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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Sep 24. 2022

종이를 접는 시간 - 2 : 2022년~

- 오늘도 종이를 접는다.

종이를 접는 시간 - 2 : 2022년~

- 오늘도 종이를 접는다.





1.


오늘도 종이를 접는다.


A4 용지 긴면을 4등분하고 정사각형 대칭면만큼 재단하여 자르면 A4 한 장에 지폐와 같은 비율의 종이가 4장이 나오고 짜투리로 좀더 작은 걸 2장 더 얻을 수 있다. '동청룡(東靑龍)'을 접으려면 재단된 종이 '원자재'가 8~9장 필요하니 A4 2장 이상이 필요하다. '서백호(西白虎)'는 7장이니 A4 3장, '남주작(南朱雀)'도 7장이니 A4 2장, '북현무(北玄武)'는 5장이니 A4 2장으로 동서남북 '4방신(四方神)'을 다 접는데 A4 용지가 총 7장 필요하다. 7장으로 '원자재'를 재단 후 그 짜투리로 좀더 작은 걸 총 14장 남길 수 있으니, 동서남북 사신 한 세트를 완성하는데 A4 용지 총 7장이 필요하다. A4 용지 14장을 재단하여 사신 두 세트를 접으면 그 짜투리 28장으로 조금 작은 사신 한 세트를 더 만들 수 있다.

정리하면, A4 용지 14장이면 동서남북 사신 두 세트와 조금 작은 한 세트로 총 세 세트의 '사신(四神)'을 접어서 동서남북의 사방을 지킬 수 있다.


나는 마치,

미켈란젤로가 고전적인 조각의 원자재가 되는 대리석을 다듬듯,

하얀 A4 용지를 여러 장 재단해 두고,

마치 그 르네상스 거장이 돌 속에 숨은 영혼을 깨우듯,

지폐 크기의 하얀 종이를 조각하듯 접어댄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사신'을 접는다.



2.


작년 12월, 경기도 오산에서 홀로 자취를 시작했을 때는 '주간 문사철'에 올리는 서평이나 습작글들이 넘쳐났다. 매주 책 한 권 읽고 글 한 편 쓰는 '주간 문사철'을 넘어 퇴근 후 남아도는 혼자만의 시간으로 그 동안 미뤄두었던 온갖 어려운 책들을 거의 다 씹어먹고 나름의 서평으로 정리했다. 휴대폰에 미리 써 둔 것을 블로그에 저장했다가 매주 금요일 저녁에 한 편씩 다듬어서 브런치에 올렸다. 자취 전에는 한 주를 마무리하고 매주 금요일 밤이나 토요일 아침에 글을 쓰는 시간이 기다려지는 묘미가 있었는데 자취생활에서는 그런 재미는 좀 덜 했지만 그래도 매 시간시간이 온전히 책읽고 글쓰는 시간이라 좋았다.


그러던 어느날, 읽은 책과 써둔 글이 넘쳐난다는 생각에 다른 취미를 생각하다가 우연히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1984년 경부터 익혔던 종이접기가 생각났고 '인지(人紙)' 산업, 종이와 사람이 전부인 보험사 근무의 특징을 살려 A4 용지를 이용하여 오랫만에 종이접기를 해 보았다. 38년만에 접어보는데도 불구하고 신기하게 거의 전부 기억이 났다. 어려서 얼마나 접어댔으면 40년 가까이 손이 기억할까 싶었다. 그 손을 따라서 머릿속을 뒤져보니 오래전 종이접기 비법을 전하던 책의 도면이 무의식의 저 구석에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이미지 파일로 저장되어 있는 듯 했다.



이후 정사각형으로 재단한 종이 한 장으로 필살기 6종을 접다가 더 난이도 높은 게 없나 싶어 유투브를 검색하던 중 'LQD'라는 베트남 유투버의 영상를 보고는 이번에는 외려 '이 어려운 걸 접는 게 과연 사람인가' 자문을 하며 자취방에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따라 접었더니 어린 시절 알았던 1950년대 일본괴수 고질라와 킹기도라는 물론 '바하무트'라 불리는 루시퍼도 접게 되었다.

마침내 서양의 드래곤(dragon)이 아닌 동양의 용(龍)을 필살기 10호로 마무리할 즈음, 새벽의 자취방으로 '사신(四神)'이 찾아왔다.



