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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Aug 14. 2021

[박물관의 최전선](2021) - 박찬희

박물관의 확장

박물관의 확장

- [박물관의 최전선], 박찬희, <빨간소금>, 2021.




"박물관 전시실, 그곳은 '박물관의 최전선'이다... 전시실은 어떻게 구성될까? 전시실의 주제 구성은 논문의 구성과 비슷하다. 꼭 논문이 아니더라도 책의 차례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편하다. 전체 주제, 그 아래 몇 개의 중간 주제, 그 아래 몇 개의 소주제가 피라미드처럼 이어진다. 논문 주제를 한 가지로 정하듯 한 전시실도 대부분 하나의 주제로 구성된다. 이 주제는 보통 그 전시실의 이름이 되고, 전시실의 입구에 표시된다. 전시실 이름을 알면 그곳이 어떤 곳인지 대략 짐작할 수 있다. 어떤 전시실인지 알고 들어가는 것과 그냥 들어가는 것은 차이가 크다. 이름표를 외롭게 두지 말자."

- [박물관의 최전선], '2-9. 전시실과 친해지는 법', 박찬희, <빨간소금>, 2021.



아주 어렸을 적 나의 꿈은 '고고학자'였다.

어린 나의 상상력을 극대화시켜 준 공룡을 발굴하고 싶었고 조금 더 큰 후에는 그리스 미케네 문명을 발굴한 독일인 하인리히 슐리만이나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메소포타미아의 살인] 등에 나오는 고고학자들에 매료되기도 했다. 더 이상 '고고학자'가 꿈이 될 수 없었던 성인이 되어서는 미술 작품의 역사를 밝히고 그 의미를 도출하는 '미술사'나 '예술사'에 관한 책을 찾아 읽기도 했다.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나 줄리오 레오니의 [단테의 모자이크 살인] 같은 책은 베스트셀러를 떠나 꼭 읽어야만 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새로운 유물이 발굴되었다는 기사를 보면 가슴이 뛴다.


https://brunch.co.kr/brunchbook/beatrice1007b2


어렸을 적 꿈이었다 보니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나중에서야 박물관 큐레이터나 학예사 연구원 등의 직업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는, 이미 내 꿈은 '고고학자'가 아니었다.

그래도 나는 온갖 유물에 관심이 있고 그 유물들이 한데 모인 박물관을 사랑한다. 게으른 성정에 자주 가지는 못해도 국립중앙박물관이나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은 자주 구경했고 각 지역에 가면 무조건 그 지역의 박물관을 들른다.

눈으로 '책'을 읽는다면, 발로 '박물관'을 읽어야 그 지역을 다 알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술사를 전공하고 호림박물관 큐레이터로 근무한 박찬희 선생은 [박물관의 최전선](2021)을 통해 박물관의 유물과 일반 관람객의 일상적 접속과 소통을 시도한다.

박물관 전시기획자의 시각을 너머 관람객의 관점에서 박물관의 오랜 유물과 현재의 관람객을 잇는 역할을 하는 저자에게 '박물관의 최전선'은 유물과 사람이 만나는 접점, 바로 '전시실'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마따나 미리 공부하고 유적지나 사찰을 답사하거나, 박물관을 한 권의 책을 보듯 목차에 따라 읽어 나가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를 때가 있다. 함께 간 처자식이나 일행은 빨리 보고 지나가자고 재촉하기 일쑤인데, 한 번은 후딱 보고 지나가야 할 후쿠오카의 박물관에서 인솔자인 내가 박물관 관람에 빠져 문닫기 전에 겨우 빠져나온 적도 있었다. 일행들이 인솔자인 나를 찾아다니고 난리였다.

