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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Sep 04. 2021

[바빌론의 역사](2020) - 카렌 라드너

모든 역사의 '프로토 타입'

모든 역사의 '프로토 타입'

- [바빌론의 역사](2020), 카렌 라드너, 서경의 옮김, <더숲>, 2021.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이 만나면서 남쪽 페르시아만으로 흘러가는 지점은 이라크 남부에 위치한 광대한 범람원의 북부지역에 해당한다. 여기에서 두 강은 많은 지류와 수로를 만나서 삼각주를 이룬다. 봄이 되면 자그로스산맥과 토로스산맥에서 눈과 얼음이 녹은 물이 평야에 이른다. 그리고 수로가 범람하면서 소중한 침전물이 함유된 진흙을 땅에 퇴적시킨다. 이는 천연비료 역할을 하여 곡류(보리와 밀)를 경작하고 대추야자를 재배하기 위한 최상의 환경을 조성한다. 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이 없었다면 강우량이 적은 이곳은 아마도 사막이 되었을 것이다."

- [바빌론의 역사], <1. 바빌론의 시대와 공간>, 카렌 라드너, 2020.



인류 문명사의 '최초'를 생각한다.

'최초'의 문자, '최초'의 숫자, '최초'의 족장, '최초'의 국가, '최초'의 제국 등 '문명'을 이루는 제도와 문화의 '프로토 타입(proto-type)'이다.

약 1만년 전 정착과 농경을 시작한 신석기 시대부터 큰 강물의 범람으로 비옥한 토지에 기반한 공동체는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황하', '인더스강', '나일강'의 '4대 문명 발상지'로 지목된다. 이 중 대부분 문명의 '원형'인 '프로토 타입'은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의 삼각주인 이른바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그 '최초'의 시작점을 둔다.

이라크 지역 일대인 이 '중간 지대'는 동서남방의 각 문명이 교차하는 지역이었다. 그로 인해 점토 서판에 기록된 문자와 회계장부, 5천년 전 '최초'의 언어와 문자인 '수메르어'와 '최초'의 세습체제 '우루크' 왕조, 4천5백년 전 '아카드어'와 '최초'의 도시국가 '아카드', 4천년 전 히브리족의 조상인 '최초'의 족장 '아브람', 3천5백년 전 바빌론의 함무라비 법전부터 북부중앙의 히타이트와 아시리아 및 바빌로니아, 남부 '해상국가'들의 교류와 통혼을 통한 철기 문명의 발전, 배타적 유일신교의 원형인 마르두크로부터 '유대교'의 구약과 '최초'의 제국인 페르시아 문명 등 인류 문명의 '프로토 타입'이 바로 '중간 지대'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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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문명지인 큰 강은 범람하여 토지를 비옥하게 했는데, 유프라테스-티그리스-다얄라강 삼각주는 건조한 지대지만 상류의 자그로스산맥과 토로스산맥의 눈이 녹아내리는 봄에 범람하면서 옥토를 만든다고 한다. 이 지역을 이르는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이 자연범람과 관개를 위해 점성술(또는 천문학)은 물론 "정교한 산수능력"을 발전시켰는데, 현재까지 시간과 날짜의 단위, 각도의 측량단위(360도)의 기준이 되는 '60진법'이 바로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되었다. 이 지역에서 "도시 혁명"이 시작되면서 "촌락에서 도시로, 혈연사회에서 국가로 발전"된 사회체제는 "사회적 계층화, 기술의 전문화, 관료체제의 발달과 그에 따른 문자의 발명"(이상 같은책, <1장>)이 뒤따른다.



메소포타미아의 대표적 도시는 '바빌론(Babylon)'이다. 우르와 우르크, 아카드, 아시리아의 아수르와 니네베도 있지만, '바빌로니아'의 정치적 중심도시 '바빌론'이 가장 유명하다. 1978년 보니엠의 노래 <By the Rivers of Babylon>에서 바빌론의 강가에서 떠올린 고향에 대한 향수는 신바빌로니아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의 이 일대 정복과정에서 예루살렘으로부터 바빌론으로 차출된 유대인 노동자들의 구슬픈 심정이 모티브다. [구약]의 <다니엘서>에 나오는 이 '바빌론 유수'는 유대인의 입장에서는 슬픔이었고, 바빌로니아 입장에서는 찬란했던 역사의 한 장이었겠다. 기원전 6~7세기경 아시리아로부터 바빌로니아를 다시 독립시키고 나아가 메소포타미아를 장악하면서 '공중정원' 등의 거대유적을 만들어낸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구약]의 '느부갓네살'이다.



