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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Oct 15. 2021

[글록(GLOCK)](2012) - 폴 배럿

'평등'하되, 결코 '평등'하지 않은 권총의 표준

'평등'하되, 결코 '평등'하지 않은 권총의 표준

- [글록(GLOCK)], 폴 배럿, 2012.





"신이 인간을 창조했지만,

새뮤얼 콜트가 인간을 평등하게 만들었다."

- 19세기 미국 서부 속담.




초등(국민)학교 1학년 때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산동네 어귀로 이사왔다. 우리집 여섯 식구는 단칸방 첫 집에서 1~2년 살았는데, 그 집에서 성탄절 이브에 이부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전기를 처음 읽었고 크리스마스 선물로 어머니한테 5천원인가를 받았다. 성탄절이 오면 엄마한테 돈 받아서 꼭 사리라 찜해 놓은 장난감이 우리집 골목 맞은편 문방구에 있었다. 눈덮인 골목길을 건너 아침 일찍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달려간 문방구에는 내 장난감이 다행히도 안 팔린 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1982년인가 83년 크리스마스 아침 동이 트기도 전에 구입했던 '루거 P-08' 권총은 그러나, 조립하자마자 망가졌다. 믿었던 '아카데미 과학'의 그 독일제 권총은 단 한 번도 장전되지 못했고 며칠 후 어디에 두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웰링턴 공작이 일찍이 19세기에 권총이 전쟁에 쓸 만한 무기인가 의문을 제기했는데, (20세기) 기계화 전쟁 시대에 들어서자마자 그 답이 나왔다. 권총은 전쟁에서 개인의 방어 이외에는 거의 쓸모가 없다. 사기 진작 정도에 영향을 줄까 말까 할 정도이다. 하지만 권총의 가치가 공안과 경찰 활동에서 입증되었으며, 차세대 권총은 이를 염두에 두고 개발되었다."

- [무기], <자동장전식 권총 : 1950년 이후>, DK [무기] 편집위원회 / 영국 왕립 무기박물관, 2016.



초등학교와 중학 시절에는 아무 사상적 배경 없이 제1~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일본 추축국들의 전쟁기계를 선호했다. 이유는 모르겠다. 지금 돌아보면, 아마도 군부 파시즘 정권에서 나고 자란 탓으로 그냥 생각한다. 박정희와 전두환이 악당들인지도 모르던 시기였고 오히려 카리스마 있다고 생각하던 어린 시절이었다. 2차대전까지 독일군 장교들이 사용했던 '루거 P-08'은 1908년산이다. 거의 반세기 가까이 독일의 대표 권총이었고 지금도 유럽에서는 권총계의 '우상'이란다. 한편, '총의 나라' 미국은 1775년 4월 19일 렉싱턴 콩코드 전투에서 무장한 민병대가 영국의 정규군을 상대로 싸워 이길 정도로 총기에 대한 자부심이 높다. 미국 독립 후인 1791년 제정된 <미국 수정헌법 제2조(The Second Amendment)>는 '시민 무장의 원칙'을 담고 있다. 19세기와 20세기 초까지 6연발 리볼버가 미국의 상징이었다. 서부 영화에서 보안관과 악당, 정의의 수호자인 주인공이 쓰던 그 총의 대표작은 새뮤얼 콜트가 만든 '콜트 뉴 서비스(1907)'와 '스미스&웨슨(1900)'이었다. 미국 영화에서 경찰들이 소지한 리볼버 권총이다. 그러나 리볼버는 6발 쏘고 장전해야 했다. '콜트 1911년형' 자동권총은 손잡이 탄창에 7발이 들어갔고, '루거 P-08'(1908)은 한번 장전하여 10발을 쏠 수 있었다. 19세기 리볼버의 둥근 탄창은 한계가 있었지만 20세기 자동권총의 손잡이 탄창의 총알은 계속 늘어났다. '콜트 1911' 이후 미국 군대와 경찰의 주요 권총이었던 벨기에산 '브라우닝 GP35'(1935)는 13발이 들어갔고, 역시 미군의 권총인 이탈리아 '베레타 92FS'(1976)도 13발이었다. 1950년대 이후로는 리볼버는 거의 사라지면서 자동권총의 시대가 되었고 1970년대에 리볼버는 강력탄환을 쓰는 은빛 '매그넘'의 형태로 명맥을 이어갔다.

그리고 1980년대 들어서면 미국의 경찰과 악당들의 손에는 현대 자동권총의 대명사 '글록(GLOCK) 17'이 들려있다. 한 번의 장전으로 17발을 쏘면 더 많은 살상이 가능했고 혹자는 미국 총기난사 사건들이 대규모 참극을 초래한 주범으로 '글록'을 지목하기도 한다. 미국의 총기 규제에 관한 논쟁은 정치권의 주요 소재이며 총기의 자율소지가 범죄율을 높이는지 아니면 예방하는지 여부는 사회과학으로 해명하지 못한다고 한다. '전미총기협회(NRA : National Rifle Association)'는 미국 최대최강의 로비단체이며, 공화당은 '총기소유' vs. 민주당은 '총기규제'의 공식 또한 절대적이지는 않다. '시민 무장의 원칙'을 둘러싼 끝없는 정치논쟁의 본질은 사실상 자본주의적 이권이다.





"글록은 권총계의 구글이다. 현대의 권총을 처음으로 정의한 브랜드라 할 수 있다. 우아함을 찾아볼 수 없는 박스형 몸체와 검은색 마무리는 권총의 표준이 되었다. (미국)연방정부가 공항에 붙인 무기소지 금지표지 실루엣도 당연히 글록이다."

