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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May 27. 2022

[말과 사물](1966) - 미셸 푸코

"형이상학의 종언은, 인간의 출현이다."

"형이상학의 종언은, 인간의 출현이다."

- [말과 사물], 미셸 푸코, 1966.





"형이상학의 종언은... 인간의 출현이다."

- [말과 사물], <9. 인간과 인간의 분신들>, 미셸 푸코, 1966.


이번에는 욕을 좀 덜 하긴 했다.

오래전 [감시와 처벌](1975)이란 책을 내 일생 유일무이하게 처단했던 사건을 떠올리게 했던 미셸 푸코의 [지식의 고고학](1969)을 읽을 때는 차마 앵두 같은 입술로 담을 수 없는 육두문자를 삭이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책장을 발기발기 찢을 뻔 했으나, 이보다 두 배는 분량이 많은 [말과 사물](1966)은 말이 많은만큼 '추상성'이 좀 덜했다.

그렇다고 결코 '구체적'이었다는 말은 아니고 장황하지 않았다는 말은 더더욱 아니며 미셸 푸코 욕을 안했다는 말은 아니다.

어차피 철학자 푸코든 일반인인 나든, 근대에 이르러 '형이상학'의 종언과 함께 출현한 '유한'한 '인간'에 불과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명백히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인식론적 영역,... 인식을 위한 가능조건의 역사가 드러나는 '에피스테메(담론의 질서)'인데,... 지식의 공간에서 경험적 인식의 다양한 형태를 야기한 지형이다. 우리의 시도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역사라기 보다는 오히려 '고고학'이다... '고고학'적 분석의 대상이 되는 것은 고전주의 시대의 지식 전체,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를 고전주의적 사유로부터 분리하고 우리의 근대성을 구성하는 문턱이다. '인간'이라 불리면서 '인문과학'의 고유한 공간을 열어놓은 이 기이한 지식의 형상은 '근대성'의 문턱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출현했다."

- [말과 사물], <서문>, 미셸 푸코, 1966.


푸코는 어렵다.

그러나 마약과 같은 모종의 '중독성' 같은 게 있다. 오래전 군대에서 읽을 책이 없어 진중문고 책꽂이에 있던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를 읽었을 때와 비슷하다. '왜 이딴 책을 썼을까?' 궁금하면서도 '그래도 읽었다'는 왠지 모를 뿌듯함 같은 게 있다. 그리고 욕을 하면서도 저자의 다른 책을 또 읽어보고 싶다는 나도 모를 호기심 같은 '중독성'이 있다.

이유는 모르겠다. 다만 최근에 [지식의 고고학]을 읽고 알게 된 것처럼, '동일성'을 부정한 20세기 현대철학자 미셸 푸코는 망치를 들고 '신'을 살해한 19세기 근대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정통 추종자였다는 사실이 그 막연한 이유일 수 있겠다.


[말과 사물]의 부제는 <인문과학의 고고학(The Archeology of Humanity Science)이다. 1966년에 출간된 이 저작은 1969년에 극도의 추상성으로 압축된 [지식의 고고학]의 최종 준비작업이었다. 그리고 [지식의 고고학]은 철학자 미셸 푸코의 전반기 사상의 총정리였다. 정리하면, [말과 사물](1966)이 없이 [지식의 고고학](1969)은 나올 수 없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지식의 고고학]을 읽은 나는 어쩔 수 없이 욕을 하면서도 [말과 사물]을 읽을 수 밖에 없었고, 솔직히 전부 이해는 못했지만, 몇 가지 주요 개념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미셸 푸코가 궁금한 일반인이 굳이 욕하지 않고도 이해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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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르네상스-고전주의-근대성


"문자의 특권은 '르네상스' 시대 전체를 지배했고, 아마도 서양문화의 중대한 사건들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인쇄술의 발명, 동방 수사본의 유럽 유입... 문학의 출현... 종교 텍스트의 해석... 이 모든 것은... 서양에서 문자가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음을 예증한다. 이제부터 '언어'의 으뜸가는 본질은 '기록'이다... 신이 세계에 내려준 것은 '글'이다... 참된 말씀을 재발견해야 하는 것은 바로 '책'에서이다... 지식은... '말'과 '사물'의 드넓은 일률적 평원을 복원하고... 모든 표지 위로 '주석'이라는 이차적 담론을 생겨나게 하는데... 지식의 속성은 보는 것이나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하는 것이다... 16세기까지는 실제로 하나의 기호가 의미하는 바를 그 기호가 가리킨다는 것을 어떻게 인정할 것인가가 문제였으나, 17세기부터 문제시되는 것은 어떻게 기호가 스스로 의미하는 것과 연결될 수 있을 것인가이다. 이 문제에 '고전주의' 시대는 재현의 분석을 통해 대답하게 되고, '근대'적 사유는 의미와 의미 작용의 분석을 통해 대답하게 된다... 이제 '언어'는 오래지 않아 시작도 끝도 약속도 없이 증식하게 된다."

