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단테처럼 - [단테 '신곡' 강의], 이마미치 도모노부
마치, 단테처럼.
- [단테 '신곡' 강의], 이마미치 도모노부, 2002.
"우리의 생명길 한가운데에서,
어두운 삼림에 있음을 알았으나,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 있었다."
- 단테 [신곡], 첫 3행, 이마미치 도모노부 번역.
1.
군대가 아니었다면 나는,
단테를 읽지 않았을 거다.
입대한지 일년이 넘었고 상병을 달았지만 대놓고 책을 읽을 짬밥은 아니었다. 읽을 책이 없어 내무반 책꽂이에 있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몰래몰래 틈틈이 읽은 경험으로 단테의 [신곡]을 읽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라스콜리니코프' 따위의 러시아 이름이 익숙하지 않아 고생했는데, 단테를 읽을 때는 상황 자체가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지옥'과 '연옥', 그리고 '천국'을 순례하는 단테를 따라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에게 지옥과 연옥을 안내하던 베르길리우스는 단테 자신이 존경해 마지않던 선학 시인이었던 반면,
나는 나를 그 길로 안내하던 단테를 그닥 존경하지 않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래된 책으로 군대 내무반 책꽂이에 거의 버려지다시피 방치된 것이었으니 번역이 형편없기 때문이었다고 당시의 나는 생각했다.
그럼에도 나는,
단테(Dante)에게 천국을 보여줬던 그의 이념 속 연인 '베아트리체(Beatrice)'를 따라 끝까지 읽고 말았다.
뭐 어차피, 군대 상병이었던 당시 나에겐 그 책 말고는 딱히 읽어볼 문자도 없었다.
2.
그녀가 아니었다면,
나의 이메일 아이디는 'beatrice'로 시작하지 않았을 게다.
나름 '문학도'였으니 군대에서도 이등병에서 일병을 거치며 러시아 소설을 집어들었고 단테까지 펼쳐보았을 텐데 어디선가 들어보았을 이름 '베아트리체'가 눈에 확 들어왔다. 먼저 들춰본 [신곡]의 결말에서는 온통 '베아트리체'만 보였다. 그러나 번역이 도무지 눈에 들어오지 않아 난 차라리 생경한 러시아 이름들로 가득한 도스토예프스키를 먼저 읽기로 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나는 단테를 다시 펼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상병 진급 정기휴가를 나갔던 난 학교 2년 후배인 그녀에게 사귀자고 했고 뜻밖에도 그녀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그녀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순간이었는지도 모를 그 시간이 나에게는 지금까지도 가장 행복한 장면 중 하나였다.
나에게도 단테처럼,
나만의 '베아트리체'가 생겼다.
부대로 복귀한 나는 내무반 책꽂이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던 단테의 [신곡]을 다시 꺼냈고,
단테와 나는 각자의 '베아트리체'를 따라 순례를 이어갔다.
단테는 지옥과 연옥이라는 고난을 견뎠고,
나는 거지같던 번역문의 고난을 견뎌냈다.
우리에겐 '베아트리체'라는 공동의 '별'이 있었다.
그렇게 스물세살의 군장병인 내게,
사랑이 왔다.
3.
"영어 'history'의 뿌리가 된 라틴어 'historia'는 그리스어 '히스토리아'에서 유래하였다. 이것은 '발자취를 따라 대상을 쫓아가다'를 의미하며 사냥용어로 쓰인 동사에서 비롯되었다. 즉, '발자취를 보고 동물이 도망친 방향을 안다는 것이며 그것과 동일선상의 사건으로 설명하는 것이 역사해석의 방법이었다."
- [단테 '신곡' 강의], <14강. 천국편 3>, 이마미치 도모노부, 2002.
전역 후 예전에는 후배였던 그녀를 본격적으로 만나면서,
처음 만든 내 이메일 아이디로 'beatrice'를 선택했다.
군복무 후반기 일년을 헌신적으로 기다려주고 나를 위해 희생했던 그녀는,
여전히 나의 '베아트리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게든, 단테에게든,
'베아트리체'는 현실의 사랑이 아니었다.
그냥 동경하고 소망하는 마음 속 '별'이 되었다.
일본의 고전인문학자 이마미치 도모노부는 2002년에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1265~1321)의 14세기 장편 서사시 [신곡(神曲/Divina Commedia)]에 관한 강의 15편을 책으로 엮어냈다.
