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 이상 '마법'에 걸리지 않는 이유
더 이상 '마법'에 걸리지 않는 이유
- [베난단티], 카를로 긴즈부르그, 1966.
"왜 네가 마법에 걸리지 않는지 아는가?
왜냐하면 너는 그것을 믿지 않기 때문이야."
- 올리보 칼도, 1644.
1.
중세시대 마녀사냥 하면, '광기'가 떠오른다.
'마녀'가 광인이었는지, 광인을 '마녀'로 만들었는지, 아니면 이들을 심문하고 화형시킨 가톨릭 권력이 미쳤던 건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단일 사상이나 종교로 '차이'와 '소수'를 단죄하는 시대 자체가 '광기'다.
'미시사(微視史)'라는 말이 있다.
거대담론이나 대의, 위인과 영웅의 '거시'적 역사가 아니라 개인이나 소수의 역사를 주제로 한단다. '개별적인 것이 보편적인 것'이라는 철학자 헤겔의 말이 떠오른다.
작은 것들 속에도 역사의 '보편성'이 흐른다.
이탈리아 역사가 카를로 긴즈부르그(Carlo Ginzburg)가 27세였던 1966년에 쓴 박사학위논문은 [베난단티(I Benandanti)]인데, '미시사'의 대표적 저서라고 한다.
생소한 단어인 '베난단티'는 중세 '마녀'와 싸워 농작물의 풍요와 어린이의 생명을 구하는 일종의 '전사'다. 긴즈부르그의 '미시사'는 이 '베난단티'의 변화를 중심으로 한다.
2.
"... 고대의 민중신앙이 심문관의 무의식적인 압박을 받아 마침내 기존의 악마적 '사바트(Sabbath)'라는 틀 속으로 서서히 지속적으로 짜맞춰 들어가는 변형의 과정을 겪었다는 것... 마녀의 '밤의 모임'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악마의 찬미와 관련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신비로운 여신인 '디아나(Diana)' 신앙과 관련되어 있다... 14세기 말부터 이탈리아에 존재했던 이 신앙에는 '마법'이 관련되어 있지만, 악마와는 상관이 없이 무해하다... 1523년에 이르러서야 십자가와 성체 모독, 그리고 악마와의 성교 같은 묘사가 나타난다."
- [베난단티], <밤의 전투>, 카를로 긴즈부르그, 1966.
가톨릭에서 사계절마다 신앙으로 심신을 닦는다는 '사계재일(四季齋日)'이 되면, 수요일에서 목요일로 넘어가는 밤에 독일의 '브로켄' 산이나 이탈리아 '조사파트' 또는 '요사파트(하느님의 심판이 내릴 땅)' 계곡 등지로 '마녀'들이 모였단다.
'악마'의 부름을 받은 이 '마녀'들은 염소나 고양이, 산토끼 등의 동물을 타고 모여서 노래하고 춤추고 먹고 마시며 난교를 벌인다는데 사실 이 광란의 잔치인 '사바트(Sabbath)'에는 '마녀'만 초대받은 게 아니었다.
'베난단티'는 태어날 때부터 '양막'을 목에 두르고 알 수 없는 별자리 아래 태어난 자들로 성년이 되면 누군가의 오더로 소집되는 일종의 '군인'과도 같다. 이들은 이 '사바트'에서 '마녀들'과 '밤의 전투'를 벌이는데, '베난단티'가 이기면 풍작이, '마녀'가 이기면 흉작이 든다고 한다. '베난단티'는 회향나무를 묶은 회향단으로 싸우고 '마녀'는 불쏘시개로 쓰는 시커먼 나무대기로 싸운다. 치료의 효과가 있는 회향나무를 든 '베난단티'는 '마녀'들이 피를 빨아먹으려는 어린이들의 생명도 구하는 임무도 있다.
( 회향나무 )
긴즈부르그는 이런 이야기를 중세 16~17세기 마녀 심문기록 등을 파헤치고 연구하여 '미시사'로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긴즈부르그 일생을 지배한 이 '밤의 전투' 기록의 목적은 '마녀재판' 사실의 새삼스런 폭로는 아니다.
저자의 목적은 '민중신앙'의 변형에 관한 서술이다.
사실 '베난단티'와 '마녀'와의 '밤의 전투'는 기독교가 '보편적 교회(Katholikos)'로서 '가톨릭'이 되기 이전의 이교도적 전통이었던 '민중신앙'이 기원이다. 우리가 아는 '풍요제' 말이다. 우리 역사에서도 알려진 부여의 '영고', 동예의 '무천', 고구려 '동맹' 따위의 그런 제례 같은 거다. 동서양을 막론한 민중들은 이 풍요제에서 선악을 나눠 싸움을 벌였고 풍요를 기원하며 권선징악을 기원했을 게다. 동양은 토템이나 샤먼이 있었을 테고, 서양은 '디아나' 같은 신이 있었을 것이다.
