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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Dec 23. 2022

[자치통감을 읽다](2015) - 장펑/김영문

천하위공(天下爲公), 이인위본(以人爲本)

천하위공(天下爲公), 이인위본(以人爲本)

- [자치통감을 읽다], 장펑, 김영문 옮김, 2015.





"사마광이 [자치통감]을 편찬하게 된 고충도 역사를 통해 미래 사람들에게 자신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을 제공하고 거기에서 더욱 양호한 정치를 이끌어내기 위함이었다. 송나라 신종은 [자치통감]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 일을 거울로 삼아 치도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鑒於往事 有資於治道).' 이것이 바로 '자치통감(資治通鑑)'이란 제목의 유래다. 치국의 경험 제공을 목적으로 삼아 정치가의 안목으로 역사를 새롭게 선택하고 새롭게 해석하는 것, 이것이 바로 기왕의 모든 사학 저작과 구별되는 [자치통감]의 가장 큰 특징이다. 만약 우리가 한마디 말로 [사기]와 [자치통감]의 차이를 구별해야 한다면, '[사기]는 문학가가 쓴 역사이고 [자치통감]은 정치가가 쓴 역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자치통감을 읽다], <서문>, 장펑, 2015.



중국의 역사서 '24사' 또는 '25사'의 제일 앞줄은 사마천의 [사기]다. 현재는 이들 모두 '정사'로 인식되지만 사마천의 [사기]나 반고의 [한서]가 처음부터 '정사'였던 것은 아니었다. 부친의 대업을 이어받아 장대한 역사서를 완성하려던 사마천은 한무제로부터 핍박을 받았고 반고조차도 처음에는 감히 사사롭게 역사를 서술한다는 행위 자체가 불경하다 하여 환영받지 못했다. 즉, 이들은 당시 절대권력자의 명을 받은 어용역사학자들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통사로서 [사기]와 전한 단대사로서 [한서]는 '기전체' 서술의 표본이 되었다. 공자의 [춘추]로부터 유래된 연대기별 '편년체'와 달리 '본기'와 '열전'이 서로 교차하는 '기전체'는 많은 역사서의 거울이기도 하다.

그리고 한편에는 공자의 [춘추] 이후 여전한 '편년체' 대표작이 하나 있다. 바로 북송 정치가 사마광의 [자치통감]이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68


북송의 관리 사마광은 역사서 [통지(通志)] 8권을 지어 영종에게 바쳤다. 영종의 찬사를 받은 사마광은 이후 신종에 이르기까지 황제의 지원 하에  294 300만자의 대역사서를 완성하는데 최초 [통지] 명명된  역사서는 신종의 '서문' 따라 [자치통감(資治通鑑)]으로 불리게 된다. '지난 일을 거울로 삼아 치도에 도움을 받을  있을 것이다(鑒於往事 有資於治道)'라는 말에서 유래한 '자치통감' 다스림의 자산으로 삼기 위해 역사의 거울을 통괄한다는 의미와 같다.


상하이 푸단대학 장펑 박사는 [자치통감] 전문가로서 사마광의 [자치통감]을 [대학]의 '수신'과 '제가' 나아가 '치국' 또는 '치도'의 범주로 구분하여 읽고 해설한다. 우리 중국학자 김영문 선생님이 번역한 [자치통감을 읽다](<흐름출판>, 2016)의 원제목은 '덕의 정치에서 필요한(德政之要) 자치통감의 핵심 지혜' 정도 되겠다.




"다스림의 요체는 사람을 잘 쓰는 것보다 앞서는 것이 없다."

- [자치통감], 제73권, 사마광, 11세기.



