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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장 Oct 19. 2021

제주의 시골에선 차를 조금 멀리 주차해본다.

제주살이 21일 차

  오늘은 남원읍에 있는 카페에 왔다. 여행을 컨셉으로 한, 여행을 다니며 직접 공수해오신 Tea를 주로 파는 곳이다. 여행과 차를 모두 좋아하기에 오는 길이 무척 설렜더란다. 맑은 날씨, 예쁜 구름에 바닷가로 가볼까 잠시 생각해보았지만 내일이면 애월 한담 해변 근처로 거처를 옮기기에 잠시 참아 본다.


  카페 공지글에 가게 앞에 주차를 하면 과태료를 내게 된다고 쓰여있었기에 골목길에 들어가 주차 자리를 찾아보아야 했다. 적당한 곳은 마을회관, 카페까지 걸어서 3분 정도 걸리는 것 같다. 언제나 가장 가까운 곳에 주차하기를 선호하기에 조금 불만족스러워하던 차에 마을회관으로 가는 길이 너무도 예쁘다. 누군가에겐 평범한 제주의 시골 마을 일지 몰라도 마당과 함께 넉넉하게 지어놓은 1층짜리 집은 나에게 평온함을 가져다준다. 바람은 조금 차갑지만 햇볕은 따뜻한 제주의 가을을 느끼며 경쾌하게 걷는다.

  도시에선 마당을 찾아보기도 1층 집을 찾아보기도 쉽지 않다. 가끔 1층으로 지어진 건물을 보곤 하지만 평온함보다는 '여기 임대료는 나오려나.'라는 생각부터 먼저 든다. 제주의 사정은 잘 모르지만, 잘 모르기에 욕심부리지 않은 넉넉함이 도시의 치열함을 잊게 해 주는 것 같다.

  카페는 예상대로 혼자 오기 좋은 장소였다. 테이블 네 개에 손님은 나 혼자. 들어서자마자 우리가 관광지에 가면 맡을 수 있는 흔한 향 냄새가 나고, 찬장에는 흔하지 않은 차와 여행책이 가득하다. 카운터와 가려진 좌석에 앉아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을 켠다. 100여 가지 차 중에 스리랑카에서 가져온 실론티를 연하게 주문한다. 티백으로 실론티를 마셔보는 건 처음인데 홍차보다 덜 쓰고 더 부드럽다. 가보지 않은 나라의 차를 마시며 여행을 좋아하는 주인의 마음을 상상한다. 스리랑카 여행은 그녀에게 어떤 곳이었을지, 코로나로 인해 여행을 가지 못하는 마음은 어떨지. 일 년에 두 번은 해외여행을 가던 나이기에 동질감이 든다. 나는 제주 여행으로 해외여행을 대신하고 있는데 그녀는 어느 곳으로 떠나며 위안을 얻을까?

  카페 화장실은 뒷 문을 열고 나가면 시골식으로 되어있다. 시골식으로 되어있다고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양변기 하나에 종아리 높이에 있는 수도꼭지. '시골 세면대 :)' 라고 적혀있다. '무척 불편하군.' 하며 나온 화장실 앞에는 카페 뒤 편 돌담과 시골집이 보인다. 제주 살이를 이런 집에서 하고 싶었다. 지금 있는 곳은 어디서나 바다와 한라산이 보이는 좋은 곳임은 틀림없지만 이런 곳이 좀 더 제주스럽다고나 할까. 오늘은 요 주변을 좀 더 둘러봐야겠다. 떠나온 일상을 좀 더 많이 잊기에 충분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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