기원전 3천년대 최초의 도시국가 아카드 왕국의 총독 처소로 처음 언급된 '바빌론'은 '신의 문'이라는 뜻의 아카드어 '바빌림'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말이다. 바빌론은 그로부터 천년후 우르 왕국의 지방 중심지가 되었다가 기원전 18세기 그 유명한 함무라비 왕의 바빌로니아의 수도가 된다. 약 백년 후에는 북부의 히타이트 철기문명에 의해 파괴된 바빌로니아는 용병군대가 권력을 잡은 카시트왕조가 지역의 남부까지 장악했지만, 기원전 13세기 아시리아에 의해 정복된다. 기원전 12세기에 네부카드네자르 1세가 다시 바빌로니아를 복원하고 기원전 8세기 아시리아의 사르곤 왕이 바빌론의 왕이 되기도 했다. 이후 기원전 6~7세기 바빌론의 나보폴라사르와 위에 언급한 '바빌론 유수'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바빌로니아의 재번영을 이끌었다. 히타이트와 아시리아, 바빌로니아가 '바빌론'을 중심으로 패권을 이어가던 열국시대였겠는데, 우리 동아시아식으로 보면 기원전 6세기 페르시아의 키루스 대제가 복속시키기 전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바빌로니아-아시리아의 '남북국' 시대에 북방의 하타이트 철기인들이 대립과 병립을 하던 시대로 생각된다. 이 문명은 결국 기원전 331년, 마케도니아 왕인 알렉산더 대제에 의해 멸망한다. 그러나 유구한 문명의 역사를 이어온 바빌론 사람들은 바빌로니아가 망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유일신 마르두크를 숭배하며 이어온 바빌론의 역사를 위대한 알렉산더 대왕이 물려받아 지킬 것이라 생각했다. 알렉산더가 요절한 궁전은 이후 기원후 2세기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가 경건한 마음으로 찾아왔고, 19세기에 프로이센의 빌헬름 2세가 고고학자 로베르토 콜데바이 발굴단을 보냈으며 20세기 말까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대대적인 복원작업을 했다는데, 이 권력자들의 유적지 발굴과 복원 목적은 자신의 권력을 신성화하고 더욱 공고화하기 위함이었다. 네부카드네자르 2세의 가혹했을 대대적 토목공사와 주변 민족민중들에 대한 잔혹한 착취는 결국 후대에게는 역사적 문명유적을 남긴다. 진시황의 만리장성과 제국의 순행도로, 수양제의 대운하 뱃놀이가 당대 민중들의 고혈을 깊은 지하에 묻은 채 후대에게 주요한 역사문명 유산을 남기기도 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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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론에 대한 카시트 왕조의 오랜 통치가 끝난 후 격동의 기원전 12세기에 이르러 비로소 '마르두크'는 바빌론의 왕위를 하사하는 땅의 주인이 되었다... '마르두크'가 왕위를 승계받는 자가 아니라 승리자에게 왕권을 하사한다는 개념은 매우 실용적이면서도 새로운 개념이었다. 이로 인해 바빌론은 아들이 왕위를 계승하는 오랜 관습을 따르는 이웃왕국들과 뚜렷한 대조를 이루었다. 바빌론의 새로운 개념은 누가 왕위에 오르는가의 문제에 있어서 더 큰 융통성을 제공했으며, 이러한 실용적 탄력성은 정치적 주체의 역할을 하는 (마르두크의) 에산길라 신전 공동체와 함께 바빌론의 정치와 역사를 형성하는 토대가 되었다. 바빌론의 왕은 전적으로 신(마르두크)에 의해 결정되며, 왕위에 오른 자는 바빌론 주민의 권리를 존중하는 의사로 발전했다."

- [바빌론의 역사], <5. 신이 바빌론의 왕을 정하다>, 카렌 라드너, 2020.



인류는 사회체제와 국가체계를 통해 계급지배의 역사를 유지했고, 이 과정에서 주요한 '인지 혁명'으로 '신'을 창조해 낸다. 동아시아는 오래 전부터 '하늘(天;텡그리)'이 그 자리를 차지했고 영웅들이 다들 '알'에서 태어난 이유도 '하늘'을 나는 '새'를 추앙했기 때문이다. 서방은 그리스 신화의 다신교와 샤머니즘,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의 이분법 등이 산재했겠으나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마르두크라는 어린 신이 바다 괴물을 물리치고는 세상의 문명을 재창조하며 '유일신'의 자리를 차지한다. 흡사 제우스가 티타노마키아 대전쟁을 통해 신의 세계를 장악한 것과 비슷하나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마르두크'는 좀더 배타적이었는지 이후 이 지역에서 유래한 유대교나 이슬람교는 '유일신'의 성격이 더욱 강하다.



