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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Mar 05. 2020

[면화의 제국](2014) - 스벤 베커트

'문명'과 '야만'이 하나로 연결된 [면화의 제국]

책소개) '문명'과 '야만'이 하나로 연결된 [면화의 제국]
- [면화의 제국 - A New History of Global Capitalism](2014), 스벤 베커트 지음, 김지혜 옮김, <휴머니스트>, 2018.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맨먼저 부르주아(상품) 사회의 가장 단순하고 가장 평범하고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대량적이고 가장 일상적이며 헤아릴 수 없이 목격되는 단계, 즉 '상품교환'을 분석하고 있다. 그 분석은 이 가장 단순한 현상 속에서(부르주아 사회의 이 '세포' 속에서-개별로서의) 현대사회의 모든 모순(혹은 '맹아')을 폭로한다. 계속되는 서술은 이 모순의 발전('성장'은 물론 '운동'도)과 그 개별 부분들의 총합 속에서 이 사회의 발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 방식은 또한 '변증법 일반'의 서술(내지 탐구)의 방법임에 틀림없다... 가장 단순하고 가장 평범하고 가장 대량적인 것 등등으로부터 시작하면,... 이미 이 속에는 (헤겔이 천재적으로 지적하였듯이) '개별은 보편이다'라는 '변증법'이 존재한다... 이리하여 대립물(개별적인 것은 보편적인 것에 대립한다)은 동일적이다.
'변증법'은 다름아닌 (헤겔과) 마르크스의 '인식론'이다."
- V. I. Lenin, [철학노트], <변증법의 문제에 대하여>, 1915.

레닌에 의하면, 마르크스가 [자본론]이라는 '정치경제학' 이론서를 통해 자본주의 체제를 분석하는 방식은 가장 단순하지만 자본주의 일반을 담지하는 '상품'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시작으로 그 운동을 일반화하는 것이었다. 현실에서는 체제 속에서 '상품' 개념을 추출했으나, 서술방식은 헤겔이 [정신현상학]이라는 주저에서 '이성'의 자기운동을 통해 '절대이성'이 지배하는 관념론적 세계관을 완성했던 방식을 따랐던 것인데, [자본론을 읽자]던 알튀세에 의하면 [자본론]은 현실을 구체적으로 분석한 것이 아니라 당시 영국의 정치경제 체제를 순수하게 '이론적으로' 연구한 저서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의 주저 [자본론]은 어느 특정한 시대가 아닌 자본주의 체제 일반을 분석하고 '정치경제학'적으로 비판한 책이다.

"... 면화는 경작지와 공장이라는 두 단계의 노동집약적 생산과정을 거쳐야 했다. 사탕수수와 담배는 유럽에서 대규모 산업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양산하지 않았지만 면화는 그랬다. 담배는 새로운 거대 제조기업의 등장을 초래하지 않았지만 면화는 그랬다. 인디고를 재배하고 가공하는 과정은 유럽의 제조업자에게 거대한 새시장을 제공하지 않았지만 면화는 그랬다. 아메리카에서 쌀경작은 노예제와 임금노동의 폭발을 가져오지 않았지만 면화는 그랬다. 그 결과 면산업은 다른 어떤 산업과도 다르게 세계 전역에 널리 분포했다. 새로운 방식으로 여러 대륙을 연결한 면화는 근대세계를 이해할 열쇠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고, 근대세계의 특징인 심각한 불평등과 글로벌화의 오랜 역사,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본주의의 정치경제를 이해할 수 있는 열쇠도 함께 제공한다."
- S. Beckert, [면화의 제국], <서론>

미국 근대역사가 스벤 베커트(Sven Beckert)는 [면화의 제국 - 글로벌 자본주의의 새로운 역사](2014)라는 저서를 통해 자본주의 체제를 일관하는 역사를 분석하면서 '면화'라는 구체적 사물을 짚어낸다.
사람들을 농촌에서 쫓아내어 도시의 '임금노동'에 기반한 거대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출현시킨 것, 거대 산업의 발전, 글로벌 신시장 개척 등을 가능케 한 것은 '면화'의 역사 속에 다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추상적 '정치경제학 비판'이 아니라, 미국의 '자본주의 역사'의 관점에서 구체적 '상품원료'를 캐내고 있다.
[면화의 제국]은 방적/방직 산업의 원료, '면화'를 통해 현대 글로벌 자본주의의 역사를 서술한 책이다.