처음 자취를 시작할 때 며칠간 잠자리가 심히 뒤숭숭하여 동서남북 방향을 보았더니 서쪽으로 머리를 두고 잤음을 알았다.

예로부터 북쪽은 춥고 어둡고 막혔으며 서쪽은 죽어나가는 자리라고 나는 배웠다. 우리 조선의 한양 사대문  북쪽의 숙정문은 아예 산으로 막혀서 사용하지도 않았고 서쪽의 돈의문은 노량진이나 마포 등지를 통해 들어온 서역의 신문물이 사대문 안으로 들어오는 관문인 한편 나갈 때는 이미 죽은 사람실려 가거나 사형수들이 나가 죽는 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머리를 남쪽으로 바꾸었는데 심리적인 이유겠으나  이후로 잠을  자게 되었다. 아마도 자취생활에 적응하게  것이리라.

해가 뜨는 동쪽도 길하지만 풍수지리 관점에서는 볕이 잘 드는 밝은 남쪽이 좋다. 왕은 항상 남면하는 상석에 앉았다. '배산임수(背山臨水)'도 그러한데 산을 중심으로 그 남쪽과 물을 중심으로 그 북쪽이 바로 그 밝은 땅이다. 그곳의 대표가 바로 '한양(漢陽)'이다. 무학대사가 삼각산 남쪽과 한강의 북쪽의 길한 지금의 서울 강북 땅을 지정했고 정도전이 성리학에서 사방을 지키는 덕목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각 포스트로 삼아 신국가 조선의 수도로서 한양의 도시개발계획을 닦았다.

사대문의 동쪽 흥인지문과 서쪽의 돈의문, 남쪽의 숭례문과 북쪽의 숙정문은 각 동서남북의 '인의예지'를 상징한다. 북쪽의 꾀할 '정(靖)'은 꾀 '지(智)'와 같다. 서울 종각인 '보신각'의 '신(信)'은 중앙을 상징한다.


아무튼, 문득 나를 찾아온 '사신'을 떠올리며 베트남 유투버 'LQD'로부터 사사받은 용머리와 피닉스 머리, 호랑이 머리 및 각종 기괴한 다리와 발톱, 그리고 날개와 비늘 등의 기술을 응용하여 용과 봉황, 범과 거북까지 내처 완성하고 말았다. 서책을 멀리하여 '주간 문사철'이 거의 '까막눈' 수준까지 이르렀으나 손이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게 나는 홀로 끊임없이 접고 또 접었다. 그리고 완성된 작품들은 고마운 사람들에게 주었다. 그들이 나를 기억하기 위해 간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또한 내가 수십년 후 지금은 거동을 거의 못하시는 연로한 내 아버지처럼 되었을 때, 눈도 침침하고 정신도 혼미하여 문자와도 멀어졌을 때, 손의 습관으로나마 고마운 사람들에게 접어서 건넬 수 있도록 한 살이라도 젊을 시간에 접고 또 접어대는지도 모른다. 한참을 이러고 나면 근 40년 후에도 정확하게 기억난 내 종이접기 필살기 1호처럼 나의 '사신'들 또한 나중에 한 30년이 지난 후에 어렴풋이 기억나도록.




3.


"사천왕은 원래 인도 재래의 민간신이었다. 수미산 높은 곳에 살며 제석천의 명을 받들어 중생의 세상을 지켜주는 호세신이자 방위신이었다. 불교가 일어나며 인도 재래의 신인 제석천이나 범천을 받아들였둣 사천왕도 불교에 흡수되어 부처님을 호위하고 불법을 지키는 신으로 변모한다."

- [사찰 속의 숨은 조연들], '2. 절집의 외호신-사천왕', 노승대, <불광출판사>, 2022.



연로하신 내 아버지가 앉아계신 서울 우리집 거실과 오산의 자취방, 사무실의 내 책상과 동료들을 지키는 '사신'은 음양오행과 도교의 신들이다.



도교적 영향으로 유행한 '사신도'는 동쪽은 '청룡(靑龍)', 서쪽은 '백호(白虎)', 남쪽은 '주작(朱雀)', 북쪽은 '현무(玄武)'이며, 가운데는 '황룡(黃龍)'이다. 전설의 동물인 용과 봉황을 등장시켰으되 지상에서 가장 강한 호랑이와 가장 오래 사는 거북을 등장시킬 때도 '신화화'된 모습이다. 우리가 중고등학교 미술교과서에서 본 고구려 '사신도' 고분벽화의 표본은 진파리 고분이나 평양 대동강 서쪽의 강서대묘와 중묘다.



