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캔들' 자체가 '스캔들'?
'스캔들' 자체가 '스캔들'?
- [기독교 콘서트](2018), 만프레트 뤼츠, 오공훈 옮김, <더봄출판사>, 2022.
"기독교는 서구 세계에서 가장 베일에 싸여 있는 종교다. 이는 정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로 너무 많은 정보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정보들은 대개 유별나고 진기한 특색이 있다. 즉 기괴할 만큼 잘못된 정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오늘날의 역사학 관점에서 이른바 교회의 모든 '스캔들'을 비판적으로 규명하고 이를 통해 기독교의 은밀한 역사를 분명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독자 여러분은 '굉장히' 흥미진진한 결과물을 기대해도 좋다!"
- [기독교 콘서트], 만프레트 뤼츠, 2018.
1.
어릴적부터 하늘을 보면 저 멀리 구름 사이로 햇빛 한 줄기가 땅으로 내리꽂는 장면을 기대했다.
취학전 할머니께서 잠시 입원해 계셨던 병원 입원실의 달력에서 아마 처음 보았을 그 이미지는 초등시절 아주 가끔 가본 동네의 작은 교회의 달력에서 기도하는 예수님의 그림 배경으로 다시 만났다. 아버지 하느님이 계신 하늘을 올려다보며 기도하는 예수에게 내리쬐던 그 한 줄기 광선은 신의 계시로 보였다. 신비로운 그 장면은 고등학교 때 잠시 가본 마을의 동안교회 청소년부 회장형의 광기로 인해 다소 반감되었으나 아직까지도 하늘을 올려보게 될 때 나도 모르게 기대하는 광경이다.
남자고등학교를 다니던 내가 여학생 구경이라도 할까 기대하면서 들러본 동안교회 청소년부에는 여학생은 커녕 광신도의 눈빛을 지닌 청소년도 아닌 대학생 회장형이 있었고 한 번 나갔다가 교회를 제낀 내게 그 형은 수차례 전화를 해대더니 심지어 '회개하라!'는 편지를 몇 번인가 보내왔다. 어머니와 누나들은 교회에서 온 편지봉투를 보며 '꼴에 연애는 무슨' 하는 듯한 의혹의 눈초리를 보냈다. 여학생 구경도 못한 나는 억울했다.
그것이 아직 구름 사이의 한 줄기 광선을 기대하는 나에게 남은 유일한 기독교 '스캔들'이다.
2.
얼마전 페이스북에서 믿고 읽는 <더봄출판사>의 책광고를 보았다.
책 제목은 [기독교 콘서트].
독일의 정신심리학 의사이자 신학박사 학위를 강조하는 만프레트 뤼츠(Manfred Lutz)가 호기롭게 낸 책으로 원제는 'Der Skandal der Skandale', 즉 내가 번역하기로는 '스캔들'들(복수형:die skandale)이라는 '스캔들'(단수형:der skandal), 해석하면 2천년 기독교 역사 속 모든 '스캔들'이라는 것들 그 자체가 '스캔들'이라는 의미다. '스캔들(scandle)'은 알다시피 '추문' 또는 '좋지 않은 소문'이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기독교의 역사와 그 근본 교리 및 이념을 토대로 2천년 기독교에 관한 '스캔들(추문)' 자체가 '추문(스캔들)'이라고 이 책을 통해 주장하고 있다.
"유일신교의 출현... 욕구가 없고 초월적인 '유일신'은 개인적이고, 자유로우며, 윤리적인 판단을 인간에게 요구했다. 신은 내면적인 것을 요구했다. 결국 시대는 이러한 신들의 법정에 서게 됐다. 이후 인간은 오로지 홀로, 단독으로 신 앞에 섰다. 왜냐하면 이제부터는 인간보다 신에게 더 복종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신 자신은 오로지 내면적인 복종만 바라서, 강요된 복종은 전부 의미가 없게 됐다. '자유롭게 신앙을 갖는 유일신교'이기 때문에, 유일신교의 기원은 오늘날 인간의 자유와 자율로 이해할 수 있는 성향을 보인다. 당연히 이 모든 것은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난 게 아니라, 수세기 동안 발전하는 과정을 거친다."
- [기독교 콘서트], <1.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만프레트 뤼츠, 2018.
기독교라는 2천년 간의 '스캔들'이 모두 그 자체가 '추문'에 불과하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입증하고자 하는 이 책은, 우리가 기독교에 관해 아는 거의 모든 것을 정반대로 해석한다.
