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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Jun 09. 2023

[확장된 표현형](1982) - 리처드 도킨스

- '동물의 왕국'은 아니었다!

'동물의 왕국' 아니었다!

- [확장된 표현형], 리처드 도킨스, 1982.





"동물이 하는 행동은 그 행동을 '위한' 유전자가 행동을 수행하는 특정 동물 몸에 있든 없든, 해당 유전자가 달성하는 생존을 최대화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표현형' 특질을 끌어당기는 복제자는 몸 속 뿐만 아니라 몸 밖에도 있다는 점이 내 이론이 품은 핵심이다... 나는 거의 모든 '표현형' 형질이 내부 복제자 힘과 외부 복제자 힘 사이에서 일어나는 '타협'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 [확장된 표현형], <13장. 원격 작용>, 리처드 도킨스, 1982.



생명의 진화사에서 중요한 실체는 생물의 개체나 집단이나 유기체가 아닌 오직, 불멸의 '이기적 유전자(gene/DNA)'라고 선언하고 논증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1976~1989)를 덮자마자 그가 스스로 '학자'로서 "자랑거리이자 기쁨거리"라며 자화자찬했던 후속작 [확장된 표현형](1982)을 펼칠 때만 해도, 나는 이미 내용을 다 알고 있다는 생각에 내가 좋아하는 '동물의 왕국'을 보듯이 편안한 자세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도킨스의 "자랑거리이자 기쁨거리"라던 [확장된 표현형]은 결코 '동물의 왕국'이 아니었다!


도킨스가 하고자 했던 주장은 [이기적 유전자](1976)의 1989년도 개정판에서 증보된 마지막 <13장>에 이미 다 소개되었고, [확장된 표현형](1982)은 대중과학서인 [이기적 유전자]가 제시한 관점에 대해 전문가들이 가한 비판에 대항하여 본인의 '이기적 유전자론'을 변호하고 논증하는 일련의 학술적인 작업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전문 생물학자들을 대상으로 쓴 [확장된 표현형]에서 도킨스가 논증한 숱한 '사고 실험'에 지쳐서 나는 책을 덮고 종이접기나 했으며, 결국 중간에 잘 이해되지도 않는 '사고 실험' 몇 가지는 건너 뛰었다.

[확장된 표현형]은 전문적인 과학책이면서 현실의 '동물의 왕국'과 달리 이론적인 '사고(생각) 실험'으로 넘쳐난다.

고등학교 때 문과였음에도 생물 시간만큼은 좋아했던 나였지만, 지금도 쉬는 날 오후에는 꼭 KBS 1TV '동물의 왕국'을 틀어놓고 조는 걸 좋아하는 나지만, 리처드 도킨스의 [확장된 표현형]은 결코 나 같은 사람이 아닌 생물학 전공자들의 책이었다.




"다소 극적으로 표현하자면 이 책은 '이기적 유전자'를 '개체'라는 개념적 감옥에서 해방시키려 한다. '유전자'가 발하는 '표현형' 효과는 자신을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지렛대와 같은 도구이며 이러한 도구는 '유전자'가 자리한 '몸(생존기계)' 밖으로, 심지어 다른 개체의 신경계 깊숙이까지 '확장'될 수 있다."

- [확장된 표현형], <서문>, 리처드 도킨스, 1981.6.



일반인으로서 동물행동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책을 읽으라면, 역시 [이기적 유전자] 한 권이면 충분하다.

리처드 도킨스의 대표저서 [이기적 유전자]는 1976년에 발표되었고 1982년에 유전자가 드러내는 '표현형(phenotype)'이 유기체 외부 환경으로까지 무한히 '확장(extend)'된다는 [확장된 표현형(The Extended Phenotype)] 출간 후 1989년 전작인 [이기적 유전자] 개정판에서 <12장>과 <13장>의 추가설명까지 덧붙였으니, 단언컨대, 과학자가 아닌 일반인은, 특히 문과적 인간이라면, 도킨스의 이론을 알기 위해 굳이 [확장된 표현형]까지 읽을 필요는 없다.

졸린 눈을 비비며 읽는다 쳐도 도킨스의 전작인 [이기적 유전자] 1989년 개정판보다 더 확장될 지식도 없다.

공연히 읽다가 도킨스에게 실망만 더 하게 될 공산이 크다.

실제로 내가 그랬다.



"유전자는 '복제자'다. 유기체와 유기체가 모인 집단은 최적의 복제자라고 보기 어렵다. 그들은 복제자가 타고 여행하는 '운반자'다... 집단 선택 대 개체 선택 논쟁은 제시된 두 종류의 운반자를 다루는 논쟁이다. 유전자 선택 대 개체(또는 집단) 선택 논쟁은 우리가 선택받는 단위를 말할 때, '운반자'를 의미해야 하는지 또는 '복제자'를 의미해야 하는지를 다루는 논쟁이다... 실제로 성공하든 실패하든, 모든 생식계열 복제자는 잠재적으로 '불멸'이다."

- [확장된 표현형], <5장. 능동적인 생식계열 복제자>, 리처드 도킨스, 1982.



결코 '동물의 왕국' 같이 푸근한 분위기가 아닌 도킨스의 [확장된 표현형]의 장황한 변론과 복잡한 '사고 실험'들을 제외하면, 이 책의 주요 내용은 [이기적 유전자]의 1976년 초판과 1989년 개정판의 마지막 <13장>이 소개한 '유전자의 (확장된) 긴 팔' 그것 뿐이다.



