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주받은 미술관] / [내 생애 마지막 그림], 나카노 교코
명화는 모두에게도 놀이터
- [저주받은 미술관] / [내 생애 마지막 그림], 나카노 교코.
다시,
나카노 교코다.
몇 해 전 [무서운 그림] 시리즈로 알게 된 일본의 미술사학자인데, 그림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그림이 묘사하고자 한 인간군상의 무서움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후 그녀가 엮은 몇 권의 미술사 책을 읽었고, 이제 미술사를 좋아하는 내게 나카노 교코는 접하는 대로 무조건 읽게 되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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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저주받은 미술관]과 [내 생애 마지막 그림]이다.
[저주받은 미술관](2022)에서 나카노 교코는 코로나 팬데믹 후인 지금, 인류사에서 오래된 감염병인 흑사병과 콜레라는 물론 결핵, 스페인 독감과 지금은 정복된 질병인 천연두 등을 그린 그림들과 30년 종교전쟁, 1차 세계대전 등을 통과했던 명화들을 소개한다. 물론 고대로부터 천재지변의 대명사인 대홍수와 화재 및 화산폭발 등도 빼놓을 수 없다.
"지상의 신이나 다름없는 왕, 그리고 신과 가장 가까운 성직자조차 제 수명만큼 살지 못하고 역병으로 죽었다. 이러한 '죽음의 평등주의'가 견고한 계급사회에 길들어 있던 소박한 민중을 얼마나 각성시켰을지 가히 짐작할만 하다. 특히 성직자에 대한 환멸은 컸다. 신자를 구하기는커녕 스스로도 구하지 못하면서 방관만 하던 교회의 권위가 형편없이 실추되었으니, 페스트 종식과 함께 중세가 끝나고 르네상스의 탄생, 나아가 종교개혁으로 이어지게 된 역사의 흐름은 자못 자연스럽다."
- [저주받은 미술관], <4장. 중세의 역병 - 팬데믹과 죽음의 무도>, 나카노 교코, 2022.
중세를 극복한 건 르네상스이기도 했지만, 어찌보면 이는 문명교체의 인문학적 징후였을 테고, 실제로는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들추는 존재"(같은책, <8장>)로서의 역병의 역할이 컸을 것이다. 현대사회는 어떨지 모르지만 중세의 지배계급은 민중들과 마찬가지로 역병에 취약했고 그래서 역병은 '죽음의 평등주의'를 통해 기존 계급사회에 균열을 냈다.
가톨릭에 대항한 개신교 전통의 북유럽 플랑드르에서 활동한 16세기 민중화가 피터르 브뤼헐은 대대로 화가를 배출시킨 '브뤼헐가'의 시조다. 그는 종교 제단화나 신화화, 역사화 같은 대작 의뢰가 드문 북유럽 시민사회 출신이라 농민과 민중들을 주로 그렸다.
그의 작품 [죽음의 승리](1562)에 담긴 페스트(흑사병)는 [로마의 페스트](1869)를 그린 19세기 화가 쥘 들로네 같은 비장함은 없다. 페스트가 만연하여 죽음의 우의로서 해골들이 마을 전체를 뒤덮었지만 엄중하다기 보다는 죽음을 쟁반에 올려놓고 사람들을 놀래키거나 하는 코믹한 장면을 담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피터르 브뤼헐의 스승은 북유럽의 이단아 히에로니무스 보스였단다.
[저주받은 미술관]의 표지 그림은 19세기 화가 폴 들라로슈의 [제인 그레이의 처형](1833)이다. 영국의 헨리8세 사후 메리 여왕과 왕위 다툼에서 밀려 즉위 9일만에 처형된 열여섯 살 제인 그레이의 처형 장면을 그린 작품인데, 홍수의 재난을 담은 게 아니라 1928년 런던 템스강의 대홍수로 유실되었다가 45년이 지난 1973년에 어느 신입 학예사의 성실한 탐사 끝에 부활한 작품이라고 한다. 그 후 내셔널 갤러리에 전시되었을 때 인기가 좋아 사람들이 많이 몰리던 통에 이 작품 앞 바닥이 무너지기도 했단다.
