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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Jun 22. 2024

[글자 풍경](2019) - 유지원

- 글자 = 글씨 + 활자

글자 = 글씨 + 활자

- [글자 풍경], 유지원, 2019.





"타이포그래피'는 이름 그대로 '타입(type)'을 다룬다. '글자'는 크게 손으로 쓰는 '글씨'와 기계로 쓰는 '활자'로 나뉜다."

- [글자 풍경], <붓이, 종이가, 먹물이, 몸이 서로 힘을 주고 힘을 받고>, 유지원, 2019.



취학전에 책을 끼고 다녔던 것도,

글씨를 배우게 된 것도,

사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 덕이었다.


어둑한 방에 배깔고 엎드려 동물 삽화책을 펼쳐놓고는,

어머니가 출근 전 남겨준 16절 갱지에 0.7mm 모나미 볼펜으로,

공룡과 동물들을 그리다가 어느새 지겨워지면,

흰 바탕에 검게 박힌 글자들을 베껴 썼다.


아버지가 체계적으로 '가나다라'를 가르쳐주시기 전에 나는 그렇게 글씨를 그림처럼 그렸다.


글씨를 그림처럼 그리기 시작한 나의 문자 이력은 이후 청소년 시절에는 한자와 필기체 영어에 대한 선호로 나타났다.



상형지사 문자가 조합되는 한자와 흐르듯 이어지는 필기체 영어는 마치 그림을 그리듯 써야 제 맛이었다.



그렇게 나는 한글도 나만의 0.7mm 모나미 볼펜 '필체'로 직접 쓰는 걸 좋아하게 된다.

책을 읽다가 기억해 두고 싶은 문장은 꼭 내 손으로 직접, 세상 어디에도 더 없을 유일한 나만의 '필체'로 책의 속표지에 필사해 둔다.

내가 책을 빌려 읽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독일에서 '타이포그래피'를 전공한 시각디자이너 유지원은 [글자 풍경](2019)이라는 책에서 정보와 지식을 소수 독점이 아닌 모든 사람들에게 쉽게 전달하는 일을 하고 싶어 시각디자인을, 그 중에도 '글자' 디자인으로서 '타이포그래피'를 전공하게 된 어린 시절 기억을 회상하면서 책을 연다.



'글자'는 세분화하면 손으로 쓰는 '글씨'와 인쇄 기계로 찍는 '활자'를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글씨'는 사람이 손으로 계속 쓰는 한 그 '필체(type+graphy)'가 다양하게 발전할 것이고, '활자(typography)'는 14세기 우리 고려의 금속활자 직지심경과 15세기 유럽의 구텐베르크 인쇄 혁명 이후 여러가지 인쇄체로 정형화되었으며, 현대는 컴퓨터 그래픽으로서 '폰트'라는 세계 공통 활자체들로 확장되어 왔다.



유럽의 북부에서 시작된 구텐베르크의 인쇄체는 '블랙레터(blackletter)'로서  지면보다 검은 글자가 두드러지는 활자체였다. 그러나 기계적인 블랙레터는 유럽 남부의 르네상스 정신에는 맞지 않았다. 중세처럼 오로지 필사만으로는 대량 생산에 한계가 있었기에 남유럽의 활자체는 보다 필체적 요소를 가미한 결과  지면의 여백이 드러나게 되어 '화이트레터(whiteletter)' 되었다.

[글자 풍경]의 저자 유지원은 북유럽의 '블랙레터'를 추운 북방의 '침엽수', 남유럽의 '화이트레터'를 따뜻한 남쪽의 '활엽수'에 비유한다. 구텐베르크의 활자체 '텍스투라' 등은 빽빽한 침엽수림으로, 인문주의 르네상스 활자체 '화이트레터'는 '로만체'의 이름으로 넉넉해진 활엽수림과도 같이 보이기 때문이다.



북유럽의 기계적인 인쇄체는 13~16세기 '텍스투라(Textura)'로부터 시작된다.