지옥 34곡 1,540여 행과 연옥 33곡 1,540여 행, 천국 33곡과 역시 1,540여 행의 단테 [신곡] 100곡을 전부 해석할 수는 없지만, 주요 구절을 이탈리아어 원어와 그 유래로서 라틴어 및 그리스어를 상세히 열거하며 갖가지 일본식 번역을 소개하고 필자 본인의 번역도 곁들인다. 이탈리아어도, 일본어도 모르는 나는 그런 구절은 눈으로만 훑고는 빨리 넘어간다. 그랬더니 6백 페이지의 이 책은 짧은 시간에 마지막 장을 덮고 만다.
[신곡]의 주요 싯구에 관한 세밀한 번역은 차치하고 이 책의 묘미는 사상가이자 시인인, 즉 '시인철학자'로 묘사되는 단테의 굵직한 선학들로서 그리스 문명의 호메로스와 로마의 키케로를 거쳐 베르길리우스에 이르는 인문학적 계보를 설명하는 초반부 1~3강이다.
우선, 단테는 로마의 키케로처럼 현실 정치가였다. 그것도 피렌체 공국의 '총리' 또는 장관급 되는 거물 정치인이었는데 교황권과 세속왕권의 정쟁에 휘말려 실각을 하고 망명생활까지 한다. 결국 망명지에서 생을 마감하기 전에 라틴어가 아닌 고국의 이탈리아어 방언으로 적어내린 서사시가 [신곡]이다. 베아트리체로 상징되는 천상의 종교관의 내용과 별개로 루터의 독일어 성경 못지 않게 단테의 이탈리아어 서사시 [신곡]은 서양 인문학 고전사에서 의미가 깊다.
단테 이후로 독실한 종교사상을 꼭 라틴어로만 적을 필요가 없어졌다. 이는 호메로스로 대표되는 고대 그리스 고전을 로마식 라틴어로 번역한 키케로의 인문주의를 이어가는 길이었고 이로 인해 로마 최고 시인의 경지에 오른 베르길리우스의 인문학을 단테는 존경하며 따르게 된다.
이것이 베아트리체가 단테에게 지옥과 연옥을 안내해달라며 베르길리우스를 찾아간 이유다. 물론 천국에 오르지 못한 베르길리우스는 천국의 문 앞에서 단테를 베아트리체에게 인계한 채 사라져 버리지만, 단테가 사랑이 아닌 존경으로서 마음 속에 '별'로 삼았던 사람은 단연 [아이네이스]라는 로마건국 서사시로 로마의 주체적 역사관을 열었던 베르길리우스였다.
또한 단테의 종교관은 그리스도교에서 천국과 지옥으로 양분되는 이분법이 아니라 '연옥'의 존재로 특화된다.
12세기경부터 구체화된 모습으로 등장했다는 '연옥'은 '지옥'과 '천국' 사이에 놓인 '희망'의 공간이다. 단테가 지옥문을 들어설 때 지옥문은 '희망을 버리라', 또는 '두고 오라'고 말한다. 지옥은 그 누구도 구원받지 못하는 절망의 공간이다. 그러나 연옥에서는 불로써 정화된 영혼이 천국으로 들어설 수도 있는 '희망'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단테는 연옥에서 비로소 '별'을 본다. [신곡]의 연옥편에 나오는 '별'은 '희망'의 다른 이름이다. 별을 쫓다보면 천국의 문 앞에서 베아트리체를 만나게 된다.
일본의 단테 전문가인 이마미치 도모노부는 단테의 [신곡]을 매개로 서양 고전의 인문학적 기원을 돌아본다. 여신 무사(뮤즈)가 부르는 노래를 서사시로 옮겨적은 호메로스부터, 그리스와 로마의 인문주의를 번역의 형태로 매개했던 사상가 키케로, '나는 노래한다'고 선언하며 여신이 아닌 인문학자로서 시인 본인이 역사를 읊는 베르길리우스의 주체적 인문주의의 맥을 잇는 단테는 당대 지배이념인 그리스도교의 역사관을 장편 서사시 [신곡]에 담았다. 원래 제목이 '극(劇)'이나 '곡(曲)' 자체인 'commedia'였던 이 서사시는 이후 단테를 추앙하던 보카치오가 '신성하다(divine)'라는 의미로 앞에 'Divina'를 붙여 '신곡(神曲/Divina Commedia)'이 되었다.