- [말과 사물], <2. 세계의 산문>, 미셸 푸코, 1966.


시대구분은 '신'으로부터 벗어나 '인간' 중심의 '인문주의'가 태동한 14~16세기 '르네상스'와 고대로부터 '인간'을 다시 탐구하는 17~18세기 '고전주의', 그리고 '인간'의 '유한성'에 천착하며 '생물학-정치경제학-문헌(언어)학' 등의 세부 과학과 함께 등장한 '인문과학'의 19세기 '근대성'이다.

그리고 푸코에게 이 '근대성'의 철학적 최정점은 '신을 살해'하고 '최후의 인간'을 등장시킨 니체다.



2. 에피스테메 : 담론의 질서


"재현하기... '말'과 '사물'의 관계 형태에서 '동일성'과 '차이'의 일반적인 (담론적) 질서를 발견하는 것..."

- [말과 사물], <7. 재현의 한계>, 미셸 푸코, 1966.


제목처럼 '사물'을 지칭하는 '말'은 태초부터 있었다. 성경처럼 태초에는 '말'이 '사물'을 지배했다. 그러나 르네상스와 고전주의 시대에 이르러 과학이 발전하고 인간 인식이 진화하면서 '말'과 '언어', 그리고 '글'과 '문장'은 '사물'을 완전하게 '재현하기([말과 사물], <3장>, <7장>)'에 실패한다. '자연사'에 불과했던 '생명체'들은 그 특징 및 종으로 분류되는 '생물학' 또는 '생명과학'의 출현으로 '분류하기(같은책, <5장>)'를 거친다. '부(富)'의 분석으로서 고전주의 시대 원시 '경제학'은 19세기 근대에 이르러 '노동'과 '생산'의 개념을 장착하고 '화폐'의 형태로 '교환하기(같은책, <6장>)'의 형식을 통해 나타난다. 이 과정에서 '사물'을 지칭하고 '재현'하는 언어와 문헌은 '기호체계'와 '상징체계'로서 별도 과학의 대상이 되며 각 시대 '담론의 질서'를 형성한다. 모호하지만, 푸코가 사용하는 '에피스테메(episteme)'라는 개념은 해당 시대에 특정 학문 분야의 등장을 가능하게 하는 담론의 양태들을 연결하는 관계로서 '담론의 질서'다. 그냥 쉽게 토마스 쿤의 과학개념처럼 '패러다임' 비슷하다고 보면 될게다.

새로운 사상의 출현은 이 '에피스테메'와 '패러다임'의 전환을 전제로 한다.



3. 문헌학-생물학-정치경제학


"'부(富)'의 분석과 '정치경제학'의 관계는 일반 '문법'과 '문헌학'의 관계, '자연사'와 '생물학'의 관계와 같다... 모든 '부(富)'는 '화폐'로 환산될 수 있고, 따라서 (고전주의 시대부터) 유통되기 시작한다. 동일한 방식으로 어떤 '자연물'이건 특징을 부여받을 수 있었고 '분류'의 대상이 될 수 있었으며, 모든 개체는 명명될 수 있었고 분명한 '언어'로 말해질 수 있었으며, 모든 '재현'은 '의미'할 수 있었고 '동일성'과 '차이'의 체계에 포함되어 인식될 수 있었다... '부'의 분석에서 '화폐-재현'의 이론에 대해 근거가 되고 '자연사'에서 '특징-재현'의 이론을 뒷받침하는 것은 바로 동일한 '고고학'적 망이다."

- [말과 사물], <6. 교환하기>, 미셸 푸코, 1966.