17세기 바로크의 거장 루벤스는 그 특유의 풍만한 여체가 여전히 돋보이는 '알레고리', 즉 '우의'적 표현을 담아 네덜란드 독립전쟁의 휴전기에 [전쟁과 평화](1629~1630)를 그렸고 개전 후에는 [전쟁과 공포](1637~1638)를 통해 또 다시 닥쳐온 전쟁을 역시 우의적으로 담았다. 루벤스의 신화적 알레고리 명작들은 출연자들이 담고 있는 신화적 상징을 읽고 해석하는 재미를 감상자들에게 선사한다고 하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루벤스 특유의 여체 그림은 당시의 유명한 포르노그래픽으로서 주문자의 성적 취향도 고려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다면 이 화가들의 '마지막 그림'들은 어땠을까.
나카노 교코의 2015년작 [내 생애 마지막 그림]은 르네상스부터 종교화, 신화화를 그린 보티첼리, 라파엘로, 티치아노, 엘 그레코와 루벤스의 전성기 그림들과 마지막 작품들을 비교하며 소개한다. 중세를 벗어난 보티첼리의 비너스는 금욕주의에 빠진 말년의 작품에서는 건조한 여체로 변했고 루벤스의 화려한 색채와 구도는 마지막 작품의 회색빛 풍경화에서는 더 볼 수가 없다.
벨라스케스와 반다이크, 고야 같은 궁정화가의 생애와 마지막 작품은 절대군주의 후원을 배경으로 화가 개인의 신분과 지위가 르네상스의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못지 않게 더욱 높아지는 절정기를 보냈지만, 어느덧 그들의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었던 절대왕정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근대에 이르러 서양문화를 적극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동양은 마침 그 무렵 크게 인기를 끌었던 인상파 작품을 회화의 교과서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화폭에서 주제와 의미, 은유를 모두 걷어낸 채 오직 보고 느끼는 그림이 좋다는 인식이 생겼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인상파는 긴 회화사 가운데 그저 최신의 조류일 뿐이다. 서양회화는 먼저 신과 함께 존재했고, 왕후 귀족과 함께 존재했으며, 각 시대에 따른 민중의 생활과 함께 존재했다. 이 점을 알아두지 않으면 그림을 감상할 수 없다."
- [내 생애 마지막 그림], <3부. 화가와 민중 - 시민사회를 그리다>, 나카노 교코, 2015.
부르주아 시민사회의 태동기와 함께 등장한 일련의 민중화가들은 이른바 풍속화를 그렸고, 신분이나 지위 상승보다는 화가로서 독립적으로 개별화된 화가 개인들의 삶 또한 미스테리 일색이다.
피터르 부뤼헐의 그림은 그를 모작한 아들 피터르와 구분하기 어렵기도 하고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등의 생애는 잘 알려져 있지도 않으며 페르메이르의 마지막 작품인 [버지널 앞에 앉아 있는 여인](1670~1672)에 대한 위작 논란도 있단다. 남프랑스에서 고요한 농민 풍속화를 그린 밀레의 마지막 그림 [야간의 새사냥](1874)은 그의 작품이라고 하기엔 너무 역동적이다. 아마도 한 번은 그렇게 그려보고 싶었다는 듯이.
고흐의 고단했던 예술가의 생애야 더 말해야 무엇할까마는, 마지막 그림 [까마귀 나는 밀밭](1890)의 노란색은 그 절정기의 색감과 어울리지 않게 죽음의 불길함을 예견한다. 고흐는 역시 그 해에 죽었다.
명화들은 미술사 작가에게는 화수분과 같다.
내가 믿고 읽는 우리나라 김선지 작가도 그렇고 일본의 나카노 교코도 명화를 중심으로 미술가와 그의 생애, 역사적 배경을 주제로 글을 연재하고 이 글들을 엮어 무한한 미술 이야기를 들려준다.
고전이 된 명화들은 이처럼 미술가의 삶과 죽음을 포괄하는 끝없는 이야기의 원천이자, 그림을 그리는 자 뿐만 아니라 보는 자들에게도 끝없는 감상과 해석의 보고가 된다.
명화는 작가나 감상자 모두의 놀이터가 맞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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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주받은 미술관](2022), 나카노 교코, <영진닷컴>, 2024.
2. [내 생애 마지막 그림](2015), 나카노 교코, <오브제>,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