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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Mar 21. 2020

[사기와 한서](2008) - 오키 야스시

"역사라는 '과학'에 '철학'이 필요한 이유"

[사기와 한서](2008), 오키 야스시, 김성배 옮김, <천지인>, 2010.
- 역사라는 '과학'에 '철학'이 필요한 이유



"전한 중엽인 기원전 97년 사마천에 의해 완성된 [사기]와 후한 초인 서기 80년경에 완성된 반고의 [한서]는, 중국 역대 '정사'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두 책이다... '정사(정통역사)'를, 또는 역사서를 쓴다는 행위가 매우 정치적 의미를 갖는 행위였음을 우선 파악해 두기 바란다. 다만 한 가지 덧붙인다면, 사마천이 [사기]를, 반고가 [한서]를 지은 시점에서는 그것들이 '정사'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사기]와 [한서]가 정사로 인정을 받은 것은 저자들 생전의 일이 아니라 후세 왕조에 의해서였다... 말하자면 '정사'란, '기전체' 형식으로 쓰이고 왕조의 권위에 의해 공인된 역사서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 [사기와 한서], 오키 야스시, <1부. 책의 여로 - '정사'로서의 [사기]와 [한서]>

일본의 중국문학박사 오키 야스시의 [사기와 한서](2008)는 중국 역사서 중 '통사'인 사마천 [사기]와 전한의 '단대사'인 반고 [한서]를 비교한 책이다., [사기], [한서], [후한서], [삼국지] 등은 중국 '24사' 중 유명한 '4사'로 꼽히는데, 이 중에도 '정사'의 시조인 [사기]와 [한서]의 차이를 다루고 있다.
두 역사서 모두 '정사'의 두 대표작으로서 [사기]는 "과연 하늘의 도는 존재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중심으로 다양한 권력과 인물군상의 기록을 통해 역사적 진실을 알리려는 책이고, [한서]는 [사기]를 대부분 따랐으나 한나라 정권을 비판적으로 또는 부정적으로 다룬 내용은 삭제하거나 사실과 다르게 적고 있다.

중국의 '정사(정통역사)' 선정 작업은 18세기 청나라 건륭 연간의 대규모 역사 정리 작업에 의해 [사기]와 [한서], [후한서]와 [삼국지] 등 '4서'를 비롯하여 [수서]와 [당서] 및 [오대사] 등의 '단대사'들을 포함 총 '24사'를 확정했다.
'24사' 중 사마천의 [사기]만이 '통사'이며, 나머지는 하나의 왕조의 역사를 다룬 '단대사'인데, 상호모순되는 서술로써 '맥락'을 통한 '역사서술'의 기원이 사마천의 [사기]인 반면, 권력자가 된 '승자'로서 역사서술' 전형의 시초는 반고의 [한서]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역사서술'의 전형에 따라 당나라 단대사인 '5대' 후진시대 유후의 [신당서], [구당서] 등은 우리의 고구려와 발해 등 '요동사(요동 공동체 역사)'를 깎아 내리거나 제대로 기술하지 않으면서 '중국 중심의 역사'를 이야기하는데, 스스로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지 못한 흉노, 대월, 동호, 선비, 거란, 여진 등의 다양한 동,서,북방 민족공동체나, 주체적 역사기록을 제대로 보존하지 못한 채 중국의 편협한 기록의 편린에서 찾아야 하는 우리 예맥과 한반도 한민족의 '역사 찾기' 작업의 현실이 쉽지 않은 이유다.


"[사기]와 [한서]의 가장 큰 차이는 '통사'인가 '단대사'인가라는 점에 있다. 전한 시대에 사마천이 태고에서 자신의 시대까지의 통사를 완성해 버렸다. 그러면 뒷시대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란 말인가? 그것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반표가 쓰려고 했던 것은 [후전(사기후전)]이었고, [사기]에서 서술이 끝난 무제 이후 시대의 역사였다. 그런데, 그의 아들인 반고는 그 방법을 택하지 않고 전한 1대의 역사를 썼다. 그러자 당연히 사마천의 [사기]와 중복되는 부분도 나온다. 반고는 사마천의 [사기]의 문장을 사용하면서 그것을 '자신의 문체'로 바꾸었다... '통사'인 [사기]의 경우는, 진시황제이든 항우든 한 시대의 역할 중심에 있던 인물은 <본기(제왕의 기록)>의 피전자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갖는다. 그러나 '단대사'의 경우에 <본기>의 피전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은 그 왕조의 인물로 한정된다. 전한 왕조의 역사를 쓰려는 [한서]에서 한나라 황제 이외의 인간이 <본기>에 들어오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 [한서] 이후, 중국 역대 왕조의 '정사'는 대개가 이러한 현 왕조(정권)를 위한 역사이다."
- [사기와 한서], 오키 야스시, <1부. 책의 여로 - 맺음말>

사마천은 한무제 정권에 아첨하지 않았기에 모욕을 당했고, '인간의 역사'를 완성하기 위해 살아남아 [사기]를 완성했다. "과연 하늘의 도는 있는가?"하고 한탄했던 사마천에게는 유교나 불교 등 지배이데올로기가 없었다. 반면, 반고는 [한서]를 통해 당대 후한 정권의 '정통성'을 '자신의 문체'에 담아야 했으며 유교의 지배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였다. 반고 가문은 대대로 한나라의 지배계급이었다.
'정치적 기록'으로서 정사 [한서]보다 '인간의 기록'으로서 [사기]가 후대에서 더욱 빛나는 이유다.

일제 식민지 시절 뿌리내려 우리 역사학계 주류가 된 이병도 무리의 '실증주의 사학'의 '실증 자료'의 주요한 근거 중 하나가 '동북공정'에 동원되는 중화주의 중심의 중국 '정사' 기록이라는 사실은 '실증주의 사학'이 '식민주의 역사관(식민사관)'에 다름 아니라는 것 또한 '실증'해 준다.
물론, 사마천의 [사기]나 반고의 [한서], 진수의 [삼국지] 정도만 해도  '변방 오랑캐들'을 일부러 무시했다기 보다 그 존재들에 대해 무지했거나 알만한 여력이 없었을 것이다. 다른 민족의 존재와 힘을 알고도 노골적으로 폄하한 것은 당나라 이후 [구당서], [신당서]일 것이다.
"역사도 과학(사회과학)"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중요한 방향을 설정하는 '철학'이 없는 '과학'이 얼마나 부질없으며, 더 나아가 우리에게 해롭기까지 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파시즘에 부역하고 냉전 강화에 기여한 온갖 부류의 과학자들이 그러했지 않은가.

역사를 비롯한 모든 '과학'에도 '철학'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


1. [사기와 한서], 오키 야스시, 김성배 옮김, <천지인>, 2010.
2. [사기], 사마천, 김원중 옮김, <민음사>, 2007.
3. [한서], 반고, 이한우 옮김, <21세기북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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