구텐베르크 당시 사용된 '텍스투라' 활자체는 아마도 예전 중세 시대부터 수도사들이 성경을 필사하던 필체들을 토대로 했을 것으로 추측되며 개인의 필체적 개성을 탈각하고 대량 인쇄를 위해 정형화시킨 활자체로서 주로 라틴어 성경 인쇄에 쓰였다. '텍스투라'라는 이름 자체도 '텍스트(text)'에 쓰인 활자체의 원형임을 의미하겠다.

성경이라는 대표적인 '텍스트'가 유럽 각지의 언어로 번역되고 대중화되는 과정과 함께 이 '텍스투라' 활자체는 유럽 각지의 '방언', 즉 독일어, 영어, 프랑스어 등과 같은 각 지역의 언어로 다양화되는데, 이를 14~16세기형 '바스타르다(Bastarda)'라고 부른다. 15~17세기 독일식 르네상스 '바스타르다'는 '슈바바허(Schwabacher), 16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사용된 독일 바로크식 활자체는 '프락투어(Fraktur)'라고 한다.


이들 '텍스투라'-'바스타르다'-'슈바바허'/'프락투어' 등을 지금의 단순화한 활자와 폰트에 비교해 보면 상당히 장식적이다. 이 장식성의 포장은 이후 정보와 지식의 대중화와 민주화, 인쇄 문명의 발전 과정을 거치면서 서서히 벗겨지게 된다. 현대에는 '획'의 최소한의 묘미로서 획 끝의 돌기인 '세리프(Serif)' 조차도 없앤 '산-세리프(San-serif)' 활자체가 등장했다. '산(san)'은 프랑스어로 영어의 'without'을 의미한다. 글씨 쓰듯 획을 꺾는 '세리프'는 우리 한글체로는 '바탕체(명조체)', '산세리프'는 '돋움체(고딕체)'로 볼 수 있다. 컴퓨터 활자인 폰트에서는 각국의 문자들을 이런 식(바탕-돋움/세리프-산세리프)으로 정형화한 '유니코드'를 통해 현대식 '문자의 바벨탑'([글자 풍경],109쪽)을 쌓아가고 있다.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 알베르토 망구엘은 [독서의 역사](1996)에서 구텐베르크의 인쇄혁명은 텍스트의 대량 인쇄를 통해 활자를 확산시키는 한편으로, 손으로 쓰는 육필가들은 서체를 더욱 장식적으로 발전시켰다고 한다.

기계 문명의 발전이 수공업적 문화를 말살하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는 증거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131


19세기 영국의 디자이너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는 산업혁명 초중기 조악했던 기계문물의 생산물에 대항하여 인간 공예의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이른바 '미술공예운동(Arts and Crafts Movement)'를 전개했는데, 흡사 노동자들의 최초이자 최후의 기계파괴운동이었던 러다이트 운동과도 같이 "디자이너가 대량생산 기계에 저항한 최후의 운동"([글자풍경],275쪽)이었다. 그러나 이후 디자이너들은 기계문명의 한계는 물론 새로운 가치를 포괄하는 운동으로 전환하였다는데, 이것이 독일의 '바우하우스(Bauhaus)'로 대표되는 공예의 '모더니즘(modernism;근대성/현대성)'의 출현이다.



[글자 풍경]은 유럽과 세계 각국의 '타이포그래피' 역사와 현재를 돌아보며, 결국 우리의 '글자'로 돌아온다.

구텐베르크의 인쇄혁명과 동시대에 반포된 15세기 우리의 한글과 [훈민정음]에 투영된 문자 민주화의 역사.

물론 왕조와 집현전이라는 국가기관이 시작한 위로부터의 민주화였지만 그 정신만은 다분히 근대적이었다. 다수 민중은 우리 소리에 맞는 한글을 더욱 발전시키며 진정한 한글의 민주화를 이뤄냈다. 짧지 않은 일제강점기 조선어 말살 정책에도 불구하고 한글은 끊어짐 없이 생명력을 유지했다.



