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 유홍준, <창비>, 2011.
"천하의 일이 부지런하면 다스려지고 부지런하지 않으면 폐하게 됨은 필연의 이치입니다... 그러나 부지런해야 하는 것만 알고 부지런해야 하는 바를 모르면 그 부지런하다는 것이 오히려 번거롭고 까탈스러움에 흘러 보잘 것 없는 것이 됩니다."
- '태조실록 4년(1395년) 10월 7일자, '근정전' 명명에 대한 삼봉 정도전의 기문
조선 건국 후 한양을 기획하고 경복궁 '근정전' 이름을 짓는 과정에서 불세출의 '혁명가' 삼봉 정도전이 [서경]을 인용하여 태조 이성계에게 올린 문장이다.
정도전은 '계민수전'의 원칙 아래 농민들에게 땅을 지급하는 토지개혁의 경제개혁과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재상중심의 정치체제로 세습왕권을 견제하면서 당시 왕조의 한계를 넘어서는 '이상적 유교국가'를 건설하고자 했다.
또한, 한양 지도에 그가 붓을 그으면 그대로 도성의 길이 되었다고 할 정도로 조선과 그 수도인 한양을 직접 설계한 인물이기도 하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6권(2011)은 한양의 '경복궁' 이야기로 시작하여, 순천 선암사, 거창, 부여와 논산 등의 답사 이야기를 이어 가는데, "아는 만큼 보인다"는 그의 지론대로 그의 경복궁 이야기를 따라 '제대로' 다시 찾아간 그곳에 선 나에게는 오로지 '정.도.전'만 보였다.
성리학과 그로 인한 신분제의 한계는 있었다 해도 분명 그는, 다수 민중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이상 사회'를 결연히 추구한 우리 역사 속 불세출의 '혁명가'다.
"답사에 연륜이 생기면서 나도 모르게 문득 떠오른 경구는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였다. 하나의 명작이 탄생하는 과정에는 미처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무수한 '상수(上手)'들의 노력이 있었고, 그것의 가치를 밝혀낸 이들도 내가 따라가기 힘든 상수들이었으며, 세상이 알아주든 말든 묵묵히 그것을 지키며 살아가는 필부 또한 인생들의 상수였다."
-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 <책을 펴내며>, 2011.
1993년부터 시작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저자가 공직에 있던 시절을 포함하여 잠시 중단되었다가, 2011년에 저자의 표현에 의하면 '씨즌2'로 재개되었다.
'씨즌2'인 6권의 책머리에서 유홍준 교수는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라는 명언을 남기는데, 1993년 처음 시작했을 때 못지 않은 역사와 사람에 대한, 우리 삶에 대한 '겸손함'이 큰 미덕이었다.
물론, 2019년 현재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실크로드편'까지 온 유홍준 교수는, 역사에는 여전히 겸손하되 더이상 다른 사람들을 '겸손'하게 대하지 않아 보이기는 하나, 이제 우리 시대 '제일 큰 어른'의 경지에 올랐다고 스스로 판단하고 계셔서 그러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6권의 부제인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라는 '명언'은 우리 인생 어디를 가나 나보다 '상수', 즉 나의 선생들이 무수히 널려 있다는 정말 중요한 삶의 '진리'를 담고 있다.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 유홍준, <창비>,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