이 책에 의하면 로마 시대 국교로 공인된 기원후 4세기 이후 중세를 거치며 행해진 가톨릭의 종교재판과 마녀사냥 등은 사실 기독교의 '스캔들'이 아니다. '유일신교'의 대표 종교인 기독교는 기존 범신론적 '부족종교'에 비하면 '자유로운 개인'의 이념적 기원이라고 한다. 원시 부족종교는 물론 그리스와 로마의 다신교는 공동체의 종교를 믿지 않으면 집단에서 축출되었던 반면, 기독교는 유일신교임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강요하지 않았다고 한다. '종교의 자유'는 집단이 아닌 개인으로서의 '신 앞에 선 단독자'를 가능케 했단다. 중세의 종교재판 또한 그 자체로 보면 종교 탄압 같지만 본래 폭력적이었던 게르만족의 처벌과 형벌에 비하면 그 정도와 횟수가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것인데, 실제로 저자는 교황과 주교들이 신체 절단과 화형 등의 형벌을 반대했고 최소화했다는 사실을 역사적 수치 자료를 통해 증명하고 있다. 이 모든 '역사'적 자료들은 2007년 아르놀트 안게넨트라는 역사학자의 방대한 연구서가 출처라는데 [기독교 콘서트]는 그 연구서의 일종의 대중판과 같다고 저자는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기독교의 교리와 이념은 우리에게 알려진 중세 암흑기의 상황과 달리, '신 앞에 선 단독자'로서 개인의 출현이며, 기독교를 믿을지 여부는 불완전한 이 개인들의 '자유'에 맡겼기에 근대의 '인권'과 '계몽주의' 조차도 저자에 의하면 기독교의 이념에서 기원한단다. 이 정도의 결론에 이르면 과연 저자의 단언처럼 '굉장히' 흥미진진하지는 않을지라도 '굉장히' 도발적이기는 하다.
중세의 암흑을 걷어내려던 '계몽주의'와 '인권'에 기반한 대혁명 조차도 아이러니하게 기독교에 기반한다는 매우 놀라운 결론이다. 그렇다면, 근대의 혁명이 타파하고자 한 것은 과연 무엇인가. 이 책의 주장은 기독교 교리와는 반대로 나타났던 폭력적인 게르만 문화와 신 앞에 선 인간을 부정하고 성경만을 교조화시킨 루터 등의 종교개혁파를 비롯한 칼뱅이나 츠빙글리 등의 신교파, 하느님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거스른채 폭력으로 점철된 온갖 정치혁명 탓이란다.
이러한 논리로 기독교 2천년의 '스캔들'은 결국 본디 선한 기독교의 이념과 달리 억울하게 퍼진 '추문'에 불과하니 역사 속에 서술된 일체의 기독교 '스캔들' 자체가 '스캔들'임을 역사적으로 입증하겠다는 것이 이 책의 의도인 것이다.
이렇게 기원후 1천년 부터 중세 십자군 성전, 아메리카 인디오 원주민 말살과 아프리카 흑인노예 매매 등을 일관되게 '반대'했던 기독교 이념은 성스럽게 옹호된다. 만프레트 뤼츠가 함께 돌아본 19세기부터 21세기까지 교회의 불완전했던 역사 또한 신성한 기독교 교리체계에 의해 변호된다. 이 책은 기독교의 역사 속에서 비록 종교재판과 마녀사냥을 했고 나치즘을 용인했으며 식민지 선교의 역할을 맡아 제국주의 첨병이 되었던 '스캔들'은 있었지만, 원래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게르만 유럽의 역사가 그런 것이며 여기에 문명을 접합시킨 기독교는 이 폭력의 역사를 저지하거나 순화하는 역할을 했다는 '굉장히' 도발적인 '스캔들'을 시도하고 있다.
"기독교와 교회의 역사를 '스캔들'로 뒤바꾸는 것 자체가 '스캔들'이다."
- [기독교 콘서트], <12. 21세기 교회>, 만프레트 뤼츠, 2018.
그리하여 이 책의 결론은 위의 한 문장이다.
개신교와 게르만 문화, 나치즘과 공산주의 등의 20세기 문명, 나아가 폭넓게 18세기부터 출현한 사회주의와 다양한 혁명 자체도 이 책에 의하면 그 자체가 '스캔들'이지 가톨릭의 2천년 역사 속 기독교 자체는 무죄다. 기독교의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이를 왜곡한 불완전한 인간들의 탓이지 하느님과 그의 대리자 예수 그리스도는 역사에서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거다.
