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산자와 소비자의 분리?
생산자와 소비자의 분리?
- [음식조선], 임채성, 2019.
1.
음식 이야기인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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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믿고 보는 <돌베개> 출판사의 '한국학총서'라는 말에, 우리 한반도의 음식 역사 이야기를 또 다시 읽어볼 요량으로 살펴보고 두고 볼 일 없이 바로 주문했다.
모든 책은 결국 '역사책'이라 생각하는 나는, 세상 만물에 결국 '역사'가 깃들여져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전쟁에도, 미술에도, 그리고 '음식'에도.
모든 것들의 이야기는 결국 '역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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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하던 책을 받아보고는, 그제서야 제목이 다소 심상치 않다는 생각과 함께 '서문'격인 <들어가며>를 읽고는 '음식의 역사' 이야기가 아니라 '국제경제학' 책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내 다시는 본격적으로 수학과 경제학을 다루는 도서는 읽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이미 책을 구입했으니 '국제경제학'을 전공한 저자 임채성 선생과 책을 통해 대화를 끝까지 이어가고자 출퇴근길에 며칠을 들고 다녔다.
다른 건 몰라도,
한 번 잡은 책을 끝까지 읽는 건 자신있다.
수학과 경제학 같이 100% 이해를 못하는 분야라도 저자와 대화를 하듯이 쭉 읽어가면 된다. 모든 대화를 다 이해하지는 못해도 끝까지 대화를 하고나면 반드시 줄거리가 이해되는 것과 같다.
그렇게,
내게 독서는 '역사'에 관한 저자와의 대화다.
2.
"... 이러한 역사인식(식민지 수탈론)은 '강좌파'적인 견해가 강하게 반영된 '식민지 반봉건론'을 기초로 한 것이다... (한편)... 이와 같은 개발론적 역사인식(식민지 근대화론)은 '식민지 수탈론'을 통해서는 파악할 수 없었던 새로운(실증연구) 역사상을 제시하였다. 그 후의 식민지 경제사 연구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계승하는 입장을 취하든 비판적 입장을 취하든, 이 논의를 전제로 할 수 밖에 없었고, 종래의 일방적 '수탈론'으로는 설명해 낼 수 없는 역사상이 그려져 왔다. 이와 같은 새로운 움직임은 '신고전파 경제학'이 경제사 분석의 방법론으로 도입된 것과도 관련이 있다."
- [음식조선], <들어가며. 식료제국과 조선>, 임채성, 2019.
[음식조선(飲食朝鮮/Inshoku Chosen)](2019)의 저자 임채성 선생은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했지만 우리나라 학자는 아니다. 일본 도쿄대 경제학 박사를 거쳐 현재 릿쿄대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 주제는 '일본 경제사'인데 일본을 넘어 한국과 대만, 나아가 중국까지 아우르는 동아시아 국제경제학과 비교경제학까지 확장하고 있단다. 연구의 소재는 '음식', '건강'과 '위생' 등이라고 한다.
[음식조선]은 임채성이라는 한국 출신의 일본 경제학자가 일본어로 쓴 책을 전북대 고고문화인류학과 임경택 교수가 번역한 것이다. 이 책의 주제는 일제강점기 멸망한 조선 땅에서 새롭게 재편된 '음식경제사'다. 결국 동아시아 국제경제학에 깃든 '역사' 이야기는 어느 정도 맞기는 하다. 그러나 '역사' 보다는 '경제학'에 방점을 둔다.
곡물의 대표로서 쌀(미곡)과 농업 생산수단이자 고기로서의 소, 고전적 사치품인 홍삼의 동아시아 교류가 <1부. 재래에서 수출로>의 소재다.
쌀은 일제의 '산미증산계획'을 통해 생산성이 향상되었지만 일본으로 대거 수출되었는데 사실 식민지 착취였다. 일제가 조선을 자본주의적 '근대화'를 시키려고 했다지만 결국 농업은 '자유 시장'으로 편입되지 못했다. 일제와 총독부의 국가권력에 의한 대대적인 계획통제 및 착취가 이루어진다. 1940년대 세계대전 시기의 전시계획경제에 의한 강력한 통제는 비단 쌀 뿐만 아니라 모든 산물의 공통적 상황이었다. 소도 마찬가지고 대한제국 말기까지도 국가 전매를 시도했던 홍삼도 그랬다.
