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큰 수인가(Is that a big number)?"
"이것은 큰 수인가(Is that a big number)?"
- [숫자로 읽는 세상의 모든 것], 앤드류 엘리엇, 허성심 옮김, <미래의창>, 2021.
"이 책을 쓰는 사이에 관찰 가능한 우주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은하의 수가 1,000억 개에서 2조 개로 20배나 증가했다. 이는 단순히 의견이 바뀐 것이 아니라 전례 없이 정교해진 허블 우주망원경으로 20년 동안 관측한 데이터를 연구해서 얻은 결과다. 현재 허블 우주망원경의 뒤를 이은 제임스 웨브 우주망원경이 건설 중에 있고 2021년에 완공될 예정이다. 새로운 망원경을 통한 관측으로 허블 우주망원경이 제시한 '큰 수'를 갱신할 것이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 [숫자로 읽는 세상의 모든 것], <3. 과학의 수 - 하늘 위까지>, 앤드류 엘리엇, 2018.
1980년대 칼 세이건이 [코스모스]를 경이롭게 저술했을 때 우주에는 약 1조 3천억 ~ 1조 5천억 개 정도의 별들이 있었다고 했던가. 그로부터 10년도 지나지 않아 인류는 허블 망원경을 지구 밖 우주로 쏘아 지금은 별이 아닌 은하가 2조 개 정도 된다고 본다. 2021년 10월에 차세대 우주망원경인 제임스 웹 망원경이 발사되고 상용화되면 '창백한 푸른 점'에 사는 인간의 시야가 더 넓어지고 '우주'적 범위에서 가늠될 숫자는 무한대로 가까이 더욱 더 커질 것이다. 내 생각이지만 아마도 1980년대의 '1조 몇천억 개'는 이미 '무한대'의 다른 표현이었을 것이다. 시간이라는 개념이 일정하다고 볼 때 1년에 약 3,150만 초를 사는 인간은 1초에 하나 씩 수를 세며 수천 년을 살아도 칼 세이건이 세었던 1조가 넘는 별들을 셀 수 없다. 그렇기에 인류는 대를 이어 유산을 물려주게 되는데 이것이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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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계는 태양의 중력이 미치는 범위를 보는데 지구를 포함한 8개 행성계는 전체 태양계의 1/3 정도에 불과하다. 태양과 같은 강력한 인력으로 여러 행성들을 거느리는 또 다른 항성이 또 하나의 '항성계'를 구성하고 이들이 모인 것이 '은하'인데, 이 2조 개의 '은하'들이 모인 '은하계'가 현재 우리 인류가 정의한 '우주'의 질서, 즉 '코스모스(Cosmos)'다.
산술적으로는 인간이 아무리 역사를 거쳐도 일일이 셀 수 없는 '큰 수(big number)'다. 태양과 지구의 거리는 1억5천만 km고 이 단위를 '1'로 정한 단위가 'AU(Astronomical Unit)'라고 하는데, 너무 단위가 커서 '천문학적(astronomical)'으로 환산한 것이다. 태양에서 명왕성까지 거리가 약 '40AU'라니 약 '60억km'다. 이것의 3배인 '180억km'가 대략의 태양계의 반지름인데 1시간에 약 11억km(10.8억km/h)를 간다는 '광속'으로 따지면 태양계의 반지름은 '2만 광년', 즉 빛이 2만년을 가야 닿는 거리란다. 전체 태양계의 지름이 '4만 광년'이라는 말이다. 1광년이 예의 'AU'로 환산하면 6.3만AU라고 하니 어마무시하다.
우리 은하의 폭이 12만 광년이고 우리 은하 옆에 전체 폭 22만 광년의 '안드로메다' 은하와의 거리도 256만 광년의 거리에다가 군소 은하를 포함한 국부 '은하계'로서 '가시적' 주변 은하군의 폭은 '1천만 광년(6천억AU=9천5백경km=9.5X10의19승km)' 정도가 된다. 참고로 이런 '은하군'이 모인 '가시적' 전체 우주의 폭은 8,800해km(8.8X10의23승km)란다.
영국의 보험수리학자 앤드류 엘리엇(Andrew Elliott)은 2018년 세상 만물의 수치를 들어 세계를 이해하는 [Is That a Big Number?]라는 책을 통해 '숫자를 통한 세계관'을 이야기한다. 수학 이야기가 아니다. 숫자를 이해하면 세상 만물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자연과학의 시조인 수학처럼 논리가 정연하고 수치가 정확히 떨어져야 하는 게 아니다. 어떤 기준에 따라 어림셈하고 비교하여 해당 사물의 본모습을 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질문으로 시작한다.
