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ake one's proper station"
"Take one's proper station"
- [국화와 칼], 루스 베네딕트, 1946.
"... '국화(The Chrysanthemum)'는 철사 고리를 떼어 버리고, 그처럼 철저한 손질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답게 피어 자랑스러울 수 있다... '칼(The Sword)'이란 공격의 상징으로서가 아니라, 이상적이며 훌륭히 자기 행위에 책임을 지는 인간의 비유이다."
- [국화와 칼], <12. 어린아이는 배운다>, 루스 베네딕트, 1946.
1.
내가 중고등학생 시절이었던 1980년대에 우리나라는 일본과 정식 문화교류를 하지 못했다.
일제강점기의 식민지 시절을 벗어난지 반세기도 채 안되었던 당시에는 대놓고 일본의 대중문화를 국내로 들여오고 공유할 수 없었다고 한다. 물론 그보다 더 어렸던 1970년대의 나는 매일 TV에서 '일본만화'를 보고 자랐고 부산 같은 데서는 '코끼리 밥솥' 같은 일제 전자제품들이 밀매되었으며 중동에 세 번 다녀온 나의 아버지는 귀국할 때 '소니' 전축과 '카시오' 전자오르간을 사오셨지만, 1998년 전까지 우리는 대놓고 일본문화를 접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그때까지도 줄곧 보고 자란 만화가 전부 일본만화라는 사실을 알게 된 1980년대 후반의 우리들은 학교 친구들과 자연스레 대놓고 일본문화를 접하게 되었다. 어른들이 막아봐야 소용없다. 중고생인 우리들은 청계천 일대를 다녀온 친구들을 통해 일본만화와 잡지, 소설 등을 몰래몰래 '대놓고' 돌려보았다. 어려서부터 시각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나였지만 기이하게도 나는, 해적판 일본만화는 [공작왕]과 [북두의권], [드래곤볼] 외에는 몰랐는데, 나는 어쩌다 내 차례로 돌아온 일본 음란소설을 좋아했다.
학교 동급생을 통해 알음알음 몰래몰래, 그러나 대놓고 유통되던 일본 춘화잡지나 음란만화는 자극적이었으나 왠지 모를 죄의식을 동반한 반면 소설은 '독서'라는 행위 아래 두고두고 곱씹게 되는 맛이 있었다. 나는 번역도 엉망이었을 해적판 일본 음란소설을 통해 '육봉'을 알았고 '69(식스나인) 자세'가 뭔지 알게 되었으며 미찌꼬가 남자의 얼굴을 'M'자 다리로 깔고 앉은 장면을 상상했다.
돌이켜 보면, 시각예술을 더 좋아하던 내가 춘화나 만화보다 소설을 더 선호했던 이유는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2.
2차 대전의 태평양전쟁은 소련이 동유럽 전선을 방어하고 동아시아로 진출하면서 점차 아시아 대륙에서 밀려나던 일제가 태평양 너머 미국을 직접 타격한 사건이다. 1942년부터 미국과 일본의 대전이 불붙었고 1944년 미국무부는 대체 이 아시아 인종의 실체가 무엇인가 궁금했는지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Ruth Benedict : 1887~1948)에게 의뢰하여 국책 '연구서'를 낸다.
전쟁 중이었으므로 베네딕트는 일본인을 연구하면서 일본땅 한 번 밟지 않고 미국에 사는 일본인들과의 인터뷰와 관련 문헌들을 토대로 펜대를 굴려서 중대한 국책 용역사업을 완수했는데, 이 책이 바로 미국인이 처음 일본인을 연구한 '고전'인 [국화와 칼](1946)이다.
지금이야 세계인들이 서로서로 교류하니 별 것 아니겠지만, 태평양 미일전쟁 중의 미국인들이나 1980년대의 나같은 중고생들이나 일본에 대해 대중적으로 알 길이 묘연했을 게다.
