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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Jun 14. 2024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2020) - 에릭 와이너

- 철학, 잠시 멈추다

철학, 잠시 멈추다

-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에릭 와이너, 2020.





"좋은 철학은 느린 철학이다...

멈춤은 실수나 결함이 아니다... 멈춤은 텅 빈 것이 아니라 잠시 유예된 상황이다. 생각의 씨앗이다.

모든 멈춤은 인식의 가능성, 그리고 궁금해할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다."

-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1-2. 소크라테스처럼 궁금해하는 법>, 에릭 와이너, 2020.



철학을 처음 접했던 소싯적에 선배들은 말했다. 철학은 끊임없이 "왜?"라고 묻는 것이라고. 영문과 철학학회 '현대철학반'은 유물론을 자처했기에 고대 그리스 이오니아 학파 탈레스처럼 "세계의 기원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철학의 시작이라고 생각했지만, 철학과의 유물론자 선배들조차도 철학은 "왜?"라는 질문의 반복이라고 역시 답했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350


아마도, 서양의 전통적 철학이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으며, 그의 [대화편]은 스승인 소크라테스와의 대화를 다루기 때문이리라. 소크라테스는 당시의 문명도시국가 아테네의 청년들과 모든 사람들을 붙잡고 계속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댔다고 한다.


소크라테스가 던진 무한반복 질문의 목적은 단 하나, 당신이 얼마나 무지한지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다. 소크라테스가 대화의 마지막에 진짜 그 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의 고전철학적 유행어 "너 자신을 알라"는, 무한반복되는 "왜?" 질문을 통해 그동안 확실한 것처럼 보였던 나의 생각이 얼마나 불확실한 것인가, 그러므로 나는 얼마나 아는 게 없는가를 깨닫게끔 하고, 무지한 나 자신을 알라는 결론으로 항상 이끌었단다. 잘난체 해야하는 문명도시 아테네의 궤변론자들과 시민들은 소크라테스의 집요한 질문공세에 짜증이 났고 풍기문란죄 아니면 괘씸죄나 하다못해 반역죄 같은 걸 씌워서 독약을 마시게 했다. 역시 "악법도 법이다"라는 유언을 남겼는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소크라테스는 서양철학의 아버지와도 같이 궁극의 근원을 파고드는 사고실험의 본좌로 남게 되었으며 그의 제자 플라톤은 스승과의 대화를 통해 서양철학의 맏형이 되었다.




'철학적 여행자'를 자처하는 미국의 기자출신 작가 에릭 와이너(Eric Weiner)의 철학 관련 책 제목 또한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2020)다. 에릭 와이너에 의하면 소크라테스에게 철학은 곧 질문이었다고 한다. 어떤 것의 근본을 향해 천천히, 집요하게, 가끔은 멈춰서게 하면서 파고드는 인간의 사고실험, 특히 상대방과의 대화를 통해 실천하는 정신수양이 바로 소크라테스와 에릭 와이너가 규정하는 철학인 것이다.


그들 '소크라테스주의자'들에게 질문은 단순히 던지는 것에 멈추지 않는다. 그들 철학자들에게는 질문은 경험하는 것이고 살아보는 매우 심오한 것이다.


에릭 와이너의 철학 여행은 그가 좋아하는 기차(익스프레스/express)와 함께 한다. 지금은 비행기보다 느리지만 철도가 처음 길을 연 19세기의 근대에만 해도 기존의 속도 개념을 혁명적으로 바꿔버린 기차가 철학과 닮았다고 보는 듯 하다. 철학이란 항상 개념을 갱신하면서 사고의 틀을 바꿔왔기 때문이리라.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Socrates Express)]의 부제는 <죽은 철학자들로부터 배우는 삶의 지혜(In Search of Life Lessons from Dead Philosophers)>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다.

저자는 일반인처럼 아침에 침대에서 벗어나기 싫어 끊임없이 자신이 일어나야 하는 이유를 사유했던 로마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같은책, <1-1>)부터 철학의 성인 소크라테스(<1-2>), 부지런히 걸으면서 자연과의 조화를 꿈꾼 루소(<1-3>), 미국의 초월주의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1-4>), 염세주의자 쇼펜하우어(<1-5>)와 영원회귀 속 초인주의자 니체(<3-11>), 동양의 싸우는 간디(<2-8>)와 친절한 공자(<2-9>) 등을 거치면서 에피쿠로스(<2-6>)의 쾌락과 에픽테토스(<3-12>)의 스토아학파도 경유했다가 시몬느 보봐르(<3-13>)의 노화와 몽테뉴(<3-14>)의 죽음까지, 저자 스스로 엄선한 14명의 '죽은 철학자들(Dead Philosophers)'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물론 역자의 실력이 출중하기에 가능한 것으로 믿어지나, 저자의 글솜씨 원문 자체가 재미있고 구성진 게 번역본임에도 느껴진다. 책은 기차의 속도만틈이나 빠른 속도로 넘어간다. 그러나 에릭 와이너가 하고자 하는 말은 그런 현대식 속도를 제어하는 것이 바로 '철학'이라는 것. 길거리에서 우연히 소크라테스를 만난 것처럼 잠시 멈출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 또한 일부러 '익스프레스'는 아니지만 출퇴근길 덜컹거리는 전철 안에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곱씹어 읽어본다. 그리고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려 노력해본다.


철학 여행자 에릭 와이너의 철학책 [소크라테스 익프레스]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좋은 철학은 멈춰서 다시 생각할 수 있는 느린 철학이며, 그 철학적 사유의 근원은 인식의 주체인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이다.




