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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Jul 29. 2022

'신화'와 '과학'을 접다 : 2022년

- [오리로보], 후지모토 무네지, 2010.

'신화'와 '과학'을 접다 : 2022년

- [오리로보], 후지모토 무네지, 2010.





1.


취학 한 해 전이었던 1980년에 나는 어른이 되면 '마징가'가 되어 있을 줄 알았다. 마징가 조종사 '쇠돌이(카부토 코지)'가 아니라 마징가 자체가 되고 싶었다.

내년이면 반백년을 살게 되는 지금의 나는 그러나, 세 자녀의 아빠이자 웅녀의 후예같은 여인의 남편인 동시에 지극히 평범한 금융노동자가 되었다.


어린 시절에 TV에서 방영된 만화는 대부분 일본 애니메이션이었다. 그 중 내가 제일 좋아했던 '마징가'는 1972년부터 나가이 고가 연재한 로봇 만화다. 1950년대 전후세대 데스카 오사무의 '아톰'은 인간의 모습을 한 로봇이었고 그 이후 요코야마 미쓰테루의 '철인28호'는 인간이 리모컨으로 조종하는 로봇이었다. 나가이 고가 처음 고안했던 마징가는 오토바이를 탄 인간이 로봇의 머리와 결합하여 조종하는 최초의 형태였다. 본격적인 마징가 시리즈는 오토바이가 아니라 헬기 또는 전투기 비슷한 기체가 로봇의 머리와 결합하여 자동차를 운전하듯 로봇을 조종하는 시스템이었던 것인데 마징가를 만든 과학자이자 조종사 카부토 코지의 할아버지인 카부토 쥬조 박사가 마징가를 처음 다루게 된 손자에게 오토바이라고 생각하고 조종하라는 말도 했단다.


이쯤 되면, '로봇'이란 과연 인류 과학사의 정점이자 기술발전의 극치라 할 만 하다. 그러나 나가이 고가 염두에 둔 '마징가(Mazinga : 魔神-Ga)'는 '과학'의 정점이 아니었다. 그가 계획했던 궁극의 마징가는 고대 거인족 '티탄(타이탄 : Titan)'의 '마신(魔神)'이자 '신(God)'이었다. 이름은 '갓(God) 마징가'였다. 마징가-Z의 적수인 닥터 헬의 기계수는 고대 그리스 크레타 문명의 청동거인 탈로스가 '프로토 타입'이었고, 그레이트 마징가의 적수로서 마징가-Z를 파괴하고 닥터 헬을 대체한 전투수들은 고대 미케네 문명의 후예를 자처한다. 아마도 '신좌파' 세대로 추정되는 나가이 고는 다소 제멋대로이기는 하지만 '과학'과 '신화'를 '로봇'이라는 용광로에 함께 녹여냈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115

https://brunch.co.kr/@beatrice1007/116



2.


"21세기, 인류는 얇은 두께의 정보기기를 계속해서 개발했다. 22세기에 접어들 무렵에는 텔레비전을 비롯한 휴대폰, 컴퓨터의 두께가 더 이상 얇아질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 '페이퍼 A.I'라는 인공지능 A.I가 탑재된 종이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인류는 '페이퍼 A.I'를 사용해 우수한 로봇을 개발하는 데 온 힘을 다했다. 그것이 '오리로보(ORIROBO) 계획'이다.

2198년, 그러한 인류의 뜻과는 반대로 '페이퍼 A.I'는 독자적인 사고를 하기 시작했다..."

- [오리로보], <ORIROBO STORY>, 후지모토 무네지, 2010.




2022년 여름 한 때, 경기도 오산의 외로운 자취방에서 책 읽고 글 쓰는 일이 다소 지루하여 백만년 만에 어릴적 종이접기를 해보면서 오래전 추억을 회상하게 되었다. '마징가'야 워낙 좋아했으니 간간이 떠올리고 관련 글도 써 보았으나, 나의 38년 종이접기 필살기 '라돈(로단)'을 접으며 1983~1984년의 이문동 재성이네 미용실 다락방까지 다시 올라가볼 줄은 몰랐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279


내처 '라돈'에 이은 종이접기 필살기로 고질라의 숙적인 '킹기도라'와 히드라의 자매인 '키마이라'를 마스터한 내게 나의 둘째딸이 책을 하나 더 내밀었다. [신화동물접기백과](2010)를 지은 미국의 종이접기 천재 존 몬트롤에 결코 뒤지지 않는 일본의 후지모토 무네지의 그 종이접기 책은 얼마전 내가 둘째딸에게 주문해 준 책이었다.


제목은 [오리로보](2010).