왕안석의 '신법' 운동 과정에서 급격한 개혁을 반대한 사마광은 얼핏 '보수파'의 영수급으로 알려진다. 실제로 [자치통감]을 지원하며 제목까지 지어준 신종이 신법을 지원하면서 사마광이 [자치통감]을 저술하던 서국을 개봉에서 낙양으로 쫓아내기도 했다. 그러나 사정이 간단치만은 않다. 왕안석은 개혁을 위해서 사람을 버리고 제도를 택했고, 사마광은 제도만이 아닌 사람을 선택한 점도 있다. 제도도 중요하고 사람도 공히 중요하다. 그러나 무릇 중요한 시기에는 양자택일을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장펑의 [자치통감을 읽다]에서는 사마광이 "인간과 법의 '변증법적 관계'를 매우 깊이있게 인식"(같은책, <서문>)한 점이 그의 고귀한 점이라고 쓰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사마광은 [자치통감]을 통해 '인간'의 '덕'과 '인' 같은 '품성'을 앞세웠다.  '수신'에 성공하거나 실패한 인물들과 가문을 잘 다스려 후세에 길이 남거나 사리사욕으로 가문을 망친 '제가'의 사례들, 이들에 의한 '치국'의 경험들을 각 권에 담고 있다. 물론 번잡한 역사서들의 요점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자 [자치통감] 저술을 시작했음에도 1,400년을 아우르다 보니 사마광 스스로도 294권 300만 자의 이 졸린 책을 다 읽은 자가 왕승지라는 학자 한 사람 뿐이라고 인정했듯, 일반 독자가 [자치통감]을 다 읽을 수는 없다. 그래서 [한 권으로 읽는 자치통감](푸창 편역, 2017) 같은 책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



홀로 있을 때도 근신(신독)하고 대국적 관점으로 자기절제하는 정신으로 '수신'한다.

재능보다는 덕을 우선으로 자식교육에 힘쓰고 검약하는 '제가'를 이룬다.

그리고 궁극에는 올바른 '치국(치도)'에 이른다는 큰 흐름은 비록 수신과 제가, 그리고 치도가 각 단계에 따라 순서대로 맞아 떨어지는 기계적 절차일 수는 없다 하더라도, [자치통감] 전문가 장펑이 읽어주는 북송의 대표적인 사대부인 저자 사마광의 일관된 방향이자 흔들림 없는 지침이다.


사마광은 전국시대의 시작부터 한나라와 삼국시대 및 5호16국을 지나 당나라의 역사를 담으면서도 사마천과 같이 '문학'적 서술을 피하고 '정치가'로서 글을 이어간다. 당나라 유명시인 이백과 두보가 [자치통감]에 등장하지 않는 이유다. 정치가 사마광의 역사거울이 주로 비추고자 하는 것은 오로지 '국가의 흥망성쇠와 백성의 행복지수'(장펑의 같은책, 서문>)다.

그러므로 장펑이 읽어주는 [자치통감]의 결론은, "천하위공(天下爲公), 이인위본(以人爲本)"이다. 즉, 천하는 사유화되면 안되고 모든 사람이 공유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사람이 근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올바른 법과 제도에 따라 국가가 운영(依法治國)되어야 하나, 그 바탕은 '문화'와 교양의 힘이다. 후한 광무제 유수가 군웅할거의 전쟁터에서도 탁무라는 유학자를 귀하게 모시면서 문화에 따른 치국을 준비하여 무식했던 한고조 유방과 달리 창업은 물론 수성에도 성공한 것이나 후한의 성공적인 수렴청정의 사례인 등태후가 외척 중 거의 유일하게 국정을 농단하지 않았던 배경이 역사와 독서, 문화와 교양을 등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보고 있다.


[대학]의 주요 내용이 바로 [자치통감]이라는 역사거울을 통해 북송의 유학자 사마광이 후세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교훈인 것이다.


***


1. [자치통감을 읽다](2015), 장펑, 김영문 옮김, <흐름출판>, 2016.

2. [ 권으로 읽은 자치통감](2017), 사마광, 푸챵 편역, 나진희 옮김, <현대지성>,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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