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함께할 줄 알았던 사람들과의 이별 준비
사립학교 전보 신청을 하다.
작년 초 부장님이 말씀하셨다. 같은 재단 여고 상담선생님이 다음 연도 퇴직이시라고...
'선생님, 그쪽 가면 편하지 않겠어? 올해부터 이동 신청 가능하대.' 말을 던지시곤 진지해진 내 표정을 보고 '정말 가고 싶은가 보네?'라고 다시 농담조로 말씀하셨다.
정말 솔깃했지만 아직 1년이 남았기에 덮어두고 있었던 일이다. 그러다 작년 말 이미 겨울방학이 시작한 그날 교감선생님께서 다시 연락을 하셨다. 휴직자를 포함하여 모든 교사에게 전보 신청이 가능하다는 공문과 생각이 있으면 알려달라는 메시지였다.
나는 지속적으로 이 학교를 벗어나고 싶었다. 임용공부를 다시 해볼까 생각도 했었고, 휴직했을 때는 한국사 시험도 봤었다. 그렇지만 매번 매번 끝까지 가지 못한 이유는 변화를 위해서는 1년 또는 그 이상을 투자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결혼에도 쫓기고 있는 심정이었기에 결혼하면 공부해 볼까? 하다가 이 나이가 되었다.
예전 교장의 괴롭힘으로 인해 휴직을 한 뒤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은 점점 노골적으로 변했다. 부자와 결혼하면 전업주부로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좋아하지도 않는 남자를 사귄 적도 있다. 육아휴직으로 잠시 벗어나면 사그라들까 싶어 빨리 결혼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라는 말을 굳게 믿기에 도피성으로 결혼을 할 순 없었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흘러 12년이 되었다.
고등학교로 이동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에 여고를 방문했다. 지금 내 행정일의 반, 상담 건수의 반, 중학교처럼 학생들이 사고를 쳐서 갑자기 끌려오는 일도 적다고 했다. 여고생들은 중학생들보다 더 말이 잘 통할 것이고, 정통의 상담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행사는 더 많이 하는 듯했으나 업무가 반으로 줄어든 것을 정서적 노동이 없는 일로 채우는 것은 거뜬할 것 같았다. 곰팡이와 냄새를 항상 관리해야 하는 반지하에서 새로 리모델링한, 좀 더 큰 5층 상담실로 옮길 수 있다. 누군가의 큰 목소리 때문에, 누군가의 기분에 따라 결정되는 중학교 문화에서 더 합리적인 문화를 갖고 있다고 한다. 기분 따라 행동했던 과거의 한 관리자로 인해 중학교 선생님들은 어느덧 권위에 복종하는 습관을 들였다. 대부분 부당함에 부딪히지 않고, 부당함에 부딪히는 사람들이 있더라도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나는 포기하는 방법을 배워갔다. 일을 받으려 하지 않는 나에게 학생에게 소홀한 선생님 취급을 하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떠넘기는 사람 취급을 했다. 어떤 일은 세심한 보살핌이 필요하기에 상담선생님이, 어떤 일은 보건선생님이 바쁘기에 상담선생님이 해야 한다고 했다. 어떤 일은 모든 부서원이 동일하게 일을 나눠가져야 하기 때문에 고유의 행정일이 있는 내게 또 다른 행정일이 들어왔다. 하나만, 하나만 더, 하다 보니 12년 만에 가장 많은 행정일을 하고 있었다. 오히려 교무실에선 너무 많은 일이 한 사람에게 몰리지 않도록 조정하려는 분위기가 많다고 했다. 그렇지만 혼자 싸워야 하는 이 자리가, 혼자 있기에 바쁜 것을 이해받기 쉽지 않은 이 자리가 외로웠다. 화가 났다. 적당히 일할 방법을 자꾸 찾았고, 그렇기에 바쁜 와중에 죄책감에 시달렸다. 일이 많기에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자신을 달래며, 여긴 직장일 뿐이라고 소명의식을 포기해 갔다. 어느 순간부터 학교가 여유로워도 너무나도 오기 싫은 곳이 되어버렸다.
이런 와중에 내 발목을 붙잡은 건 정이었다. 사립학교 특성상 누군가 들어오면 퇴직까지 함께할 거라 여긴다. 좀 더 정을 주고, 마음 맞는 이들은 우정을 나눈다. 나도 또래 선생님들과 그런 것을 나눌 수 있을 줄 알았다. 지금은 바빠 일 년에 2~3번 모임을 갖지만, 우리가 50대쯤 되면 우리의 문화를 만들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처음 이 학교에 왔을 때 5~60대 선생님들이 그러했듯이, 인자하고, 정 많고, 우정을 중요시하는 그런 미래를 꿈꿨었다. '선생님들이 내가 떠나는 것을 많이 섭섭해할까? 아마 친한 몇몇 선생님들은 더 하겠지.' 마치 배신하고 떠나는 것 같은 미안함, 우리가 함께 약속했던 미래를 등지는 느낌...
한편으로 다른 생각도 들었다. 그런 미래를 꿈꾸기 힘들 정도로 현재가 삭막했다. 바쁜 와중에 또래 선생님과의 교류도 드물었다. 예전에는 학생에 대해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이제는 관리자에 대해, 현재의 압박감에 대해 대화했다.
떠날 마음이 되어서야 한 때 꿈꿨던 무지갯빛 꿈이 떠올라 감성 젖을 뿐이었다. 나는 그동안 코앞만 보고 있었던 것 같다.
정든 마음에 눈물이 날 듯하다가도 떠나는 것에 후회하는 마음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중요한 동료들은 중요한 만큼 이후에도 교류할 것이고, 무지갯빛 꿈은 새 학교에 가서 꿔도 된다. 익숙하고 좋은 사람들을 떠나거나 떠나보내는 일은 어려서부터 해왔던 일이다. 더 좋은 환경과 나의 발전을 인간관계보다 중요시해 온 경험이 많았다. 그래도 여전히 옆에 남을 사람은 남고, 새 좋은 인연은 또 생겼다. 그렇기에 인연에 연연하지 않는 법을 배워왔다.
많은 회사원들은 이직을 하고 지사를 옮기며 익숙하게 해 오는 일이다. 오래 고여있는 집단을 박차고 나가는 최초의 사람이라는 것이 조금 민망하긴 하다. 그렇지만 앞으로 세 학교 교류를 권장한다는 이사회의 뜻에 따라 다른 선생님들도 새로운 곳에서 만날 수 있길, 그로 인해 정체되어 있는 문화에 변화가 있길, 나의 이 걸음이 변화의 첫걸음이 되리라 믿어본다.
어쩌면 그 꿈을 각 학교에서 함께 이루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이, 중학교를 떠나야겠다는 결정과 함께 다시 떠오른다. 희망은 결국 변화에서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