마르두크는 세 번 바빌론을 떠나 납치당한다. 기원전 16세기 히타이트, 기원전 13세기 아시리아, 기원전 12세기 이란 남서부 엘람 왕국에 의해서다. '마르두크의 예언'에 따라 이 왕국들을 멸하고 다시 바빌론으로 돌아온 '마르두크'는 기원전 12세기경 바빌론에 '새로운 개념'을 정착시킨다. 즉, 왕위의 단순한 혈통적 계승을 넘어 '마르두크'로부터 '천명'을 받은 자가 권력을 잡는다는 신개념이었다. 왕권과 신권이 분리되었고 세속과 천상이 분리되기는 했으나 고대에 '과학'과 '철학'의 자리를 대신했던 '종교'와 '영성'을 공유한 다수 민중에 의해 권력자들이 교체될 수도 있는 '혁명'의 맹아 또한 배태하기 시작했다.

"전적으로 신에 의해 결정"된 바빌론의 왕이 마르두크의 눈치를 보며 이 유일신이 보호해주는 이 다수 "바빌론 주민의 권리를 존중하는 의식으로 발전"(이상 같은책, <5장>)했다는 것은, 다수 민중들의 정서와 삶에 역행하는 권력자는 언제든 쫓겨날 수 있다는 '혁명'의 가능성이었다. 물론 지금으로부터 3천년 이전의 고대에는 히타이트-아시리아-바빌로니아-남부 해상국들의 열국의 쟁탈로 권력의 '수평 이동'의 형태였다. 이는 초한전쟁 이전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나 우리의 삼국시대까지 보이던 권력이동과 왕조교체의 양상이었다. 아무튼, 유일신 마르두크를 중심으로 한 이러한 '신개념'에 따라 바빌론은 아시리아에 의해 마르두크 신상을 빼앗긴 시기부터 이후 페르시아 지배기인 키루스와 다리우스, 크세르크세스 치하에서 끊임없이 반란을 시도했다. 마르두크에 의해 '신명'을 받은 다수의 바빌론 왕 '네부카드네자르 n세'들은 계속 반란을 시도했고 결국 페르시아 왕들에게 진압되었다. 기층 민중 출신의 반란으로 권력의 '수직 이동'의 '혁명'이 아닌 귀족과 왕족 중심의 '수평 이동' 쿠데타였지만, 마르두크를 믿는 다수 민중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그 어떤 권력자도 '바빌론'의 왕을 자처할 수 없었다.

이러한 전통은 현대의 공화정에서 '민주주의'라는 '유일신'을 두고 이뤄지는 권력투쟁의 원형, '프로토 타입(proto-type)'이다.



물론, 기원전 6세기 페르시아는 '바빌론'을 정복 후 '마르두크'를 버렸고,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 또한 마르두크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페르시아 왕들과 알렉산더는 본인이 곧 신(神) 자체가 되고자 했다. 그러므로 정치와 권력의 요체였던 '마르두크'는 바빌론의 다수 민중들 몫으로 남을 수 있었다.

권력자가 누가 되었든,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지 '바빌론'은 인류 문명사의 원형, '프로토 타입'으로서 그 명맥을 유지해 왔다.

다소 비약적이지만, '민주주의'를 중심으로 한 '혁명'의 '프로토 타입' 또한 바빌론의 '마르두크'에서 추출해 볼 수 있겠다.




영국의 메소포타미아 역사 전문가 카렌 라드너(Karen Radner)는 2020년 잊혀진 바빌론의 역사를 대중적으로 짧게 소개한 책을 냈다. 원제인 [A Short History of Babylon]은 말 그대로 바빌론의 '약사(略史;short history)'로서 바빌론의 역사를 간략하게 읽어볼 수 있다.

19세기말부터 1차 세계대전 전까지 약 20년 간 바빌론을 발굴한 독일의 고고학자 로베르토 콜데바이(Roberto Koldewey) 이야기가 더 궁금하긴 했으나, 고고학자들의 활약에 대해서는 다음 책으로 중근동에서 좀더 중앙아시아로 무대를 옮겨 치러진 영국과 러시아의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피터 홉커크, 1990)을 통해 읽어볼 예정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고고학자'를 꿈꾸지는 않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아직도 내게는 가슴을 설레게 하는 힘이 있다.



고대근동 바빌론의 역사는 카렌 라드너의 마지막 말로 이만 정리하면서 중앙아시아로 이동한다.



"오늘날 우리가 이용하고 있는 많은 별자리와 황도십이궁은 '바빌론' 유산이다. 또한 '60진법' 우리의 매순간을 시간, 날짜, 달과 연으로 구분하는 기초로 사용되고 있다. 다음번에 시간을 확인하게 되면 '바빌론' 떠올려 보기 바란다."

- [바빌론의 역사], <9. 역사에서 사라지다>, 카렌 라드너, 2020.


***


1. [바빌론의 역사(A Short History of Babylon)](2020), Karen Radner, 서경의 옮김, 유흥태 감수, <더숲>, 2021.

2.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기원전 20세기), 김산해 지음, <휴머니스트>, 2005~2020.

3. [다시보는 5만년의 역사], 타밈 안사리, 박수철 옮김, <커넥팅>,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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