원래 조선에는 없던 상품으로서의 우유와 사과는 일본을 통해 외부로부터 들어와서 역시 일제와 총독부의 국가권력에 의해 여러 독과점적 '동업조합'으로 재편되었고, 반면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확장된 명란젓(명태알)은 일제의 주도로 조선 특유의 상품이 된다.
<2부. 자양과 새 맛의 교류>에서 다룬 우유와 사과는 서울우유의 전신인 '경성우유(서울우유)동업조합'을 통해 한반도의 새로운 자양분 음식으로서의 우유를 정착시켰고, 조선 토종이 아닌 19세기에 이식된 외래종 과일인 사과는 역시 동업조합의 독과점적 발전을 통해 일본의 아오모리 사과와 경쟁하게 되는 국광과 홍옥 등의 조선사과로 태어난다. 명란젓은 원래 일본에서는 먹지 않았다는데 지중해의 참치와 북대서양의 대구와 같이 한반도 동해의 명태를 주로 먹던 우리나라의 명란젓이 자본주의적 상품으로서 일본에까지 확장된 사례다. 조선의 사과처럼 일본의 명란젓은 이제 해당나라 특유의 산물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이 가던 <3부. 음주와 흡연>은 소주와 맥주, 그리고 담배에 관한 이야기다.
소주는 원래 재래식 증류주다. 몽골제국을 통해 서아시아 아랍에서 동아시아까지 넘어왔을 소주는 중세 아랍의 연금술사들이 물과 알코올의 끓는 온도가 다른 점에 착안하여 발효주를 끓여 먼저 수증기가 되는 알코올 성분을 다시 액화시키는 방식으로 처음 발명한 술이다. 증류기에 '땀'처럼 맺힌 것을 보고 아랍인들은 이 증류기를 '알렘빅(Alembic:땀)'이라 불렀다. 중국 원나라는 이를 '아라길'이라고 불렀는데, 소주는 서아시아는 '알렘빅', 동아시아에서는 '아라길' 주였다. 우리의 전통 소주는 이런 방식으로 만든 가정식 생산물이었지만 일제는 자본주의 상품으로서 주정식 소주를 대량생산한다. 사탕무 당밀로 원액(주정)을 만들고 물로 희석시킨 지금의 화학식 소주는 재래식 자가용 소주를 제치고 보편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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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는 한반도에 원래 없던 술로 독일의 제조방식이 일제를 통해 이식된 상품이다. 원래는 양주와 같이 일본인과 친일 상류층을 위한 사치품으로 시작되었지만 자본주의적 상품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식민지 경제성장을 통한 소득 증대로 인해 민간에도 확대되었다. 일제가 서울 영등포를 비롯해 평양 등지에 독일식 맥주공장을 세웠는데 이게 조선 '비루(beer)'가 된다. 남한의 조선맥주(크라운)와 북한의 대동강맥주 등의 유래가 되겠다.
17세기에 조선에 들어온 담배 또한 자가용 곰방대 엽초를 넘어 일제가 궐련식 상품으로 대거 재편했는데, 술이나 담배 같은 기호품의 자본주의적 상품화의 과정은 국가의 직간접적 독점전매를 통한 세수 확보의 역사다. 일제와 총독부는 술을 주류동업조합에 대한 지배를 통한 간접적 형태로, 담배는 국가전매라는 직접적 방식으로 하여 국가재정을 확충했다. 해방과 6.25 전쟁 후에도 이어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주류와 담배를 통한 세수확충의 유래는 따지고 보면 일제강점기부터다.
[음식조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식민지 반(半)봉건론'에 기초한 '식민지 수탈론'은 일제로부터 해방된 조선을 자본주의 체제라기 보다는 식민지 체제 하 절반의 봉건국가를 벗어나지 못한 후진 체제로 규정하고 일제가 한반도의 자본주의적 발전을 이식한 것이 아닌 대대적 수탈만 했다는 역사관이다.
일본의 국제경제학자인 [음식조선]의 저자 임채성 선생은 '신고전파 경제학자'로서 복잡하고 매우 광범위한 '실증적' 통계자료를 근거로 일제가 조선에 이식한 자본주의 상품화를 '식민지 근대화론'으로 내세우고 있다.
책 서술 내내 일본을 '식민지 본국' 나아가 '내지'로 매우 일관되게 표현하는 것이 개인적으로 매우 불편하다. 아마도 일본 학계의 연구서로 원서가 일본어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돌베개> 출판사가 왜 이 책을 '한국학총서'로 분류했을까 의아하기도 하다.