고매한 라틴어가 아닌 대중적인 이탈리아어 방언으로 적어내려간 단테의 [신곡]은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혁명 이전에 씌어졌으나 루터의 독일어 성경 못지 않게 서양 인문주의 사상사에서 사상의 대중화를 이끈 가히 '혁명'적인 계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신곡]의 절정은 베아트리체를 향한 단테의 사랑이다. [신곡]의 첫머리에서 절망의 숲을 헤매던 단테에게 신의 거대한 프로그램인 지옥과 연옥을 안내하며 절망을 너머 희망으로 이끈 베르길리우스 또한 베아트리체의 계획이었고 인간으로 하여금 원죄를 짓게 한 아담과 인류를 대표하여 속죄한 예수 그리스도, 예수를 살해한 예루살렘을 멸망시킨 로마의 복수 또한 신의 역사라는 단테의 세계관의 중심에는 베아트리체가 오롯하게 서 있다.
그렇게 단테가 천국에 들어서면서 비로소 만나게 되는 베아트리체는,
단테에게는 희망의 '별'인 동시에,
신의 역사를 증명하는 단테 자신이었다.
40대에 현실에서 길을 잃고 '숲을 헤매던' 단테가 지옥과 연옥을 거친 후 천상에서 만난 베아트리체는 아마도 20대에 요절한 그 모습 그대로였을 게다.
단테의 마음 속에 남은 '희망'의 '별'로서의 그녀는 그가 '소망한 바의 실체'인 것이지 더이상 연모의 대상으로서의 여인이 아니었다.
베아트리체는 단테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너머 신의 역사를 보여주는 상징인 동시에 그 '희망의 실체'를 믿는 단테 본인인 것이다.
4.
"신앙이란 바라야 하는 것(소망/희망)들의 실체이다."
- 토머스 아퀴나스, [신학대전].
천상의 안내자 베아트리체 조차도 따라오지 못한 천국의 대단원에서 신의 대리자가 단테에게 '믿음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이에 대한 그의 답변은 중세 스콜라철학자 아퀴나스의 대답과 같다. 철학적으로 단테는 아퀴나스를 따르고 궁극으로 거슬러 오르면 아리스토텔레스에 닿는다. 도식적인 해석이기는 하나 플라톤의 이분법이 아닌 아리스토텔레스의 현실적 '형이상학'의 전통이다. 유물론 사상이 발전한 현대에 들어와서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관념론으로 분류되지만 단테까지의 중세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세계를 가장 이단적이고 현실적이며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최고의 '과학'이자 '철학'이었을 수도 있다. 다만 신학적 역사관과 철학을 견지하는 단테는 토머스 아퀴나스의 뒤를 따랐을 뿐.
그렇게 단테에게도 아리스토텔레스나 아퀴나스처럼 '신앙'이란 '희망'의 다른 이름이었고,
베르길리우스를 통해 지옥과 연옥을,
'베아트리체'를 쫓아 천국을 우리에게 보여준 이유가,
바로 우리들 마음 속 '희망'이라는 '별'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5.
결국 그녀는 떠났지만,
'베아트리체'는 여전히 남았다.
이후로도 'beatrice'는 내 이메일 계정이고 각종 아이디의 대표명이다.
그녀는 아마 나를 만났던 젊은날을 지워버리고 싶은 아픈 시간으로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돌이켜보건대,
당시 나의 '베아트리체'는 그녀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녀에 대한 미친 듯한 사랑도 결국 그녀를 사랑하던 젊은 나 자신에 대한 그것이었음을,
내가 쫓던 마음 속 '별' 또한 젊은날의 나 자신이었음을,
지금에서야 어렴풋이 알겠다.
당시 부대에서 그녀와 주고받던 수백통의 군사우편에서도 비슷한 말을 해댔겠지만,
당시야 뭐 열에 들뜬 나머지 뭔가 있어 보이려고 끄적인 거였다면,
중년의 지금에서는 그것이 우리의 '역사(history)'였다는 걸 진정 알 것도 같다.
결국,
당시 나의 '베아트리체'는,
내가 한때 사랑했던 '그녀'가 아니라,
젊음이라는 열병을 신앙과도 같이 앓던,
나 자신이었다.
당시 내가 단테의 [신곡]을 읽으며 쫓던 '베아트리체'는,
스스로에 대한 막연한 '희망'이었고,
내 마음 속 '별'이었던 거다.
마치,
연옥을 헤매던 단테처럼.
***
- [단테 '신곡' 강의](2002), 이마미치 도모노부, 이영미 옮김, <교유서가>,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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