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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Aug 15. 2022

[고질라 : 킹 오브 몬스터](2019)

'신화'와 '과학'은 하나다

'신화'와 '과학'은 하나다

- 영화 [고질라 : 킹 오브 몬스터](2019), 마이클 도허티




"왕이여,

영원하라!"



1.


내가 재성이네 미용실 다락방에서 내려온 1984년경, 나는 종이접기 필살기 한 가지를 장착한 후 하산한 터였다. 물론 기술은 습득했으되 서툴러서 한 마리 접는데 시간이 한참 걸렸고 국민(초등)학교 4학년 고사리손으로 그렇게 만든 결과물 또한 정교하지 못했을 것이기에 친구들 앞에서 아무 때나 발휘할 만은 못했다. 그래도 종이접기 과정은 머릿속에 정확하게 이미지로 각인시켰다. 당시의 내가 구입할 수 없었던 <다이나믹콩콩시리즈>의 그 수많은 로봇과 괴수 대백과사전을 섭렵하고 대괴수 '라돈'의 종이접기 최고난이도까지 정복한 나는 더이상, 별로 정확하지도 않은 내용의 이야기로 으스대며 가끔 내 등과 팔다리를 물어 이빨자국을 내던 재성이의 다락방에 오르지 않아도 되었다.

그 때 하산한 나를 반긴 건, 종이접기와 '공작' 활동에는 나에 미치지 못하지만 어린 나이에 제법 근거를 갖춘 '서사'에 강했던 같은 반 친구 민수였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279


초등학교 졸업반과 중학교 시절 1, 2차 세계대전의 서사에 빠져들기 전, 민수와 나는 일본의 대괴수 '고질라'의 괴수 대전쟁에 잠시 빠졌다. 그 후로도 수년간 그랬듯 나는 '똘똘이 스머프'를 닮은 민수의 이야기 전개에 의지하며 예전에 재성이네 다락방에서 수련한 로봇과 괴수들의 캐릭터를 그림으로 그렸고 라돈을 접었다. 이후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5년 이상 지속된 '글 김민수, 그림 송용원' 서사의 시작이었다.


그 서막을 연 것이 바로,

일본의 대괴수 '고질라' 이야기였다.



'고질라(Godzilla;ゴジラ)' 시리즈는 1950년대 등장한 일본의 괴수 영화 캐릭터라는데, 1980년대 중반 당시 초등학생 우리는 일본 캐릭터들을 해적판으로 베낀 <다이나믹콩콩> 대백과 시리즈들을 통해 만나게 되었다. 처음 재성이네 다락방으로 입산하던 1983년 경에는 몰랐는데 하산하게 된 1년 후에 내게 그 사실을 알려준 게 바로 박학다식 초딩박사 김민수였던 것이다. '고질라'가 일본 괴수라는 것을 알고있던 민수의 정보는 고질라도 외계 생명체라는 식의 재성이식 서사와 달랐다. 어디서 알았는지 근거를 자신있게 대던 민수는 믿을만 했다. 한편으로 그림만은 잘 그리던 나는 동년배 친구들에 비해 너무 어리거나 덜 떨어진 듯 느껴졌다. 아마도 수년 후 고등학교 들어가면서 머리도 굵어지고 친구들도 많아졌던 내가 알게 모르게 똑똑한 민수를 따돌렸던 건 나의 이 오래된 열등감의 소산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고질라' ' 기도라' '라돈', '모스라' '메카 고질라' 등의 괴수 캐릭터들과 함께 이후 다수의 영화 시리즈에서 등장시켰기에 사실상 하나의 일관된 서사 같은  없다. 다만, 티라노사우르스 같은 거대 육식공룡을 닮은 '고질라' 프테라노돈 같은 익룡을 닮은 '라돈', 대왕나방 '모스라' 등은 인류의 무분별한 핵실험으로 인한 방사능 오염으로 탄생하고 진화한 대형 생물종,  괴수였다는 유래를 가진다. '고질라'  착한 괴수들이 대항하는 숙적으로서 나쁜 괴수들인 머리  달린  ' 기도라' 로봇괴수 '메카 고질라' 지구  외계에서 왔는데, 이로 인해  대괴수들의 전쟁은 광대한 스케일의 '우주 대전쟁' 된다.