"이것은 큰 수인가(Is that a big number)?"라는.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는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이르는 시베리아 횡단철도다. 길이가 9,290km이며, 철로가 직선으로 뻗어 있다면 지구 둘레(4만km)의 4분의 1보다 조금 짧다... 오리엔트 특급은 원래 파리에서 시작해 당시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에서 끝나는 대략 2,800km를 이동하는 여행이었다... 중국 시안에서 이탈리아 베니스까지 이어진 실크로드의 직선거리가 7,800km 정도이므로 실제 육로는 1만km가 넘고 왕복하는데 2년이 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 [숫자로 읽는 세상의 모든 것], <2. 측정하기 - 대략 그 정도의 크기>, 앤드류 엘리엇, 2018.
유라시아 전역을 지배했던 칭기스 칸의 장수 수보타이(수베데이)는 증원부대나 네비게이터 없이 8천km를 주파했고 그 이전 알렉산더 대왕은 약 5천km(4,800km)를 달렸단다. 지구의 적도 지름이 4만km니 수보타이는 지구의 1/5을 다녔고 알렉산더는 1/8을 지났다. 지구 전체 표면적인 5억 평방km의 1/3인 1억5천 평방km가 육지이니 그들의 지배 영역은 직선거리를 너머 더욱 넓었을지도 모른다. 인류가 항해술을 발전시켜 대륙간 교역을 활발하게 하게 된 것이 15~16세기니 그 이전의 육로만 생각했을 때 그렇다는 것이고 하늘과 바닷길로 더 멀리 다니는 지금과는 비교할 바 없이 고된 역정이었을 게다.
앤드류 엘리엇은 세상을 이루는 이런 '큰 수(big number)'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다섯 가지 기준을 제시한다.
( [숫자로 읽는 세상의 모든 것], <요약하기> )
첫째, '이정표 수' : 적절히 골라 맥락을 설정하는데 필요한 잣대를 삼는다.
둘째, '시각화' : 주어진 수가 합당한지 볼 수 있는 시각을 형성한다.
셋째, '분할 점령' : 복잡한 상황을 분할하고 표준화하여 전체로 종합한다.
넷째, '비율과 비' : '인간적 척도(인치/피트/척/자)'로 큰 수를 재거나 비율화한다.
다섯째, '로그(log) 척도' : 10진법의 지수와 배수를 이용하여 크기 차이가 매우 큰 기하급수적 수치 변화를 표현하고 이해한다.
적도길이인 지구의 지름이 4만km인데 호주대륙의 동서횡단길이가 4천km이므로 호주는 지구 둘레의 1/10이다. 양키 스타디움 관중 5만석은 면적당 5백명씩 100구역으로 계산한다. 이런 식으로부터 시작하여 위에서 본 우주의 크기와 은하의 갯수 등을 헤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일일이 갯수를 헤아리던 조상들이 수리적 '세계관'을 키워 후대에게 물려준 유산이자 위대한 역사다.
마지막 기법으로 '로그 척도'에 이르면 "결국 수학 이야기 아니냐?" 하겠지만 고등학교 수학 과목에서 배운 지금은 그게 뭔지도 모르겠는 '로그 함수'가 아니다. 로마인들이 10진법에서 1천 단위로 묶어 '큰 수'에 접근한 것처럼(지금 1천 단위 별로 '컴머(,)'가 찍힌 기원), 억-조-경-해, 그 이상을 넘어가는 숫자들에 접근하기 위한 10의 배수를 표현하는 것이 '로그 척도'다. 이미 과학 전문 분야에서는 '유효 숫자' X '10의 배수'로 표현하는 그 '렌즈'로 우주적 '큰 수'를 이해하자는 것이다. 관측 가능한 우주의 지름인 '8,800해km'는 '10의 24승km'의 범위 내의 크기로 표현한다. 이 '로그 렌즈'를 통해야만 현재 76억 인구수의 추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데, 지금으로부터 약 5천년 전 숫자가 처음 발명된 기원전 3천년 경 세계 인구수는 약 4,500만 명이었다가 3천년이 지나 서력 기원이 시작했을 즈음에는 약 1억9천만 명 정도 되었다고 한다. 2017년 76억 명을 넘는 추이를 시각화된 그래프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로축의 숫자가 일정해서는 안되고 10의 배수인 '천'이나 '백만' 또는 '십억' 단위로 표시되어야 한다. 이러한 척도가 바로 '로그 척도'다.