중세 기독교 가톨릭이 공격한 지점이 바로 이 '이교도' 의식이었다. '마녀'는 소수 이교도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이 '마녀'를 체포하고 기소하기 위해 심문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풍요와 정의의 전사 '베난단티'였던 거다. 아마도 '베난단티'는 민중신앙에서는 '마녀'의 적수였을지 모르지만, 단일 종교의 폭력 앞에서는 '마녀'와 한 패가 되는 소수 민중신앙의 수호자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결국, '베난단티'는 가톨릭에 굴복하고 만다.
3.
"마법과 일반적인 마술적 현상에 대해 다양하고 더 회의주의적이고 동시에 더 합리적인 태도가 확산되면서 '베난단티' 신화의 붕괴와 몰락은 필연적으로 다가왔다. '마녀'나 마법사에게 희생된 적이 전혀 없으며, 그들의 존재도 믿지 않는다고 말한 친구에게 (1644년에 기소된 농민) 올리보 칼도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왜 네가 마법에 걸리지 않는지 아는가? 왜냐하면 너는 그것을 믿지 않기 때문이야.' '베난단티' 신화의 붕괴와 몰락은 바로 이러한 원리가 양식있는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지게 된 사실의 단순한 결과였을 뿐이다."
- [베난다티], <사바트에 간 베난단티>, 카를로 긴즈부르그, 1966.
'베난단티'들과 '마녀'들의 진술에 의하면 그들은 '사바트'에 '영혼'만 간다. 육신은 죽은 듯 반듯하게 누워있고 '영혼'만 드나드는데 동물을 타거나 그것들로 변신하여 간다.
짐승이나 벌레, 장애 또는 불구의 형상은 고대로부터 이승과 저승을 잇는 상징이라고 한다.
페르세우스 같은 '반신반인'이 아닌 순수한 인간 혈통으로 오로지 인간의 지능으로서 신의 영역을 오가는 '오이디푸스'의 이름은 '부어오른 발'이란 뜻으로, 실제로 그는 절름발이였다고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들은 '정신분열'이나 '간질'을 앓는 환자들로 간주되었거나, 이들 소수의 환자들이 '마녀'로 격리대상이 되었으며, '베난단티' 또한 '마녀'와 구분없이 여겨졌다. 참고로, '프리울리' 같은 이탈리아 북부 변두리 지방에 잔존하던 민중신화 '베난단티'처럼 독일의 민간전설 '늑대인간'도 최초의 선한 신화와 다르게 이 시기에 악마의 추종자로 변형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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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마녀'로 기소된 '베난단티'들의 일관성 없이 모순된 진술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실상 가톨릭에 완전히 패배한 민중신앙의 실체였다. 풍요제의 전통이었던 '사바트'는 "춤과 성적 음란이 있는 비밀모임"이라는 "초라하고 진부한 실재"로 남았다(같은책, <사바트에 간 베난단티>).
긴즈부르그는 17세기 중반이던 1644년 농부 올리보 칼도라는 '베난단티' 혐의자에 대한 재판과 함께 이 '베난단티' 이야기는 이론적으로 종착점에 도달했다"(같은책, 같은곳)며 이 책을 마무리하는데, '베난단티'라는 풍요제 민중신앙이 '마법'이나 '마녀'와 동일한 것으로 변모한 이유로 이 신화의 "내재적인 취약성"(같은책, 같은곳)을 든다.
그러나 결국 낡은 문명과 새로운 문명과의 충돌에서 낡은 것이 사라지는 것은 필연이다.
민중들이 믿음을 저버린 문명이나 신화, 이데올로기는 소멸된다.
민중들이 '마법'을 믿지 않게 되었을 때,
그들은 더 이상 '마법'에 걸리지 않았고,
'베난단티'는 그렇게 역사에서 사라졌다.
'마녀사냥'으로 소수를 억압했던 중세 가톨릭은 영원할 수 없었다.
근대의 '과학'에 의해 지배사상의 자리를 내어주고 말았다.
새로운 문명은 언젠가 낡은 것이 되고 또 다른 신문명에 의해 전복된다.
'과학'은 항상 신문명을 부른다.
그러나 또 누가 아는가.
'베난단티' 같은 '민중신앙'이 앞으로 언제 어떤 모습으로 새롭게 또 인류 역사에 나타날는지.
'늑대인간'은 지금도 보름달밤에 울부짖는다.
물론, 긴즈부르그의 '미시사'의 결론이 그렇다는 건 아니다.
***
1. [베난단티(Benandanti)]()](1966), Carlo Ginzburg, 조한욱 옮김, <교유서가>, 2023.
2. [나카노 교코의 서양기담](2020), 나카노 교코, 황혜연 옮김, <브레인스토어>,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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