이 책은 오히려 기독교 자체가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제3의 길'이다"라고까지 주장하는데 과연 '굉장히' 놀랍다.
차라리, '신'이 아닌 '인간'으로서 예수와 기독교의 유물론적 역사를 개괄한 20세기 초 칼 카우츠키의 책이나, 아니면 가톨릭의 세속적 역사를 온갖 음모와 의혹의 극단적 '스캔들'로 간주해 버리는 1980년대 BBC 방송작가 헨리 링컨 등의 [성혈과 성배]와 같은 20세기의 진지한 책을 추천하고 싶은 마음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독자라면 만프레트 뤼츠의 이 책이 어쩌면 '굉장히' 흥미로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한편 들기도 한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8
저자 만프레트 뤼츠는 아마도 독일의 문화 속에서 그나마 우리 사회 '민주당'보다도 좌파적일지도 모를 기독교중앙당이나 기독민주당 같은 계열일지도 모르겠다.
처음 <저자의 말>과 <들어가는 말>을 읽고 '굉장히' 자신만만한 저자의 단언에 낚시질당했던 나는, 어쨌거나 책의 결론까지 읽고 나서 오래전 나에게 "회개하고 교회로 돌아오라"던 동안교회 청년반 회장형의 광기를 저자 만프레트 뤼츠와 오버랩시키고 말았다.
나는 기독교를 믿지 않는, 예수를 '혁명가'로 보는 '유물론자'이기 때문이다.
3.
청년기의 나는, 일체의 종교와 지배 이데올로기를 거부하는 단호한 '유물론자'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중년의 나는, 솔직히 말해 어느정도 '영성(靈性)'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신화와 종교, 이데올로기를 통해 사회 공동체를 형성하고 유지한 인류 역사 속 '인지 혁명'을 이야기한 역사학자들 덕도 있고, 계급사회에서 이데올로기 투쟁의 중요성을 강조한 루이 알튀세르를 한 때 추종하기도 하면서 '철학'의 지위를 높게 보던 시절의 덕도 있다.
이데올로기가 없는 혁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반동 쿠데타는 '체제 수호'가, 급진적 혁명은 '체제 타도'가 각자의 슬로건이었다.
이 모든 이데올로기가 바로 '영성(靈性)'이라고 본다.
나 개인도 스스로가 동물임을 철저히 인식함에도 먹고 자는 것만을 생각하며 살 수 없다. 거창한 목표의식까진 아니더라도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며 그것을 위해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데올로기' 또는 '신념화'를 거치지 않고 살기란 어렵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어찌보면 스스로를 세뇌하고 속이면서 사는 것이 인생이기도 한데, 인류 역사에서 사회 공동체의 역사 또한 바로 이런 '영성'의 역사였다.
21세기 기독교의 수호자 만프레트 뤼츠의 '굉장히' 용감한 당파성을 비난할 마음은 없다. 누구든 본인의 신념과 물질적 기반을 옹호하고 변론할 자유가 있다. 나 또한 기독교라는 수천 년간의 '스캔들'을 '유물론'적 시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신'이 아닌 '인간'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음을 새삼 강조하고 싶다. 내가 보기에 예수는 견고한 로마 체제와 기회주의적인 유대교 랍비들에 대항하여 급진적 평등세상을 주장한 '혁명가'다. 예가 무너진 세상에 누구든 '인의예지' 덕목을 실천하면 성인군자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 현실주의자 공자와 '모든 사람이 곧 부처'라는 지극한 평등사상을 설파한 석가모니, 유일신 사상의 실천으로 이슬람 형제들이 함께 어우러져 사는 광대한 평등의 집을 건설하려던 마호메트 등과 함께 예수가 인류의 위대한 '4대 성인'이 될 수 있었던 공통 덕목이 바로 '평등'이라는 '이데올로기'였고 '영성'이었다.
기독교든, 유학이든, 불교나 이슬람교든,
이 모든 '영성'의 '이데올로기'는,
모두가 함께 어우러진 세상을 살아가는 '평등'이라는 공통의 가치이다.
***
1. [기독교 콘서트(Der Skandal der Skandale)](2018), 만프레트 뤼츠, 오공훈 옮김, <더봄출판사>, 2022.
2. [그리스도교의 기원](1908), 칼 카우츠키 지음, 이승무 옮김, <동연>, 2011.
3. [성혈과 성배](1981), 헨리 링컨, 마이클 베이전트, 리처드 레이 지음, 이정임, 정미나 옮김, <자음과모음>,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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