1980년대의 내게 일본은 자체가 '음란의 제국'이었다. 1940년의 미국은 루스 베네딕트의 연구를 통해 일본을 '국화'와 '칼'이라는 상반된 이미지의 모순덩어리로 이해한 듯 하다. 요컨대, 서구인에게 정체불명의 일본인은 나라의 꽃인 사쿠라보다 천왕의 상징인 '국화'를 더 좋아하고 겉으로는 겸손한 것 같지만 속으로는 오랜 봉건시대 사무라이의 '칼'도 지니고 있다는 그런 식.
지금이야 그게 어쨌다는 거냐 싶겠는데, 당시는 기독교적 선악 이분법에 익숙한 서구인에게 동양인의 '이원성'(같은책, <12장>)'과 양면성은 이해하기 힘든 모순이라고 본 듯 하다.
[국화와 칼]의 우리말 완역은 내가 태어난 1974년에 되었다는데 이 때 <해설>을 쓴 국내 인류학자 이광규 교수는 이 책을 두 번은 읽어야 일본과 우리의 차이를 알 수 있다고 해설하고 있다. 즉, 처음에는 서양과 동양의 차이가 보이고 다음에야 같은 동양인 일본과 우리의 차이가 보인다는 말이겠다. 아무튼, 서양인 루스 베네딕트의 결론은 일본인들은 '국화'와 '칼'로 상징되는 동양적 '모순'을 지니고 있지만 메이지유신 같은 빠른 근대화를 보면 '천왕'이라는 허위에 얽매인 '국화'도 제대로 피어낼 수 있고, 세평에 얽매여 스스로를 옭죄는 '칼' 또한 책임있는 인격으로 전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전제조건은 일본으로 대표되는 '동양'이 '서양'의 지배와 영향을 잘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일게다.
[국화와 칼]의 배경은 19세기말 메이지유신으로 서구적 '근대화'를 잘 받아들인 일본인들과 결국 서양에 대들다가 패전하고 미국의 지배를 받게 된 일본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일본은 유럽의 패전국인 독일이나 이탈리아와 달리 패전을 순순히 받아들였단다. '정신승리'로 무장하고 목숨걸고 항전하던 사무라이 '칼'이 천왕의 '국화'가 이제 그만 싸우자고 선언한 순간 일사분란하게 순종적으로 돌변하여 미국의 지배를 달게 받아들이기까지 했단다. 일본은 전후 재건과 유럽 '68 혁명'의 여파 속에서도 '혁명' 같은 상황은 없었다. 변화와 발전, 그리고 퇴보 속에서도 여전히 고요한 정체된 사회 같은 무언가가 있는 듯 하다. 왠지 항상 그 자리가 '알맞은 위치 갖기(Take one's proper station)'인 듯이 말이다.
어쩔 수 없는 시대적 한계이겠지만, [국화와 칼]이 일본문화 이해의 '고전'인 이유는 서양의 관점에서 처음 정리된 동양에 대한 인류학적 보고서이기 때문이자 더 나아가 승전국인 미국의 '국책보고서'였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즉, 수십년 전 지식인들에게는 귀한 책이었을지 모르나 지금의 내게는 '고전' 치고는 별로 배울만한 게 없는 책이다.
3.
"Take one's proper station..."
- [국화와 칼], <3. 각자 알맞은 위치 갖기>, 루스 베네딕트, 1946.
일본이 단지 '음란의 제국'만이 아니었음은(물론 어린 내가 본 일본문화가 음란문화 뿐이었기 때문이었지만), [국화와 칼]에 의하면 '각자 알맞은 위치 갖기(같은책, <3장>)'로 설명될 수 있다.
