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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Mar 31. 2020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2012) - 유홍준

인간의 '존엄성'을 상기시켜주는 '반란의 섬', 제주.

인간의 '존엄성'을 상기시켜주는 '반란의 섬', 제주.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 유홍준, <창비>, 2012.



"제주인들은 이로써(2003년 국가권력의 사과) 4.3이 끝나기를 바랐다. 그러나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남아 있고, 이따금씩 빨갱이들을 토벌한 사건이었다며 학살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발언이 나오기도 하고 또 속으로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어떤 분은 4.3민주항쟁이라 부르지만 분명한 것은 350명의 남로당 무장대를 토벌하기 위해 3만 명의 민간인이 희생된 비극적인 킬링 필드, 킬링 아일랜드 사건이었다는 것이다."
-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 <조천 너븐숭이>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7권은 제주도 이야기다.
2012년에 나온 그 책을 읽었을 때의 제주는 강정마을 미해군기지 반대투쟁이 한창이었는데, 우리에게 '제주'는 '4.3 항쟁'이라는 국가학살에 처절하게 저항한 '반란의 섬'이다.

우리 역사에서 ‘탐라(耽羅)’로 알려진 ‘제주(濟州)’는 선사시대의 유적이 많이 발견되지는 않았으나 바닷 속 화산이 폭발한 화산섬으로서의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고대 철기시대로 접어드는 원삼국시대에는 고대국가(Kingdom)로 발전하지 못한 채 ‘탐라국(耽羅國)’으로서 백제와 이후 통일신라에 조공외교를 한 ‘군장국가(Chiefdom)’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다가 12세기 고려시대에 ‘탐라군(耽羅郡)’으로 복속되었고 이후 13세기에 들어 ‘제주’로 행정구역 명칭이 바뀌면서 현재의 지명을 얻었다.

고려시대 삼별초 대몽항쟁의 마지막 기지로서 전쟁에서 패배 후 고려 조정은 원나라로부터 ‘사위대접’이나마 받았지만, 제주는 원나라 ‘다루가치’에 의한 직접 지배를 받았고, 원나라의 일본 침략 전진기지와 군용 말을 기르는 대규모 목장으로 몽골인들은 제주를 100년 가량 직접 착취하였다.

조선시대 제주 민중들은 중앙정부로부터 전복 등 해산물의 끊임없는 공납 착취, 일제시대에는 식민지배로 인한 이중착취로 힘들어했고 이를 참다 못한 해녀들이 생존권 투쟁을 넘어 항일운동에 나서기도 하였다.

해방 후 미군정과 친일세력에 의한 남한 단독정부 수립 과정에서 1948년부터 1954년까지 당시 제주민중의 1/9 정도 되는 약 3만여 명이 대학살을 당한 ‘제주 4.3항쟁’이 일어난 바, 이는 우리 현대사에서 ‘국가권력에 의해 자행된 최초의 민중 학살’이었으며 이로 인한 제주인들의 역사적 상처는 아직 치유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는 또 다시 제주 남단 강정마을을 미국의 동북아 패권전략에 의한 해군기지로 만들기 위해 주민들과 환경을 지속 황폐화시키고 있다.
평화와 인권을 위한 제주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고대로부터 '독립'된 섬이자 삼별초 대몽항쟁의 마지막 기지, 그로 인해 고려조정은 사위대접이나마 받았지만 제주는 원나라의 직접지배를 받았고, 조선조에서는 '유배지'로, 해방후 미군정과 친일세력에 의한 남한단독정부 설립과정에서 도민 3만명이 국가권력에 의해 학살당한 4.3항쟁의 섬. 제주도.

유홍준 교수는 '4.3항쟁'을 '킬링 아일랜드'로 표현하고 있으나, 내게 4.3은 피해자인 제주도인들에게는 슬프고 송구하나 우리 역사 최초의 국가학살에 대항한 위대한 '민중항쟁'이다.

이 '반란의 섬'은,
생존권으로부터 시작하는 인간의 존엄성을 항상 상기시켜준다.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 유홍준, <창비>,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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