- [글록], <3장. 못생겼는데도 모든 사람이 원하는 호신용 권총>, 폴 배럿, 2012.



일본에서 사무라이 칼잡이들이 총에 맞아 쓰러지던 시기는 우연찮게도 근대 보편적 민주주의가 시작되던 시기와 겹친다. 군인이 살상를 위해 무예를 연마하던 기사와 사무라이의 엘리트 시대가 귀족적 보수주의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들었다. 이제 미국의 '시민 무장'처럼 누구든 총을 들고 소수 엘리트들의 쓰러뜨릴 수 있게 되었다. 19세기 미국 서부 사람들은 "신이 인간을 창조했지만, 새뮤얼 콜트가 인간을 '평등'하게 만들었다"는 극단적 언사를 서슴치 않았다.

19세기 미국의 권총 제작자 새뮤얼 콜트, 미국에서 벨기에로 이민 가서 권총을 만든 존 브라우닝, 이탈리아의 베레타사와 독일의 게오르그 루거는 권총계의 전설들이다. 그러나 권총을 더욱 '대중화'시킨 사람은 1980년대 오스트리아의 군수품 제작납품업자 가스통 글록(Gaston Glock)이다.





"문제의 권총은 '글록 17'이다. 가스통 글록이 (오스트리아) 빈 외곽 도이치 바그람 마을에서 개발한 9mm 권총이다. 정확하고 안정적이며 대부분 경질 (플러머)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다. 총열, 슬라이드와 스프링 한 개만 철제다. 분해하면 너무나도 쉽게 보안검색대를 통과할 수 있다."

- <워싱턴포스트>, 1985, 같은책 '5장'에서 재인용.



가스통 글록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단검과 같은 군수품을 만들고 납품했다. 그는 전쟁터 참전경험도 없었고 총에 대해 하는 바도 없었지만, 총기 전문가들의 조언을 충실히 듣고 내구성 강한 플러머 플라스틱 소재의 못생긴 권총 '글록 17'을 만들어낸다. 멋은 없지만 가볍고 단순한 부품에 총알도 많이 쏠 수 있는 '글록'은 순식간에 미국의 총기 시장을 점령한다. 유럽은 가스통 글록과 그의 수하인 볼프강 리들이 장악했고, 대규모 시장인 미국은 유명한 총기 보따리장수였던 칼 발터가 키웠다. '전미총기협회'의 대변자였던 폴 야누초 변호사는 미국 마케팅담당 칼 발터가 가스통 글록에 의해 토사구팽 당한 후 미국의 영업 책임자였지만, 결국 '글록'을 키운 자들 모두는 설립자 가스통 글록에 의해 제거되었다. 미국 마케터 칼 발터는 글록사의 대부분 이익을 책임지고 성공시켰지만 너무 많은 연봉을 요구하다가 해임되었고 후임자 폴 야누초는 횡령 혐의로 현재까지 구속 중이란다.



미국의 총기 전문가 폴 배럿은 2012년에 [글록]이라는 논픽션 다큐멘터리 형식의 책으로 '글록사'의 권총이 미국의 권총시장을 장악한 역사를 이야기한다. 설립자 가스통 글록은 제외하고 그를 둘러싼 관련자들의 생생한 인터뷰를 자료로 쓴 이 책은 재미는 있지만, 부제처럼 '미국을 지배하는 또 하나의 제국'까지 거론할 정도의 깊이는 없다. 국내 번역자와 감수자 또한 이론이나 사상은 차치하고 '총기 매니아'의 입장에서 가볍게 권총의 역사를 다루고 있어 장난감 권총을 들고 다니던 어린 시절처럼 전철에서 들고다니며 읽기 편한 책이다. 의도했는지는 모르지만, 책의 그립감이 딱 장난감 플라스틱 권총과도 같다.



총기의 나라 미국을 지배한 '글록'은 오스트리아의 골수 사회당원이지만, 극우 파시스트 정치인과 유착되었고, 삼성 이재용처럼 중립국에 페이퍼 컴퍼니를 세워 탈세를 일삼지만 이를 폭로하려던 야누초는 오히려 횡령혐의가 걸리고 만다. 역시 가장 원초적인 전쟁과 총의 욕망은 자본주의적 이권을 중심으로 집중된다.

오스트리아 빈의 외곽에서 현대 권총의 표준을 만들어낸 천재 가스통 글록은 더이상 위대한 발명가가 아니다. 그는 다만 "인간을 평등하게 만들었다"는 오해를 등에 업고 뻔뻔하게 대량 학살을 일삼는 권총으로 막대한 이윤을 얻고 동료들을 배신하며 탈세와 탈법을 자행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사람들로부터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는 독점자본가일 뿐이다.


권총의 표준 '글록' 또한 한세기 전 새뮤얼 콜트보다 더 인간을 '평등'하게 만들었을지 모르지만,

자본가 '가스통 글록'은 결코 '평등'의 대명사는 아니다.


***


1. [글록(GLOCK) - 미국을 지배하는 또 하나의 제국](2012), Paul  M. Barret, 오세영 옮김, 강준환 감수, <북이십일 레드리버>, 2021.

2. [무기(WEAPON) - 2판](2016), DK [무기] 편집위원회 / 영국 왕립 무기박물관 공동제작, Richard Holmes 감수, 정병선/이민아 옮김, <사이언스북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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