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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Oct 14. 2023

[13일의 금요일 1~7] - 1980~1988

- '제이슨' 얘기를 하겠다

[13일의 금요일 1~7] - 1980~1988

- '제이슨' 얘기를 하겠




고등학교 입학한 1990년부터 학교 운동장 구석 철봉대 밑에서 친구들이 모였다. 각자 다른 중학교 친구들을 한 둘 데리고 나왔는데, 그 중에는 국민(초등)학교 동창들도 있었고 중학교 때는 말도 못 걸어본 친구도 있었으며 한 살 많은 재수생 형들도 있었다. 한창 성장기였을 고등학생이 되어 친구들도 새로 사귀고 싶었고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일대에서 서로서로 교차되는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시키는 아주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오랜 친구, 생판 처음보는 건너 동네 휘경동 친구, 전라도에서 올라온 재수생 '형'들 포함 약 열댓 명이 방과 후 모여 놀았고, 1학년을 마친 겨울에 북한산을 오르며 조직을 출범시켰다. 이름하여, 경희고 '철봉파'다.


우리들은,

'노는 애들'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학교를 빠지지 않고 잘 다녔다. 그리고 조숙한 몇 명을 빼고는 부모님 말씀을 잘들어 술과 담배는 3학년 여름방학 또는 '백일주'까지 참았던 착한 학생들이 다수였다. 학교 끝나고 철봉대 밑에 모여 체력단련을 하다가 '스타워즈' 오락실에 마지못해 잠시 들렀더라도 오락은 조금만 하고 야자를 위해 다시 학교로 뛰어가던 어찌보면 '모범생' 무리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다수의 이런 '금욕주의'적이고도 '청교도'적인 성향에 반발한 조숙한 몇 명은 따로 더 친하게 모여 당구장 등으로 내뺐는데, 그래도 이 선진적 조직원들로 인해 스무살을 앞둔 나머지 '청교도'들은 술과 담배 및 당구 등을 빠르게 전수받을 수 있었다.


당시 우리들에게 토요일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천국 같은 시간이었는데, 평일의 모범적 삶을 벗고 고스톱과 포르노비디오 등을 아주 가끔 섭렵할 수 있었다. 대부분 넉넉치 못했던 우리들의 부모님들은 맞벌이가 많았고 토요일 방과후는 친구들 빈집에서 라면을 끓여먹고 고스톱을 배우거나 비디오 시청을 했다. 하루는 고스톱 치다가 친구 형이 일찍 들어와서 노름판을 뒤집고 친구의 싸대기를 몇 번 돌려대기도 했다. 포르노비디오는 소문만큼 그리 많이 실물로 유통되지는 않았는데 비디오 플레이어 있는 빈집 친구 집에서 대부분은 천원 짜리 몇 장 모아 라면 사고 비디오 대여점에서 성인비디오를 빌려보기도 했다.


사실 금욕적인 우리들은 부끄러워서 '성인물'을 잘 빌리지도 못했다. 그래서 단골 단체관람물은 '공포영화'였다. 당시는 영화 쟝르 따윈 관심없었으나 보통 '슬래셔 무비(slasher movie)'로 일컬어지는 영화들은 모종의 '규칙'이 있었다. 섹스를 한 청소년들은 연쇄살인마의 첫 번째 희생양이 되는 불문율. 우린 희대의 악마들을 보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공포영화' 비디오를 빌린 이유는 '젖소부인 바람났네'나 '김밥부인 옆구리 터졌네' 등의 불후의 역작들을 차마 빌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난 추억한다.


1990~1992년 고등학교 시절의 토요일 오후 하면 가장 기억나는 건, 둘러앉아 끓여먹던 '삼양라면'과 '13일의 금요일'이다.


그리하여 나도 한 번,

"제이슨 얘기를 하겠다."


[13일의 금요일 2], 1981.


영화 [13일의 금요일]은 미국 공포영화, '슬래셔 무비'의 대표작으로 1980년 감독 숀 커닝햄이 만들었다. '슬래셔 무비'는 그냥 무턱대고 막무가내로 패고 찌르고 베고 잘라서 사람을 죽이는 공포영화다. '13일의 금요일'이 제목이라 무슨 종교적이고 비의적이며 신비로운 메시지가 있을 거라 보면 실망한다. 예수가 십자가 못 박힌 날이 '13일의 금요일'이네, '13'이라는 숫자가 '악마'를 상징하네 어쩌네 하는 말들은 다 미신이고 종교와 1도 관계 없다. 그냥 불길한 기운 느껴지면 제이슨이 와서 칼이나 도끼로 팬다는 뜻이다. 이유는 알 필요 없다.


