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중심'에 관한 또 다른 오해
세상의 ‘중심’에 관한 또 다른 ‘오해’
- 발해, 고구려와 고조선의 ‘제국적 기억’
"옛날 시조 추모왕께서 창업하신 터다. 왕은 북부여에서 오셨으며 천제(天帝)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하백(河伯)의 따님이다.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오셨는데…"
- [광개토태왕릉비문] 첫머리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우리 민족의 문화적 반격이 한창입니다. 고대 요동의 주인으로서의 고구려에 대한 재조명으로서 적지않은 연구서들이 발간되고, 무엇보다 TV에서 방영하는 사극들은 꾸준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우리 제도교육의 국사과목에서도 위 광개토태왕의 위대함은 익히 칭송되어 왔으니 더 말할 나위 없겠습니다. 세계시장에 팔아먹기 위해 판타지화시킨 <태왕사신기>의 인기 또한 우리가 익히 배워온 광개토태왕의 업적에 힘입은 바 클 것이나, 역사적 시각이나 연구와는 무관하게 너무 신화적이라 해서 드라마를 비난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냥 보지 않으면 그만이지요.
신화화시키지는 않았지만, 9할 이상이 픽션인 대조영 또한 그렇겠지요. 발해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너무도 초라해서 저도 대조영을 발해의 시조라는 것 외에는 알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드라마 <대조영>이 시작할 때 도서관에서 우연히 [요동사]라는 연구서를 집어들었더랬습니다. 서강대 사학과 교수인 저자는 요동을 한국의 한(韓)족과 중국의 한(漢)족, 이 양자구도가 아닌 제3의 ‘역사공동체’로 이해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었는데, 고대 요동을 지배하고 있던 민족은 예맥계, 동호계, 숙신계라는 계보를 이어가면서 소위 말하는 ‘중원’과 한반도가 아닌 요동의 주인으로서 역사적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이론입니다. 예맥계는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 동호계는 거란, 숙신계는 여진으로 각각 대표됩니다. 각자 자신의 역사를 ‘중심’의 역사라고 주장하려 하는 ‘제국적 패권주의’를 달가워하지 않는 저 개인적 입장에서는 일면 타당한 이론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어려운 연구서였지만 이해해보려고 기를 쓰며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발해의 시조 대조영에 대한 우리 역사의 기록은 보잘 것 없고, 중국인들이 성의없이 갈겨쓴 [구당서], [신당서] 등에 몇 줄이 고작인 상황에서 우리의 대하사극은 말 그대로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결국 드라마의 끝은 천하의 ‘중심’으로 우뚝선 발해 ‘제국’의 건설이겠지요. 발해가 잊혀진 사실 또한 요동사가 ‘제3의 역사’라는 반증 아닐까 하는 짧은 생각도 들기는 합니다.
좀더 몇 백년 거슬러 올라가면 또 다른 ‘제국’이 등장하지요. 바로 고구려입니다. 이덕일 소장은 우리 역사계 ‘비주류’의 시각에서 역사적 진실을 꾸준히 밝히려고 노력하는 훌륭한 역사학자라고 생각하는데요, 동북공정의 공세에 가만히 있을 지식인이 아니지요. 그래서 한반도와 만주 일부, 더 심하게는 한반도 북부 일대로만 축소되고 있는 고구려를 ‘제국’으로 살려내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여러 연구서가 있겠지만, 최근에 정리한 책은 바로 [고구려는 천자의 제국이었다]입니다. 우선, 일본에서 우리 역사를 연구하고 식민사학의 대장을 먹은 이병도라는 1940년대 '실증주의' 역사학자를 철저히 배척하려는 시각에는 완전 동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땅 모든 젊은이들한테 역사적 패배주의를 세뇌시킨 식민사학은 당장 없어져야 옳습니다. 레닌이 그랬던가요. 구부러진 막대기를 바로 펴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힘을 사용해서 반대로 구부려야 한다고요. 그래서 레닌에게는 유물변증법이 종교 이상이었겠고요. 이덕일 또한 고구려의 ‘독자적 천하관’을 강조하며 ‘제국’으로서의 고구려를 우리 앞에 펼쳐놓습니다. 3대 대무신왕에서부터 6대 태조대왕까지의 통치시기에 여러 속국을 거느린 제국의 기틀을 마련했으며, 5대 모본왕은 당시 중국의 중원은 아니었지만 북경 부근까지 침공했다는 사실, 내부 귀족세력의 통합을 위해서 정복전쟁이라는 공세적 대외정책을 펼친 광개토태왕, 아버지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는 광개토태왕릉비를 세운 장수왕이 수도를 한반도내인 평양으로 옮긴 이유는 정복전쟁에도 불구하고 계속 분열하는 국내성 토착 귀족세력들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한 방편이었다는 사실 등… 책의 부록인 고구려 최대강역도는 펼치자 마자 눈이 확 트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지도에 표시된 고구려의 영역은 웬만한 중국왕조의 강역 못지 않게 넓습니다. 제일 먼저 제 아들에게 보여준 이유는 제 가슴이 너무도 뛰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감동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천년 이상을 더 올라가면 우리민족의 시조로 추앙되는 단군조선이 있으니까요. 이덕일 소장은 고구려를 정리하기 이전에 고조선을 추적했던 것이지요. 바로 위 책보다 1년 전에 발간한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라는 책입니다. 중국인들이 고조선-엄밀히 말하면 그냥 ‘조선’이지요-의 역사는 은나라 왕족이 망명하여 세운 기자조선, 전국시대 연나라 사람이 망명해서 세운 위만조선이 주류였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더 오랜 옛날 중국의 전설속 오제 중 하나인 헌원씨와 천하를 다투던 동이족의 조상, 치우천왕 시기를 거쳐 단군조선은 역시 독자적 천하관을 가진 ‘제국’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입증의 기제는 바로 문화입니다. 화폐와 비파형청동검, 그릇, 그리고 고인돌 등 고조선의 일상용품과 문화적 자취가 발견된 영역은 북경의 바로 옆동네에서부터 내몽골자치치구를 거쳐 북으로는 흑룡강을 경계로 하는 러시아에 접하며 동으로는 하바로프스키까지 펼쳐집니다. 지도로 보면 고구려의 강역과 비슷하거나 좀더 넓습니다. 고조선 영토의 감동이 오히려 고구려로부터 받은 그것보다 더 컸던 이유는 식민사학이 그만큼 저를 지배하고 있었다는 증거겠지요.