어쨌든 일관된 서사는 없어도 '고질라' 시리즈는 그 캐릭터들의 유래 자체를 통해 인류에 의해 위협받는 지구와 생태, 더 나아가 기후환경에 관한 거대 서사시가 된다. 우주까지 끌어들인 것은 사실 우주의 일부로서 이 지구라는, 아주 작은 점이지만 흔치 않은 생명체 행성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함인 듯도 하다.



이 지구사랑의 대괴수 서사시는 최근에는 헐리우드의 자본과 기술력에 힘입어 [고질라 : 킹 오브 몬스터](2019)로 회생했다.



2.


작년말에 직장의 인사이동으로 나는 경기도 오산에서 자취생활을 하게 되었다. 주중 혼자 지내는 저녁시간에도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주간 문사철(文史哲)'이라는 서평작업을 혼자 하고 있음에도 읽은 책이 주당 한 권을 넘어서 미리 서평을 써두게 되었고 그 동안 읽어야지 벼르던 어려운 책들도 자취생활 덕분에 많이도 먹어치웠다. 그렇게 6개월 여를 보내다가 일종의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는데 그 때 떠오른 게 38년 간 나의 필살기 '라돈' 접기였다. 나는 마치 묵상을 하듯 자취방에서 홀로 A4 용지를 잘라 '라돈'을 접었고 접어서 넘쳐나는 '라돈'을 동료들에게 주었다. '라돈' 하나만 접기에 지루해진 나는 주말에 집에 가서 둘째딸 은규에게 사준 로버트 랭과 존 몬트롤 등 미국 종이접기 대가들의 책를 펼쳐 역시 최고 난이도 머리 셋 달린 용 '기도라'와 그리스 신화 속 뤼키온의 괴수 '키마이라', 일본의 종이접기 대가 후지모토 무네지의 '오리가미(origami : 종이접기) 로봇' 시리즈를 매주 한 가지씩 연습하고 습득했다. '라돈'과 '기도라'와 '키마이라', '오리로봇'과 'T-렉스' 등 필살기 5종을 열심히 접어댄 이유 중 하나로 대리석에서 예술적 영혼을 일깨워내던 르네상스의 거장 미켈란젤로처럼 새하얀 A4 용지를 통해 이 종이접기 기술들을 완벽히 구사하여 나름 유투브에 올려볼까 했던 욕심도 있었다. 필살기 6호로 '고질라'를 종이접기 책에서 찾지를 못하여 어쩔 수 없이 유투브를 검색하여 정사각형 용지 한 장으로 접는 '고질라'를 찾아 열심히 따라 접던 어느날, 스승의 손이 너무 고사리스러워 소리를 높여 들으니 나에게 '고질라' 접기를 가르쳐 주시던 그 손의 주인공이 다름아닌 초등생 유투버였다는 사실에 깜짝 놀란 나는 이 '한 장으로 쉽게 접는 고질라' 이후 종이도 접고 유투버의 꿈도 접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6행의 '사언절구' 시 한편을 남기게 된다.


젤로형의 정신으로

육호까지 접은후에

유투버를 꿈꾸었네

그중쉬운 고질라여

초딩유툽 고사리손

종이접고 유툽접네


https://brunch.co.kr/@beatrice1007/281


그러나 8월에 들어 여름 휴가를 맞아서도 나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휴가를 떠나서도 나는 베트남 지폐접기 유투버의 '고질라'를 따라 접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정사각형의 용지 한 장으로 접는 기존 필살기 6종과 다른 차원이었다. 지폐와 비율이 같은 직사각형으로 A4 용지를 재단하여 최근 읽는 양이 10분의 1 이상 줄어든 나의 책들 속에 꽂아두었다가 꺼내서 접어댔다. 여름 휴가지의 저녁 숙소에서 처자식이 잠든 밤에 직사각형 종이 다섯장으로 접어서 조립합체하는 '고질라'를 습득했고, 이제 그만 접고 책 좀 읽자 싶다가도 손이 멈추질 않아 하계휴가가 끝난 그 다음주에는 직사각형의 용지 여덟장으로 접어 붙이는 '킹 기도라'까지 익히고 말았다. 한달전 내가 접고도 신기해 마지않던 정사각 한장짜리 '기도라'와 '고질라' 따위는 이미 시시해졌다.




