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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Dec 24. 2022

[산해경 괴물첩](2015) - 천스위/손쩬쿤

- 내 종이접기의 원천

내 종이접기의 원천

- [산해경 괴물첩], 천스위/손쩬쿤, 2015.





1.


내가 읽던 책을 덮고, 쓰던 글도 접고, 종이를 주로 접기 시작한 게 2022년 7월부터였다.

경기도 오산의 자취방에서 남아도는 저녁 시간 속에 독서와 작문에 물릴 즈음 아주 어릴 적 접어보던 가락으로 약 반세기만에 다시 종이를 접어보았고 급기야 2개월만에 동서남북 '사신(四神)'과 사방팔방 '십이지신(十二支神)'을 접어서 주변에 뿌리고 배치했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289

( 사신 )

( 십이지신 )


흡사 미켈란젤로가 조각을 통해 하얀 대리석 속에 숨은 영혼을 깨워내듯, A4 용지를 재단하고 접어대다 보면 마치 묵상이라도 하는 것처럼 심신이 고요해졌고 시간도 잘 갔다.

한 번 나가면 안 들어오고 한 번 들어앉으면 안 나가는 내 성격 상 종이접는 몇 시간은 즐겁기도 하여 7월 이후 나는 사실상 내내 종이만 접었다.


한편, 고질라와 기도라, 루시퍼 같은 바하무트와 각종 신화 속 동물들을 접던 내가 '사신'이나 '십이지신' 같은 동양 신화 속 동물들을 거의 반창작으로 계속 접어댄 이유 중 하나는 폐암 말기로 외부 활동을 못하게 되어 집안에 칩거하게 된 아버지 때문이기도 했다. 주말에 거실에서 함께 있을 때 책이나 글을 쓰면 정신을 집중해야 하는 반면, 종이를 접고 있으면 아버지와 대화도 할 수 있고 수발을 들어드리기도 편했다. 무엇보다 신화 속 동물을 접어 아버지 주변을 지키게 하고 아버지께 호신용 부적 같이 드릴 수 있어 좋았다.

전적으로 투병하는 아버지 때문은 아니었지만, 올해 9월부터는 종이를 접는 것이 아버지가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해달라는 염원을 담는 나 나름대로 의식행위였다. 물론 10월 27일 아버지가 돌아가실지는 전혀 예상치도 못했지만, 열심히 동청룡과 서백호, 남주작과 북현무를 수십마리 접어댄 나는 서울집 거실에서 아버지를 지키던 대표 '사신'을 돌아가신 아버지와 함께 화장했다. 사후 저 세상에서도 변함없이 아버지를 지켜달라는 바람을 담아서.



2.


"종산에 있는 산신은 '촉음'이라 한다. 그가 눈을 뜨면 낮이 되고, 눈을 감으면 밤이 되며, 날숨을 쉬면 겨울이 되고, 입김을 불면 여름이 된다. 그는 물이나 음식은 먹지 않고, 또 숨이 바람이 되기 때문에 숨을 쉬지 않는다. 몸은 천리나 된다고 한다. 촉음은 무계국 동쪽에 있는데, 그는 사람 얼굴, 뱀 몸을 하고 있다. 온몸은 붉은색이며 종산 밑에 살고 있다."

- [산해경 괴물첩], <해경-해외북경>, '촉음', 천스위/손쩬쿤, 2015.



중국 선사의 요순 임금 시대에 물을 다스리는 능력을 인정받아 순임금 이후 왕위를 이어받고 중국 하나라를 건국한 우임금이 아직 황하를 다스리던 신하 시절, 그를 도와 성공적인 치수를 가능케 한 '신룡(神龍)'은 아마도 큰 강의 거대한 물줄기를 당시 사람들이 신격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신룡은 몸에 그림을 지고, 거북은 등딱지에 문자를 새기고 나타나 인간들에게 '하도낙서'와 같은 문양과 상형문자, 인류의 앞날을 점치는 당시로서는 '과학'의 체계화 및 농경 정착생활을 가능하게 했다는 신화 속 이야기다. 지금으로부터 약 1만년 전 역사다.

그렇게 물가에 자리잡은 인류는 큰 강을 다스렸다기 보다는 순응하고 조화하며 농경문화를 시작하였다.



중국 최초의 지리서로 알려진 [산해경(山海經)]은 '산'과 '바다'에 관한 '경전'이다. 세계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었을 고대의 동아시아 사람들은 이 세상을 동서남북과 중앙 다섯개의 큰 산인 '오악'으로 보고 가까운 '해내'와 먼 '해외'의 바다로 경계삼아 이들 구역의 위치와 풍토, 그들의 신화와 동물 또는 괴물들을 [산해경]을 통해 소개하고 설명하고 있다. 황제와 동서대전을 다투던 치우와 이 때 등장한 응룡 이야기, 코끼리를 삼키는 어린왕자의 보아뱀과 같은 남방의 대왕뱀 파사, 몸길이가 팔백척에 돼지털이 난 장사, 눈을 뜨면 낮, 감으면 밤이 되는 촉음(촉룡), 우리에게도 익숙한 구미호와 신선같은 거북이 선구 등 중국은 물론 동아시아와 남아시아 일대 신화속 동물들로 가득하다.