물론 저자는 대놓고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책의 '서문'격인 <들어가며>에서는 '신고전파 경제학'적 통계수치를 근거로 삼지 않아 '실증적'이지 못한 '식민지 수탈론'을 '강좌파'로 부르면서 '실증적'인 경제학 통계에 기반한 '식민지 근대화론'의 역사인식과의 일종의 '조화와 균형'을 주장하는 듯 하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결국 일제강점기의 식민지 시기였지만 분명 일제에 의해 한반도조선이 자본주의 '근대화'가 되었다는 역사인식이다.
'음식'을 통해 '근대적' 자본주의로 재편된 우리의 역사를 다룬 경제학 책이지만, 역사인식은 어딘가 익숙하다. '식민지 수탈론'과 '식민지 근대화론'의 균형을 말하지만 '실증주의'를 앞세운 궁극의 '식민지 근대화론'의 재편이다.
이렇게 조선인이 쓴 일본의 경제학 저서 [음식조선]은 '음식'을 매개로 한 동아시아 '식민지 근대화론'의 재판이다.
"주의해야 할 점은 '푸드 시스템'이 '제국' 내에서 일상적인 것으로 확장되었고, 나아가 그 경계에 있는 중국에까지도 퍼져갔던 것이다. 이른바 '식료제국'의 성립이라고도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소비자의 성장'에 대해서는 경제성장이 부를 나누어 가질 수 있는 '대중소비사회'의 도래를 연상하기 쉬운데, 시작은 경우에 따라 국가의 물리적 강제력을 수반할 수 있는 '생산과정으로부터의 소비자의 분리'였다. 밀매 단속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것은 '국가 폭력'적인 과정이기도 했다. 이러한 경험은 동아시아에서 전반적으로 볼 수 있는 역사적 과정이었을 것이다."
- [음식조선], <나가며. 식료제국과 전후 푸드 시스템>, 임채성, 2019.
3.
[음식조선]이 보편화한 일본 제국주의 '내지' 주도로 재편된 동아시아 '음식경제사'에서 일관되게 주장되는 표현이 하나 있다.
바로 "생산자와 소비자의 분리"다.
쉽게 말하면, 자본주의적 '상품화' 과정이다.
재래식이 아닌 공장식 생산과 '상품화'를 통한 자본주의화다. 즉 쌀이나 술과 담배를 내가 만들어 내가 먹는 것이 아닌, '생산자'와 '소비자'가 따로 '분리'되는 과정인 것이다. 지금의 '대중소비사회'의 전형적 표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자본주의 초기 과정은 '자유시장'이 아닌 국가 주도의 경제체제 재편이었으며 국제적으로는 일종의 '보호주의'였다.
칼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초기 자본주의 착취체제의 정착을 '생산수단으로부터 노동계급의 분리'라고 규정한 것이 생각난다.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가 가진 것이라고는 노동력 밖에 없는 노동자들을 하나의 '상품'으로 구매하는 과정이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적 시작이라는 역사인식이다.
이는 한편으로 '식민지 수탈론'의 역사인식이기도 하다.
반면, [음식조선]의 결과적 '식민지 근대화론'은 '계급투쟁'의 정치경제학이 아니라 '실증'적이고 '수치통계학'적인 '신고전파 경제학'에 기반하고 있어서, '노동'과 '착취'가 아닌 '생산자'와 '소비자'만을 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음식'을 매개로 재편된 제국주의 주도의 '생산자와 소비자의 분리' 과정을 '자유 시장'으로 포장하지는 못하고 국가권력과 사적 자본의 융합으로서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솔직한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식민지 근대화론'이 보기에도 '자유 시장'은 없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국가권력 주도의 자본주의화로서의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은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공통의 보편적 현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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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이나, [음식조선]에서 일제 식민지 '본국'과 '내지'라는 표현은 수백 번 나오는데, 1905년의 '을사늑약'은 단 한 번 나온다.
'식민지 수탈론'과 '식민지 근대화론'의 역사전쟁은,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적 '계급투쟁'과도 같이,
심지어 '음식'의 '경제사'에서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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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식조선(飲食朝鮮/Inshoku Chosen)](2019), 임채성, 임경택 옮김, <돌베개>,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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