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부터 시작하다
‘나’로부터 먼저 시작하다
- 사마천(司馬遷)의 <사기열전(史記列傳)>를 통해 보는 고사성어(故事成語)(5)
: ‘악의열전(樂毅列傳)’, 선시어외(先始於隗)의 장기적(長期的)인 안목(眼目)과 실천(實踐)
중국의 후한(後漢) 말기(末期), 원소(袁紹)를 물리치고 중원을 평정한 조조 맹덕(曺操 孟德)의 위협을 피해 형주자사(荊州刺使) 유표(劉表)에게 의탁한 유비 현덕(劉備 玄德)은 서서(徐庶)라는 지략가를 얻는데 서서의 재능을 탐하던 조조가 그의 어머니를 이용하여 허도(許都)로 서서를 불러들이게 된다. 이는 조조의 모사 정욱(程昱)의 속임수였으나 효성이 지극한 서서는 앞뒤 생각할 겨를도 없이 형주를 떠나며 유비에게 제갈량 공명(諸葛亮 孔明)을 천거한다. 이에 눈물을 흘리며 제갈량과 서서의 재능을 비교하면 어떠하냐는 유비의 질문에 서서는 대답한다.
“어찌 저를 그런 분과 비하겠습니까? 제가 노둔한 말이라면 그는 기린이요, 제가 보잘 것 없는 까마귀라면 그는 봉황입니다. 그분은 항상 자기를 관중(管仲)과 악의(樂毅)에 비하곤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관중이나 악의도 그를 따르지는 못할 것입니다.”
관중(管仲)은 제(齊)나라 환공(桓公)을 춘추시대(春秋時代) 최초의 패자(覇者)로 만든 뛰어난 정치가였으며, 악의(樂毅)는 전국시대(戰國時代) 연(燕)나라의 장수였는데, 이번 이야기는 이 악의(樂毅)에 관한 것이다.
악의(樂毅)가 활약하던 당시의 전국시대(戰國時代) 정세는 제(齊)나라가 매우 강성하던 시기였다. 제나라 민왕(湣王)은 약소국인 연(燕)나라의 내정에 간섭하여 왕과 간신들을 죽이고, 남쪽으로 초(楚)나라를 크게 격파하였으며 서쪽으로는 위(魏), 한(韓), 조(趙)의 3진(三晉)을 제압함으로써 서쪽 변방의 진(秦)나라까지 위협하면서 스스로를 제왕(帝王)이라고 칭할 정도로 교만했다. 춘추시대(春秋時代)만 하더라도 열국(列國)의 봉건제후(封建諸候)들은 주(周;東周)나라 황실의 권위를 예(禮)로서 떠받들고 다른 제후들을 덕(德)으로서 거느리는 패자(覇者)를 으뜸으로 하였지만, 전국시대(戰國時代)로 넘어오면서 서로가 중원을 차지하여 다른 나라를 집어삼키려는 야심(野心)과 술수(術數)만이 최고의 가치가 되어버린다. 위와 같은 대조적인 가치가 혼재(混在)하던 전국시대 초반(初盤)의 당시, 오만한 제나라에 어떻게 복수할 것인가를 고민하던 연나라 소왕에게 장수 악의가 말한다.
“제나라는 일찍이 환공이 천하의 패자로 군림했던 전통이 여전히 남아있고, 땅도 넓고 인구도 많아 우리 연나라만의 힘으로 정벌하기는 어렵습니다. 왕께서 기필코 복수하고자 한다면 다른 나라와 힘을 합해야 할 것입니다.”
한 나라의 일개 장수에 불과했던 악의의 뛰어남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오로지 한 나라의 힘으로써 주나라 왕실보호의 명분을 등에 업고 다른 나라들을 제압하는 춘추시대의 단순한 외교방식이 아니라 약소국들의 강고한 연맹을 통해 강대국을 역으로 제압하는 전국시대식 외교의 기안자(起案者)로서의 모습이 그것이다. 연나라 소왕은 악의의 계책을 받아들여 그를 조나라, 초나라와 위나라 등에 사신으로 보내어 맹약을 체결하도록 하였고, 각국의 제후들은 제나라 민왕이 다른 제후들을 우습게 알고 오만방자하게 행동하는 것에 불만이 높았던 터라 연나라와의 동맹에 흔쾌히 허락하였다. 그리하여 연나라가 제나라에 대한 복수를 위해 악의를 상장군으로 하여 군대를 일으키자 아직 서쪽 변방의 야만국에 불과하던 진(秦)나라를 제외한 조, 초, 한, 위의 4국은 악의에게 대장군의 직인을 주어 5국의 총사령관으로 임명하고 강대국 제나라를 공격하여 대승을 거두게 된다. 제나라를 상대로 대승을 거둔 이후 다른 나라 군사들은 물러갔으나 악의는 연나라 군대를 몰고 공격을 계속하여 제나라 수도 임치(臨淄)까지 점령한다. 이렇게 하여 악의는 5년 동안 제나라의 70여개 성을 점령하면서 맹위를 떨치게 되는데,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위에서 언급했듯 장수로서 악의의 용맹함이라기보다는 정치가로서 뛰어난 외교전략에 있다는 것이며 제갈량이나 서서 같은 지략가들이 그를 자주 언급하는 이유도 바로 이와 같을 것이다.