리처드 도킨스에 의하면, 수십억 년의 생명 진화사에서 맹목적 생존만을 위해 프로그램된 '불멸의 이기적 유전자'와 이러한 유전자들의 '표현형'은 "유전자와 환경이 만드는 공동 산물로서 유기체가 지닌 밖으로 드러난 자질"이며 "유전자가 자리한 몸 밖으로" 유전자의 "기능적 차이"를 포함하는 영역으로까지 "확장"([확장된 표현형], <용어 사전>)된다.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gene)'의 자연과학적 개념을 확장하여 인간문명계의 '밈(meme)'을 논의하지만 그에게 '밈'은 "인간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 보다는 유전적 자연 선택을 보는 통찰력을 예리하게"(같은책, <6장>) 하기 위함이라고 말하고 있다.


[확장된 표현형] <1장>에서 저자는 이 책의 "핵심"이 <11장>, <12장>, <13장>이라고 말한다.

<11장>은 거미와 비버 등의 특징을 나타내는 유전자의 '표현형'은 동물 유기체들 내부 뿐 아니라 그들이 조작하는 거미줄이나 댐 등으로도 표현되며 이 "동물이 만드는 조작물"들은 주변의 환경도 변화시키면서 결국 해당 유기체의 더 나은 생존을 위한 유전자 진화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가설이다.

<12장>에서는 맹목적 생존만이 목적인 '이기적 유전자'는 한 유기체 뿐만 아니라 "기생자 유전자"로서 다른 유기체에 기생하며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되는 "숙주 표현형"을 통해 '확장'된다는 또 하나의 가설이다. 달팽이와 흡충은 유기체 결합 상태에서, 뻐꾸기 새끼와 개개비새 어미는 그렇지는 않지만 한 둥지라는 공간에서, 기생자가 숙주를 '조종(조작;manipulation)'한다. 이 '조종' 과정에서도 도킨스가 말하는 '군비 경쟁(Arms Races)'(같은책, <4장>), 즉 생존을 위해 '비용'보다는 좀더 '이익'이 되는 유전자를 선택하는 다윈주의적 '자연 선택'이 작용하여 '기생자'에게는 이익이고 '숙주'에게는 일견 손해로 보일지라도 결국 공생하고 함께 진화한다.

[확장된 표현형]의 결말은 <13장> "원격 작용(Action at a Distance)"이다. '유전자'는 '유기체'나 생물 '개체'에 얽매이지 않고도 원격 조종으로 진화에 영향을 미친다는 '유전자 표현형 확장'의 "논리적 정점"(같은책, <12장>)이다.


한편, 도킨스는 [확장된 표현형]이라는 자기 변론서의 서두에서부터 '유전적 결정론'의 오해를 벗어나고자 하는데, 흔히 생각하듯 개체나 유기체의 '집단 선택' 진화설이 아니라 유전자의 '자연 선택' 진화설로 인해 '유전자'가 모든 걸 결정한다는 통념적인 오해를 불식시키는 게 이 책의 우선적인 목표(같은책, <2장>)이기도 하다.

도킨스의 주장은 '유전자 결정론'이 아닌 '유전자 선택론'이라는 것이며, 유전자의 '표현형'은 유기체 내부만이 아닌 외부환경으로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무한히 '확장'된다는 일종의 '타협'(같은책, <14장>)이다.


( [이기적 유전자], <개정판 서문>에서 비유된 '네커 정육면체' )


이를 위해 도킨스가 [확장된 표현형](1982) <1장>과 [이기적 유전자] 1989년 <개정판 서문>에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보이는 '네커 정육면체'의 비유를 통해 전제하는 것은 '유전자 자연 선택설'이나 '유기체 선택설'이나 생명을 보는 두 가지 타당한 관점이라는 것이다.

다만 도킨스 본인은 다윈주의 진화론인 '자연 선택설'을 따르되 그 중요한 근본 실체를 '유전자' 또는 '불멸의 생식기계 복제자'로 본다는 주장을 '동물의 왕국'과 달리 매우 재미없게 논증한 다음 이 책 [확장된 표현형]의 '핵심'인 <11~13>장을 지난 후 마지막 <14장>에서 "통합된 다세포 유기체"를 재발견하며 끝을 맺고 있다.

즉, '불멸의 이기적 유전자'가 근본이기는 하나 이 유전자와 외부환경이 함께 만든 '표현형'이 무한히 '확장'되며 환경과 함께 공진화한 '다세포 유기체'는 역시 '생존기계'이기는 해도 위대하고 장엄하다는 의미겠다.



"통합된 다세포 유기체는 원래 독립해 있던 '이기적 복제자'에 자연 선택이 작용한 결과로 나타난 현상이다. 함께 모여 행동하는 방침은 복제자에게 이득이었다. 원리적으로는 복제자가 생존하도록 보장하는 '표현형' 힘은 '확장'되며 한계도 없다."

- [확장된 표현형], <14장. 유기체의 재발견>, 리처드 도킨스, 1982.



유전자는 생명의 근본이고 이들이 통합된 유기체는 장엄하지만,

내게 [확장된 표현형]은 결코 휴일 오후 '동물의 왕국' 같은 편안함을 주지 않았다.


혹시 동물행동학자 리처드 도킨스를 알고 싶은 문과생이시라면,

그렇다면, 더도 말고 딱 [이기적 유전자](1976~1989)까지만 읽으시라.


https://brunch.co.kr/@beatrice1007/312


***


1. [확장된 표현형(The Extended Phenotype)](1982), Richard Dawkins, 홍영남/장대익/권오현 옮김, <을유문화사>, 2022.

2.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1976~1989), Richard Dawkins, 홍영남/이상임 옮김, <을유문화사>, 2018.


https://m.blog.naver.com/beatrice1007/223123773711?afterWebWrite=tr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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