"우주가 똑같이 반복된다는 주장을 니체가 처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스 철학자 피타고라스는 그보다 약 2,500년 전에 비슷한 발상을 내놓았고, 인도 경전인 [베다]는 그보다 더 빨랐다. 니체도 분명히 이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처럼 니체 역시 먼 곳까지 두루 살피며 지혜를 찾아 헤맸다.

니체는 그 아이디어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리고자 했다. 니체는 '영원회귀'를 신화가 아닌 과학으로 만들고 싶었다."

-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3-11. 니체처럼 후회하지 않는 법>, 에릭 와이너, 2020.



인도의 독립보다는 독립할 자격이 있는 인도를 목표로 평생 싸움을 했다던 간디와, [논어]에 105번 등장한다는 '인(仁)', 즉 에릭 와이너가 보기에 '인간다운 마음'으로 번역되어야 하는 그 '인'과 도덕적 자기수양으로서의 평생 공부를 설파한 공자는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가 강조하는 주관주의 관념론의 동양적 경유지로 보인다.


사실 동아시아의 유학과 성리학은 "세계의 근원은 무엇인가?" 탐구하는 유물론적 성향도 분명하나, 인간 세상의 현실적 정치철학을 더욱 중시하면서 심성과 도학을 수양하는 후기 성리학의 심성론적 성격이 점차로 강화되어 왔다. 근대성의  앞에서 자연철학 또는 과학과 구분되는 인문학적 성격의 철학이다. 물론 고대의 인도에서 유래한 불교와 힌두교, 자이나교 등은 말할 것도 없이  자신을 똑바로 직시하는 '직지심성론'이다. 본래 '유물론' 경향도 있던 유학이 도학적 '관념론'으로 변화되는 현상은 동양적 '--',  성리학이 불교  도교와 융합되는 일련의 과정이기도 하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129

https://brunch.co.kr/@beatrice1007/197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를 탄 인식의 주체철학은 이렇게 동서양을 횡단한다.


저자 에릭 와이너는 서양 에피쿠로스의 최고선으로서 '쾌락'을 동양의 불교에서 추구하는 '평정심'과 동일시하고, 스토아학파 에픽테토스의 금욕을 내 주관적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객관세계의 운동에 스트레스 받지 않고 내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자기통제로서 우리의 철학적 본보기로 삼는다.


그렇지만,

주관적 관념론이므로,

결국 다시 프리드리히 니체다.


니체에게 세계사는 무한반복 가능성의 '영원회귀'이고, 불확실한 통계로서 수만 가지 가능성의 '영원회귀'는 니체에게 일종의 철학적 사고실험이다. 이를 이겨내는 것은 차라투스투라 같은 선지자적 초인이고 이를 위해 니체는 죽기 전 기존의 '모든 가치의 재평가'를 위한 저서를 준비했다고 한다.

"세계는 내가 만들어낸 생각"이라고 단정한 극단적 주관론자 쇼펜하우어의 후예답다.

역시, 근현대철학에서 '욕망'을 아우르는 '주관적 관념론'의 본좌는 프리드리히 니체다.

대부분의 현대철학자들이 니체를 피해가지 못하고 있다.



"... 오래된 격언들 사이에 몽테뉴가 직접 적은 글귀가 보인다. '크세주(Que sais-je)', '나는 무엇을 아는가?' 이 짧은 문장은 몽테뉴의 철학과 그가 살아온 방식을 깔끔하게 압축해 보여준다."

-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3-14. 몽테뉴처럼 죽는 법>, 에릭 와이너, 2020.



에릭 와이너의 종착지는 '에세이'를 남긴 16세기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다.

소크라테스가 에릭 와이너의 머리라면 몽테뉴는 심장이다.


부연하자면, 소로는 눈, 쇼펜하우어는 귀, 루소는 발, 에픽테토스는 그의 손이다.

결국, 이 모든 철학적 신체들은 주체의 마음으로 수렴된다.


몽테뉴는 절대적 진리를 부정한 회의론자였고 철학의 끝인 '죽음'에 천착했지만 결국 죽음이 뭔지 알 수는 없었다. 프랑스어로 '해보다'라는 뜻이라는 '에세이(essay)'는 몽테뉴가 고안한 철학적 글쓰기가 그 유래라고 하는데, 몽테뉴는 '죽음'이 뭔지 알 것 같다고 생각이 들다가도 다시금 제기되는 "과연 그런가?"라는 질문을 통해 부단히도 사고실험을 이어갔단다. 그의 철학적 '시도(essay)'는 '크세주(Que sais-je)'라는 자문으로 시작하여 '죽음'이라는 생각을 계속 가지고 놀아보는 궁극의 철학적 사고실험이었다.



"... 내가 이번 여행에서 배운 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인식은 선택'이라는 것이다. 세계는 내가 만들어낸 생각이다. 그 생각을 좋은 생각으로 만들면 되지 않나?"

-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나오는 말 - 도착>, 에릭 와이너, 2020.



니체의 '영원회귀' 세상에서 인식의 주체인 나의 '인식전환'을 통해 '최고선'으로서의 '행복'을 추구하자는 에릭 와이너의 '주관적 관념철학 기차'의 슬로건은 "인식은 선택이다"라는 명제였다.


맛깔난 글솜씨와 동서양 횡단을 통해 확인한 그의 철학적 지혜의 결론은 결국,

이 세계는 주체인 내가 생각하기 나름인 그 무엇이 되었다.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세계를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하기만 해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시키는 것이다..."

- 칼 마르크스, [루드비히 포이어바흐에 관한 제11번째 테제], 1845.



19세기 세계를 해석하기만 하던 철학이,

20세기 세계를 변혁하는 임무를 맡더니,

21세기 다시금 주체 안으로 침잠해 간다.


철학이 다시금,

여기 잠시 멈춘다.


***


-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Socrates Express)](2020), Eric Weiner, 김하현 옮김, <어크로스>,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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