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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과 대화하다 - 2024.12.28.

- 팀장 4년차 소고

by 송용원

나 자신과 대화하다

- 팀장 4년차 소고





1. 나와의 대화 : '변함없는 신뢰'


팀장 4년차로 접어들었다.


노동조합 수석부지부장과 사무국장으로 각각 임기 3년씩 6년간 노조간부를 한 후, 이제 제대로 한 번 일해보겠다는 결심으로 위원장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현업으로 돌아와 이후 5년 동안 '생산성' 즉 우선 '일을 많이' 하겠다는 생각으로 일하던 중 어쩌다 운좋게 팀장 보직을 맡은지 또 3년이 지났다.


처음 팀장이 되었을 때는 2년이든 3년이든 노조 집행부 임기처럼 여기고 맡은 바 임무와 그 수행에 대한 주변 동료들의 평가를 받드는 마음으로 임해야겠다 결심했다. 6년간 일한 나에게 조합원들이 더 이상 내가 노조간부로서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듯, 팀장직도 비록 정해진 임기는 없지만 자리에 연연하지 말고 내가 판단한 나의 역할을 묵묵히 해보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3년이 지났는데 사실 지난 여섯 반기 동안 실적평가는 평균적으로 보면 중간에 약간 미치지 못한다. 늘 상위권을 놓치지 않는 몇몇 우수인재 팀장들에게 비할 수도 없고 실적경쟁력으로는 당최 따라갈 수도 없다.


과연 어떤 팀장이 될 것인가 생각해 보았다.

조합원들의 권리를 대변해 보겠다며 전국의 직장동료들에게 얼굴을 알렸던 내게 선택지는 하나 뿐이었다. 직장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게 실적평가인 만큼 그 무엇보다 그것만을 보고 달성해낸다면 비록 과정은 힘들었을지라도 결국 팀원 동료들에게 좋은 팀장으로 남을 것 아닌가. 근데 과연 내가 그렇게 실적 위주로 일하자고 강력 주장하면 팀동료들의 반응은 어떨까. 입장바꿔 나라도 '웃기고 있네' 할 것이라 지레짐작했고 그런 평가를 나는 그 어떤 것보다도 버텨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삶의 일관성을 중요시하는 나로서는 동료들의 우애와 단결을 우선적으로 강조하면서 그에 맞는 실적을 거두자는 방향 그 한 길 뿐이었다. 그러려면 당장의 실적이 좋지 않더라도 절대 잃지 않는 동료들에 대한 '변함없는 신뢰'가 제일 중요했다.


길게 늘어놓아 보았자 뻔하고도 당연한 말이다.

타인에 대한 '변함없는 신뢰'를 지키는 것,

그만큼 실천하기는 세상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다.



8년전 노조 위원장 선거 당시 마흔네살이었던 나의 롤모델은 아마도 한고조 유방, 촉한의 유비, 조위의 조조, 원탁의 기사 아서(Arther) 같은 '폭탄'들이었던 것 같다.

러닝메이트인 우리 팀의 단결을 위해 나는 우리 후보조와 조합원들에게 이런 비유를 했더랬다.


"어려운 시기,

'폭탄'을 안고 시대를 돌파했던 사람들을 상기합니다.


한량건달 유방,

믿음직한 소하,

귀곡지략 장량,

신출귀몰 한신,

의리의 번쾌.


무일푼의 유비,

신출귀몰 제갈량,

미염공 관우,

의리의 장비,

불패의 조운


의심쟁이 조조,

전략가 순욱,

전술가 순유,

무적의 장료,

의리의 하후돈.


원탁뿐인 아서,

호수기사 랜슬럿,

의리의 거웨인

무적의 거레스

성배찾은 갤러해드.


함께라면 새로운 시대는 가능합니다!"



사실 팀장을 해본지 1년이 지난 후 알게 되었다.

좋은 실적은 아무나 내는 게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나는 나의 일관성을 되찾기 위해 생각했다. 나의 롤모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동료들간 장점을 잘 섞어 단점을 보완하는 게 중요하다. 위의 대표적 러닝메이트들은 바로 그런 사례들이었다. 나는 그들 중 누가 된들 이제는 상관없게 되었는데, 그래도 항상 어려움 속에서 다음 시대의 터전을 닦았던 '한신'을 굳이 나의 '롤모델'로 삼았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299


한신은 '토사구팽(兎死狗烹)'의 우울한 고사를 낳았지만, '다다익선(多多益善)'의 자신감으로 항상 어려운 상황(신병부대/영토확장)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더 나은 미래(천하통일)의 터전을 닦았다. 한신의 책사 괴통은 그를 우유부단하며 한심하다 했고 [사기]의 사마천은 <회음후 열전>에서 그를 거만하고 어리석다 했으나, 내가 보기에 한신은 '신뢰'를 버리지 않았고 '일관성'을 지켰으며, 무엇보다 더 나은 미래의 기반을 다졌다. 초한전쟁을 끝낸 한나라의 천하통일은, 한신이 만든 화수분 같은 강한 군대와 한신이 확보해 낸 중원을 포위할만한 광활한 영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금 돌아봐도 역시,

동료들에 대한 '변함없는 신뢰'만이 나의 길이다.



