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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Jun 15. 2023

[뜻밖의 미술관](2023) - 김선지

'미술사'라는 '놀이터'

'미술사'라는 '놀이터'

- [뜻밖의 미술관], 김선지, 2023.





"한 점의 그림은 참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미술작품은 한 시대의 삶과 사회의 기록물이기 때문이다. 역사책 뿐만 아니라 그림을 통해서도 그 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이제 그림 속 인물들과 그들을 그린 화가는 사라졌다. 그러나 예술작품은 남아 그들 모두의 감정과 생각을 우리에게 조용히 건넨다. 그 의미는 무엇일까?"

- [뜻밖의 미술관], <젊은 금수저 부부 초상화의 비밀>, 김선지, 2023.



1.


'독후감'과 '서평'의 차이에 관한 글을 페이스북에서 보며 생각한다.

과연 내 글은 무엇일까.


소설가를 꿈꾸던 이십대를 보냈고, 정치평론 같은 글을 게시판에 가끔 올리던 삼십대가 있었고, 노동조합 성명서를 주로 쓰던 사십대도 잠시 있었다. 공통점은 그리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지는 않았다는 점 정도.


이십대에는 주로 소설책을 끼고 다녔고, 삼십대에는 거의 철학책을 들고 다니다가, 사십대에는 주로 역사책을 펼쳐보았다. '문사철'의 장대한 인문학적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글을 쓸 때 뭔가 있어 보이기 위해서였는데 실제로 나이가 들 수록 모든 책이 '역사책'으로 읽혔다.


오십대가 된 지금까지 읽은 책을 꾸준히 글로 정리하며 나름의 '독서일지'를 써 둔 나는, 그것들을 감히 '서평'이라 불렀다. 그런데 '서평'은 '객관적'인 평론이 있어야 하고 개인적 감상은 '독후감'이라는 페이스북의 글을 보고는 새삼 궁금해졌던 거다.


내 글은 대체 뭐지?



2.


'브런치'와 '블로그' 같은 곳에 '주간 문사철'이라는 간판을 걸고 매주 글을 올리는 '온라인 작가'라는 생각에, 지난 몇 년간 나의 '서평'인지 '독후감'인지는 단순한 '책소개'에서 형식이 바뀌었다.

원래 '소설'을 쓰고 싶었으니 짧은 '소설'과,

책 읽는 걸 즐기니 '서평'을 융합해 보는 것으로.

서론과 결론은 매우 짧은 논픽션 '소설'적 단상이고,

본론이 '책소개'다.


이번 생에 진짜 '작가'가 되기는 어려울 것 같으니 나의 글쓰기는 그렇게 혼자서도 잘 노는 일종의 '놀이'가 되었다.

퇴근 후 또는 토요일 아침 일찍 '서평+소설'을 쓸 생각으로 나는 일주일을 버틴다. 또 그렇게 생각하다보면 어려운 책도 잘 읽히고 심지어 업무까지 즐거워지는 믿지 못할 경우도 있다.


그래도 인류의 어려운 '고전'들은 잘 넘어가지 않을 때도 간혹 있는데, 그럴 때는 나의 또 다른 취미인 종이접기나 하다가 '주간 문사철'이 '격주간 문사철'이 되기도 한다.

그 와중에 단 한 가지 분야에서만큼은 먹기 아까운 곶감을 꺼내 먹듯 한 장 한 장 넘어가는 책장이 아깝다.

그 분야가 바로 '미술사'다.




[그림속 천문학](2020)과 [그림속 별자리 신화](2021)를 쓴 김선지 작가는 내가 '브런치'와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 된 미술사 전문작가다.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즐겼고 미술을 좋아했으며 한때 '고고학자'를 동경했던 나는 커서 어쩌다가 '문사철'과 '인문학'에 경도되면서 '미술사'에 끌리게 되었다.

곰브리치와 하우저, 뵐플린과 파노프스키 등 저명한 미술사학자들의 저서를 읽고 '독후감'을 써놓기도 했으며, 우리의 유홍준, 진중권 등과 일본의 나카노 교코 같은 미술사가들의 책은 거의 무조건 읽는데, 내 브런치와 페이스북 '친구'인 미술학자 김선지 작가 또한 책이 나오는 대로 꼭 읽게 되는 작가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255


내가 믿고 읽는 김선지 작가가 그 동안의 일간지 연재글을 보완하고 엮어서 올해 또 한 권의 책을 냈다.

제목은 [뜻밖의 미술관](2023)이다.


'뜻밖의 미술사'라는 제목의 <한국일보> 칼럼은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대로  읽었기에  책의 <part 1. 명화 거꾸로 보기> 대부분 익숙하다.

<1부>와 <2부> 중간중간 곁들여진 <더 알아보기>는 영국의 '라파엘전파', 르네상스 화가 티치아노, 플랑드르의 캉탱 마시, 미술사가 대비열전과 같은 '게인즈버러 대 레이놀즈', '다빈치 대 미켈란젤로', '고흐 대 고갱' 등의 흥미로운 뒷이야기로 즐비하다.