뒤에서는 호박씨 다 까고 살지만 기독교적 서양이나 유교적 동양(중국과 우리)에서는 '성(性)'을 대놓고 까발리지 않는다. 그러나 [국화와 칼]의 분석에 의하면 일본인에게 성적인 억압은 없다. 아주 성의 노예가 되지 않는 한, 사람이 '충'이나 '효' 또는 '의리'나 '의무'와 같은 세인의 평판에 체면을 상하지 않는 한, 음란한 것들은 얼마든지 허용된다. 즉, '인의'가 주요덕목인 중국식 가치관과 달리 세상의 평판에 '오명(같은책, <8장>)'을 입지 않는 한, 모든 도덕률과 덕목이 '각자 알맞은 위치(proper station)'에 있는 한, '성' 뿐만 아니라 무엇이든 대놓고 허용되는 것이다.
[국화와 칼]에 따르면, 이런 문화의 뿌리는 일본의 오래된 봉건적 신분제에서 유래한다.
일본에서 봉기는 있어도 '혁명'은 없는 이유도 그렇고, 메이지유신이 '진보'라기 보다는 봉건적 막부정치를 탈피하여 천왕정치의 '복고'였다는 [국화와 칼]의 관점 또한 그렇다. 세상의 체면을 중시하고 그것을 지키는 것이 자기에 대한 '의리'이자 '의무'라 생각하며, 자신을 모욕한 자에 대한 극단적 복수도 은혜를 갚는 것과 동일하게 '의리'로 인식되고 어쩔 수 없이 '의리'를 지킨 후 집단 할복이나 자살 등을 기꺼이 행하는 문화 또한 '각자 알맞은 위치'에서 이뤄지는 한 바람직한 것이라고 일본인들은 판단한다는 거다.
"어린 새는 먹이를 찾아 울지만,
사무라이는 이쑤시개를 물고 있다."
- 일본속담.
근대화에 맞서 칼을 물고 거꾸러진 일본의 사무라이들의 '가오'는 지금도 겸손한 표정의 일본인들 습성을 지배하고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전력이 안되면서도 천왕을 향한 '충'에 목숨을 걸고 육체적 한계를 정신으로 극복한다는 가미가제식 '정신승리'의 근원은 먹은 게 없지만 배고픔 따위는 정신력으로 이겨내며 '이쑤시개를 물고' 있는 사무라이 정신이다.
'선악'의 이분법에 얽매이지 않고, 선이든 악이든 '각자 제자리'에만 있다면 용인한다는 일본인의 정신은 악 또한 선에서 나오고 어둠이 없다면 밝음도 없다는 보편적인 '모순'의 인식과 그리 달라 보이지는 않는다. 이는 동서양을 막론한 사고가 된지 오래다. 다만 [국화와 칼]을 통해 일본인들의 경우 굳이 그 특성을 꼽자면 '각자 알맞은 위치 갖기(Take one's proper station)'가 되겠다. 그런데 봉건적 습성인 그 특성이 무슨 대수인가. 나 또한 개인적으로 루스 베네딕트처럼 전근대적인 일본식 봉건 '신분제'보다 '평등'을 더욱 중시하나 내가 보는 '평등'은 베네딕트 여사가 추앙하는 미국의 자본주의식 법적 '평등'과 다르다. 나 또한 '천왕' 같은 어이없는 군주제 따위는 개나 줘버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영국이나 북유럽에도 아직 낡아빠진 '군주제'가 건재하고 우리나라도 왕은 없지만 제왕과도 같이 공고한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을 중심으로 한 뿌리깊은 신분의식이 있는데.
지금은 [국화와 칼] 식의 잣대나 들이대는 게 아니라 세계체제에 속한 그 어느 민족이 되었든 낡은 계급체제와 신분의식을 무너뜨리고 실질적으로 '평등'하게 다시 세워야 할 시기 아닌가.
'알맞은 위치'란 그 낡은 것들의 파괴를 통해 다시금 정립된다.
***
- [국화와 칼(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1946), Ruth Benedict, 김윤식/오인석 옮김, <을유문화사>, 1974~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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