녹오산에 사는 '고조'라는 새 아닌 새는 사람을 잡아먹고,


유양산에 있는 괴수라는 강에 사는 거북이 '선구'는 새의 머리에 거북이 몸인데 '신룡'과 함께 우임금의 치수를 도왔다.


청구산의 물고기 '적유'와 용후산의 물고기 '인어' 같은 반인반어는 신비로운데 사람이 먹으면 각종 효험이 있단다.


두 개의 머리에 한 쌍의 날개를 지니고 나는 '비익조'와 두 가지 다른 근본의 뿌리에 한 몸을 한 '연리지'는 시인 백거이가 당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에 비유하기도 했단다.


서악 태화산에 사는 '비유'라는 뱀은 다리가 여섯 개에 날개도 네 개가 있다.


( 파사 )

또 다른 대왕뱀 파사와 대함산의 장사는 그 자체로 산만한 크기로서 길이는 팔백척이 넘고 코끼리를 삼킨다.


( 응룡 )

( 응룡 )

( 비룡 )

( 쌍룡 )

( 각룡 )


아마도 이들 대왕뱀들일지 아니면 등용문에서 말하듯 잉어들일지 모르지만 용이 되기  단계인 이무기는 아마도 '교룡' 비슷해 보이는데 [산해경 괴물첩]에는 명확히 분류되어 있지는 않다. 한고조 유방의 모친 유온(유씨 아주머니) 유방을 임신했을  그녀의 주변을 맴돌았다던 '교룡' 뿔없는 이무기였는지 아니면 [주역] <건괘> 나오는 '잠룡'이었는지  수는 없지만, '교룡' 제대로 뿔을 기른 '각룡' 되어 천년 동안 수행을 하면 '응룡' 되는데, [주역] <건괘> '비룡' 최고단계인 '항룡'  '응룡' 반열인지 '응룡' 날개까지 달고 있다.


더 나아가 사람의 얼굴을 한 거대한 용 '촉음(촉룡)'은 중국 인류의 시조인 '반고'의 모양과 흡사하며 그 크기는 종산이라는 산맥을 덮을 정도로 가늠조차도 어렵다.


그 외에도 [산해경]은 수많은 신기한 동물사전과도 같다.



저자나 저작시기 등이 확정되지 않고 구전으로 이어져 온 옛날 이야기들이 중국 전한 시대 등 각 시기에 문서로 정리되었으니 역사 속에서 계속 증보확장된 이야기다. 즉, 우리의 '춘향전'이나 '별주부전' 등속처럼 다수 민중들이 [산해경]의 저자들이다. 고대의 거북 등딱지점이나 산가지 주역점처럼 다수 민중들이 오랜 시간 실천적으로 함께 축적한 '빅데이터'이자 당시의 '과학'이었다.


( 봉황 )

( 봉황 )

( 용봉 )


용과 뱀의 길이가 수천자가 넘고 봉황의 날갯짓이 천리를 넘으며 사람의 얼굴을 한 괴수들이 많은 이유는 자연과 순응하며 조화롭게 살고자 했던 인류의지의 투영이다.



3.


고대의 인류는 거대한 산맥이나 큰 강의 물줄기 자체를 신격화하여 대왕뱀 파사와 장사, 교룡에서 각룡을 거쳐 응룡에 이르는 신룡의 진화를 너머 인면수신의 거대한 용인 '촉음'의 측정불가한 스케일까지 상상했다.


동양의 도교적 수호신 '사신'의 동쪽 용과 남방 봉황(주작)은 물론 서쪽의 호랑이와 북방의 거북이 상상도의 원천 또한 [산해경]일 것이다.

용과 봉황과 같은 신화적 괴수들은 이미 [산해경]에서 정형화되었고, 현실적 동물인 범과 거북 조차도 신령한 뱀으로 몸을 두르거나 다른 동물들의 부분들이 결합된 형상으로 신화화되었다.


내가 집에 누우신 아버지를 위해 끊임없이 접어대었던 '사신'과 '십이지신' 종이접기 또한 'L.Q.D'라는 베트남 유투버의 'money origami'를 통해 용과 피닉스, 호랑이와 염소 머리 및 각종 괴수의 몸통과 팔다리, 발톱과 날개 및 꼬리 등의 기본을 참고하여 창작하고 교차결합한 산물이다.


그러므로 내 종이접기 상상의 원천 또한 [산해경]이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279

https://brunch.co.kr/@beatrice1007/281


***


- [산해경 괴물첩](2015), 천스위 그림, 손쩬쿤 해설, 류다정 옮김, <디지털북스>, 2019.


https://m.blog.naver.com/beatrice1007/222944322370?afterWebWrite=tr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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