그런데 알다시피 악의는 약소국 연나라의 정치가이자 장수로서 활약하였지만 원래는 조(趙)나라에서 벼슬을 하고 있었는데 그가 연나라의 관리로 등용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하나의 고사(故事)를 볼 수 있다. 전술했듯이 제나라의 내정간섭으로 인해 왕이 죽고 혼란을 겪은 연나라는 소왕이 즉위하였고 그는 제나라를 치기 위해 널리 인재를 구하고 있던 차에 곽외(郭隗)라는 선비가 찾아와 인재를 구하는 방법에 대해 논한다.
“제왕은 훌륭한 스승을 모시고 왕자는 좋은 친구를 가지고 있으며 패자는 훌륭한 신하를 거느리는 법입니다. 예의를 다하여 상대방을 받들고 겸손한 자세로 가르침을 청하면 자기보다 백 배나 훌륭한 인재가 모여듭니다. 상대방에게 경의를 표하고 그 의견을 진지하게 듣는다면 자기보다 열 배 훌륭한 인재가 모이게 됩니다. 그러나 상대방과 똑같이 행동하면 자기와 비슷한 사람만 모여듭니다. 의자에 기대어 곁눈질이나 하면서 지시한다면 소인배들만 모여들며, 무조건 화를 내고 혼낸다면 노복(奴僕)들만 모일 뿐입니다.”
누구에게 가르침을 얻어야 하느냐는 소왕의 물음에 곽외는 일화(一話)를 소개한다.
옛날 어느 왕이 천금을 걸고 천리마를 사려고 하였으나, 3년이 지나도록 구할 수 없었는데 어느날 한 사람이 나타나 죽은 천리마의 뼈를 5백금에 사온 일이 있었다. 이에 왕이 크게 노하였는데 이 사람이 말하기를, ‘죽은 말을 5백금이나 주고 샀다는 소문이 퍼지면 살아있는 말은 훨씬 많은 돈을 줄 것이라 믿게 되어 천리마가 사방에서 몰려들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곽외는 계속 말을 잇는다.
“그런데 과연 그의 말대로 1년도 못되어 천리마가 세 마리나 모여들었다고 합니다. 지금 왕께서 진심으로 인재를 구하고 싶으시면 먼저 이 사람 곽외부터 기용하십시오(先始於隗). 저와 같은 사람을 중히 쓰신다면 저보다 훌륭한 인물들이 천릿길도 멀다하지 않고 모여들 것입니다.”
여기에서 나온 고사성어(故事成語) 하나를 살펴보자.
先始於隗(先:먼저 선 / 始:시작할 시 / 於:어조사 어 / 隗:외,이름,고유명사)
먼저 외(隗;郭隗)로부터 시작하다. 즉, 큰 일을 이루려면 먼저 작은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의미의 고사로서, 같은 뜻의 성어(成語)로는 다음의 말들이 있다.
先從隗始(先:먼저 선 / 從:따를 종 / 隗:외,이름,고유명사 / 始:시작할 시)
先從自始(先:먼저 선 / 從:따를 종 / 自:스스로 자 / 始:시작할 시)
또한 죽은 천리마의 뼈를 5백금에 사들임으로써 산 천리마를 쉽게 얻었다는 뜻으로, 다음의 성어도 같은 의미이다.
買死馬骨(買:살 매 / 死:죽을 사 / 馬:말 마 / 骨:뼈 골)
이에 감동한 연나라 소왕은 곽외를 스승으로 받들고 가르침을 받기로 하였고, 그 소문이 퍼지자 각국에서는 뛰어난 사람들이 몰려들었으며, 이 과정에서 악의(樂毅) 또한 조나라를 떠나 연나라로 와서 관리로 발탁되었다.
선시어외(先始於隗), 곽외라는 선비가 연나라에 등용되어 무슨 활약을 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곽외의 조언(助言)이 아니었더라면 약소국 연나라는 악의라는 뛰어난 인재를 얻을 수 없었을 것이며, 이것이 바로 작은 것부터 시작하지만 결국에는 큰 것을 얻게 되는 장기적(長期的) 기획(企劃)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하나의 예가 되어준다. 모든 사람이 어깨를 걸고 평등하게 살아가는 세상, 두말할 것 없이 장기적인 안목으로 내다보지 않으면 안될 그 세상에 모든 사람이 ‘악의’일 수는 없을 지도 모른다. 스스로 ‘말뼉다귀’같이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우리 개개인부터 시작하자. 언젠가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데 모든 사람이 힘을 모아 ‘악의’와 같은 일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말이다.
(2003년 8월)
- 고사성어 발췌 :
1. [史記], ‘列傳’, 司馬遷 著, 김진연 編譯, <서해문집>, 2002.
2. [史記 列傳], 司馬遷 著, 김원중 譯, <민음사>,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