우리 국보와 보물의 대부분을 간직한 사찰도 내게는 박물관이다. 해당 사찰의 역사와 배경을 각종 답사기 책으로 먼저 읽고, 직접 찾아가서 나름의 '목차'에 따라 주제별로 '읽어 간다'. 각 유물의 설명판은 보통 초등학교 수준이면 이해할 정도로 쉽게 쓴다고 하니 웬만하면 모든 설명판을 다 읽는다. 일본의 박물관에서 오래 걸린 이유 중 하나도 일어를 모르니 영어 설명판을 다 읽으려다 그랬으리라.

마치 책으로 공부라도 하듯이 눈으로 읽고 머리로 유추하고 발로 다니려는 나와 함께 사찰이나 박물관을 간 일행은 빨리 가자고 독촉할 수 밖에 없을 게다.

그렇게 '박물관'은 내게 살아 있는 '책'이며, '박물관의 최전선'으로서의 전시실은 오래된 책냄새와 함께 육감으로 한장 한장 넘겨지는 책장이다.





"이전에는 유물 자체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유물이 들려주는 다양한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때로는 진열장과 박물관을 벗어날 때 속 깊은 이야기가 들렸다. 유물을 사람들과 연결시켜 살펴보자 유물이 생생하게 살아났다... 거듭되는 발걸음으로 박물관을 명사에서 동사로 만들기를 바란다."

- [박물관의 최전선], '책을 펴내며 - 박물관의 최전선에서', 박찬희, <빨간소금>, 2021.



저자 박찬희 선생은 박물관의 전시는 유물이나 전시기획으로부터 일반 관람객과 접속으로 '확장'되어야 비로소 완성된다고 말한다. 오래된 유물의 보호를 위한 '조명발'과 안락한 의자 등의 배경은 그 유물을 보는 사람들에게도 편안함을 주는데 이 모든 것이 옛날의  유물과 지금의 사람이 만나는 방식이다. 누군가는 '공부'를 하고 누군가는 편하게 심신을 쉬면서 다스리는 공간으로서의 박물관. '아는 만큼' 보인다지만, '모른다' 하여 어떤가. 책이나 논문을 보듯 박물관을 섭렵할 수도 있지만, 오래전 조상들의 삶이 담긴 유물과 같은 공간에서 편히 쉬어가는 것도 역사와 함께 숨쉬는 방법이다.

전시기획자를 너머 관람객까지로 '박물관의 확장'을 바라는 저자는 [박물관의 최전선]을 통해 신라금관, 김홍도의 풍속도와 정선의 풍경화, 불화와 불상, 반가사유상 및 청자와 백자 등의 각종 유물에 담긴 역사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관람객의 힘으로 함께 오래오래 살려내자고 말하는 듯 하다.



자녀들 어렸을 적에는 유물의 이름이나 설명판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바람에 박물관에 가자고 하면 우리 아이들은 손사래부터 쳐댔다. 아빠의 탓이다. 함께 쉽게 가 볼 수 없는 '대영박물관'에서 펴낸 [100대 유물로 보는 세계사]를 자녀들에게 사주었지만 아빠인 나 혼자 읽던 시절에는 몰랐다. 박물관이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공부'를 눈과 머리로 접속하는 '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듯, 그냥 스쳐지나며 편히 쉬어가는 '박물관'도 중요한 경험의 공간이자 삶의 '공부'일 게다.



사람마다 다양한 것처럼 박물관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각자 다르다는 것을 박찬희 선생의 [박물관의 최전선]을 통해 다시금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할 때 전부는 알 수 없더라도 대강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듯 그렇게 '책'을 읽는 내게는 여전히 '박물관' 또한 오래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책'과 같은 장소다. 물론 게으른 나는 발품을 파느니 눈품을 파는 '책'을 더 선호하지만.



박물관의 '확장'을 위해 조만간 처자식과 함께 박물관을 다시 가봐야겠다.

나부터 이젠 '책'이 아닌 '쉼'의 공간으로서 '확장'된 박물관과 새롭게 접속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


1. [박물관의 최전선], 박찬희, <빨간소금>, 2021.

2. [100대 유물로 보는 세계사], 닐 맥그리거(대영박물관장), 김미경 옮김, <다산초당>,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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