3.


2019년 마이클 도허티 감독의 헐리우드 영화 [고질라 : 킹 오브 몬스터(Godzilla : King of the Monsters)]는 역시 1950년대 일본의 대괴수 '고질라'를 비롯한 대괴수 캐릭터들을 등장시켜 새로운 이야기를 전개한다. 하긴 우주적 사건으로 확장시키고 싶은 지구적 기후생태환경 위기의 산물로서의 이 대괴수들은 아주 오래전 선사적 고대로부터 인류의 지구파괴 역사에서 그 부작용으로 계속 진화해오고 있었는데, 이와 무관한 우주 대괴수 '킹 기도라'는 어쩐 일인지 괴수추적 비밀단체 '모스크'에 의해 남극 기지에 동면된 상태였다. 지구의 환경위기와 진화되는 대괴수의 간헐적 출현으로 대재난이 반복되는 가운데 극렬 환경주의자들은 이 고대 지구의 주인 '타이탄'인 대괴수를 모두 살려내어 '인류세' 동안 인간들의 문명에 의해 급격히 파괴된 지구를 그들 타이탄족에게 다시 되돌려주기 위해 '모스크'가 봉인한 대괴수들을 일시에 깨워낸다. 우주에서 온 대괴수 '킹 기도라'는 그 이름처럼 대괴수들의 '왕(King)'이라 동면에서 해제되자마자 전세계 모든 괴수들을 깨워 결집시킨다. 그러나 이 괴수들은 우두머리를 따를 뿐 각자의 의도가 따로 있지는 않다.



결국 악당 괴수 '기도라'와 자기집인 지구를 지키려는 주인공 '고질라' 간의 건곤일척 대전을 통해 지구의 운명이 결정되는데, 모스크를 필두로 한 인류는 당연히 '신화'적 존재로 밝혀진 '고질라'와 '기도라'의 대전쟁중 '고질라' 편에 서서 인류 '과학'의 힘으로 돕는다. 아주 오래전부터 지구를 지배하려던 '기도라(Ghidora)'와 지구를 지키려던 '고질라(Godzilla)'와의 전쟁에 다시금 인류의 문명이 결합하고 열세에 몰려 죽음까지 이르던 고질라에게 인간은 핵반응이라는 '과학'의 힘까지 동원하여 다시 살려내면서 결국 '고질라'가 승리하고 지구를 지켜낸다는 이야기다.



결론은 당연히 이 고대의 '신화'(괴수)와 당대의 '과학(인류)'이 융합하여 지구를 지킨다는 것이며 이제 '고질라'와 함께 '기도라'를 물리친 인류는 기후생태환경을 더욱 사랑하고 보존해야 한다는 것으로 향한다.



기도라의 세 개 머리 중 마지막 대가리 하나를 먹어치운 고질라가 궁극의 '괴수왕(King of the Monsters)'으로 등극하여 토해내는 핵방사능 포효 속에는 역설적이게도 바로 생태위기를 경계하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247



"왕이여,

영원하라!"


'기도라'가 동면에서 깨어났을 때 극렬 환경주의자가 읊던 이 '신화'적 주문은,

'고질라'를 돕게 된 인류의 '과학'자가 또 다시 읊으며 죽음을 맞이하는데,

이 '왕(King)'은 결국 '신화'와 '과학'이 일종의 핵반응처럼 하나로 응축된 '고질라'로 상징된다.


결국,

예나 지금이나,

고대나 현대나,

'신화'와 '과학'은 하나다.


***


- [고질라 : 킹 오브 몬스터(Godzilla : King of the Monsters)], 마이클 도허티,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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