말해준다... 고려 최고의 무인이자 덕장으로 이름을 날리던 태조는 새나라 조선을 개국하고 왕이 되었다. 고려 무인으로서 이성계가 '태양별자리'인 전갈자리의 삶을 살았다면, 조선왕으로서 태조는 '달별자리'인 물병자리의 삶을 보여준다."
- 같은책, <1장. 역성혁명으로 조선을 세운 물병자리 태조>.
이런 식으로 태조(물병), 태종(염소), 세종(황소), 단종(사자), 성종(처녀), 선조(사수), 광해군(쌍둥이), 효종(게), 현종(물고기), 숙종(천칭), 영조(전갈), 순종(양) 등 12 별자리의 특성들과 맞춰보고 있다. 비슷한 특징의 다른 왕(예, 세조와 정조는 전갈자리 등)이나 왕자, 위인들의 별자리를 대비하고 있다. 현대과학의 눈으로 보면 다소 억지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인류의 '집단기록'인 '빅 데이터'로서 고대과학의 눈으로 보면 흥미롭다. 개인에 따라, 또는 시기에 따라 '태양별자리'가 우선될지, '달별자리'가 강할지 들쑥날쑥한 분석이나마 그만큼 사람이란 존재가 알 듯 모를 듯 하다는 뜻이겠다. 나는 '양-황-쌍-게-사-처-천-전-사-염-물-물' 12 별자리를 앞글자 따기로 외웠는데, 양부터 물고기까지 사람의 0세부터 노인까지 특성도 되고, 끈기있는 황소, 사자, 처녀자리 등에 비해 다소 졸렬해 보이는 양, 게, 전갈, 사수, 염소자리, 양면적인 쌍둥이, 천칭, 물병, 물고기자리 등의 나름 분류를 하기도 했다. 물론 인간사야 워낙 중층복합적이니 어느 것이 더 좋은 것이라는 가치판단은 일면적인 한계를 드러낼 터이다. 다만, 사수자리의 선조와 인조에 대한 평가, 전갈자리의 세조, 영조, 정조의 권력욕, 천칭자리 숙종의 당파 저울질 등은 인상깊기도 하다. 성실한 처녀자리 성종은 아마도 전성기에 이른 '성리학' 국가 조선의 탄탄한 관료체계가 만든 이미지였을 수도 있다는 것도 기억에 남는데, 희대의 '폭군'인 연산군을 만들고는 중종을 앞세워 반정을 일으킨 건 당시 전성기 조선의 '성리학자' 관료들이었다.
"처녀자리는 일복이 많은데 별자리 나이도 한창 일할 때인 40대다. 전령의 신 헤르메스, 수성(Mercury)의 지배를 받아 일을 재빠르고 빈틈없이 처리한다.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을까 계획을 세우고, 티끌 모아 태산을 이룰 정도로 성실하다... 연애도 책으로 배울 정도로 책과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배운 것을 가르치는 데도 능력이 있다. 다만 상대에 대한 기대가 높아 칭찬보다 지적질이 많고, 정의의 여신 아스트라이아로 도덕적 잣대에 민감하다."
- 같은책, <5장. 낮과 밤이 다른 모범생 처녀자리 성종>.
조선을 만든 혁명가 삼봉 정도전이 사적으로 태조 이성계에 지어서 바쳤다는 [조선경국전]부터 시작하여 세조의 명을 이어 조선의 법전인 [경국대전]을 완성한 조선 9대 왕 성종은 조선의 '전성기'가 만든 군주의 혐의가 짙다. 경연을 제일 많이 열었고 세종의 집현전을 확대개편한 홍문관을 세웠으며 불교와 도교를 척결하고는 '성리학'의 국가이데올로기를 공고화시킨 성종은 밤에는 매일매일 술과 여자에 빠졌단다. 아마도 태종과 세종, 세조가 강화시킨 왕권과 성리학자 관료체제의 타협으로 잠시 안정된 시기를 열었을 시기에 매일 술먹고 노는 '밤의 왕'이 되려는 달별자리가 '사자자리'인 자을산군(성종)을 다수 관료체계가 성실한 '낮의 왕' 태양별자리 '처녀자리' 성종으로 만든 건 아니었을까 한다.
처서와 추분 사이 9월 12일생인 나는 태양별자리가 '처녀자리'다. 나는 그리스 신화 중 헤르메스를 제일 좋아하고 수성이 뜨는 초저녁 노을을 좋아하며 가을을 좋아한다. 물론 '처녀자리'의 영향으로 그런지는 알 수 없다. 새벽 여섯시에 태어난 나는 네이탈 차트로 검증은 못했으나 대충 보면 달별자리가 '전갈자리' 같은데, 술 좋아하고 고집세며 다소 뒤끝 작렬할 때는 그 영향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낮'과 '밤'이 다른 삶을 지향하는 것도 '처녀자리'의 특징인가 또한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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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별자리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김은주, <시대의창>, 2021.
2. [다시, 신화를 읽는 시간](1972), 조지프 캠벨, 권영주 옮김, <더퀘스트>,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