2. 동료들과의 대화 : 유형별 평가와 반성


정답은,

당연히 없다.

앞으로도 잘 되리라는 보장 또한,

더더욱 없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309


"'비밀'이란 바로 '끌어당김의 법칙(Law of Attraction)'을 말한다."

- [시크릿], 론다 번, 2006.



론다 번의 [시크릿](2006)이 말한 누구나 아는 그 성공의 법칙, '긍정의 힘'으로써 주위 모든 것들을 나를 중심으로 끌어당기는 그 '법칙'으로 무장하고 지난 3년 간 함께했던 동료들의 사례를 장단점 별로 반추하며 나를 도와준 그들과 다시금 대화해 본다.


1) 열정형


- 장점 : 업무성과에 대한 강한 욕망,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자기 일을 함

- 단점 : 실적저조 특히 본인평가 저조시 사기저하, 업무개입 싫어함, 개인주의적 성향


- A 수석 : 업무성과에 대한 욕심이 높고 본인 업무 자부심이 강하다. 팀장보다 업무를 더 잘 한다는 평가로 그를 높이 존중해주고 가급적 팀장이 업무개입을 하지 않는 대신 성과가 더 높은 다른 동료의 소식을 자주 전달하면 알아서 사기진작을 한다. 절대 사전상의 없이 그의 업무를 건드리면 안된다. 업무 자존심이 상한 그는 나 없이 한 번 해봐라 식으로 업무를 한 순간에 잠시 놓기도 한다. 자율성이 주요 키워드다.

- B수석 : 다른 동료들의 업무를 대신 해서라도 개인평가를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 어떤 때는 함께 일하는 것 같지만 본인 스타일이 강해서 담당자 변경 요구가 많고 동료들과 사이가 좋지 않다. 담당변경을 바로 하지 않고 팀장이 직접 처리를 한다. 어려운 건이지만 처리해 주면 대신 그 이상으로 업무적 보답이 올 수 있다. 그런 건이 너무 많으면 대놓고 팀장이 힘들어진다고 짜증내고 생색내면서 대신 해결해줄 수도 있다. 그만큼 꼭 보답하려는 심리가 강하게 작동된다. 대신 그와 사이가 좋지 않은 동료가 있을 경우 형평성을 두고 문제제기가 생기기도 한다.

- C과장 : 탐장인 나도 그렇긴 하지만 현재 업무에 대한 만족감이 높지는 않으나 자존심이 강하여 본인 업무는 확실하게 하려는 경향이 있다. 대신 팀 전체나 다른 동료들을 잘 고려하지 않는다. 언제든 다른 직무로 갈 준비가 되어 있으며 일 못한다는 소리는 안 나오도록 처신한다. 팀 전체가 좋은 시절이라면 문제 없으나 팀 실적이 위기에 처하면 선뜻 나서지 않는 성향도 있다. 문제가 꼬이거나 실적이 안 좋으면 본인 말고 다른 사람 또는 외부요인에서 책임소재를 찾는다. 팀장이 다 뒤집어쓰지 않으려면 특히 이 유형은 개인의 중간실적을 더 자주 공개해 줘야 한다. 때로 서운할 때는 오히려 오죽하면 저럴까 하며 가엾게 생각하고 대하는 게 차라리 낫다.


2) 의리형


- 장점 : 동료들간 얼굴 붉히지 않음, 팀장 및 동료들과 소통가능

- 단점 : 서운한 점 있어도 내색하지 않음, 마지막에 그 의리가 상할 수도 있음


- D수석 : 지역 인사이동 과정에서 조직에 대한 불만이 있었으나 팀장과 형동생 먹고 수용할 수 있는 작은 요구사항을 들어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6개월 지낸 결과 마지막 헤어질 때 좋은 모습으로 작별인사했다. 업무적으로 우수하나 실적 제고를 위한 상의는 수시로 해야 한다. 실적보다는 당장의 원만한 문제해결이 우선일 수 있는데 실은 내가 이런 타입이기도 하다. 업무적 자존심은 높지만 전문가로서 내가 처리하는 것이지 그 과정에서 악착같이 내 실속을 챙겨먹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독사같은 반대성향의 동료의 상시적 조언이 필요한데, 팀장이 그 역할을 해줘야 한다.