우리말로 '오리' 로봇이 아니다. '종이접기'를 뜻하는 '오리가미(origami)'와 '로봇(robot)'의 일본식 합성 조어다. 즉, '종이접기 로봇'인 것인데, 일본의 그래픽 디자이너 후지모토 무네지는 유치원 다니는 아들에게 종이접기를 가르치던 2천년대 초반부터 아예 본인이 종이접기를 창작하여 작금에는 종이 한 장으로 로봇까지 만들게 되었단다. 가히 미국의 수학자 로버트 랭이나 존 몬트롤과 어깨를 겨누는 종이접기계의 천재이자 지존급이다. 그의 종이접기 첫 저서 [오리로보]는 스토리까지 있는데, 종이처럼 얇은 '페이퍼 A.I' 기술로 착안된 '오리로보 계획'의 추진 과정에서 '페이퍼 A.I' 스스로가 자가발전하면서 '슈레드'라는 로봇군단을 조직하여 세계를 지배하려 하고 인류는 '오리로보 프로젝트'를 통해 '슈레드 군단'의 야욕을 저지한다는 기본 스토리 아래 각종 로봇 종이접기를 설명해주고 있다.



이 책의 부제는 '자유자재로 변신하고 합체하는 로봇 종이접기'인데, '오리로보 115'라는 기본형은 이른바 '오징어로봇'이라는 '프로토 타입'으로부터 변신한 기본 모델이다. 이 '원형'인 '프로토 타입'으로부터 여러 가지 '오리로보' 모델들이 변신을 통해 파생된다. 즉, '오징어로봇 프로토 타입' 하나만 접을 줄 알면 기본 대여섯 기종을 자유자재로 접을 수 있게 된다.


( 필살기 4호 : 오리로보 프로토 타입, '오징어로봇' )


이 '원형'은 대부분 종이접기의 기본 패턴이다. 모든 종이접기의 기본인 종이학의 '원형'도 그렇고, 나의 종이접기 필살기 1호 '라돈'도, 2호 '기도라'와 3호 '키마이라'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 '신화'적 동물들의 '원형'을 '알'이라 칭한다. 이 '알'들을 틈날 때마다 접어서 책장 사이에  꽂아두고는 생각날 때마다 한 마리씩 탄생시킨다. 이제 나의 종이접기 필살기 4호가 된 '오리로보'들 또한 '프로토 타입'인 '오징어로봇'을 몇 기 접어두고 또 생각날 때마다 한 기체씩 변신시키고 합체시킬 수 있게 되었다.


( 종이학 '알' )

( 필살기 1호 : 라돈(로단) '알' )

( 필살기 2호 : 기도라 '알' )

( 필살기 3호 : 키마이라 '알' )

( 필살기 5호 : 슈레드 다이노서 T-타입 '알' )

( 필살기 6호 : 고질라 '알' )


과연 중년에 맞게 된 뜻하지 않은 외로운 자취생활은 내가 종이로 '신화'에서 '과학'까지 접어버릴 수 있게 해주었는데, 하나하나 접다보면 흡사 대리석을 조각하면서 그 돌 속에 잠재된 영혼을 깨어나게 했다는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잠시 착각하는 순간도 있다. 그러나 나는 '오리가미' 천재들이 창조한 설계도대로 따라가며 대량양산하는 '기술자'에 불과하다. 로버트 랭이나 존 몬트롤, 후지모토 무네지 같은 '과학자' 또는 '창조주' 같은 창작자들이 간단한 종이 한 장에 숨어있는 '신화'적이고도 '과학'적인 영혼들을 깨워내는 사람들이다.

'창조주'나 '과학자'가 아니라 종이접기 '기술자'에 불과한 나는 그나마 '기도라'와 '키마이라', '오리로보'의 머리를 내 마음대로 창작하여 접어보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


( 고질라 vs. 킹기도라 )

( 라돈 또는 로단 )

( 기도라 )

( 키마이라 )

( 킹기도라 & 키마이라 )

( 킹기도라 / 라돈 / 키마이라 )

( 기도라 / 오리로보 '오르가스' / 키마이라 )

( 고질라 )


뭐니뭐니 해도 종이접기의 압권이자 백미는 공정의 마지막인 '머리'의 완성이기 때문이다. 그림에서의 '화룡점정'과도 같은 것이 종이접기의 '머리 만들기'다. 하나하나 접을 때마다 마지막 '머리'가 어떤 형태가 될지 기대하는 마음에 끊임없이 접어대는지도모르겠다.




3.


후지모토 무네지는 1967년생으로 아마도 한국의 초등학생인 내가 필살기 '라돈'을 외우던 동시대에, 일본에서 같이 종이접기를 하던 중고등학생이었을 수도 있겠다.


내가 그림과 만들기를 좋아하는 둘째에게 로버트 랭의 종이접기 책을 처음 주문해 주기 십여년 전 무네지는 아들에게 종이접기를 알려주다가 스스로 창작까지 했다.


당최 '기술자'는 '과학자'에 미칠 수는 없겠으나 나는 대신 대량생산 기술을 사용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신화적 존재(mythological creature)'와 '과학적 로봇(scientific robot)'을 나눠주려고 한다.


그렇게 나는 종이 속에 숨은 '신화'와 '과학'의 영혼들을 접어서 나름대로 깨우고자 한다. ^^*


***


1. [ORIROBO - 자유자재로 변신하고 합체하는 로봇 종이접기](2010), 후지모토 무네지, <봄봄스쿨>, 2016.

2. [신화동물접기백과(Mythological Creatures and Chinese Zodiac Origami)](2010), John Montroll, 신승미 옮김, <봄봄스쿨>, 2015.


https://m.blog.naver.com/beatrice1007/222828744524?afterWebWrite=tr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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