빅뱅 이후 140억년의 우주 역사와 이 중 46억년의 지구 나이, 그 중에서 600만년의 인류 역사를 가늠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척도다. 우주의 나이가 한 살(1년)이라면 지구의 나이는 한 계절 정도이고 인류의 전 역사는 1초에도 못 미친다.
"요컨대, '안다'는 것은 순간적으로 머릿속에서 대상을 확인하는 활동이다. 곧 '안다'는 것은 '직관' 바로 그것이다."
- [직관 수학], <머리말 - 본래 수학은 누구라도 알 수 있는 것>, 하타무라 요타로, 2004.
우리 어머니의 꿈은 아들을 공대로 진학시켜 평생 먹고살 걱정 없는 '기술'을 갖게 하는 거였는데 아쉽게도 어린 시절 나는 '수학이 인생에 왜 필요하지?'라는 고민이 컸다. 수학을 못했다는 말이다. 성인이 되어서야 수학은 과학의 어머니이고 철학의 다른 이름이었다는 걸 깨닫고 뒤늦게나마 또 다시 아쉬워했으나 그렇다고 수학이 쉬워졌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집 중학생 아들도 "수학이 왜 필요하냐?"는 질문을 되풀이하고 있는 걸 보면 역시 내 아들이다 싶다.
2차대전 때 전투기 엔진에 총탄을 맞은 비율이 가장 낮아 엔진이 튼튼한 부위라는 의견에 반대해 오히려 엔진이 약하니 더욱 보강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 오스트리아 출신 미국의 수학자 아브라함 발드 이야기가 있다. 다른 사람들이 전투기 엔진이 튼튼하다고 본 이유는 그들이 엔진을 피격당해 폭파되어 돌아오지 못한 전투기들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을 간파한 수학자의 일화부터 시작하여 틀리지 않는 '수학적 사고의 힘'을 역설한 미국의 수학 천재 조던 엘렌버그의 [틀리지 않는 법](2014)은 재미도 없고 대부분 이해하기 어려웠다. 수학을 싫어했던 내게 가장 인상적인 '수학책'은 일본의 공학교수 하타무라 요타로의 [직관 수학](2004)이었다. 수학을 정확하게 공부해야 하는 입시생이나 전문 수학자 또는 공학자들은 엄격한 논리와 계산이 즉 수학이겠지만, 나 같은 일반인에게 수학이란 '피타고라스 정리'와 같은 논리적 추론을 바탕으로 한 논리학의 한 분야일 수도 있고 이 대강의 논리를 대략이나마 이해하는 '직관'의 영역일 수도 있다. 하타무라 요타로는 [직관 수학]에서 삼각함수와 미적분 등의 개념을 소개하고는 있지만, 결론은 두 가지다. 하나는 직관적으로 뭉뚱그려 먼저 계산하되 중요한 몇 가지 기준은 암기하여 바로 적용한다는 것이고, 다음으로는 아무런 도구가 없어도 머리로 각 조건들을 스스로 계산해 보라는 것이다. 구구단을 비롯한 각 배수와 로그지수 등 몇 가지를 암기한 후 큰 수에서 뭉뚱그려 계산한 후 다음에 세부적으로 검산하는 것과, 우리 주변의 경험들을 총동원하여 머릿속으로 산출해 보려는 습관이 중요하다는 말인데, 습관이 안 된 나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기는 하나 '수학'에 관한 '직관'을 깨닫게 된 인상적인 책이었다.
앤드류 엘리엇의 [숫자로 읽는 세상의 모든 것(Is That a Big Number?)]은 '수학'에 관한 책은 아니다. 우리 주변의 '큰 수'에 당황하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정확한 수학적 논증과 정밀한 계산이 필요없는 나 같은 '문과적' 인간이 '숫자'로 이루어진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이 책은 '숫자'의 망망대해에서 헤엄칠 수 있는, 적어도 가라앉지 않고 뜰 수 있는 '직관'을 선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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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숫자로 읽는 세상의 모든 것(Is That a Big Number?)](2018), 앤드류 엘리엇, 허성심 옮김, <미래의창>, 2021.
2. [직관 수학](2004), 하타무라 요타로, 조윤동 옮김, <서울문화사>, 2005.
3. [틀리지 않는 법 - 수학적 사고의 힘](2014), 조던 엘렌버그, 김명남 옮김, <열린책들>,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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