[면화의 제국]은 19~20세기 '제국주의' 시대를 '전쟁자본주의'와 '산업자본주의'로 구분한다.
'전쟁자본주의'는 노예제(강제노동), 식민지(원주민) 약탈, 제국팽창, 무력동반교역, 사람과 토지를 장악한 기업가 등을 특징으로 하는데, '면화' 재배 및 방직산업의 성장과 신시장 개척을 위해 강력한 '국가'가 필요해진 상인(또는 '자본가')들이 이미 한계에 다다른 '흑인노예제'를 '임금노동'으로 대체하면서 '산업자본주의'로 넘어간다.

"산업자본주의가 국가의 힘을 더 증폭시키면서도 눈에 덜 띄게 했다는 점이 역설적이다... 국가의 역량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지만 그럴수록 전세계 국가들의 역량은 불평등해졌다."
- [면화의 제국], <3장. 전쟁자본주의가 치른 대가>

미국의 역사가 중심이므로 이 책에서 '세계를 뒤흔든 전쟁'이라며 9장에서 다루는 사건은 1861년 미국 남북전쟁이다. '흑인노예제'에 기반한 면화재배에 한계가 드러나면서, '자유노동'이라는 명목으로 '임금노동'이 태동하던 미국 북부연방과 남부연합의 대지주들간의 내전을 거쳐 '임금노동'에 기반한 자본주의적 혁신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남북전쟁으로 인해 기존 수공업적 면화생산이 주를 이루던 인도, 중국, 오스만제국, 이집트 등의 지역에서도 급격한 공업화가 추진되었고, 전세계적으로 자본주의의'글로벌화'가 시작되었으니 '세계를 뒤흔든 전쟁'이라는 것이다. 자본주의 발산지 유럽은 물론 전세계 식민지 전체적으로 대공업과 '임금노동'으로의 본격적 전환의 계기가 남북전쟁이라는 것인데 다분히 미국중심적 사고이기는 하나, 어쨌든 국가가 자본주의 혁신의 주요장치로 등장하는 '국가자본주의'의 시작이다.
'제국주의' 국가는 "실력행사에 적극적인 전혀 새로운 형태의 국가"(9장)인 것이다.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자본가들에게는 한때 그들의중요한 권력의 원천이었던 강력한 국가에 의지하는것이 이제 가장 크고 유일한 약점이 되었다. 그러한 국가 덕분에 결국 노동계급이 작업현장과 정치에서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사실 자본가들에게 국가는 양면적인 존재였다. 국가는 지구전역의 농촌지역에서 노동력을 동원한 일을 포함해 산업자본주의 출현을 가능하게 했지만 자본가들에게는 '덫'이 되기도 했다. 노동자들이 노동조건과 임금을 향상시키기 위해 국가정책에 접근해 이용했기때문이다."
- [면화의 제국], <13장. 남반구의 귀환>

대공업과 대자본가, 독점자본의 출현으로 사실 '자유노동'이 아닌 '강제노동'으로서 '임금노동'의 본질이 드러나고 노동계급과 노동자 진보정당이 '노동시간단축'과 '보통선거권 쟁취' 투쟁을 통해 국가권력에 개입하게 되면서 자본주의 '국가'는 자본가들에게 '양면성'을 갖게 되었고, 노동계급은 끊임없이 국가권력을 둘러싼 투쟁을 전개한다.
한편으로, '면화'를 시작으로 산업자본주의를 발전시킨 대자본과 국가는 신시장 개척을 위해 철도, 항만 등의 기반산업은 물론 '정보'와 '지식'을 독점하면서 자본주의의 글로벌화를 선도한다.
이러한 근현대 자본주의 역사 전체가 '면화'의 역사 속에 스며들어 있다는 것이다.

"폭력의 여러 형식들 중에서도 특히 노예제, 식민주의, 강제노동은 자본주의 역사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핵심에 놓여 있었다. 시장을 창출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특정지역에서 특정한 방식으로일할 것을 강요하는 일은 '면화의 제국' 전 역사를 통틀어 변함없이 등장하는 요소였다."
- [면화의 제국], <14장. 에필로그: 씨실과 날실>

'면화'의 역사를 통해 '글로벌 자본주의'의 역사를 서술하는 미국 역사가인 저자가 마르크스 [자본론]처럼 자본주의 체제 일반을 비판하고자 했을지, 최근 유행하는 [사피엔스]류의 '빅히스토리' 서술방식을 현대 자본주의 분석에 적용해본 것인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20세기 '제국주의'로 인한 '탈식민화' 투쟁에서 '면화'로 시작된 "최초의 글로벌 산업의 진화와 그것을 모델로 삼은 다른 여러 산업의 진화에서는 '문명'과 '야만'이 하나로 연결"(14장)되어 있다는사실은 확인할 수 있다.

(2020년 2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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