<part 2. 화가 다시 보기>는 칼럼으로는 읽지 못한 이야기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는 물론, 기괴한 기독교인 히에로니무스 보스와 요절한 르네상스 화가 조르조네, 벨라스케스와 고야, 고갱과 뭉크, 그리고 17세기 혁명적 여성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18세기 프랑스 혁명 전 마리 앙트와네트의 초상화가 마담 르브룅과 현대 여성주의 화가 메리 베스 에델슨까지 소개해준다.



곶감 빼 먹듯 아까워 하다가 하룻밤에 읽어버리고는 아쉽게 입맛을 다시고 만 김선지 작가의 [뜻밖의 미술관]은 제목에서 암시하듯, 명화들과 화가들의 삶 이면에 내포되고 숨겨진 의미들을 밝혀내는 내용이다.


미술사가는 '탐정'과 같다고도 하는데, 이 책 또한 그렇다.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 있는 예수는 전형적인 유럽인의 모습이지만 실제 유대인 예수는 유럽인과 다르게 생겼을테니 명화와 영화 속 예수는 서양중심주의의 산물이다.

로마의 그리스 조각상 모작들은 흰색이지만 원래 그리스 조각은 화려한 색채였고, 16세기에 역사상 유명한 예술가들의 [열전]을 쓴 조르조 바사리와 근대 수학자들이 만든 '1:1.6' 황금비율은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신화라는 이야기도 있다.

다빈치와 고야 말년의 그림들은 염세적이었고 고갱은 사실 원주민 미성년 성착취자였으며 뭉크는 중근세의 흑사병이나 현대의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전세계인을 몰살시킨 20세기 초 팬데믹인 스페인 독감 투병일지와 같은 그림들을 남겼다. 한편 신분상승을 열렬히 꿈꾸었지만 벨라스케스는 약자였던 궁정의 '난쟁이'들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깊은 연민을 보였고 풍경화를 그리고 싶었던 초상화가 게인즈버러는 금수저 동창 부부의 초상을 그리며 곳곳에 계급적 냉소와 풍자를 숨겨두었다.


( 마담 르브룅, 자화상 )


인상적이었던 내용 하나를 꼽는다면,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트와네트의 초상화로 유명한 마담 르브룅은 치열을 드러내며 웃는 얼굴들을 자화상을 포함하여 몇 점 그렸는데 치아위생이 좋지 않았던 당시에는 서민이 아닌 귀족층에게 치아 노출은 꺼려지는 일이었단다. 요즘에도 개인적으로 증명사진 찍을 때 치아를 보이며 웃는 표정이 쉽지 않은 것처럼, 18세기 당시에는 가히 혁명적인 초상화였던 거다. 곰브리치 말대로 미술의 역사에 '미술'이란 '관념'은 없고 '미술가들'의 '혁신'만이 존재한다.



'최후의 만찬'으로 시작한 책은 역시 '최후의 만찬'으로 끝맺는다.

마지막 장을 여는 그림은 현대 여성주의 화가 에델슨이 '현존하는 여성 예술가들'의 얼굴을 예수와 열두 제자 얼굴 위에 겹친 패러디다.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2020)로 등단한 작가답게 미술사에서 지워지고 소외된 여성 미술가들에 대한 오마쥬가 느껴진다.



김선지 작가를 내가 믿고 읽는 이유는,

내가 '미술사'라는 분야를 '뜻밖'에도 매우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불평등한 세상에서 계급적으로, 성별적으로 소외되고 차별받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을 작가가 언제까지고 붙잡고 있을 것 또한 믿기 때문이다.



3.


"글을 쓸 수 있는 지금 나의 마음은 5월의 따사로운 햇살같이 포근하고 충만하다. 여전히 꿈을 꾸고 있고,... 항상 설레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 [뜻밖의 미술관], <프롤로그>, 김선지, 2023.


'작가'가 되기를 희망하는 모든 글쟁이들이 그렇겠지만, 김선지 작가의 페이스북 포스팅을 보면 공감이 될 때가 많다. 특히 글을 쓸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것과 먼길을 돌아 온 이 길에서 딛는 한 발 한 발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지, 출간작가가 되지 못해 글쓰기를 한낱 '놀이'로 생각하기로 한 내가 보기에도 생생하게 그 마음이 전해져 온다.


책을 출간하면서 김선지 작가의 그 즐겁고 행복한 글쓰기가 고된 '노동'이 되지 않기를 독자로서 바래 본다.


그게 '서평'이 되었든, '독후감'이든, '소설'이든,

그냥 책 읽고 쉬는 시간에 종이나 접어 제끼다가 다시 끊임없이 글 쓰는 걸 '놀이'로 삼고 사는 내게,

가장 재미진 '놀이터'는 여전히 언제까지나 '미술사'이기에 갖는 바람이다.


***


- [뜻밖의 미술관], 김선지, <다산북스>,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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