[말과 사물]의 <2부-8장>의 제목은 '노동, 생명, 언어'다. '말'이 '사물'을 완전히 '재현하기'에 실패한 '재현의 한계(같은책, <7장>)'에서부터 '말-존재물-필요'라는 시초적 개념은 각각 17~18세기 고전주의적 '담론-도표-교환' 및 19세기 근대의 '문헌학-생물학-정치경제학'과 3개념의 쌍을 이룬다.


르네상스 시대에 등장한 '일반문법'은 '말'과 '언어'로, 고전주의 시대에는 '담론'의 형태로, 19세기 근대에는 '문헌학'의 과학이 된다. 역시 원시적 '존재물'은 진화론 등의 생명과학 발전과 함께 종의 기원을 분류하는 '도표'로, 근대 '생물학'의 과학이 된다. '부'와 '욕망'을 지칭하던 원시 '경제학'은 '필요'에서부터 아담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의 '노동가치론'을 거쳐 '자본'과 생산', '화폐'의 '교환하기(같은책, <6장>)'의 자본주의 체제에서 비로소 '정치경제학'이 된다. 일례로 푸코는 [말과 사물] <6장. 교환하기>에서 근대에서야 정립된 '정치경제학'을 "차후에나 갖게 될 단일성을 굳이 고전주의 시대의 '부의 분석'에 부여하려는 회고적 해석은 피해야 한다"(같은책, <6장>)고 경고한다. '문헌학-생물학-정치경제학'이라는 과학은 각각의 '계보학'이 있는 것이지 예를 들어 '정치경제학'이라는 개념이 원래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푸코의 지적 사유의 작업은 바로 이 과학들의 '계보'를 밝히는 '고고학(考古學/Archeology)'이며, 19세기 '근대성'의 산물인 '인간'과 '인문과학'의 기원을 추적하는 이 책의 부제, '인문과학의 고고학'이다. 이 사유과정이 푸코 사상 전반기를 총정리하는 극도의 추상적 산물인 [지식의 고고학](1969)이다.



4. 인문과학과 니체


"(19세기...) '인문과학'의 본질적인 가능성, 다시 말해서 사회를 이루어 살아가는 인류가 존재한 이래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이 개별적으로나 집단적으로 과학의 대상으로 등장했다는 적나라한 사실... 그것은 '지식의 질서(에피스테메)'를 뒤흔든 사건이다... '인문과학'은 인간이 인식하는 사물과 인간의 존재가 어떻게 관련될 수 있고 인간의 존재양태를 실제로 결정하는 사물을 인간이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유한성'의 분석론 쪽으로 '생명, 노동, 언어'의 과학을 은밀하게 이끈다... 고전주의적 지식이 연속적으로 확대되어 나간 이 공간의 세분화 때문에, 분리된 각 영역의 자율적인 전개 때문에, 19세기 초에 출현하는 인간은 '탈역사화'된다... 근본적인 지식의 배치에서 일어난 변화의 결과... 사유의 '고고학'이 분명히 보여주듯이 '인간'은 최근의 시대(19세기)에 발견된 형상이다. 그리고 아마 (유한성으로 인해) 종말에 가까운 발견물일 것이다."

- [말과 사물], <10. 인문과학>, 미셸 푸코, 1966.


'인문과학'은 고전주의적 담론질서, 즉 고전주의적 '에피스테메'를 뒤흔들면서 등장한다. 종교적 '신'이나 철학적 '동일자'가 아니라, 이들 최상위 '사물'을 '재현'한다고 믿었던 '말'이 과학의 발전으로 더 이상 '왕좌'에 앉지 못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유한성'을 태생적으로 갖춘 '인간'이 출현한다. 르네상스와 고전주의 시대의 철학인 '형이상학'이 종언을 고하는 그 자리에서 비로소 '유한'한 '인간'이 등장하는데, 근대의 '인문과학'은 바로 이 '유한성'이 본질인 '인간'을 탐구대상으로 한다. '정치경제학' 분야에서 데이비드 리카도의 '노동가치론'과 칼 마르크스의 '혁명적 유물론' 및 '잉여가치론' 등은 푸코가 보기에 동일한 '에피스테메(담론의 질서)'라는 '찻잔 속 폭풍'(같은책, <8>)에 불과하단다.