  [글자 풍경] 출판한 <을유문화사> 해방  [조선말 큰사전] 전집을 발간한 출판사라고 한다.

정말 고마운 출판사다.



우리의 '바탕체'는 '명조체'라고도 불리는데, 중국 한자의 '해서체'에서 영향을 받아서 '명나라왕조'라는 뜻의 '명조'체라고 한다. 물론 그림의 성격을 여전히 많이 지니던 한나라 '예서체'와 이후 흘려 쓰기 시작하게 된 '행서체'의 중간체인 '반흘림체'로서 '해서체'는 명나라가 아닌 당나라 때 발전했지만 조선식으로 보면 중국식은 '명나라식'이었을테니 '해서체'의 우리 한글식 글씨는 '명조체'가 된 것이다.



지금의 '명조체'는 한글의 본 바탕이 된다고 하여 '바탕체'로 불리며, 긴 글을 담은 책으로 출판할 때 기본적으로 활용하는 활자체가 된다. 우리가 문서를 작성할 때 본문은 '바탕체'로 하고, 제목은 두드러지도록 '돋움체'를 쓰는 이유도, 획의 돌기가 있는 세리프체로서 '바탕체'는 손으로 잘 쓴 글씨처럼 읽기의 피로도가 적고, 기계적인 '고딕체'는 획의 돌기를 없앤 '산세리프체'로서 '돋움체'로 불리기에 제목처럼 강조하기에 좋기 때문이다.

이처럼 '활자(폰트)'로서 '바탕체(명조체)'는 손으로 쓴 '글씨'에서 유래하는데, 손글씨 한글체는 궁중의 여성들이 국문소설을 필사하거나 한글편지를 쓰면서 발전된 '궁(서)체'가 그 시작이다. 한글 폰트에 '궁서체'가 장착된지 오래지만, 본래 손글씨는 '명조체'로 디지털화되는 한편,, '궁서체'의 아날로그적 성격으로 발전해왔을 수도 있겠다.



획의 굵기를 조절하는 것과는 별개로 활자에 투영된 손글씨의 영향이 언제까지 갈 것인가 문제는 '책'의 존립 문제와도 같이 아련하다는 생각도 든다.


사람이 '책'을 들고 다니며 읽는 한,

'책'이라는 물질이 계속 존재할 것처럼,

사람이 '글씨'를 직접 쓰는 한,

'활자'에 녹아든 '글씨'의 영향이 지속되는 것 아니겠는가.


https://brunch.co.kr/@beatrice1007/362



"'수동적인 가죽 장정 대신 능동적인 독서를'. 책이 부르주아와 귀족의 비싼 서재를 그 호사스러운 가죽 장정으로 장식하는 역할에서 벗어나, 모든 독자의 손에서 능동적으로 펼쳐지도록 함으로써, 편안한 독서를 제공하는 역할로 거듭나도록 하겠다는 것이 바로 '타이포그래피의 근대 정신'이다."

- [글자 풍경], <프롤로그 : 글자들의 숲길에서>, 유지원, 2019.



글자 역시 문자를 표현하는 '형태(type)'로서 정보와 지식을 소수 독점 지배자들로부터 다수 대중에게로 해방시켜 왔고,

다수 민중들은 이 해방된 문자와 지식을 '글자'라는 형식을 통해 공유하며,

한편으로는 '글씨'를 쓰거나 '활자'를 읽으면서 다양한 해석과 함께 스스로 해방되어 왔다.


다수 민중에게는 이와 같은 민주주의 확대가 바로,

'문명'의 역사가 된다.


'타이포그래피(typography)'의 역사 또한 그렇다.


***


1. [글자 풍경], 유지원, <을유문화사>, 2019.

2. [독서의 역사(A History of Reading)](1996), 알베르토 망구엘, 정명진 옮김, <세종>,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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