- E과장 : 경력직 또는 회사통합으로 함께하게 된 동료로 본인 성향과는 무관하게 선배동료들, 특히 평가권을 지닌 팀장과 인사권을 가진 상급자에 대한 지시이행도가 높다. 업무적으로 필요하다면 다소 힘들고 무리한 업무지시도 믿고 맡길 수 있다. 물론 혼자가 아닌 팀장이 늘 함께 해결한다는 것을 서로 인지해야 하고 팀장은 무엇보다 그 일을 우선적으로 신경써야 한다. 승진급이나 평가결과 등 다소 서운한 일이 있어도 그 표현을 내색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팀장이 먼저 다가가야 의리가 지속된다.


3) 포기형


- 장점 : 인사평가시 바닥을 깔아주니 동료들에게 도움

- 단점 : 업무를 안하려고 하니 말해 무엇


- F수석 : 업무를 포기하다보니 맡겨진 일도 동료들이 대신 해줘야 한다. 나의 경우에는 동료들에게 전가되는 업무는 거의 없도록 최소화하고 팀장인 내가 처리했다. 여러 사람이면 불가능하겠으나 한 명이라면 힘들어도 가능하다. 원래부터 업무량도 많지 않았고 계속 이렇게 업무하면 평가는 가장 낮게 나올 수 밖에 없음을 수시로 확인시킨다. 평가를 높이기 위해 일을 하면 좋지만 그렇지 않은들 달라질 건 별로 없다. 어차피 내가 대신하는 업무가 다소 힘들긴 해도 많은 편은 아니고 다른 동료들이 불만이 있어도 평가로 반영된다는 걸 수시로 공유하면 된다. 대신 동료들간 우애는 잊지 말고 서로 헤어진 후에도 욕하지 않도록 잘 지내자고 다독이는 수 밖에 없다.

- G대리 : 업무가 아니라 승진급 장기누락으로 사기가 저하된 경우 처음에는 팀장과 함께 2년 정도 좋은 성과를 위해 함께 잘 해보자고 결의하고 지냈으나 첫 반기부터 성과가 좋지 않아 신뢰가 저하되었다. 직장생활 혼자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그의 집안일까지도 좀더 관심가져보려 했으나 마음을 열지 않아 쉽지 않았다. 풀지 못했고 앞으로도 풀지 못할 숙제와도 같다.


사실,

규정할 수도 분류할 수도 없는 유형들이 더 많을 수도 있다.



3. 대화는 지속된다


"진화에서 실제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실체, 그리고 이에 근거한 관점이 의미를 가지는 실체는 오직 하나 밖에 없다. 그것은 '이기적 유전자'다."

- [이기적 유전자], <8장. 세대 간의 전쟁>, 리처드 도킨스, 1976.



영국의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의 대표 저서는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1976)다.

그는 '생존'이라는 '안정성'을 추구하는 '유전자(gene)' 또는 '불멸의 코일'이 생물체라는 기계를 운반체로 삼아서 '안정'과 '생존'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을 통해 '이기주의'나 '이타주의' 같은 인문학적 가치개념을 떠나 자연과학적 진화사를 설명한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312


중요한 건 '안정성'이다.

인류를 포함한 생물계 전체의 목표도 그것이었고,

다소 비약은 있을지라도 팀장의 조직관리 목표 또한 다르지 않다고 본다.


'변함없는 신뢰'라는 것이,

이론은 쉽지만 실천은 어렵다는 것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나로서는 다른 길이 없다.


배고프더라도 가장 나중에 먹는(eat last) 수 밖에.



"리더가 된다는 것은 일을 덜 해도 되는 자격을 얻는 것이 아니라 일을 더 많이 해야 하는 책임을 안는 것이다... 리더는 일을 많이 해야 하고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야 한다. 그 효과는 쉽게 측정하기도 어렵고 바로바로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리더십이란 사람을 향한 '헌신'이다."

- [리더 디퍼런스], <8. 리더가 된다는 것>, 사이먼 시넥, 2014.


https://brunch.co.kr/@beatrice1007/262


***


1. [사기(史記)], 사마천(司馬遷) / 김원중 옮김, <민음사>, 2007~2011. / 김영수 옮김, <알마>, 2010.

2. [시크릿(The Secret)](2006), Rhonda Byrne, 김우열 옮김, <살림Biz>, 2007.

3.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1976~1989), Richard Dawkins, 홍영남/이상임 옮김, <을유문화사>, 2018.

4. [리더 디퍼런트(Leaders Eat Last)](2014), Simon Sinek, 윤혜리 옮김, <세계사>,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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