얘가 바로 '제이슨(Jason)'~
불길한 느낌이 오면, 여지 없이 죽는다


이유가 없다 했지만, 그래도 영화인데 스토리는 있어야겠다. [13일의 금요일]에 나오는 희생자들은 대부분 당시 우리들과 같은 청소년이었다. 우린 아직 애기였는데 미국애들은 이미 어른이었고 이성이랑 할 짓 못할 짓 다하고 있었으니, 눈으로 대리만족을 한 후 우린 걔들을 처단해 주는 제이슨 편이었다.

그러나 제이슨은 어린 시절 선천적 기형으로 인해 '왕따'를 당했던 불우한 어린이었으며, 소풍가서 크리스털 호수에 빠졌으나 선생님들을 포함 아무도 구해주지 않아 익사하고 만다. 이후 불쌍한 제이슨의 친구 아닌 동창들은 아직 제이슨은 죽지 않고 밤에 돌아다닌다는 괴담을 퍼뜨렸고 제이슨의 엄마 파멜라는 이 괴담을 이용해서 제이슨을 죽게 만든 사람들을 하나씩 처단한다는 내용이 [13일의 금요일] 1편이다. 2편으로 이어지는 이후 이야기는 예상하다시피 실제로 죽지 않은 제이슨이 뭘 먹고 컸는지 영양과다의 체력으로 나타나 조숙한 남녀 불량청소년들에게 참교육을 실현한다는 내용이다. 물론 그 형식은 매우 끔찍하고 처참하므로 혈기왕성하고 방자하기 그지없었을 우리가 보기에도 당최 바람직하다 할 수는 없었다.


젊은 남녀의 섹스 장면이 더 이상 나오지 않을 즈음에 우리는 제이슨의 등장에 더 치를 떨었는데, 어떤 상해를 입어도 계속 일어나는 그 불사신의 맷집에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제이슨은 격투 게임의 캐릭터로 나와도 손색이 없었으나 '90년대 당시 우리가 동전을 쏟아붓던 오락실 아케이드 격투게임에서는 너무 최강이라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역시나 우리의 자식뻘 후배들의 게임 캐릭터로 등장했다는데, 인터넷이 활성화된 나중에야 알았지만 [13일의 금요일]은 미국에서는 영화는 물론 만화와 드라마, 게임 등으로 진화한 '상품'이었단다.


'슬래셔 무비' 또 하나의 공식은 다소 가련해 보이는 여주인공이 결국 지긋지긋한 제이슨을 무찌르고 살아남으면서 영화가 끝난다는 거다. 정신적으로만 교감하던 청순남녀 중 든든한 남자친구는 제이슨의 마지막 희생자가 되고 그 과정에서 에너지가 다 떨어진 제이슨은 여주인공에게 항상 얼떨결에 응징당하는 마지막 엔딩의 무한반복인데, 제이슨은 팔이 잘리고 눈이 찔려도, 불에 타고 물에 빠져도 다음편에 다시 살아 돌아온다는 관객들의 믿고싶지 않은 예감을 항상 남긴다.


죽지 않는 '제이슨'~


제이슨의 트레이드 마크는 아마도 2편인가 3편부터우연히 득템한 아이스하키 마스크일 게다. 아이스하키 전공 체육선생님께서 전파한 우리학교 체벌도구의 대명사 아이스하키채 덕분에 우리들은 그 스포츠 종목을 싫어했기에 제이슨의 마스크가 더 지겨웠던것 같기도 하다. 그외 어디서 주웠는지 모르는 큰 망나니칼과 주위에서 아무렇게나 주운 왕도끼 등은 제이슨의 빈손을 허전하지 않게 했던 것 같다.

아무튼, 본의 아니게 친구들과 섭렵하게 된 [13일의금요일] 이후로 [나이트메어] 등등의 경쟁작들도 일부 보기는 했으나 모든 것이 그렇듯 우리들의 '집단관람'은 어느새 시들해지고 지긋지긋하던 제이슨의 무한반복 환생쇼도 7편 정도를 끝으로 우리의 청소년기와 함께 사라져갔다. 나는 개인적으로 6편인가 7편에서 제이슨이 본인이 환생해 나왔던 크리스털 호수 밑바닥에 쇠사슬로 묶여 봉인되었을 때 '그동안 고생 많았을테니 이제 진정 안정을 취했으면' 하고 진심으로  바랬건 것 같다.



나중에 제이슨은 자본주의의 부름에 의해 다시 명부를 열고 지상으로 나와 [나이트메어]의 프레디와도 한 판붙기도 하고, 온라인게임에도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지만, 나와 우리 친구들은 이미 크리스털 호수를 떠난 후였다.


***


"30년지기 '철봉파' 친구들아, 사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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