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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장 Oct 21. 2021

외롭지 않기에 고독을 꿈꾼다.

제주 살이 23일 차

  며칠 전 직장 동료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아마도 제주살이는 잘하고 있는지, 요즘 스트레스는 없는지, 그리고 직장 이야기를 조금 하고자 했을 것이다. 10년 가까이 함께 일한, 꽤 가까운 사이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직장이 힘들어 제주로 떠나온 것이 이유이기도 했고, 3주 간 제주에 놀러 온 친구, 가족들과 함께 하며 대인관계 에너지를 다 써버린 탓도 있었다.

  처음 5주 제주살이를 계획할 땐 무척이나 많은 걸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글쓰기, 그림 그리기, 기타 치기를 계획했고 이 모든 걸 다 하고도 심심하면 어쩌나 걱정을 했었다. 일상을 떠나와 스트레스와 단절되는 삶을 꿈꿨는데 현실은 끊임없이 일상과 연결되는 삶인 것 같다. 주변인들은 내가 제주도에 있는 동안 떠나오기 전 있었던 일을 묻고, 잘 해결되었는지, 지금은 괜찮아졌는지 걱정하곤 했다. 자극이 없는 곳으로 오면 잊어버리리라고 예상했지만, 비워내도 다시 채워지고 채워지고 있다. 연락 오는 것 자체에 예민하기도 했었다.'너의 일상은 사라지지 않았어. 도망간다고 간단히 이겨낼 수 있는 게 아니야. 마주하고 부딪히고 극복해.'라고 말하는 듯하다.

  끊임없이 혼자이고 싶다, 고독하고 싶다를 외치며 조용하고 사람 없는 곳으로 도망치지만, 돌아갈 곳이 있기에 나를 걱정해주는 이들이 있기에 할 수 있는 배부른 소리 같기도 하다. 아무래도 일상과, 사람들과 조금 떨어져 온전히 나 다워지는 시간. 내가 뭘 원하는지 알 수 있는 시간. 잠시나마 그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에  만족해야 할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며 주변 영향을 받는 것에 대처하는 방법을 조금 더 배워본다. '뜬금없이 오는 연락은 나를 궁금해하기 때문이라는 것.', '그 시간 뒤엔 원한다면 언제든지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 '내 시간은 내 것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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