우리 민족의 미래를 위해 가슴뛰는 기억들은 정말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한때 이랬는데, 지금 작다고 기죽으면 안되겠다, 는 생각도 들어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제 아들 앞에 지도를 펴고 막 설명을 할 만합니다. 아들의 눈망울에 이미 요동벌판이 펼쳐지고 있다는 상상 역시 심장을 고동칩니다.
다만, 그 가슴뛰는 기억이, 우리민족이 바로 천하의 ‘중심’이라는 또 다른 오해에 기반한 ‘제국적 기억’은 아니기를 바랍니다. 신자유주의 패권을 휘두르는 현대의 제국인 미국을 몰아낸 후 ‘제국적 기억’을 붙잡고 밀어붙이다 보면 나중에 약소국과의 ‘FTA’를 찬성하게 될지도 모르고, 하루하루 고단하게 살아가는 노동계급 위에 군림하게 되는 진짜 ‘제국’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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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동사,遼東史], 김한규 저, <문학과지성사>, 2004.
: 중국이나 한국을 민족이나 국가가 아닌 ‘역사공동체’의 개념으로 보고, 그 상충지대로서의 또 하나의 ‘역사공동체’인 요동을 재발견하고 있습니다. 땅따먹기에 익숙한 민족주의자들 입장에서 본다면 요동은 서로 차지해야 하는 전략적 요충지입니다만, 그곳은 한(韓)족도 한(漢)족도 아닌 그 자체의 민족들이 자신들의 역사를 만들어온 지역이었다는 것이지요. 고조선, 고구려에 이어 예맥족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발해말갈’을 정리하는 부분에서 대조영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악의적으로 서술해온 중국의 역사서에서조차 대조영은 용병에 능한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고 하더군요. 역시 인물은 인물이었나 봅니다.
대조영에 대해 서술한 대표적인 내용 몇 줄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고려구장(高麗舊將) 조영(祚榮)” [삼국유사]
“발해말갈(渤海靺鞨) 대조영(大祚榮)은 본래 고려(고구려)의 별종(別種)이다.” [구당서]/[신당서], <발해말갈전>
“무후(측천무후) 때에 고려의 별종 대걸걸중상(大乞乞仲象)은 말갈추장 걸사비우(傑四比羽)와 같이 요동으로 도주하여 고려 고지(故地)를 나누어 왕이 되었다… 중상의 아들 조영이 즉위하고 비우의 무리를 아울러 가졌다.” [오대사], <고려전>
“만세통천 중에 거란 이진충의 손자 만영이 모반하여 영주도독부를 공격하니, 고려별종 대걸걸중상이 말갈 반(反)인 걸사비우와 함께 요동으로 도망하여 살면서 고려의 고지를 나누어 왕 노릇하였다.” [오대회요], <발해>
“처음 고려가 망한 뒤에 그 별종인 대조영이… 말갈 걸사비우와 무리를 모아 동쪽으로 도망하였다.” [자치통감], <현종 개원 원년조>
“대조영은 용맹하고 용병을 잘해서, 말갈의 무리와 고려의 유민이 차츰 그에게 귀부하였다.” [구당서], <발해말갈전>
2. [고구려는 천자의 제국이었다], 이덕일 외 공저, <역사의아침>, 2007.
: 이덕일 소장은 우리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이병도 무리의 식민사관에 전쟁을 선포했기에 멋진 역사학자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당쟁으로 망했다고 이해되어온 조선사회로부터 당쟁의 사대부 정당정치, 이념정치적 성격을 조명하기 위한 노력도 그랬고, 그런 건전한 정당정치를 왜곡시킨 송시열이라는 거목을 통렬하게 씹은 것도 그러하며, 더 크게 고조선과 고구려가 독자적 제국이었음을 밝혀내는 방대한 작업에 일개 노동자인 저의 입장에서는 머리를 숙일 수 밖에 없습니다.
3.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 이덕일 외 공저, <역사의아침>, 2006.
: 고구려를 ‘제국’으로 정리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고조선의 실체를 밝힐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기억에서 잊혀졌던 또 다른 ‘제국’ 고조선의 기억을 일깨우는 작업은 더 어려웠을 텐데요. 저자들이 발로 뛰어다닌 현장 중심으로 고조선은 고구려 못지 않은 ‘대제국’으로 거듭납니다. 많은 사진들과 함께 읽는 이야기는 국사교과서를 거꾸로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데 충분하더군요.
(2007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