한편으로 오행'은 각기 '동서남북(東西南北)'과 '중앙(中央)'을 이른다. '동(東)'은 '목(木)'이요 '청(靑)색', '서(西)'는 '금(金)'이요 백(白)색', '남(南)'은 '화(火)'요 '적(赤)색', '북(北)'은 '수(水)'요 '흑(黑)색'이며, 만물을 낳는 '토(土)'는 '중앙(中央)'이요 '황(黃)색'이다. 위에서 말한 유교의 '인(仁)-의(義)-예(禮)-지(智)'와 '중앙'의 '신(信)'이며, 불교의 '사천왕(지국-광목-증장-다문)'과 '중앙'의 부처에 대비되는데, 각 방향에 색깔을 입히면 '도교'적 색채가 함께 입혀진다. 동쪽을 지키는 용은 청룡이며 지국천왕은 얼굴이 푸르다. 북쪽을 지키는 거북은 현무이고 북쪽 다문천왕의 얼굴은 검다. 서쪽의 범은 백호이고 광목천왕은 희다. 남쪽의 봉황은 붉은새 '주작'이고 증장천왕의 표정은 붉다.



불교의 사천왕은 인도 재래신에서 기원한다. 원래는 부처를 지키는 야차들을 이르는 금강역사들이 동서남북 사방의 신으로 변천한 듯 하다. 불법을 지키는 무적의 독고저라는 무기는 아마도 제우스의 번개와도 같을텐데 이 독고저는 매우 단단하여 금강이라 불렸고 인도의 제석천이나 불교의 부처 대신 이 독고저(금강)를 들고 신을 호위하는 야차들이 금강역사의 기원이었다. 이들이 역시 인도의 재래신앙인 '사천왕'으로 대체된 것이다.



 사천왕이 사는 곳은 불교 세계관의 중심산인 수미산의 8부 높이 즈음에 한 줄기 산맥으로 돌출하여 수미산을 감싸고 있는 건타라산이다. 건타라산은 동서남북 사방에 큰 봉우리가 있고 이곳에서는 마이산을 포함한 칠금산 너머 먼 바다의 사대주가 바라다보인다. 사천왕은 각각 이 동서남북 봉우리에 궁전을 짓고 수많은 자식과 부하들을 거느리며 산다는 것인데 각각의 방향에서 그 땅을 관할하는 불가의 사방신이다.


얼마전 우리 영화 '사바하'에서 사이비종교가 믿는 신이 사천왕신이었는데 세평과는 별개로 내가 딱 좋아하는 스타일의 영화라 나는 두 번 이상 보았다.



4.


나이가 들수록 '귀신'을 믿게 된다.

젊어서는 스스로 '유물론자'로 부르며 온갖 종교와 신앙, 제례와 의식을 거부했다.

중년의 지금에 비로소 신앙이 생겼다는 건 아니다.

다만, 내 주변의 보이지 않는 '물질'들을 믿는 종교적 '유물론자'가 된 듯 하다.


'신'을 믿는 게 아니다.

제사를 지내겠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모든 '물질'은 하나의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모습과 방식으로 돌아다닌다는 믿음이다.

'귀신'이라 해서 머리를 풀어헤친 사람의 형상이 아니라 지금의 나와는 다른 형상으로 이 세상에 또 다른 '물질'의 형태로 존재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도교의 '신선'이 저 먼 곳이기는 해도 우리와 같은 세계에 사는 존재인 것처럼 '혼비백산'한 귀신, 즉 하늘로 날아간 '혼'과 땅으로 흩어진 '백'은 다양한 형상으로 우리 곁에서 공존하므로 종교적 신처럼 누가 누구를 심판하고 자시고 할 건 없다.


그저 나는,

나와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고 공존하는 그 모든 것들을 '관념'이 아닌 '물질'로 인정하는 '유물론자'일 뿐이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홀로 종이를 접는다.



***


1. [잊혔거나 알려지지 않은 사찰 속 숨은 조연들], 노승대, <불광출판사>, 2022.

2. [고구려 고고학], 중앙문화재연구원 엮음, <진인진>, 2020.

3. [고구려의 황홀, 디카에 담다], 이태호 글/사진, <덕주>,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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