"... 마르크스의 해석에 의하면 역사는 인간에게서 '노동'을 박탈함으로써, 인간의 '유한성'이 갖는 긍정적인 형태(마침내 해방된 인간의 물질적인 진실)를 뚜렷이 부각시킨다... 마르크스주의가 '부르주아' 경제학 이론과 대립한다 해도, 또한 이 대립 속에서 마르크스주의가 역사의 철저한 반전을 기도한다 해도, 이 대립과 기도의 가능조건은 역사 전체에 대한 재검토가 아니라, '고고학'에 의해서만 정확히 규명될 수 있는 사건, 19세기 '부르주아' 경제학과 19세기의 '혁명'적 (정치)경제학을 동일한 방식에 따라 규정한 사건이다. 이 양자 사이의 논쟁은 얼마간 파문을 일으키고 표면에 '주름'을 생기게 할지는 모르지만, 이는 기껏해야 '찻잔 속의 폭풍'일 뿐이다."

- [말과 사물], <8. 노동, 생명, 언어>, 미셸 푸코, 1966.


대신 푸코는 프리드리히 니체가 "신을 살해하고 최후의 인류를 등장시키면서", 인문과학의 출현이라는 '지식의 새로운 배치(에피스테메)'에 "불을 지름으로써 이 배치를 마지막으로 빛나게 했다"(이상 같은책, <8장>)고 주장한다. 다음은 [말과 사물] <8. 노동, 생명, 언어>에서 미셸 푸코가 그의 철학적 스승과도 같은 프리드리히 니체를 찬양한 문장이다.


"핵심은 19세기 초에 지식의 새로운 배치가 이루어졌다는 사실... 19세기에 '유토피아'는 시간의 여명 보다는 오히려 시간의 마지막 붕괴와 관련된다... 18세기 말에 니체는 이 배치에 불을 지름으로써, 이 배치를 마지막으로 빛나게 했다. 그는 시간의 종말을 재검토했고 그것을 '신의 죽음'과 마지막 인간의 편력으로 변화시켰으며 인간학적 '유한성'을 다시 검토했지만, 이는 인간학적 '유한성'을 이용하여 '초인(超人)'의 경이로운 도약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아무튼 니체는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우리를  위해 '변증법'과 '인간학'의 뒤섞인 약속을 불태워버린 사람이다."

- [말과 사물], <8. 노동, 생명, 언어>, 미셸 푸코, 1966.


결국, 미셸 푸코에게 근대에 등장한 '유한성'의 인간학과 철학에서 궁극의 경지는 프리드리히 니체다.

'관념론'과 '형이상학'의 영역에서는 거대한 '변증법'적 관념체계를 세운 '독일고전철학자' 헤겔이 종착점일 수도 있다.

'유물론'과 '혁명론' 사상에 기초한다면 헤겔의 관념론을 거꾸로 뒤집은 마르크스주의 유물변증법이 필연적 귀결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현대철학자 푸코에게 이 모든 철학사(哲學史)는 고전주의적 '에피스테메(담론의 질서)'를 전환시키지 못하였으니 '찻잔 속 폭풍'에 불과했고, '신'이라는 '동일자'의 담론질서를 살해하고 곧 종말을 맞게 되는 '유한성'의 '최후의 인류'를 상정한 철학자, 오직 프리드리히 니체만이 궁극의 '인문과학' 철학자가 된다.



난해하고, 장황하고, 그래서 어려운, 그럼에도 묘하게 '중독성' 있는, 프랑스 현대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1926~1984)와는 이제 이별이다.

언젠가 그의 다른 저작을 펼치게 될지 기약은 없다. 그래도 잊지 않기 위해 그의 주요 저작인 [지식의 고고학](1969)과 [말과 사물](1966)을 최대한 쉽고 단순하게 정리하려고 시도했다.


'욕하면서 닮는다'고 하던가.  

내가 쓴 푸코 서평을 읽고 또 다시 욕하고 있을 사람들이 보인다.

그러나 이해하시라.

원저자 미셸 푸코 자체가 어려운 걸 어쩌겠는가 말이다.


원전이든 서평이든, 너무도 장황하여 참고 읽을 수 없다면,

그냥 [말과 사물]을 요약한 이 한 문장만 기억하시기 바란다.


"('말'이 '사물'의 재현에 실패한) 형이상학의 종언은... (니체적 '최후의') 인간의 출현이다."


***


1. [말과 사물 - 인문과학의 고고학](1966), 미셸 푸코, 이규현 옮김, <민음사>, 2012.

2. [지식의 고고학](1969), 미셸 푸코, 이정우 옮김, <민음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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